서천 송림산림욕장 맥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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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이야기

서천 송림산림욕장 맥문동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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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 장항 송림산림욕장,  맥문동

장항송림은 원두막과 들마루 벤취 등의 휴식시설과 운동시설이 잘 갖춰져 있어 가족단위는 물론 단체의 야외활동지로 알맞다. 모래사장 찜질로도 유명한 곳이다. 송림은 그 앞 바다와의 사이에 1km가 넘는 백사장을 사이에 두고 긴 띠를 이루며 해변에 자리하고 있다.

전국 최대규모의 곰솔림과 맥문동 식재지, 솔바람길과 스카이워크 등 산림을 이용한 종합 산림휴양지로서의 역할을 인정받아 산림청에서 국가산림문화자산으로 지정된 송림산림욕장이다

코로나 19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생활 속 2m 거리두기

1. 마스크 착용하기    2.  손씻기    3. 접촉자 거리 두기

 

맥문동

학      명 : 백합과

분포지역 : 한국 / 일본 / 중국

꽃     말 : 기쁨의 연속, 겸손, 인내

개  화 기: 6 ~ 8

특    징 : 꽃 색깔은 자주색이며 크기는 30~50cm정도이다.중부 이남의 산지에서 자라는 상록 다년생 초본이다.

             잎이 늘 푸르고 뿌리가 보리와 생김새가 비슷하다.잎은 뿌리에서 뭉쳐나며 뿌리가 짧고 굵다.

맥문동 (시인 권혁춘 경기 하남 출생)

여름날 매미 울 면 긴 꽃대 마다마다 귀를 달고 울음 귀동냥 한다.

여름 끝과 함께 매미 소리 끝나면소리마다 흑진주가 된 구슬 걸어꽃으로 피워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드리우는 맥문동,땡볕 소나기 천둥 여름을 여름 답게 산 삶으로 맞는가을의 섭리를 배운다. 맥문동에게

장항 스카이 워크 (기벌포 해전 전망대)

 

서천 기벌포 해전 이야기

1차 기벌포 해전

금강하구 즉 기벌포(伎伐浦)7세기 중반 백제 · 일본, 신라, 당나라가 한반도의 패권을 놓고 전쟁을 하였던 동북아시아 최초의 국제 전쟁터이다.그 이유는 기벌포가 백제 웅진 · 사비 도읍기에 군사적 외교적 관문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백제는 금강하구 하여 대당 대일본과 문화 교류를 끊임없이 펼쳤다.그러다 6607일 기벌포를 지키지 못한 백제는 나당연합군에게 사비성을 쉽게 점령당하였다.

신라와 당나라가 나당연합군을 결성하여 백제를 침공할 때 당나라 장군 소정방은산둥반도를 출발하여 덕적도에 도착한 다음 기벌포로 들어왔는데, 해안이 진흙탕이어서 빠지므로 다닐 수 없어 버들자리를 펴 군사를 나오게 하였다. 기벌포 백제 수군들은 당나라장수 소정방을 맞이하여 목숨을 걸고 싸웠지만 패배했다. 660713일 나당연합군은 백제 수도 사비성을 쉽게 점령할 수 있었다. 그 후 소정방은 백제 의자왕과 신하 93.군사 2만인을 이곳 기벌포를 경유하여 당나라로 갔다.

 

2차 기벌포 해전(백촌강전투)

663년 백제부흥군과 일본연합군은 백제 왕조 복원을 위해 백촌강(지금의 금강하구) 전투에서 나당연합군과 싸우지만 대패한다. 이를 백촌강 전투라고 한다.이곳 금강하구는 백강구로 백제, 일본, 신라 당나라가 동북아시아 최초로 국제전쟁을 했던 곳이다. 663년에는 백제 부흥운동을 원조하기 위한 일본군 장수 여원군신(原君臣).박시전래진과 나당연합군의 결전을 벌인 곳이다. 663813일 백제 부흥군 풍왕은 일본의 원군 27천을 맞으면 백촌강으로 간다.

