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의 편지 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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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우리님들에게 전하는천사의편지

감사의 편지 85호

사랑천사(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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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편지성남제일교회 6남전도회 발행 및 편집 : 윤희완 85

202067일 일요일 : (20191112일 중앙일보에 계재 된 감사의 내용)

 

"500억을 寄附93俳優申永均 聖經册만 넣어달라

 

  “이제 내 나이 아흔이(현재93) 넘었으니 살아봐야 얼마나 더 살겠습니까? 그저 남은 것 다 베풀고 가면서 人生(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싶어요. 나중에 內棺(내관) 속에는 聖經册(성경책) 하나 함께 묻어 주면 됩니다.”

 

   元老(원로) 俳優(배우) 申永均(신영균)씨가 人生(인생) 末尾(말미)에 우리들에() 하신 말씀이다. 申氏(신씨)60~70 年代(연대) 韓國 映畫界(한국영화계)를 이끈 그는 中央日報(중앙일보) 記者(기자) 와 만나 앞으로 남은 財産(재산)社會(사회)還元(환원) 하겠다.”는 뜻을 分明(분명)희 했다. “映畫界(영화계) 支援(지원)後輩(후배) 育成(육성)에 더 많은 關心(관심)을 갖겠다.”고 말씀을 하셨다.

 

   演藝界(연예계) 最高(최고)資産家(자산가)로 이름난 信氏(신씨)̔노불레스 오불리주 ̕象徵(상징)으로 꼽인다. 2010明寶劇場(명보극장), (명보아트홀)齊州(제주) 申瑛映畫博物館(신영영화박물관)500억 원 規模(규모)私有財産(사유재산)韓國(한국) 映畫(영화) 發展(발전)에 써 달라며 快擲(쾌척)話題(화제)가 됐다. 母校(모교)인 서울대에도 市價(시가) 100억 원 相當(상당)大地(대지)發展(발전) 基金(기금)으로 寄附(기부)했다. 俳優(배우) 最高(최고)人氣(인기)를 누렸던 60~70 年代(연대)에 많게는 1년에 30편씩 映畫(영화)를 찍어가며 모아온 財産(재산)이다.

 

 

“91년간 映畫(영화)같은 삶 後悔(후회)는없다. 남은 것 다베풀고갈 것.”

 

 

Q. 아름다운 마무리가 ̔주고 가는 삶̕ ̕ 이라고 보시나요?

A. “크진 않지만 내 老後(노후) 生活(생활)()해 조금 가지고 있는 것이 있어 요. 그걸 베풀고 싶은 거죠. 子息(자식)     들은 다 먹고살게 充分(충분) 합니다...”

 

   申氏(신씨)篤實(독실)基督敎(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平生(평생) , 담배는 物論(물론) 女子(여자)賭博(도박)도 멀리해 왔다. “제가 조금 재미없게 살았죠? 그래도 原則(원칙) 하나만큼은 絶對(절대) 놓치지 않았다고 自負(자부)합니다.”

 

 

   九旬(구순)이 넘은 申氏(신씨)只今(지금)規則的(규칙적)으로 산다. 오전10시에 서울 明洞(명동) 호텔28事務室(사무실)出勤(출근)하며 하루를 始作(시작)한다. 호텔 28호는 映畫(영화) 撮影場(촬영장)雰圍氣(분위기)가 물씬한 부티크 호텔로, ̔28 ̕호는 이곳 名譽會長(명예회장)申氏(신씨)가 태어난 해 (1928)를 가리킨다. 그의 삶을 돌아보는 첫 인터뷰도 이곳에서 진행되었다.

1m 72cm68kg 회색재킷 正裝(정장)中折帽(중절모)를 쓴 申氏(신씨)의 첫 印象(인상)̔28년생̕ ̕ 보다 28 靑春(청춘)에 가까웠다.

