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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문화단지, 백제왕궁 사비성,

작성일 작성자 사랑

백제역사를 재현해놓은 백제문화단지

1993년 백제의 도읍지 부여가 백제문화권특정지역으로 지정되고, 1994년부터 2010년까지 17년간에 걸쳐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국내 최초로 삼국시대 백제왕궁을 재현한 곳으로 왕궁/사찰의 하앙식 구조와 청아하고 은은한 단청은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건축양식으로 사비성의 모든 건물마다 백제시대 유적과 유물에 근거한 사실적 재현을

통하여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백제 왕궁인 사비궁과 대표적 사찰인 능사, 계층별 주거문화를 보여주는 생활문화마을, 개국 초기 궁성인 위례성, 묘제는 물론 백제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백제역사문화관 등 1400년 문화대국이었던 백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문화의 근간을 이루고 있으면서 고대 일본문화의 원류가 되었던 백제역사를 새롭게 조명하고

문화의 우수성을 세계만방에 알리는 새로운 출발점입니다.

 6,904억원의 사업비를 투자하여 330 대지위에 사비궁과 능사, 생활문화마을과 위례성세계적인 역사테마파크로 거듭나고 있는 이곳에서 1,400년전 찬연했던 백제의 기상과 문화의 정수를 느끼시고 그 때의 정취에 흠뻑 젖어보시기 바랍니다.

백제의 생활

백제는 평야지대를 기반으로 일찍이 농경문화가 발달하였고, 제철산업의 발달로 철제무기와 농기구를 비롯한 각종 생활도구와 금속 공예기술이 발달하였다고 합니다.

정양문

정양문은 백제문화단지 사비성의 정문이다. 이 문을 정양문이라 한 것은 해가 가장 높이 떠 온 세상을

밝고 환하게 비추는 때로써 모든 기운이 가장 왕성한 때를 가르키는 정양을 이르는 말이다.

가장 강성했던 백제를 이루 었던 근초고왕( 346~375) 이 일본의 왕에게 하사한 것으로 전해지는

칠지도라고 하는 칼에 새겨진 명문에서 인용한 것으로. 칠지도에는 총 62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정양100번 단련한 강철로 칠지도를 만들었는데, 모든 병해를 물리칠 수 있으며 편안히 후왕에게 나누어 마땅하다"라는 기록에서 보이는정양이라는 단어를 인용하여다고 합니다 

건물은 2층 규모로 입구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으며 백제 고유의 건축양식으로 기둥 상부에 45도로

경사진 부재가 건물을 웅장하게 해주는 하앙식 구조로써 목재 또한 끼우고 맞춤 의한 방법으로 조립된

전통기법으로  건축한 백제 시대의 성문이라고 합니다.

대웅전(大雄殿)능사

대웅전은 금당이라고도 하며 내부에는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웅전은 외부에서는 2층의 규모이고

내부에서는 통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건들 대부에 부처를 모심에 따라 외부에서는 건물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보이 스 있도록 하고 내부에서는 웅장하면서도 엄숙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내부의 삼존불은 백제시대 출토된 불상을 근거로 하여 조성한 것으로 목조로 불상을 조각한 후

개금을 하지 않고 옻칠로만 마감을 한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목조건물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인 대목장, 단청은 중요문화재 제48호인 단청장,

기와는 중요 무형문화재 제121호인 번와장, 중요무형문화재106호인 각자장이 참여하여 건축하였습니다

중궁

백제 사비시기의 중궁을 재현해 놓은 곳이다. 정전인 천정전(天政殿) 큰 정사를 하늘에 고하여 결정했다는

천정대(天政臺)에서 이름을 따왔다. 중궁의 정전은 왕의 즉위 의례, 신년 행사 등 각종 국가 의식이 거행

외국사신을 맞이하는 왕궁 내의 가장 중요한 건물이었다.

수경정


제향루


백제문화단지 능사5층목탑

능사의 발굴 조사 결과를 토대로 백제시대의 목탑을 복원 재현한 것이다.목탑의 터에서 출토된 사리감

명문을 통해 건립 연대와 조성 배경을 알 수 있어 백제 사원의 성격 규명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백제의 무덤

 백제인들은 원래 땅을 파고 바로 시신을 안치하거나, 돌로 널을 짜는 널무덤을 사용 하였다.

한성시대의 백제인들은 시신을 두고 그 둘레에 돌을 쌓아올린 돌무지무덤(積石塚), 널길이 달린 돌방

위에 흙을 덮은 굴식돌방무덤을 사용하였다.

백제인들의 돌무지 무덤은 고구려의 무덤양식과 같은 것으로 삼국시대 초기의 두 나라의 관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웅진시대에는 돌무지무덤은 없어지고 돌방무덤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중국의 영향으로 벽돌 무덤을

만들기도 하였다. 사비시대에는 장방형 돌방무덤이 유행하였다. 전남지역에서는 독무덤을 널리 사용하였다.


생활문화마을

백제 사비시대의 계층별 주거유형을 보여주는 곳으로 이곳에서 당시 백제인들의 생활 풍습을 함께

알 수 있다. 귀족가옥은 당시 최고의 벼슬이었던 대좌평 사택지적의 가옥, 군관가옥은 계백장군의

가옥을 연출하였다.


 중류계급과 서민계급의 가옥을 연출하여 다양한 계층의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다.

전통혼례

백제의 혼인 풍속은 대략 고구려와 흡사하다는 기록이 보인다.

남자가 처갓집에 머물다가 아이를 낳아 장성하면 분가하는 데릴사위제(서옥제)와 형이 죽으면 형수를

부인으로 맞이하는 형수 취수제 등과 유사한 혼인제도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위례성

 백제 한성시기(B.C.18 ~ AD.475)의 도읍을 재현하였다. 고구려에서 남하한 온조왕이 터전을 잡은 곳으로, 미추홀에 자리 잡은 비류의 나라를 통합하고 난 후 백제의 수도로 자리 하였다. 지리적으로 외적의

침입을 막는데 유리하고, 토지가 비옥하여 백제가 성장하는데 큰 기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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