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로 보는 세상

생의 마지막을 불살라 역사를 이야기한 일연스님의 절 인각사

작성일 작성자 렌즈로 보는 세상

 

통일신라 때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원효대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는 절 인각사.

 

대부분의 절이 창건한 스님을 떠올리게 하지만

우리는 인각사라 하면 일연스님을 떠올린다.

 

인각사는 고려 충렬왕 때 보각국사로 책봉된 일연스님이

입적하기 전 오년(79세-84세)을 머물며 생의 마지막을 불살라

삼국유사를 썼다는 절이기 때문이다.

 

비 내린 뒤 모처럼 맑은 날에 찾은 인각사는 지금 

전각들을 개, 보수 중이었지만

일연스님의 흔적을 곳곳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인각사(麟角寺)란 절 이름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이름이 뜻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몰랐었다가 이번에 그 뜻을 확실하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

별로 관심이 없던 것을 내마음에 새기게 돼는 것 말이다.

 

인각사란 절 이름은

뒷산 화산자락 내려온 모습이 기린의 뿔을 닮았다는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일연스님의 자취를 찾아간 인각사는 지금 공사중이다.

극락전과 오른쪽 건물 국사전 뒤쪽에 있는 보각국사 비각도 ....

 

오른쪽 건물이 국사전이고 가운데 작은 건물이 명부전이다.

명부전과 공사중인 극락전 뒤의 건물이 미륵전이다.

국사전은 2001년 건립되어 지금 중심 법당으로 사용되고 있고

명부전은 인각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물이다.

 

안타깝다.

일연스님이 공부하고 집필하시던 당우가 남아있다면 정말 종을텐데....

 

 

 

 

인각사는 일연스님의 하산소(下山所)였다.

하산소라 함은 국사(國師) 왕사(王師)가 책봉 후 활동하다가

그 국사,왕사인(印)을 반납하고 은퇴하여 머무는 사원을 말한다고 한다.

그런 절이였다면 분명 고려말의 인각사는 당우로 그득했을 것인데 안타깝다.

 

 

 

안타깝다는 생각도 잠시 인각사 정비계획을 보면

'보각국사 일연선사  정조지탑' 너머가 당우들로 그득할 날도 머잖았음을 알 수 있다.

 

 

 

'보각국사 일연선사 정조지탑' 과 '보각국사 비명' (보물 제428호)           

                              

인각사에는 국보나 보물급 당우도 없다.

 유일한 보물 제 428호인 '보각국사 일연선사 정조지탑' 과 '비명'이 있다.

 일연스님의 사리탑과  행적을 기록한 비이다.

비명은 지금 비각 공사를 하는 중이라 볼 수 없고 사리탑은 아름다운 자태로 인각사와 일연스님의 관계를 이야기한다.

 

인각사가 일연선사의 하안소로 선정되는 이유는 일연스님의 어머니와 관련이 있다.

일연스님이 인각사로 내려 간 그 다음해에 어머니는 별세하고 마는데,

효성이 지극했던 일연스님은 어머님의 임종이 가까워 옴을 알고 임금께 청하여 구산(舊山)으로 돌아가고자 한 것 같다.

일연스님의 고향은 지금의 경북 경산이고 어머니의 묘소는 인각사와 가까운 거리에 있다.

 

 

 

 석불좌상(경북 유형문화재 제339호)

 

사리탑인 '보각국사 일연선사 정조지탑'과 나란히 서있는 '석불죄상'.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도 모르는 부처님이지만 흘러내린 승복의 선이 아름답다.

 

 

 

인각사 미륵당 석불좌상(경북 문화재자료 426호)

 

팔도 없고 코도 없는 미륵당 부처님.

코를 갈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미신에 얼마나 많은 수난을 겪었으면 ....

 

인각사에는 이밖에도 경북 문화재자료 제 427호인 3층석탑이 있다.

 

 

 

명부전

 

인각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조선시대 건물이다.

조선 숙종 때에 지어졌다고 하나 정확한 건축연대는 밝혀지지 않았다.

이 건물마져 없었다면 인각사는 오래된 절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뻔했다.

 

 

 

1963년에 건립한 산령각

호랑이를 옆에 둔 산신령 그림이 모셔진 산령각은 인각사에서 두번째로 오래된 당우이다.

 

 

 

 

지금 인각사의 중심 법당인 국사전.

2001년에 건립 되었으며 아미타불,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모셔져있다.

 

 

 

인각사 뒷쪽에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기와조각이 오후 햇살에 빛난다.

 인각사가 삼국유사로 빛나듯이 말이다.

 

잠시 절에서 말하는 삼국유사에 대해 알아본다.

 

 

인각사 경내를 돌아보고 일연선사 생애관으로 가본다

 

인각사 '일연선사 생애관'에서는 지금 인각사 출토 유물사진 전시를 하고 있다.

출토 유물은 '불교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사진으로만 볼 수 있다.

아마도 도난의 우려 때문인 것 같다.

 

 

 

 

금동병향로, 청동정병, 7층 탑 모양 뚜껑을 갖춘 청동향합,

2층으로 된 몸체와 뚜껑 조합식이며 사리를 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청동이중합 ,

금고 혹은 북 일종인 청동반자, 청동 그릇 , 해무리굽 청자 등 오래된 유물사진을 보는 마음도 즐겁지만

유물 사진 사이사이로 보이는 글들이 더 마음을 일렁이게 한다.

 

 

일연스님의 시

 


 

 

 

'일연스님 생애관'에서 스님의 시와 유물들에게 빼앗겼던 마음을 거두어 나와

 절 뒷쪽에 있는 부도밭으로 가본다.

 

 

 

이찌 낀 오래된 부도들 뒤로 '보각국사비 재현비'가 보이고 그 너머로 학소대가 보인다.

너무 오래되어 까막눈에는 어느 스님의 부도인지도 모르고 나온다.

 

 

 

2006년 재현한 보각국사비.

지금 경내에 공사중인 비각에 있던 훼손된 비를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세월 흐른 뒤에 이끼끼는 날이 오면 이 비도 문화재가 되겠지'

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경내로 들어온다.

 

 

 

공사중인 극락전 옆에는 인각사 유물 발굴 당시 나온 돌들이 오후 햇살에 빛난다.

이 풍요롭고 따사로운 빛 받은 돌이 초석되어 

인각사의 새로운 모습이 더 아름답길 빌며 절을 나온다.

 

 

 

인각사를 나오는 길에 마주한 학소대가 이름답다.

일연스님이 이곳에서 마지막 생을 불사르며 삼국유사를 쓸 때

위천을 따라 불어오는 바람과 이 아름다운 절벽은 머리를 식혀주는 청량제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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