 

Q. 너무 젊어 보이십니다. 健康(건강) 秘法(비법)이 있나요?

A. “한창 撮影(촬영)할 때는 疲困(피곤)하니까 초코렛 사탕을 많이 먹었어요40中盤(중반)쯤 되니 糖尿(당뇨)가 왔어

    요. 그래서 단 飮食(음식)注 意(주의)하고 하루 5000以上(이상) 걸으려고 努力(노력)합니다. 每日(매 일) 午後(

    후) 휠스장에 가서 한 時間(시간) 以上(이상) 가벼운 筋肉運動 (근육운동)과 러닝머신을 하지요.”

 

Q. 糖尿(당뇨) 말고는 달리 不便(불편)한 곳은 없으신가요?

A. “俳優(배우 時節(시절) 너무 소리를 질러서인지 氣管支(기관지)가 좀 안 좋 은것 빼고는 다 괜찬아요. 나이 먹으니 體重

    (체중)이 자꾸 줄어서 68~70kg이 왔다 갔다 하는데 한창 時節(시절)85kg까지 나갔었어요.”

 

   申氏2010社會(사회)에 내놓은 明寶 劇場(명보극장)은 그의 寶物(보물) 1호였었다. 19778當時(당시) 75,000만 원에 引受(인수)했던 劇場(극장)資産價値(자산가치)40년 새 60배 넘게 뛰었다.

 

Q. 비싸게 받고 팔 生覺(생각) 은 안 해 보셨나요?

A. “누가 500억원 줄 테니 팔라고 하긴 했었는데 내가 拒絶(거절)했죠. 只今 (지금) 이렇게 좋은 일에 쓰면서 오래 保全(

    전)할 수 있으니 훨씬 좋지 않나요.?”

 

 

 

 ⛹. “다시 태어나도 나는 俳優(배우)의 길을 가겠다.”

 

  申氏(신씨)寄贈(기증) 財産(재산)土臺(토대)2011申永均 映畫(신영균 영화) 藝術財團(예술재단)出帆(출범)했다. 財團(재단)建物(건물) 賃貸料(임대료)寄附金(기부금) 閣種(각종) 收益金(수익금)으로 9년째 映畫人(영화인) 子女(자녀) 獎學金(장학금) 支給(지급), 短篇映畵(단편영화) 製作(제작) 支援(지원) 등을 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9회 아름다운 藝術人賞(예술인상)̕ ̕ 施賞式(시상식)盛況裡(성황리)開催(개최)했었다. 演劇 映畫界(연극 영화계) 人士(인사)들의 功勞(공로)善行(선행)激勵(격려)하기 위해 마련한 ()인데, 이 분야의 賞金(상금) (5개 부문 총 1억 원)으로는 最高(최고) 額數(액수).

 

Q. 마치 子息(자식) 같은 劇場(극장)을 내 놓으 셨는데.

A. “60~70년대에는 내 映畫(영화)을 맘껏 틀 劇場(극장)이 너무나 갖고 싶었 죠. 하지만 이제 慾心(욕심)이 없어요. 그저

    마지막으로 내가 가지고 갈 거40~50년 손때 묻은 이 聖經册(성경책) 하나예요. 혜진아(사랑하는 딸)이걸 나랑 같이

    묻어다오.”

 

   申氏(신씨)는 가죽이 다 해어진 聖經册(성경책) 한 권을 만지며 말을 하였다. 딸은 그저 옆에서 微笑(미소)만 지을 뿐이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聖經 句節(성경구절)을 소리 내어 읽었다.

 

. 고린도 전서 15: 10절 이예요.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恩惠(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恩惠(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 고을 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恩惠(은혜)로다. 이런 말씀 때문에오늘날 申永均(신영균)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허허허

 

    韓國映畵(한국영화) 全盛期(전성기)로 꼽히는 60년대 俳優(배우) 申永均(신영균)에게도 黃金期(황금기)를 안겼다. 60映畫(영화) ̔과부 ̕로 데뷔하면서 그간 演劇(연극)으로 다져온 演技實力(연기실력)을 단박에 認定(인정) 받았다. 요즘으로 치면 벼락스타로 떠올랐다. 以後(이후) ̔常綠樹(상록수) ̔̕̕ ̔ ̔̔燕山君(연산군) ̔̕ ̔빨간 마후라 ̕ ̔ ̔미워도 다시 한번 ̕19년 동안 300여 편에 出演(출연)했다.

