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 중 * 일 문화코드

대나무


동과 서의 문화적 차이를 읽고 그것을 다시 세분화하여 한 * 중 * 일 세 나라의 문화를 비교하는 데 있어서

대나무는 귀중한 문화 텍스트로 떠오르게 된다. 동북 아시아인들이 오랫동안 이상으로 삼아 왔으나

 역사적으로는 실패를 거듭했던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

- 이질성을 통합해 가는「따로 그러나 함께」라는 역설적인 삶의 방식이 있다. -

요즘 유행되고 있는 말로 하자면 글로벌과 로컬을 한데 합친 글로컬리즘을 뜻밖에도 우리가 잊고 있었던

그 대밭의 공간에서 찾아 볼 수가 있을 것이다.


<책임편찬 / 이 어 령>



- 대나무 문화권의 텍스트 읽기 -



묵죽(墨竹)  |김진우(金振宇), 일제강점기 간송미술관 소장.


순죽(荀竹)과 신죽(新竹) · 통죽(筒竹) 그리고 고죽(枯竹)까지 대나무의 일생을 모두 한 화면에 담은 그림은

어린 손주부터 할아버지에 이르는 가족이 삼세 동당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여 준다.


「고기 없이는 밥을 먹을 수 있으나 대나무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고 말한 소동파(蘇東坡)의 대나무는

철과 비교되는 물질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고기'가 몸을 보양하는 것이라면 마음을 살찌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대나무이다.

고기가 먹고 살아가는 인간의 실용적 가치를 대신하고 있는 데 비해서 대나무는 예술적 감동이나 종교적 이념을 추구하는 상징적

가치를 창조한다. 특별한 종교적 코드를 사용하지 않아도 대나무의 마디는 인체의 뼈마디와 흡사하게 생겨서 쉽게 사람과

동일시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시인 이상은 대나무를 엑스레이 사진에 찍힌 인체의 모양에 견준 시를 쓴 적이 있다.


 더구나 대나무의 마디는 보통 60여 개가 된다고 해서 환갑을 일생의 단위로 삼고 있는 인간과 동일시된다.

'자신이 곧바로 대나무가 된다'는 인간의 죽화(竹化) 현상 또는 대나무와 인간이 일체가 되는 심죽(心竹)의 경지는 비단 선(禪)의

세계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다. 또한 죽부인의 경우, 가공품이기는 하나 아버지가 사용한 것은 아들이 쓸 수 없을때

이미 대는 대나무가 아니고 피가 돌고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시키소카시타에와카칸 竹圖 |다와라야 소타츠,


17세기 대나무의 위와 아래를 끊어 버린 이 그림은 소타츠가 그린 밑그림 위에 혼아미 코에츠의 글을 써 넣은 합작품으로,

18세기의 화가 오가타 고린이 그린 죽매도에 이런 부분화법을 원용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교 문화권에서의 대지팡이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어버지'를 상징하는 종교 코드이다.

《예기(禮記)》에는 「어버지의 상(喪)에는 둥근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어머니의 상에는 네모진 오동나무 막대기를 짚는다.」

적혀 있다. 기록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실제로 우리는 부모상을 당하면 대지팡이를 짚고 곡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오랫동안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는 부성원리(父性原理)요,

 네모난 것은 땅을 가리키는 모성원리(母性原理)라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상징체계 속에서 살아왔다.

효율성 실용성을 중시하는 단순한 보행 조보 도구를 넘어서 그것이 아버지가 되고 군자가 되고 때로는 부처님과

죽림칠현(竹林七賢)의 신선이 되는 대나무 숲의 몽상, 댓잎이 스치는 청량한 바람 소리와 빈 뜰에 흔들리는

대나무 그림자의 은은한 움직임 속에서 아시아 문화의 횡단이 시작되는 것이다.


대지팡이가 아버지의 상징이 디는 유교 문화 코드는 무속신앙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나라의 제석풀이의 무가(巫歌)에 나오는 당금아기는 승려와 사통(私通)해서 아들 삼 형제를 낳는다.

