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전개되어 왔다. 앞으로도 환경은 계속 변화할 것이다. 산 자의 기준이 장기적으로 실현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기후학자 휴버트 램은 지금 살아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삶의 기준은 결코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유구한 인류 역사와 비교해 인간의 삶은 아주 짧다. 인간들이 영원할 것이라고 믿는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뒤바꿔 놓는 가장 무시무시한 요인은 날씨다. 전쟁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것을 날씨는 해낼 수 있다.

 

인류 문명은 기후 변화에 적응하거나 그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진화해 왔다. 그렇다면 인간의 힘이 강화된 것이라 할 수 있는가? 브라이언 페이건(Brian Fagan) 캘리포니아대 인류학과 명예교수는 농경·정착·산업화·자본주의로 특징을 짚어낸 문명사 흐름에서 인류의 기후 통제력은 확대돼왔으나 기후 대재앙을 겪을 취약성도 점차 커졌다고 답한다. 페이건 교수는 ‘기후 변화’에 초점을 두고 문명의 흥망사를 서술한다. 나무의 나이테, 고대 습지·늪지에서 나온 꽃가루, 빙하·호수·바다 밑에서 채취한 샘플을 분석하는 식이다.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인류가 전 지구로 퍼져 나갈 수 있었던 것도 따뜻해지는 날씨를 따라 나일강 유역으로, 아시아로, 베링해를 건너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지구의 기온 상승은 인류의 적응력을 떨어뜨렸다.
1만5000년 전부터 기온이 오르기 시작하자 숲이 울창해졌고 먹을 것이 많아진 인류는 한곳에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유연성과 기동성이 떨어진 인류는 이때부터 날씨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됐다.
그날 이후 예상치 않은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치명타를 안겼다.

성경에서도 언급하는 대도시 우르는 기원전 2200년쯤 극심한 가뭄 앞에서 힘없이 무너졌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영화를 간직한 우르. 바그다드와 페르시아만 돌출부의 중간지대인 이 땅은 현재 열파(熱波)와 신기루가 조롱하는 황폐한 사막이다. 우르는 작은 농업 공동체로 출발했으나 물을 영리하게 확보·관리하고 신(神)의 노여움을 달래가며 세계 최초 문명 중 하나를 꽃피운 도시국가로 발전했다.

기원전 2200년쯤 우르 북쪽에서 화산이 폭발해 그 화산재로 어둠과 추위가 닥쳤고, 그 후 278년 간 지속된 가뭄이 일대를 사막으로 만들었다. 그는 가뭄 같은 재앙을 이겨낼 생존의 조건으로 ‘규모’에 주목한다. 인구가 3배 이상 폭증하면서 집단이동이나 이웃마을로부터의 곡물 대여 같은 재앙 대처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붕괴한 것이다.

기원전 1200년쯤 엘니뇨로 인한 가뭄은 히타이트 제국을 멸망으로 몰고 갔고, 미케네 문명을 파괴했으며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를 도탄에 빠뜨렸다.

세계적인 고고학자인 브라이언 페이건은 마야가 스페인 침략이 아닌 가뭄 때문에 멸망했다고 주장한다.

마야문명이 형성기에 있던 BC 457∼250년에 발생한 큰 가뭄은 커다란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수렵 및 채집사회의 유연성과 기동성으로 가뭄을 피해갈 수 있었다. 도시국가를 이루고 있던 BC 125∼210년에 있었던 가뭄으로 도시는 와해되었으나 사람들은 그대로 흩어져서 목숨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서기 750∼1025년에 있었던 가뭄은 달랐다. 이미 농업 생산성이 조금만 줄어도 심각한 타격을 받는 구조에 접어든 상황에서 많은 마야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뛰어난 건축술과 농경술로 놀라운 문명을 구축했던 마야는 스페인이 침략하기 이전 이미 과거의 영화를 모두 잃어버리고 잔존세력만이 남아 있었다.
위대했던 마야는 750~1025년에 든 가뭄으로 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들었고 코판 팔렌케 티칼 같은 대도시들이 파괴되면서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즉, 마야 문명의 쇠락도 환경(가뭄)의 공습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본디 가뭄·폭우로 황폐했던 중앙아메리카 땅을 농부들이 화전으로 일구고 농경·관개에 힘써 붕괴 직전인 800년쯤엔 1000만 인구의 과밀 사회를 만들었다. 문제는 또 ‘규모’였다. 자급능력을 넘어 팽창한 도시인구와 비생산적 귀족층의 기생(寄生)이 가뭄에 더해 문명 소진을 재촉했다

페이건은 문명이 발달하면 할수록 인류의 취약성은 커진다고 말한다. 당시 마야는 당연히 늘 그랬듯이 그들 모두가 먹고 살 수 있는 농업생산성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우물과 축대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이것은 매년 같은 기간 비슷한 날씨가 지속된다는 가정 하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기대대로 되지는 않았다. 오랫동안 가뭄은 계속됐고 결국 마야는 멸망의 길로 갔다.
만약 마야가 대도시를 건설하지 않고 소규모 집단으로 흩어져 살면서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그렇게 쉽게 멸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대도시의 건설이 오히려 취약성을 높였던 것이다.

 

브라이언 페이건은 전 지구적 온난화가 1만2000년 전 시작됐다며 온난화의 장구한 역사를 들춰낸다. 이 시기는 마지막 빙하기가 소멸하고 3만년 전부터 유럽의 주인으로 군림했던 크로마뇽인들이 사라진 무렵이다. 인류는 위대한 발명품인 바늘과 실을 활용해 혹한 지대를 살아갈 수 있었고, 온난화가 진행되면서 툰드라 초원과 얕은 강을 건너 시베리아까지 삶터를 넓혔다고 설명한다

 

그는 고대 유럽인들의 남·북 이동이 기후지대의 변동에서 비롯됐다고 풀어낸다. 지난 3000년 간 남쪽 대륙성 기후대와 서쪽 지중해성 기후대의 경계가 거리로는 880㎞, 위도로는 12도나 남북으로 오르내렸고, 기후 변화는 고대인들의 이주를 재촉했다.

현재와 같은 지구 온난화 추세가 1850년부터 유지됐고, 화석연료·오염물질 증가가 주범이라고 해설한다. ‘길고 불안한 지구의 여름’이 인류의 취약성을 말해 주지만, 길게 보면 1만년이 넘게 진행된 변화 과정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이다. ‘기후와 역사의 대화’라는 저자의 해석 방식이 문명사를 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원제 ‘The Long Summer: How Climate Changed the Civilization’(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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