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조가 한양에서 화성행궁으로 들어오는 길에

가장 먼저 만났던 화성의 문이 장안문이다.

물론 지금도 서울에서 오는 많은 차가 이곳을 지나 수원역이나 수원터미널로 간다.

평상시 차를 타고 장안문을 지나가거나 성곽을 걸을 때면

'앞으로 둥글게 튀어나온 옹성이 화서문의 옹성과는 다르게 누각이 중간에 있다.'

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해질녘 북동적대에서 바라본 장안문의 구부러진 선과 면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이럴 때 수원에 산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장안문은 화성의 북문이자 정문이다.

보통 성의 남문을 정문으로 삼았으나,

화성은 임금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북문인 장안문이 정문이다,

잘 다듬은 화강암으로 쌓은 석축에 홍예문을 냈고

그 위에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양식으로 이루어진 중층의 문루가 있다.

장안문의 앞쪽에는 가운데에 홍예문이 나있는 벽돌로 쌓은 옹성이 있다.

양옆에는 다른 성벽보다 약간 높은 두 개의 적대를 설치하였다.

장안문의 이름은

중국의 옛 왕조인 전한, 수 당나라의 수도였던 장안(현재 시안)에서 따온 것으로

이는 당나라 때의 장안처럼 화성 또한 융성한 도시가 되라는 정조의 뜻이 담겨 있다.











장안문은 1794년 2월 28일에 공사를 시작하여 9월 5일에 완공하였다.

서울의 국보 제1호 숭례문보다도 큰 문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성문이다.






장안문은 1920년대수원시의 시가지계획사업으로 문 좌우의 성벽이 헐렸으며,

1950년 6·25동란 때 폭격으로 누각이 소실되었다가

1978년 문루는 원래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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