아이들이 자라 아버지를 찾자 대밭에서 오줌을 누어 너희를 낳게 된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 말을 곧이 듣고 삼 형제가

대밭으로 들어가 아버지를 부르자 대나무는 "나는 너희 아버지가 아니다. 그러나 너희의 진짜 아버지가 죽은 뒤 우리를 베어다

상주 막대로 삼으면 3년 동안 아버지가 되어 주겠다."고 말한다. 대지팡이가 아버지와 등가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가 없으나

 무속의 경우에는 다산과 풍요의 지모신(地母神)과도 결합된다.


당금아기의 이야기는 현실과 신화의 두 세계가 서로 뒤얽혀 있는 구조로 되어 있다.

대밭에서 오줌을 누어 아이들을 잉태하고 낳았다는 부분은 신화 축에 속한 것으로 대나무의 번식성과 생명력을 반영한 것이다.

그리고 대의 번식성은 죽순(竹筍)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풀이될 수가 있다.


죽순의 '筍(순)'자는 대나무 죽(竹)자에 열흘을 뜻하는 순(旬)과 음이 통한다.

이래저래 대나무는 자손들이 왕성하게 번창하는 것을 삶의 가치로 삼아온 아시아적 대 가족주의와 상통한다.

죽순을 '용손(龍孫)'이라고도 부르고 노죽을 '죽조(竹祖)'라고 부른다. 이러한 죽순과 대의 문화 코드를 가지고 보면

 왜 하필 당금아기가 대밭에서 오줌을 누어 세 형제를 얻었다고 말했는지 그 이유를 알 만하다.






설죽(雪竹) |유덕장(柳德章), 조선, 간송미술관 소장.


푸른 댓잎과 하얀 눈발이 강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대지팡이 하나를 통해서 우리는 유교적인 깐깐한 부성원리와 무속적인 풍요와 생식(生殖)의 모성원리를 동시에 바라볼 수가 있다.

제석풀이의 무가(巫歌)에 나타난 대와 오줌의 관계를 중국 맹종죽(孟宗竹)의 기원설화로 옮기면 눈물과 대나무의 유교 텍스트가 출현한다.

병환 중의 어머니가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여 맹종은 한겨울에 대나무밭으로 간다. 하지만 눈 덮인 대밭 어디에도 죽순은 보이지 않는다.

맹종이 어머니를 생각하며 슬피 울자 그 눈물방울이  떨어진 눈 속에서 죽순이 돋아났다는 이야기이다.


이 두 설화를 통해서 '오줌과 눈물', '생식'과 '봉양(효)' 그리고 '무속'대 '유교'를 비교할 수 있는 텍스트의 분석 모형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리고 그 같은 문화 텍스트의 모형은 불교의 상징 속에서도 확대 적용된다.


일본에서는 대나무를 상주의 막대로 사용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대신 일본 전역에 분포되어 있는 대나무 세우기 전설의 하나인 '신란'의 대지팡이가 그렇다. 일본인들이 '사카사마타케'라고 부르는

신란의 이 대나무 세우기 설화는 불교의 설법을 대나무의 생명력과 그 번식력으로 상징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뱅종의 죽숙 설화, 당금아기의 무가 그리고 신란의 지팡이 세우기 전설을 통해서 우리는 대나무의 문화 텍스트를 읽는 분석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된다. 이 세 이야기들은 종교적 층위에서 보면 유교 · 무속 · 불교,  물질적 상상력의 층위에서 보면

눈물 · 오줌 · 물(설법), 인물의 층위로는 맹종 · 당금아기 · 신란 그리고 나라별로는 중국 · 한국 · 일본의 병렬 구조로 비교할 수 있다.






묵죽도(墨竹圖) | 신위(申緯), 조선,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전형적인 죽석도(竹石圖)로 커다란 바위를 중심으로 자라는 몇 그루의 대나무를 묘사한 것이다.

선비의 내면세계를 표출하듯 부드럽고 온화함이 드러나고 있다.


서양에서 용은 불의 상징이지만 아시아의 문화권에서는 물(비와 구름)과 연관되어 있다. 동남아 열대우림의 대나무들은

근경(根莖)이 없이 족생하고 있지만 동북아시아의 대나무들은 밑뿌리가 땅속으로 꾸불꾸불 깊이 뻗어 있어 잠용(潛龍)과

쉽게 동일시될 수 있다. 그리고 방풍림 등으로 강가에 심은 죽림들이 많아 대나무의 장소성에서도 물과 근접해 있다.


