㊿ Noblesse oblige를 실천한 상주
번호53작성일2015.12.09조회수1004
작성자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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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blesse oblige를 실천한
    상주의 선비, 창석(蒼石) 이준(李埈)선생

    창석 이준 선생은 1560년(명종15)에 상주시 청리면 송학동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흥양(興陽), 자(字)는 숙평(叔平), 別號는 창석(蒼石)이시다. 祖父는 탁(琢)으로 종사랑(從仕郞)이었고, 父는 수인(守仁)으로 증직(贈職)이 좌승지(左承旨)이다. 월간(月澗) 이전(李㙉)의 제(弟)이다.

    선생은 어릴 때 孟子를 읽을 세 「어찌 반드시 利益(이익)을 이르십니까?」라는 구절을 읽고 척연하게 이르기를 「義理의 분별은 學者가 마땅히 멀리 할 바이다」라 하고 하였다 한다.
    1582년(壬午年)에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고, 이어 辛卯年(1591년)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校書館 正字)에 제수(除授)되어 벼슬길에 나아가 1595년(乙未年 )에 경상도도사(慶尙道都事)등 여러 직을 거치면서, 1634년 대사간을 거쳐 1635년 4월에는 홍문관 부제학에 임명 되었다.

    먼저 선생의 애국심으로
    임란으로 나라가 위급함에 의병을 일으켜 안령전투 등에서 왜적과 싸웠으며, 이때에 왜적에게 쫓기면서 형제간의 우애어린 대화 중에 선생이 백씨(伯氏)에게 말하기를 “결코 둘 다 안전할 수 없으니 형님은 급히 달아나십시오” 하자 백씨가 울먹이며 말하기를 “ 둘 다 안전할 수 없으면 함께 죽으면 된다” 라는 말이 전해 오기도 한다. 이 후 선생이 1604년에 세자책봉주청사 서장관으로 북경에 갔을 때 이때의 이야기를 하니 중국의 화공이 그린 그림이 바로 “형제급난도(兄弟急難圖)”이다. 또한 선생은 강직한 선비로 1595년에 중흥귀감(中興龜鑑)을 올리기도 하였으며,
    광해임금의 끝없는 失政에 근심하고 간(諫)하였으며, 經筵(경연)을 오래도록 廢(폐)함에 간하기도 하였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難政(난정)에 대한 忠諫을 아끼지 아니한 강직한 선비였었다고 전한다(조선왕조실록,광해 10권,(1608년11월 6일(기축) 홍문관 부교리 이준의 상소문)

    두 번째로
    전쟁으로 피폐(疲弊)해진 백성을 구하고자 최초의 사설의료원인 “존애당” 건립에 동참하였으며,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는 대상이 향촌민(鄕村民) 에게 개방을 했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고 의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선생이 쓴 “존애당기(存愛堂記)”는 오늘날 그 때의 실상을 밝히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전쟁을 치루면서 파괴된 인륜을 바로 세우고자 1606년에 도남서원의 창건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본 서원은 영남의 수학궁(首學宮)으로서 추로(鄒魯)지향의 위상을 지켜오고 있는 데, 배향선현은 圃隱(포은), 寒暄堂(한훤당), 一蠹(일두), 晦齋(회재), 退溪(퇴계) 선생과 그 뒤 1617년에 穌齋(소재), 1631년에 西厓(서애), 1635년에 愚伏(우복), 그리고 2005년에 마침내 蒼石(창석)을 추배하여 총 9賢(현)이다.

    다음은 상주 지역사록의 효시(嚆矢)인 상산지(商山誌)편찬으로
    이는 古都(고도)상주의 최초 鄕誌(향지)로서 이후 조선 말기에 까지 수차례 간행된 여러 편의 史錄(사록)의 기본이 되었고, “尙州市史(2010년)”의 기초 또한 여기에서 출발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 선생의 그 업적은 참으로 빛난다 할 것이다.
    이외에도 선생은 수십 편의 문한(文翰)을 남기기도 하였다.

    선생의 사당(가천3길 70)은 상주시 청리면 가천리 유촌(酉村)에 소재하는데 지역민들은 닭내(달래) 마을이라 부르는데, 마을 서쪽에 있는 서산(西山:509m)이 주산으로 “금계음수형(金鷄飮水形)이라 알려진 곳이다. 이 사당은 당초 월간(月澗) 이전(李㙉) 선생의 사당과 함께 1656년에 다른 곳에 창건 된 것을 1771년(영조47년)에 현 장소로 이건하여 오늘에 이르는데, 지방문화재자료 제178-2호이다.

    흔히들 벼슬의 유무(有無)와 관계없이 ‘선비’라고 하면 근래에 와서는 좋지 않은 시각으로 보는 경향도 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를 실천한 선생은 상주의 참 선비이시며 큰 자랑이 아닐 수 없다(참고: 상주문화재, 상주인물, 웅주전고) 뉴스상주'1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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