817일 당 수군은 웅진강에서백촌강으로 나와 진을 친다. 일본군은 마서면 백사마을에 진을 치고 당나라 장군 유인궤 유인원과 이 곳 백강구에서 싸웠다. 백촌강 전쟁은 나당연합군의 승리로 백제부흥군과 일본군에게깊은 상처를 남겼다. 이때 일본군의 배 400척이 불탔으며, 삼국사기는 백촌강 전투를 두고 '연기와 불꽃은 하늘을 붉게 물들였고, 바닷물마저 핏빛이 되었다. 고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3차 기벌포 해전

신라의 대당 전쟁은 670년부터 676년까지 7년간 지속되었다. 금강하구 기벌포의 중요성은 신라와 당나라의 마지막 해전에서도 확인이 된다. 67611, 기벌포(伎伐浦) 앞바다에서 신라 수군과 당나라 설인귀가 이끈 당수군과 마지막 격전이 벌어졌다. 신라는 673년에 함선 1백 척과 해군을 서해에 배치시켜 방비하고 있었다. 676년 설인귀의 당나라 해군이 기벌포로 내려오자, 사천, 시득이 함선을 이끌고 기벌포에서 설인귀군과 싸웠으나 패배하였다.

그러나 크고 작은 전투 22번에 걸쳐 결국 당나라의 수군 4천여 명이 전사하였다. 육지에서는 매소성에서 바다에서는 기벌포 전투에서 당나라의 군대를 격파함으로 신라가 승리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를 얻게 되었다. 기벌포 해전은 신라가 대당전쟁을 승리로 끝맺은 마지막 해전이다.당나라가 한반도에서 물러감에 따라 신라는 삼국통일을 이루게 되고 한민족의 '민족' 개념이 생성되었다.

희망...

지금 바라다보고 있는 기벌포 저 서해바다는 말이 없지만 잠깐만 눈을 감으면 한 뼘의 땅을 차지하기 위하여 백제군, 신라군, 일본군, 당 군대가 목숨을 내걸고 부르짖는 함성이 귓전에 다가온다. 오늘날 1400여 년 전 역사적 사건을 거울삼아 대한민국, 일본, 중국이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위하여 최초 동북아시아 국제전쟁터 기벌포에서 기벌포 평화선언 을 할 때이다.

풀꽃 1. 시 나태주 (서천출생)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소나무조경지

명칭 : 소나무     분류 : 겉씨식물과 구과목 소나무과

분포지 : 한국, 중국북동부,

솔, 소나무, 솔나무 소오리나무라고도 하며 한자어로 송, 적송, 송목, 송수, 청송이라고도 한다

꽃은 5월에 피고 수꽃은 새가지의 끝부분에 달리며 자주색이고 길이6mm의 달걀형이다. 잎은 소화불량 또는 강장재로 쓰이고 꽃은 이질에 쓰이며송진은 고약 등에 약제로 쓰인다. 건축재, 펄프용재로 이용되고 페인트, 니스용재 합성장뇌의 원료로 쓰이며, 관상용, 정자목, 당신목으로 많이 쓰인다.

풀꽃 2.

이름을 알고 나면 이웃이 되고색깔을 알고 나면 친구가 되고모양까지 알고 나면 연인이 된다. , 이것은 비밀.

맥문동

백합과의 늘푸른 여러해살이풀로 서해안을비롯한 중부 이남의 산지에 분포한다. 숲 가장자리나 숲 속의 반그늘에

자생하며, 공원이나 도로변의 화단에 심어 관상하고 ,약용으로도 한다. 꽃은 6-7월에 연한자주색으로 핀다.

장항제련소

일제강점기인 1936년 조선제련주식회사로 설립되어 공장조업이 개시된 이래 우리 나라 비철금속제련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여왔다. 초기에는 동제련공장만이 설치, 운영되어왔으나, 광복 이후 1964년에는 연제련공장이 준공되었으며, 2010년에 엘에스(LS)메탈 장항공장으로 최종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사랑하여 주셔서 더욱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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