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안봉(微山.自明)

(69) 옛 군사적 요충지 상주 함창의「당교」

작성일 작성자 장안봉(微山)
(69) 옛 군사적 요충지 상주 함창의「당교」
번호72작성일2016.04.21조회수763
작성자김광희
첨부파일파일받기 크기변환_20160411당교4.jpg
  • 옛 군사적 요충지 상주 함창의「당교唐橋」

    있는 곳: 상주시 함창읍 대조리 5-5번지

    당교(唐橋)는 역사 스페셜(1999년10월23일)에 「1,300여 년 전 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시체는 다리 밑에 매장 되었다. 사건의 피살자 그는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 이었다」라고 방영된 적이 있다. 그곳은 우리함창 지역의 3번 국도상 윤직사거리 교차로 옆 화단(대조리 5-5)으로 그 유래를 밝히고자 당교사적지비(唐橋史蹟地碑)가 세워져 있으나, 이 碑의 키가 낮아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요.

    기록으로는
    삼국유사(1卷-1紀異-太宗春秋公-13)에 「又新羅古傳云:定方旣討麗濟二國, 又謀伐新羅而留連, 於是庾信知其謀, 饗唐兵鴆之, 皆死 坑之, 今尙州界有唐橋, 是其坑地: 소정방이 이미 고구려·백제 두 나라를 토벌하고 또 신라마저 치려고 머물러 있었다. 이때 유신이 그 뜻을 알아채고 당나라 군사를 초대하여 독약을 먹여 죽이고는 모두 쓸어 묻었다. 지금 상주(尙州) 지경에 당교(唐橋)가 있는데 이것이 그들을 묻은 곳이다」라고....

    함창현지에는 「在郡北六里 ○新羅古記云蘇定方旣討麗濟又謀伐新羅留屯于此金庾信知其謀饗唐兵醉而皆坑之後人仍名唐橋 ○一云唐高宗時新羅太宗王七年唐將蘇定方駐兵於此故名之」라 적고 있으며,

    또한 함녕루 팔영(咸寧樓 八詠)에서는 "唐橋訪古"라 했는데, 이는 (혈전(血戰)한 당년의 흔적 더듬어서 옛적의 다리 이름 당교라 불러오네, 촌 늙은이 신라 때 일을 전해 듣고 아손(兒孫)들과 함께 그 때 일을 이야기하네) 이다.

    삼국유사와 여지도서 등에 신라의 삼국통일에 기여한 명장 김유신(金庾信)장군의 지략(智略)으로 신라를 정복 하려고 이곳에 주둔한 당나라 소정방장군의 군사를 몰살 시킨 곳이라 전한다.

    예부터 이곳은 교통과 군사적 요충지라 삼국시대뿐만 아니라 임진왜란 때에도 왜군은 중요한 거점인 이곳에 상당한 병력을 주둔시켜 관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당시 조선에서도 전세를 만회하고자 이곳 탈환에 심혈을 경주하였으며 그 가운데 큰 사례는 창의군의 선봉장인 李軸(이축:1 565~1647년, 1592년 7월 황령에서 의병을 일으킴)의 공격과 향병들의 항쟁으로 당교는 우리 측의 지배하에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대부분 "唐橋"라는 다리(교량) 이름으로 알고 있으나 최근 상주의 향토사학자인 조희열 선생께서 『그러나 이것은 잘못이다. ‘다리〈橋〉’가 아닌 ‘달〈땅, 地〉’이기 때문이다. 즉, ‘떼다리’가 아니라 ‘떼달’인 것이다. ‘떼’는 ‘떼 놈’이라는 말에서 보듯 중국을 의미하는 말이고, ‘달’은 ‘땅’을 의미하는 옛 우리말이다. ‘달’은 지금도 일부 말에 남아서 사용되고 있는데 ‘양달’과 ‘응달’이 그것이다.
    양달은 햇빛이 드는 땅이고, 응달은 햇빛이 들지 않아 그늘진 땅을 이르는 말임을 누구나 다 잘 안다.
    그러면 ‘떼달’이 어떻게 해서 ‘떼다리’가 된 것일까? ‘떼(唐)+달=떼달’은 말 끝〈語尾〉에 ‘-이’가 붙어서 ‘떼(唐)+달=떼달+이=떼달이→떼다리’가 되었다. 이 ‘떼다리’라는 우리말 땅이름을 한자로 기록하면서 ‘떼다리→당교(唐橋)’로 변한 것이다. 그래서 수 십여 년 전까지만 하여도 ‘떼다리’와 ‘당교’는 비슷한 빈도로 불린 것이다.
    경덕왕〈757년〉은 순 우리말로 불려오던 땅이름을 모두 중국식으로 바꾸어 한자로 옮겨 적게 했다. 이 때 어떤 이름은 음(音)을 빌어서 기록했고, 어떤 이름은 뜻을 빌어서 땅이름을 기록하면서 ‘떼다리’의 ‘떼’는 뜻을 빌어 ‘당(唐)’으로 ‘달’은 이미 ‘다리’로 변했으므로 뜻을 빌어 ‘교(橋)’로 기록하면서 ‘당교(唐橋)’가 된 것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상주시에서는 옛 그 자리에 2008.5에 「唐橋史蹟地碑」로,
    문경시에서는 1990, 4 시청 민원실 앞에 「唐橋史蹟碑」라고 제법 큰 규모로 세워 놓았는데 「...통일의 비원을 싣고 달리는 3번 국도 옆에 당교사적비를 세움은 통일의 의지를 오늘에 다시 확고히 하려는 것이다」라고, 글은 정영호 교수가 지었네요. 상주북부지역에 아주 큰 의미가 있는 교통과 전략의 요충지인 당교사적지, 이곳 윤직교차로를 지나칠 때는 함 기억해 봄이 어떨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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