 

Q. 機會(기회)가 온다면 맡고 싶은 役割(역할)은 어떤 役割(역할)을 하고 싶으신가요?

A. “글쎄요... ̔머슴, (), 軍人(군인), 社長(사장), 뭐 안 해본 캐릭터가 거 의 없어요. 주로 上男子(상남자) 스타일이었죠.

    심지어 예수, 석가모니도 했다니까요.”

 

Q. 다시 태어난다면 (), 머슴 중 뭘 고르실까요?

A. “申永均(신영균)選擇(선택) 하겠어요. 俳優(배우)하며 이런 人生(인생), 저런 人生(인생) 다 살아 봤으니까요. 허 허

    허, 정말 後悔(후회) 없이, 遺 憾(유감) 없이 살았습니다.”

 

   선뜻 믿기지 않았다. 一生(일생)整理(정리)하는 段階(단계)에서 後悔(후회)없이 살았다고 自信(자신)할 수 있는 이가 果然(과연) 얼마나 될까? “정말 後悔(후회)가 없느냐?”고 여러 번 再次(재차) 물어도 對答(대답)은 언제나 그렇다.”였다. 申氏(신씨)1978̔花鳥(화조) ̕를 끝으로 忠武路(충무로)에서 隱退(은퇴)했다. ̔花鳥(화조) 40여 편에서 그와 呼吸(호흡)을 맞춘 俳優(배우) 尹定熙(윤정희) 75씨 애기가 나오자 참 아까운 사람 이예요.”라는 말부터 나왔다. 尹氏(윤씨)10년째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사실이 最近(최근) 알려져 안타까움을 사고 있지만 申氏(신씨)는 이미 尹氏(윤씨)鬪病(투병) 事實(사실)을 알고 있었다.

 

    지난해까지도 申永均藝術文化財團(신영균예술문화재단) 理事(이사)活動(활동)하면서 行事(행사)에도 자주 왔어요. 男便(남편) 백건우 피아니스트 公演(공연)이 있으면 우리 夫婦(부부)를 빠트리지 않고 招請(초청) 했었죠. 우리 집에서 가끔 食事(식사)도 함께 했는데, 치매라니 정말 안타깝게 됐어요.”

 

   往年(왕년)의 두 스타는 釜山國際映畵祭(부산국제영화제) 各種(각종) 映畫(영화) 行事(행사)에서 나란히 레드 카펫을 밟으며 敦篤(돈독)함을 誇示(과시)하기도 했다. 申氏(신씨)2010尹氏(윤씨)主演(주연)한 이창동 監督(감독)映畫(영화) ̓̕VIP 試寫會(시사회)에도 參席(참석)했다. “尹定熙(윤정희) 씨는 어떤 女俳優(여배우)인가요?”라는 當時(당시) 取才陳(취재진)質問(질문)멋진 女俳優(여배우)였지요.”라고 對答(대답)했다.

 

   “尹定熙(윤정희) 씨는 나만 보면 ̔우리 같이 영화 한번 해야지, 해야지 ̕ 항상 그랬어요. 이창동 監督(감독)을 만나서는 우리 둘이 함께 나오는 作品(작품)을 만들어 달라고 付託(부탁)도 했었죠.”

 

. 다음호에 이어 申永均(신영균) 님의 이야기를 連載(연재)토록 하겠습니다.

 

 

. 感謝便紙城南第一敎會 6 南傳道會 에서 傳道紙로 드리는 글입니다.

. 矯正參與 하신 분 文相愚 집사님, 發行 編輯人 전화 : 010-8245-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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