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즈로 보는 세상

정조의 효심이 낳은 화성행궁(사적 제478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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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궁(行宮)은, 왕이 본궁 밖으로 나아가 머무는 임시 장소로써의 궁궐을 말한다.

이궁(離宮) 또는 행재소(行在所), 행궐(行闕)이라고도 했다.

그렇다면 화성행궁도 왕이 밖에서 머물렀던 궁이란 말이다.

조선 22대 정조는 아버지 사도 세자가 뒤주 속에서 비극적인 삶을 마감하자

그 무덤을 당시 최고의 명당이라 평가받던 수원(현재의 화성시)으로 이장하였고,

능 주위에 살던 주민들을 팔달산 아래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도시와 성곽을 축성하였다.

지금의 행궁은 정조 18~20년(1796년)에 창건하였으나  2003년 중건되었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현륭원에 행차할때 임시 거처로 사용하던 곳으로

그 어느 행궁보다 크고 웅장하였으며 활용도도 높아

경복궁의 '부궁'이라는 말까지 생겨난 곳이다.

정조 18~20년(1796년)에 화성을 축성하고 팔달산 동쪽에 행궁을 건립했는데

평상시에는 유수부(지금의 시청) 관청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화성은 창룡문(동), 화서문(서), 팔달문(남), 장안문(북) 4개의 문루로 이어져 있으며,

뛰어난 건축술로 인해 세계 문화 유산으로 선정 되었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최초의 신도시 개발 사례로도 평가받고 있다.

 화성의 국궁체험과 팔달산 정상의 효원의 종 타종,

행궁의 여러가지 전통문화체험은 우리 문화재를 입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외에도 대장금의상 입어보기, 소원성취 나무와 스탬프 찍기등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팔달산에서 바라 본 화성행궁



나의 행궁 관람은 정문인 신풍루로 들어가서 집사청을 둘러보고,

정전인 봉수당을 찬찬히 살펴보고,

화령전을 들렸다가 돌아나와서 봉수당 뒤쪽 나인들의 거주공간을 지나

장락당, 복내당, 유여택을 둘러보고 신풍루로 나오는 길을 선택했다.




행궁의 정문인 신풍루

신풍루는 1790년(정조 14년)에 세워졌는데 처음 이름은 진남루였다가

1795년 정조의 명으로 신풍루로 변경하였다.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

신풍루 앞에서 정조가 친히 화성부(지금 수원시)의 백성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벌이기도 하였다.





신풍루에서 바라본 행궁

뒷산이 팔달산이고 그 위에 있는 건물이 서장대다.




신풍루를 지나 오른 쪽으로 들어가면 집사청이 있다.

집사청 안에는 궁중의상들이 전시되어있어 특색있는 조선시대 궁중의상을 볼 수 있다.




집사청 들어가기 전 좌익문 앞에서는 투호놀이와 소원지 달기 등 체험을 할 수 있다.

소원지를 다는 앞에는 수령 600년이 넘은 느티나무가 있다.




좌익문을 지나 중양문 앞에서는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중양문(中陽門)은 행궁의 정전인 봉수당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1790년 완공되었고,

가운데의 정문과 좌,우의 협문이 있고 좌우로 행각을 두었다.

중양문을 지나 봉수당으로 들어가는 길인 삼도는 세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가운데 길은 왕이 다니는 길, 어도이며

양옆의 길은 신하가 다니는 길이다,

오른쪽은 문관 왼쪽은 무관의 길이다.






봉수당(奉壽堂)은 화성행궁의 정전이자 화성유수부의 동헌 건물로 장남헌(壯南軒)이라고도 한다.

이 건물은 1789년에 완공되었으나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었다.

그 후 1997년에 복원되었다.

건물 안에는 정조의 집무실과 처소,해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재현되어 있다.

정조는 1795년네 해경궁  홍씨의 회갑연인 진찬례를 이 건물에서 거행하였다.




화령전(水原 華寧殿)는  조선시대의 제사유적으로,

순조가 정조의 어진(御眞)을 봉안(奉安)하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화령전을 지나 나오면 낙남헌을 만난다.

낙남헌은 각종 행사를 진행할 수 있도록 공간을 알맞게 배치한 행사용 건물이다.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독중당을 노래당 앞으로 옭겨 짓고,

그 터를 넓혀서 1794년에 완공하였다.

화성행궁의 부속건물 중에서 파괴되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한 유일한 건물이며

기도 기념물 제 65호이다.





봉수당과 장락당 뒤쪽에는 환관과 나인의 처소인 행각이 있다.

왼쪽 사진이 나인의 처소이고

오른쪽 사진의 상궁의 처소이다.

방에서도 신분의 차이가 보인다.





장락당(長樂堂)은 1795년에 정조가 행차했을 때에,

혜경궁 홍씨의 침전으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1794년에 남쪽에 동향으로 세워졌다.

장락당 옆에는 해경궁 홍씨의 진찬연 상이 차려져있다.

1795년 화성행궁 봉수당 앞마당에서는 정조의 어머니 해경궁 홍씨의 진찬연이 펼쳐졌다.

그 진찬상에는 70종의 음식과 42개의 상화를 올렸는데

음식은 고임은 높게 올리고 42개의 상화를 꽂아서 아름답게 장식했다.

지아비가 일찍 뒤주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홀로 아들을 기르면서 힘들었을 어머니를 위한 감사의 상차림일 것이다.






복내당(福內堂)은 행궁의 내당으로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던 곳으로 장락당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평소에는 화성유수 가족들이 거처하던 곳이다.

복내당에는 부엌이 재현되어 있어 그 시대의 생활상을 볼 수 있다.

아래 사진은 임금님의 수라상이다.






유여택(維與宅)은 평소에 화성유수가 기거하다가

정조가 행차시에 머물며 신하들을 접견하는 건물이다.

유여택은 복내당 동쪽 행각과 외정리소 사이에 있다.

 유여택은 1700년 (정조 1년)에 건립되어 은약헌(隱若軒)이라 하였다가

1796년에 증축하면서 현재의 명칭을 가졌다.




유여택을 돌아나오는 공간에 뒤주체험을 하는 곳이 있었다.

구경을 온 아이들은 뒤주놀이에 정신이 없다.

그러나 그들이 주고 받는

"이런 곳에 갇혀 죽었다면 정말 힘들었겠다."

라는 사도세자의 이야기도 얼핏 들린다.

이런 체험공간과 선조들의 이야기가 함께 하는 이곳은

훗날 그들의 추억 속에 남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 기억을 떠올리며 후손들을 데리고 이곳에 올 것이다.

"정조의 효심이 화성과 행궁을 만들었다."

는 이야기를 자손들에게 해주면서 말이다.





화성행궁 신풍루 앞에서는 이런 행사들이 있다.

이왕 구경을 오시는 분이라면 이런 공연시간에 맞춰서 오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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