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여행)까치내재 오십리 벚꽃길. 환상의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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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여행)까치내재 오십리 벚꽃길. 환상의 드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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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광주에서 여수 는 길을 강진으로 멀리 돌아갔을까?

바로 강진 최고의 벚꽃길인 까치내재  벚꽃길을 드라이브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작천에서 강진으로 넘어가는 고개인 까치내재는 수십 전 강진군청이 전 공무원을 동원해 오십 에 이르는 길에 벚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마치 담양군수가 담양군 전체에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를 심은 것과 마찬가지로 담양군이 메타세쿼이아 가로수로 유명세를 떨치듯 강진도 해마다 4월이면 까치내재 벚꽃길을 드라이브하는 사람으로 넘쳐난다.


특히 까치내재 정상에서 강진 쪽으로 가다 보면 우측으로 보은산 우두봉 아래 거대한 암벽을 깎아지른 석벽이 양쪽으로 서 있는데 그 비밀의 공간은 방랑시인 김삿갓도 매료돼 시를 남겨 더 유명하다.






겨울이면 황량하기만 했던 까치내재가 화사해진 아름다운 봄날이다.

까치내재는 "강진 사람들은 물속으로 30리 간다"라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인데,

엄청나게 밀리는 차량으로 인해 잠시라도 까치내재 정상에 주차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강진 들녁과 벚꽃길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마침 금곡사 쉼터에서는 벚꽃 음악회가 열렸다.

차를 겨우 입구에 대 놓는데 행사 관계자가 절대로 차를 못 대게 한다.

강진군 블로그 기자단임을 밝히고서 겨우 허락을 받아 10여 분 머물렀다.

드라이브에 만족하지 않고 이런 장면을 찍어놓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하기 때문이다.





10여 분 앞뒤로 거닐면서 본 금곡사 입구의 벚꽃 풍경.

주차 아수라장에서 잠시라도 멈춘 것이 행운임을 생각나게 하는 장면들이다.





주말을 맞아 많은 강진군민이 금곡사 쉼터를 찾아 벚꽃 음악회를 즐겼다.

하지만 내겐 트로트 가수의 신나는 노래가 들리지 않는다.

어서 빨리 차를 빼줘야 한다는 중압감이 귀를 막고 발걸음을 재촉했기 때문이다.




날래 잽싸게 찍고 후다닥 도망가기를 서너차례.





이 자리를 빌려 행사 담당자에게 미안한 말을 남긴다.

양쪽에 주차된 차량으로 인해 금곡사 입구는 그야말로 장사진이었지만, 그틈에도 차를 주차할 수 있었으니.




스마트폰을 차량에 거치해 까치내재 오십리 벚꽃드라이브를 촬영했지만

반대로 찍혀 편집을 통해 뒤집다보니 동영상이 많이 흐리다.

그래도 신나는 음악과 함께 멋진 드라이브였다고 위안을 삼는다.




강진 금곡사입구는 평소에는 주차장이지만, 오늘은 벚꽃음악회로 주차가 허용되지 않는다.

행사장 뒤로 거대한 수직암벽(爭鷄岩, ‘싸우는 닭 바위의 뜻)있는데 그 사이로 금곡사가 살짝 보인다. 





까치내재 넘어가기 숨도차고 고달프다

사람길에 비긴다면 넘기쉬운 길일래라

조심해 잘살며넘세 짧고험한 한평생길


                                     춘곡 최병량


금곡사 입구에는 자그마한 시비가 하나 있다.

강진중, 강진농고 문하생들이 1968년 스승의 날에 세운 시비로 최병량 교장 선생의 까치내재 시비라고 하는데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나의 스승님은 어디에 계신지 되물어 보게한다.




청곡 윤길중 선생의 금곡사 시비도 있다.


동풍이 나를 불러

석문으로 올라서니

나라 잃은 숨은 선비

한자리 해 반갑네


흐르는 물소리는

봄 노래를 읊어내도

만고풍상 씻긴바위

옛모습 그대로네


금곡옛절 간데없이

흰 구름만 덮혀있고

공든 탑은 딩굴고

노을만 붉게타네


이날따라 이 오름이

왜 이다지 애닲은지

푸른하늘 우러러

김삿갓에 물어볼까



청곡 선생은 1916년 출생해 일제 강점기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양시를 다 합격한 수재였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학무국 사무관과 강진군수, 무안군수 등을 지냈으며 국민대학교 교수, 제2대 5대 민의원, 국회부의장, 민주자유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하고 2001년 운명하셨는데 일화가 있다.


그는 23세에 강진군수가 되었다는데 어려운 시기에 전남도의 농지세 징수 독촉에도 징수하지 않다가 벌꿀 반통으로 농민들의 농지세를 대신했다는데, 청곡선생 관련 전남일보 기사 참고하시길. http://www.jnilbo.com/read.php3?aid=1483282800514057063




김삿갓도 강진에 왔나보다.

쟁계암 절경에 반해 시를 남겼다는데, 국제라이온스 3090지구 제7지역 합동월례회의 기념사업으로 박기환 부총재와 회원들이 뜻을 모아 시비를 세웠다.


雙岩竝起疑紛爭 쌍암병기의분쟁

一水中流解忿心 일수중류해분심

두 바위가 나란히 솟아 다투는가 여겼는데

한 줄기 물 가운데로 흘러 성낸 마음 풀어주네.






보은산 자락에 자리한 금곡사에 올랐다.

보은산방에 거처를 마련한 다산이 혹시 들르지는 않았을까?

아님 다산의 유배지를 찾아 김삿갓이 후에 들렀든지...





금곡사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로 신라 선덕여왕 때 활동한 밀종의 큰스님 밀본(密本)이 창건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승병의 훈련장으로 활용하다 소실되었다고 하며 이후 폐사되었다가 일제강점기에 절터에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유물로는 보물 제829호인 삼층석탑과 석등대좌, 범종 불화 등 6점이 있는데

삼층석탑은 백제계 양식의 고려초기 작품이라고 하며 해체 복원할 때 부처님 사리 32과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머리장식인 상륜부가 남아있지 않고 갈라지고 파손되었지만 건립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한다.

임진왜란 당시 화마로 불타버릴 때도 굳건히 버틴 석탑. 승병의 훈련모습을 지켜봤을 의연한 모습 그대로다.






천년세월 모진풍파 헤치고 강진을 굽어보는 금곡사에 우뚝 선 삼층석탑.

사찰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삼층석탑의 무게만으로도 충분하지싶다.






길을 따라 올라가면 녹차밭이 나온다는데, 이 산 너머에는 다산 정약용이 거처한 고성사 보은산방이 자리한다.






여기는 금곡사에서 나와 강진으로 가는 길의 마지막 부분인데, 곳곳에 벚꽃에 취해 차를 주차하고 내린 사람들이 많았다.

광주에서 여수를 가려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바로 갈 것이지 나는 왜 강진으로 돌아서 갔을까?

내년 4월 초 까치내재 벚꽃길을 드라이브하면 궁금증이 해결될 것이다.





(글 : 포토뉴스코리아 simp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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