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봉(微山.自明)

(51) 어풍(御風)이 관찰(觀察)하였다고

작성일 작성자 장안봉(微山)
(51) 어풍(御風)이 관찰(觀察)하였다고
번호54작성일2015.12.18조회수761
작성자김광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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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풍(御風)이 관찰(觀察)하였다고 "어풍대(御風臺)"

    백두대간 「밤원숭덕지맥」이 오봉산을 솟구치고 송현을 넘어 마리산(馬里山:385.1m. 일명 國師峰)을 빗는다.
    이 지맥의 끝자락 매악산(梅岳山:318m)과 마리산의 중간 골짜기의 강변에 한 작은 촌락이 있으니 이름하여 사벌면 매호리 동동(東洞)마을이다.
    이 마을이 이재(頤齋) 조우인(曺友人:1561~1625) 선생이 바로 매호별곡(梅湖別曲)을 지은 곳이다.

    선생은 예천군 개포면 노포리 외가에서 태어 나셨으며, 태어난지 불과 열흘 만에 어머니를 여의고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으며, 어느 정도 자라 친가로 돌아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어린 시절부터 가히 신동(神童)이라 불렀다고 한다.
    당쟁이 심하여 정사가 올바르지 못할 때에 무고한 음해로 옥살이를 하다가 풀려난 후「조선왕조실록에傳曰: “開月連有大禮, 罪人相繼病斃, 極爲可慮。 賊㬇、友仁等, 當親鞫矣。 懿範事議啓, 他罪人, 雖無判義禁, 速爲庭鞫處置。”(光海 168卷, 13年(1621 辛酉. 8月 20日(己丑) 2번째기사)」 승정원 동부승지, 우부승지가 되었으나 고문과 옥살이로 건강이 좋지 못하여 벼슬을 그만두고 1624년 낙동강 서안에 있는 매호 마을로 낙향을 한 것이다.

    이때 인조임금은 매호 십리 강산과 사서삼경 등의 많은 책을 하사하셨는데, 지금도 동동마을 뒷산인 마리산을 일명 국사봉이라 부르는 것은 그 까닭이라 한다. 낙향하신 뒤 낙동강가에 이적정(二適亭), 임호정(臨湖亭)을 지었는데 없어지고 말았으며, 많은 가사중에 매호별곡 필사본이 전해온다.

    선생은 6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시니 예천군 개포면 우감리에 장사 지내고, 택당(澤堂) 이식(李植)이 묘갈명을 지었다.
    선생은 상주시 화서면의 봉산서원(鳳山書院)과 예천군 개포면의 옥동서원(玉洞書院)에 입향 되었으며, 사벌면 매호리의 별묘(別廟)에서 향사한다.
    마을 앞 낙동강가에 선생이 여생을 보낼만한 곳인지 인조임금이 어풍을 보내어 관찰하라고 하셨다고 전하는 어풍대가 자리하고 있는데, 지금은 마을 앞으로 2차선 도로가 개설되고, 또한 4대강 사업으로 인하여 “국토종주자전거길”이 지난다.

    어풍대 표지석 뒷면의 글을 보면
    「선조(先祖)의 휘(諱)는 友字 仁字요, 字는 여익(汝益)이오, 號는 이재(頤齋)요, 관직(官職)은 승지(承旨)이시다. 先祖께서 官職을 마무리 하시고 매호(梅湖)로 落鄕하시여 南쪽에는 臨湖亭을 두고 이곳을 어풍대(御風臺)라 名하시였다. 인조(仁祖)께서 頤齋 같은 忠節之士가 地理風水學的으로 여생(餘生)을 보낼만한 안식처(安息處)가 될 곳인지 御風을 이곳에 보내 관찰(觀察)하라고 하셨다. 御風이 王命을 받고 梅湖에 到着하여 이 바위에서 山勢와 地形을 보며 休息하고 갔다는 地点이므로 御風臺라 하였다. 近 三百餘年 동안 遺墟地에 表石하나 設立하지 못한 子孫들은 罪스러움을 免치 못하든중 十一世孫 曺圭成氏가 單獨으로 이 碑를 세웠다. 西紀一九九一年 辛未 八月 日. 頤齋公派宗會長 曺敬煥 撰, 曺世鉉 書」라 새겨져 있네요.

    이재 선생은 조선조에 선조, 광해군, 인조등 3대 임금을 섬기며 시, 글씨, 그림등 3절로 이름났던 선비였으며, 이재선생에게 임금이 이 일대 4방 십리를 하사한 장소로 경관이 매우 빼어난 곳으로, 어풍대에서 정면으로 보면 의성군 다인면 소재 비봉산(飛鳳山:579m)이 우뚝하게 보이고, 왼쪽 낙동강 상류 쪽으로 보면 삼강에서 내려온 낙동강과 영강이 합수되어 큰 물줄기로 달려오고 맞은편 풍양면의 와룡산을 두고 넓은 들판은 보는 이의 마음을 넉넉하게 하고 있지요.

    이재 "가사"가 전하는데, 매호별곡, 관동속별곡, 자도사, 출새곡(出塞曲)등 4편의 가사로 영조말엽에 필사한 것으로 추정한다, 인근에 이재 선생의 시비가 서 있으며, 위쪽으로 좀 더 올라가면 “낙동강칠백리 이곳에서 시작되다” 라는 표지석이 길손을 반기고 있으며, 지방문화재자료 제520호인 “상주 퇴강성당(1923년)”도 인접하고 있다.
    또한 칠백리 표지석~퇴강성당~퇴옹바위~마리산~매악산~칠백리표지석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도 개설 되어 있기도 하다.(참고: 웅주전고, 상주의 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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