설화의 세계만이 아니라 대나무는 시화(詩畵)에서도 물의 이미지와 상징성이 짙게 깔려 있다.

대나무 잎에 이슬이 맻혀 있는 노죽(露竹),  비가 내리는 날의 우죽(遇竹), 과 안개가 낀 연죽(煙竹)

그리고 때로는 바람에 나부껴 급류처럼 물결치고 있는 풍죽(風竹)들이 모두 그러한 것이다.


시각적 이미지만이 아니라 댓잎들이 스치는 대숲의 바람 소리는 계곡으로 흘러가는 물소리처럼 푯현된다.

시문 속에 자주 등장하는 '빈 뜰에 드리운 댓잎의 그림자'는 물의 물질적 특성 가운데 하나인 '차가움'과 관련된다.

진각국사(眞覺國師)가 든 열 가지 대나무의 특성 가운데의 하나가 바로 청량성(淸凉性)이다.

남방 열대의 식물이 이상스럽게도 한자문화권에 오면 북방의 겨울 이미지로 바뀐다.

한자문화권의 대나무는 '설문해자'의 풀이대로 '겨울에 나는 풀(冬生草)'로 정의된다.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 없이 소나무나 매화와 함께 세한삼우의 하나로 등장하는 대나무는

오래 전부터 추운 겨울에 의해서 그 특성을 드러낸다.


그래서 물의 차가움이 극에 이른 것이 설죽(雪竹)이다.

가령 유덕장(柳德章)의 통죽을 보면 오랜 세월을 차가운 눈발과 겨울을 견뎌온 설죽의 흔적이 오버랩 된다.

그 통죽 그림에 찍힌 '올바른 얼음집[正氷堂]'이라는 인장 글씨가 더욱 대의 차가운 이미지를 불러일으킨다.

반드시 겨울이 아니라도 대나무의 이미지가 얼음처럼 차가운 달빛과 어울리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바로 '설월죽(雪月竹)'의 이미지다.

대는 또 때로는 얼음과 같이 빙결한 차가운 바위와 어울리기도 한다. 이러한 액체의 결정체(結晶體)의 이미지는

종종 댓잎에 스치는바람 소리를 얼음처럼 차가운 백옥이 부딪치는 소리로 비유하는 시를 낳기도 한다.

 하지만 대나무와 물의 이미지 관계는 결코 평탄한것이 아니다. 훨씬 복합적이고 양의성을 지닌 긴장관계를 나타낸다.

대나무는 물만이 아니라 원래 불의 물질적 이미지와 깊이 얽혀 있기 때문이다.

 

원래 대나무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로 열대식물이다.

대를 뜻하는 영어의 뱀부(bamboo)가 말레가 말레이 반도의 토속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어원은 열대림의 대밭이 불에 탈 때 나는 큰 폭음 소리를 의성어로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

뿐만 아니라 아프리카, 남미 그리고 적도의 원주민들은 마른 대나무로 불을 일으켰고 번제(燔祭)을 지낼 때에도 신성한 제례의 도구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그러므로 대의 이미지는 물도다 불에 더 가까운 것이었다. 비교적 남방 문화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일본의 경우,

대밭에서 어린아이가 태어나는 <가구야히메>의 설화 역시 당금아기의 이야기와는 달리 물이 아니라 불빛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중국에 와서도 대나무는 폭죽(爆竹)의 불꽃놀이와 연결되어 있어서 불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여름과 겨울, 불과 물의 대나무의 복합적 이미지와 그 상반된 상징성은 남방적인 것과 북방적인 문화가 때로는 충돌하기도 하고 때로는

융합하기도 하는 복합적 문화 코드를 생성한다. 그것이 물의 변용적 이미지인 눈물, 피, 술과 같은 액체로 확대 · 재생산된다.

그리고 그것들은 당연히 액체화한 불의 요소라는 특이한 양의성을 내포한 상징 코드를 만들어 간다.


반죽(班竹)의 근원설화도 마찬가지다.

