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로 보는 세상

수원 서호(축만제)에 봄이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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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이 맑은 어제 오후 운동 삼아 서호를 걸었습니다.

봄이 제법 내려앉은 서호는 그저 평화로웠습니다.

강이 없는 수원에는 서호, 만석거, 광교저수지, 일월저수지 등

많은 저수지가 조성되어 있습니다.

농경시대에는 농업용수와 생활용수로 쓰이던 저수지가

지금은 수원의 공기를 맑게 해 주고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었습니다.

그 저수지의 중심에 있는 서호를 걷고 나서

서호에 대해 공부해 봅니다.






농사가 천하지대본이었던 조선 시대,

임금의 가장 큰 관심사 역시 농사였습니다.

특히 농업개혁에 정성을 쏟은 임금이 있는데, 바로 정조입니다.

정조는 1799년(정조23년) 수원 화성 서쪽 여기산 아래(구 농업진흥청 옆)에

커다란 인공저수지 곧 축만제(祝萬堤) 를 만들고

새로운 농사법을 연구하도록 했습니다.

축만제는 이내 서호(西湖)로 이름이 고쳐졌지요.

축만제를 만든 뜻은 튼튼한 나라 재정을 위한 목적도 있지만

수원 백성의 어려움을 덜어주려는 목적도 컸습니다.

또 정조는 이곳을 우리나라의 표준 농업도시로 만들려 계획했습니다.

축만제를 중심으로 한 관계시설을 축만제둔(祝萬堤屯)

또는 서둔(西屯)이라고도 불렀고 지금도 이 마을 이름은 서둔동입니다.

이곳은 말하자면 우리 농업역사에서 혁신적 농업정책을 펼쳤던 시발점입니다.








지난해 11월

정조의 수원화성 건설의 완결판으로 조성된 축만제(祝萬堤, 서호, 경기도기념물 제200호)가

국제기구인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에서 '관개시설물 유산'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동안 중국이 7건, 일본이 13건이나 등재된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전무했으나

처음으로 수원 축만제와 김제 벽골제가 등재되었습니다.







ICID가 축만제를 높게 평가한 이유는

▲정조 시대 가뭄에 대비한 구휼 대책과 수원 화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식량과 재원을 제공하는 등 백성들 식량 생산과 생계에 기여했고

▲수원화성이라는 '신도시' 건설의 하나로 조성한다는 아이디어가 혁신적이었고

▲1831년 항미정 건립으로 관개용수를 공급하는 단일 목적을 뛰어넘어

조선후기 선비들의 풍류와 전통을 즐기는 장소가 되었다는 역사문화적인 특징 등입니다.  



향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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