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고운사에 갔을 때 가운루 누각 안에 가득한 시래기(우거지)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열심히 셔터를 누르면서 어매를 생각했지요.

'지금이라면 겨울철이면 늘 터져있던 어매의 손을 위해 핸드크림이라도 사드렸을 텐데...'하고 말이지요.

 

 

골골이 배추 시래기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 9남매를 키우던 어매는 길쌈을 하는 사이사이에

먹거리를 만드느라 하루 해가 짧기만 했지요.

 파릇파릇하게 새싹이 돋아나는 봄이면 달래와 냉이,

 꽃다지와 쑥을 시작으로 풋나물을 먹거리로 사용하지만

가을에 서리가 내리고 푸성귀를 구하기가 어려워지면

어매의 먹거리 시래기 준비는 시작 되었지요.

 

지금처럼 비닐하우스도 없던 시절이라

찬 서리가 내리면 푸른 잎은 눈을 딱고

찾아보아도 찾기가 어려운 겨울을 위해

가을 내내 키워서 거둬들인 무청이나

김장을 하는 지부종 배추를 다듬은 겉잎을 말려서 보관하는 일이었지요.

 

지부종 배추를 다듬은 넓적한 겉잎이나 무청은

농사 지은 볏짚으로 얼기설기 엮어서 집 뒤 그늘진 서까레 밑이나

뒤뜰의 감나무 가지에 걸어둬서 살살 얼었다가 마르다가를 반복하며 말렸지요.

 

 

무청 시래기

 

 

그렇게 말린 시래기는 나무로 된 사과상자에 넣어두고 이듬 해 풋나물이 나기 전까지

어매의 맛깔스런 음식 솜씨로  우리 9남매를 위해 훌륭한 반찬이 되었지요.

 

무청으로 만든 시래기는 푹 삶아서 하룻밤을 우려낸 다음 

 콩가루를 묻혀 무 채썰어 곁들인 따림이(푹 달인다고) 국도 끓이고

멸치 몇 마리 비벼넣고 무 몇 칼 썰어넣어 된장을 푼 된장국을 끓이기도 했지요.

동솥(작고 둥근 솥) 가득하게 따림이 국을 끓이는 냄새는 우리의 허기진 배를 부르게 했지요.

 

또 보드라운 속잎은 된장과 고추장을 넣어 버무려 무쳐먹거나

들기름에 살짝 볶다가 집간장으로 간을 하여 만들었지요.

 

 

 지부종 배추 시래기

 

 

그러면 지부종배추의 시래기는 주로 어떨 때 썼을까요?

지부종 배추의 시래기는 푹 삶아서 하룻밤 쯤 물에 우려내고는

큰 일이 있을 때나 끓이던 닭개장이나 육개장에 넣었지요.

토란대 말린 것이나 배추 시래기는 고기와 어울려

어느 것이 고기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맛있었지요.

 

 

 

 

먹거리가 귀하던 시절  매일 먹는 시래기가 지겨워

"어매 시래기 국 고만 먹고 콩나물 국 좀 끓여 먹으면 안돼?" 

라고 말해보지만 콩 한 되라도 아껴 아이들 읍내로 중, 고등학교라도 보낼려는 욕심에

우리집의 짚으로 만든 콩나물 시루는 설이 다가와야 볼 수 있었지요.

 

 

 

 

겨울이면 어매는 사나흘에 한 번씩 시래기를 삶았지요.

9남매에다 할매와 일꾼,

자그만치 열 너댓은 먹는 부식이니 그렇게 삶을 수 밖에 없었지요.

비닐장갑도 없던 시절이라

꽁꽁 언 우물가에서 맨손으로 시래기 헹구는 일을 밥 먹듯이 하였으니

어매의 손은 언제나 터지고 피가 났었지요.

어쩌다가 바르는 멘소레담으로는 어매의 손을 곱게 할 수는 없었지요.

그런 거친 손으로 등을 긁어주면 시원하다고 우리는 철없이 좋아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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