순(舜) 임금이 죽자 아황(娥黃)과 여영(女英)이 소상강 가에서 슬피 울다 강가의 대나무를 적셨다는 눈물 역시 뜨거운 불꽃을 지닌

액체이다. 효성이든 정절이든 그 농도가 짙어지고 그 불꽃이 더욱 타오르면 그 눈물은 피눈물로 화한다. 차가운 물이 얼음으로 변하는

것과 달리 뜨거운 물이 짙어지면 피로 바뀐다. 이렇게 정절의 불이 액체화하여 만들어낸 대나무가 다름 아닌 혈죽(血竹)이다.

물과 불이 혼합된 대나무 코드에서 불의 요소가 강화되면 이념색이 짙은 의죽(義竹)과 혈죽(血竹)이 태어나게 된다.

 다리 위에서 살해된 정몽주의 일편단심(붉은 마음)과 그 피는 의죽이요, 혈죽으로 선죽교(善竹橋)의 이름 위에 남아 있다.

을사조약 때 순국한 민영환 의사의 죽어간 자리에서 돋아난 혈죽(血竹)도 있다.


호국이나 충의를 나타내는 대나무는 눈물이 피로 변용된 이념적 텍스트로서 한 · 중 · 일 삼국의 대나무 코드 가운데

가장 한국적인 것으로 꼽힌다.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에는 앞서 말한 대로 대나무의 물이 불로 변해도

벽사나 길상의 폭죽문화의 길상코드로 사용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유황좌소도(幽篁坐嘯圖) | 우지정(禹之鼎), 청(淸), 산동성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청대 시단(詩壇) 어양산인(漁洋山人)의 우두머리인 왕사정(王士)을 그린 것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대나무 숲에서 시인이 가죽을 깔아 놓은 반석에 앉아 아직 황금을 치지는 않고,

무슨 생각에 잠긴 듯 학자의 분위기를 단단히 내고 있다.


대나무가 호국 이념의 문화 코드로 사용된 것은 신라 때부터의 일이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만파식적(萬波息笛)과 죽엽군(竹葉軍) 설화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두 설화가 다 같이

호국이념을 나타내고 있는 대나무의 텍스트이지만 만파식적의 대나무는 물의 상징 계열에 속해 있고, 미추왕의 죽엽군의 그것은

불 계열에 보다 가까운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이 두 설화에서 대나무의 종교적인 상징 코드는 유˙불˙선 삼교가 조금씩 융합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음양 사상이나 조상신과 같은 기층문화가 그 저변에 짙게 깔려 있다.





묵죽도6곡병풍(우측3폭) | 송상래(宋祥來), 조선, 고려대학교박물관소장.





묵죽도6곡병풍(좌측3폭)


성질이 곧고 지조가 굳은 대나무는 한 번 뿌리를 박으면 그 자리를 떠나지 않는다.


만파직적이 소프트 파워를 나타낸 것이라면 유례왕 때의 죽엽군(竹葉軍)의 이야기는 무력을 사용하는 하드 파워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서국의 침략으로 위기에 처한 신라를 구한 것은 갑자기 나타난 원병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의 귀에는 대나무 잎들이 끼어 있었고

그들이 사라진 다음 미추왕의 능에는 대나무 잎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추왕의 능에는 '竹' 자를 부쳐

죽현능(竹峴陵)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불의 이미지가 직접 나타나 있지 않지만 문무왕이 죽어서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려고 한 것처럼, 미추왕의 호국충절의 정신은 앞에서 본 그 의죽과 혈죽처럼 불의 이미지와 통해 있는 것이다.

세한삼우의 소나무와 매화에게는 없는 대나무의 특성 가운데 하나가 바로 무와 관련된 하드 파워라고 할 수 있다.

대나무가 지니고 있는 불의 문화적 코드다.


대나무의 직선적인 성격 그리고 외곬으로 달려가는 강직한 성품을 탈(脫) 코드화한 것이 다름 아닌 죽취일(竹醉日)이다.

대나무가 일 년에 딱 한 번 술에 취하여 정신을 잃는 날이 있다는 것이다. 음력 5월 13일이 바로 그날이다.

아무리 포절군(包節君)이라고 일켣는 대나무의 절개라고 할지라도 자신이 어디로 옮겨지고 있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취하는 날이

있다는 죽취일을 통해서 우리는 삼백예순 날 내내 맑은 정신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는 일탈의 사상과 그 미학을 배우게 된다.

