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밀양관아

밀양관아는 조선시대 밀양지방을 통치의 중심지였으며 창건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조선시대에는 백 칸이 넘는 큰 규모였지만


임진왜란 때 모두 불에 타서 소실되어 광해군 때 관아를 재건했었고

관아가 처음 만들어질 때의 규모는 아니라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때 관아는 모두 허물어버리고 해방이후에 밀양읍사무소

동사무소 등으로 사용하다가 2010년 4월에 지금의 관아의 모습으로

복원했습니다.


● 현재 밀양 관아지는 경상남도 도지정 기념물 270호입니다.


관아지

1919년 3월 13일 밀양 장날 최초 만세운동이 있었던 곳입니다.


영남지방 최초의 만세운동으로 그 역사적 의미가 크고 밀양인들의

의기가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 바로 이곳 밀양 관아지입니다.


밀양관아 앞에 보면 19개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는데 조선시대 밀양

도호부의 부사와 밀양을 관할하는 관찰사의 공덕을 기린 비석들은


영남루 일원에 흩어져 있던 공덕비를 이곳 관아 앞으로 옮겨 와서 

모아둔 것입니다.


동헌인 근민헌

밀양관아의 가장 핵심적인 건물로써 근민헌 이란 현판이 걸려있는데


근민헌은 백성을 친근히 하되 낮추어 보지 않는다는 의미로 부사가

마땅히 가져야 할 자세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동헌 중앙에는 밀양부사가 앉아있는 모형이 있어 기념사진 등을

남길 수도 있습니다.


● 동헌 양옆으로는 매죽당과 북별실이 있습니다.


매죽당

부사의 비서사무를 맡은 책방이 기거하는 곳이며 관리의 자제들이

독서하는 곳입니다.


매죽당 앞에는 신랑신부 모양의 포토죤과 실제로 이곳 밀양관아에서

전통혼례가 이루어지기도 한답니다.


북별실 (납청당)

중앙건물 동헌왼쪽에 위치한 별실로 부사가 사용하던 건물로 보이며

정확한 용도에 대해서는 기록이 전하지 않고 있지만 다만 별실이란


명칭으로 보아 부사가 외부인을 만나거나 독서하는 곳으로 주택의

별당이었을 걸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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