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민 족 책 략

옛날 옛적에(3)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역사 유적들

작성일 작성자 한국인

옛날 옛적에(3) :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역사 유적들

(한국인 / 2017. 07. 11)

 

중앙아시아 최고(最古)의 도시이자 14세기 티무르 제국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는 역사 유적이 가득한 보물과 같은 도시입니다.

 

오래 전부터 동서양 교역로인 실크르드의 중심도시로 번성하였던

사마르칸트는 아직도 티무르 대왕의 열정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중앙아시아의 대표적인 문화와 교역 도시로 번영하였습니다.


티무르 대왕은 잔인한 성격의 소유자였지만 문화에 관심이 많아 티무르 제국의

수도 사마르칸트를 문화적으로 가장 번화한 도시로 만들려고 하였다고 합니다.


그는 이곳에 이슬람 양식에 기초한 웅장한 사원과 건축물을 많이 건설했고,

학문과 예술을 크게 지원하였고, 학자와 종교 지도자들을 높이 대우한 덕분에

사마르칸트는 문화, 건축, 학문의 중심 도시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사마르칸트는 티무르 제국 이전 번성하였다가 칭기스칸에 의해 파괴된 지역과

티무르 제국 당시 건설하였던 유적이 남아있는 지역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현재는 주로 티무르 제국의 유적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이 많이 개발되어

사마르칸트 관광의 중심지가 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바람잘 날이 없었던 중앙아시아 지역의 대표적인

문화유적 도시 사마르칸트의 아름다운 모습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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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의 유적들

(한국인 / 2017. 07. 11)


<비비하눔 사원입니다. 두산백과의 설명에 의하면 1398년 인도 원정에서 돌아오는 티무르의 개선을 기념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고 합니다. 비비하눔은 티무르 대왕이 사랑한 중국인 왕비의 이름으로 인도 원정을 떠난 티무르 대왕을 만족시켜 주기 위해 지었다고 합니다. 건축 당시 티무르 대왕이 원정에서 돌아오기 전까지 완공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는데 왕비를 사랑하던 건축가가 자신에게 입맞춤을 해주면 기간 내에 완공시켜 주겠다고 해서 입맞춤을 해주고 기간 내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왕비의 볼에 건축가의 입맞춤 자국이 남았고, 훗날 내막을 알게된 티무르 대왕이 건축가는 사형시키고 왕비에게는 차도르를 쓰게 했다고 합니다. 일설에는 나중에 왕비가 사원의 첨탑에서 뛰어 내려 죽었다고 하기도 하고...>


<비비하눔 사원 내부에 있는 작은 사원 돔의 장식을 당겨 찍은 것입니다.>  

 

<비비하눔 사원의 왼편 바깥에서 촬영한 것이라서 앞에 불필요한 건물 모습이 보입니다.> 

 

<비비하눔 사원의 전면 모서리에서 찍은 사원의 정문, 돔, 첨탑의 일부 모습입니다.>  

 

<비비하눔 사원의 첨탑과 화려한 장식입니다.> 

 

<비비하눔 사원의 주요 부분을 오른편에 있는 바자르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비비하눔 사원 내부에 있는 작은 사원의 돔입니다.>  

 

<비비하눔 사원 내부 메인 홀의 정면입니다.> 

 

<비비하눔 사원 내부의 메인 홀과 그 앞의 정원, 돔 등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돔의 높이는 40m에 달한다고 합니다.> 

 

<비비하눔 사원의 정문 모습입니다. 높이는 35m에 달한다고 합니다.> 

 

<비비하눔 사원의 전면에 위치한 비비하눔 왕비의 묘소입니다. 다소 초라해 보입니다.> 

 

<샤흐진다 언덕에서 바라본 비비하눔 사원 모습입니다.> 

 

<샤흐진다 영묘의 일부입니다. 샤흐진다 영묘는 이슬람교 지도자, 순교자, 티무르 왕족의 영묘를 집단으로 모신 곳입니다. 모든 건물마다 이들의 관이 안치되어 있고 그 주위에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는 어디를 가나 영묘 주위에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샤흐진다 영묘 내에 있는 건물들과 돔의 다양한 모습입니다.> 

 

<샤흐진다 영묘로 들어가는 정문입니다. 그 뒤로 영묘들이 일직선으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사마르칸트의 옛 중심지인 아프로시압 도성 유적지에서 발견된 벽화 모습입니다. 이 벽화 속에 조우관(鳥羽冠)을 쓴 고대 한국인의 모습이 있다는데 저는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부끄부끄...>  

 

<티무르 제국의 4대 왕인 울르그백은 유명한 천문학자이기도 했는데, 사진은 울르그백 천문대의 모형입니다. 울르그백 천문대 유적지에 있는 박물관에서 찍었습니다.>  

 

<사마르칸트의 외곽에 위치한 울르그백 천문대의 유적지에서 바라본 사마르칸트인데 멀리 비비하눔 사원의 윤곽이 보입니다.>  

 

<티무르 영묘의 정문입니다. 원래 티무르 대왕은 고향인 샤흐리삽스에 자신의 영묘를 건축해 놓았는데 사망 시점이 눈이 많이 내리는 겨울이라 그리 가지 못하고 사마르칸트에 있는 이곳에 안치되었다고 합니다. 저에게는 이곳이 더 화려하고 장엄해 보였습니다.> 

 

<티무르 영묘에 안치된 몇 사람의 관입니다. 가운데 검은 것은 티무르의 관이고, 우측이 아들, 좌측이 손자 그리고 머리맡에 있는 것이 스승의 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티무르 대왕의 시신은 이곳의 검은 관 속에 있는 것이 아니고, 5m 아래 지하에 안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지하에 안치되어 있는 그의 관은 1941년에 오직 한 번 열린 적이 있다고 합니다. 티무르의 관 뒤쪽에는 "내가 이곳에서 나갈 때 세계에 혼란이 생길 것이다"라고 쓰여 있다고 하는데, 실재로 1941년 6월 21일 소련의 과학자들이 관을 열고 티무르의 유해를 조사한 다음날인 6월 22일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이를 두렵게 여긴 스탈린의 엄명에 따라 영원히 관을 열 수 없도록 만들었다고 합니다.> 

 

<티무르 영묘 중앙 돔 천장의 화려한 장식입니다.> 

 

<티무르 영묘의 외부 모습입니다.>  

 

<티무르 영묘 입구와 영묘의 돔이 조화를 이루도록 촬영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티무르 영묘 외곽에서 바라본 영묘 전경입니다.> 

 

<멀리서 바라본 티무르 영묘 돔의 지붕 장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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