고려 때의 시인 이인로(李仁老)는 죽취일의 대나무를 이렇게 찬미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제 홀로 술에 흠뻑 취해 있는 대나무여 / 멍하니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는구나 /

 강과 산, 자리는 비록 달라졌어도 / 어디든 경치는 달라질리 없으니 다시 술에서 깨어나지 말거라./

창을 들어 술 취해 지조나 행실을 잃었다고 시비하는 저 선비라는 자들을 쫒아 버리겠다./

이 대나무는 오히려 한 곳에만 매어 있는 것 부끄럽게 여기니 / 가고 싶은 대로 가는 것 하늘도 막지 못하리라.

<죽취일 이죽>


대나무들을 떠나 다른 공간으로 옮겨 심은 일탈의 대들

그것이 유교에서 도교적인 공간으로 옮아가는 죽림칠현의 그 대밭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언급한대로 대나무의 문화 코드를 만들어내는 물질적 상상의 근원은 물이며 그러한 상징체계에서 대나무는 용과 동일시 된다.

그래서 죽취일을 용생일(龍生日)이라고도 한다.  물처럼 흐르는 것에는 대나무와 같은 마디(節)이 없다.

그러한 물이 불과 같은 열도를 지니게 되어 활성화 되면 '술' 로 변하게 되고 그 정념의 물은 광기로 발전한다.

자신의 재능을 「터진 버선 실같이 풀어져 있는 것으로 비유하고 취하여 하늘에 호소해서 내 미친 노래를 바친다.」

고 한 김시습(金時習)의 모습에서 '술 취한 내나무'를 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방옹광(放翁狂)과 시주광(詩酒狂),하감광(賀監狂) 그리고 두보(杜甫)와 접여(接與)의

광기를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한 자신을 스스로 대나무(苦竹)에 비교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죽도(題竹圖) | 두근(杜菫), 명(明),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이 그림은 동파제죽(東坡題竹)의 고사를 그린 것이다.

화면 가운데 높은 모자에 소매가 긴 옷을 입고 붓을 들어 대나무에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 소식(蘇軾)이다.

왼편에 한 동자가 벼루를 들고 시중을 들고 있으며, 오른편에는 한 노인과 어린아이가 집중하여 지켜보고 있다.


단정한 대나무를 죽취일의 대나무 코드로 변환시킨 것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술이다.

술은 이미 말한 대로 물과 불이 합성된 액체로 디오니소스적인 특성을 지닌 것이라고 말했다.

늘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는 대나무는 유교적 이념의 모델이지만 모순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양극화의 마디(節)와

마디를 벗어나 자유로운 초현실적 공간을 만들어내는 술은 도교적인 죽림칠현의 현자 혹은 은자의 상을 창조한다.


대나무의 광기 또는 술 마신 대나무의 반란은 사실상 대나무가 어떤 식물에서도 볼 수 없는 그레이존의 영역에 그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피와 술의 대립적인 문화 코드가 수천 년 공존해 왔던 것은 대나무 자체가 이더 오어(either-or)가 아니라 보드 올(both-all)의 대밭의

상징 공간을 만들어 왔기 때문이며 그 속에서는 하나의 잣대로는 잴 수 없는 복합적이고 양의적인 마음의 생태학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대는 갈대와 같은 풀이면서도 동시에 목본(木本)에 속해 있는 당당한 나무의 양의성을 띄고 있는 식물이다.

그래서 세한삼우라고 할 때에는 소나무, 매화나무와 한 식구가 되고 사군자의 경우에는 난초와 국화와 같은 풀과 한 식구가 된다.

풀과 나무의 경계 속에 사는 그레이존의 식물이다. 대를 대나무라고 부르는 한국인만이 아니라

그것이 한자문화권에 있어서의 대나무에 대한 감각이요 그 개념이다.


일본 사람들은 대나무를 다케(竹)와 사사(笹)라고 부른다.

사사는 대와 다른 특별한 종류의 명칭이라기보다 키가 작고 잎이 커서 풀에 가까운 대를 그렇게 부른다.

보통 대라고 하면 일본 역시 풀과 나무의 경계에 있는 식물로 인식한다. 말하자면 '풀도 아닌 것이 나무도 아닌 것'이라는 개념이

 대의이미지요, 상징의 원천적 특징이다. 그리고 나무이면서도 풀, 풀이면서도 나무인 대나무의 그 엉거주춤한 그레이존이야말로

동아시아적인 특수한 기호(記號)들과 그 문화를 키워 온 창조의 영역이라 할 수 있다.






대나무는 도구가 된다고 해도 대밭의 상징 공간이 지니고 있는 그레이존에서 일탈하는 것은 아니다.

진각국사(眞覺國師)가 <죽존자전(竹尊者傳)>에서 예거한 대나무의 덕성 가운데 열 번째로 맨 마지막에 든 것은 다재이세(多才利世)이다.

옛날 동아시아의 사람들은 태어나서 죽을 때가지 대나무 도구와 함께 살아왔다. 임어당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국인의 일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대와 함께 산 일생이다. 그러나 대나무는 단순히 재(材)와 이(利)의 기능적 도구로만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었다.





묵죽(墨竹) | 임희지(林熙之), 조선, 간송미술관 소장.


조선 후기 한어(漢語) 역관이었던 임희지는 청조 문예에 대한 관심에 의해 양주팔가(揚州八家)의 일원이었던

 나방의 필법으로 이 작품을 그렸다고 한다. 따라서 이전 묵죽화에 비해 새로운 미감이 반영되었다.


죽마가 유년 시절의 상징이라면 대지팡이는 노년을 상징한다.

죽편(竹鞭)이 유교의 서당에서 가르침을 나탸내는 상징물인데 비해, 죽비(竹篦)는 선방(禪房)의 수행을 상징하는 도구이다.

 그런가 하면 신장대는 강신의 도구로 무속의 상징이다.

대나무는 그 용도에 있어서도 이상스럽게 반대되는 것을 서로 보완하거나 일치시키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흔히 대나무의 영성이라고 하는 것으로 물불의 융합, 이승과 저승과의 접속,

온갖 강한 것과 유한 것의 물질적 특성의 대립에 이르기까지 그 경계를 넘나드는 힘이다.





청죽함로(靑竹含露) | 강세황(姜世晃), 조선, 간송미술관 소장.


청죽함로는 '푸른 대가 이슬을 머금는다'는 뜻으로 안온하면서도 청담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한국의 경우 대나무는 절조(節操)를 생명으로 하는 선비의 문화 코드로 작용하고 있었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세속적인 상업주의와

손을 잡고 일본 사회에 파고 들고 있다. 우리에게는 이미 잃어버린 기념일이 되고 말았지만 일본에서는 해마다 죽취일이 되면 각지에서

여러 가지 이벤트를 벌이고 있다. 그런데 일인들은 죽취일의 본래 의미와는 달리 일본의 민담 <가구아히메>가 달로 돌아가는 날과

결부하여 여고생들이 참여하여 술을  따르는 민속 등으로 전환시켰다.


어쨌든 대나무는 강직하다는 동아시아인들의 '절(節)' 에 대한 문화 코드가 서양의 과학 문명에 인펙트를 던진 것만은 분명하다.

중국의 사회주의는 대나무를 뱀부 커튼(대나무 장막)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탄생시켰고, 일본의 탈아입구(脫亞入歐)의 대나무는

에디슨을 신으로 모시는 전기(電氣)의 상징을 만들어 냈다.


한·중·일을 횡단하는 문화 텍스트 읽기가 지금 막 시작되었다.

 누가 아는가. 노모를 위해 흘린 눈물이 한겨울 눈발 속에서 죽순을 돋게 했듯이 혹은 땅속에 거꾸로 꽂은 지팡이에서

새순과 푸른 가지가 돋아났듯이 한·중·일 문화상징의 탐색작업을 통해 이 메마른 도시의 아스팔트 위에

죽림칠현의 현자들이 다시 태어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어령|





삼우백금도(三友白禽圖) |  변문진, 명,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궁정화가 조렴, 장자성과 더불의 "근중(禁中)의 삼절(三絶)"로 일컬어지는 변문진은 구륵진채(鉤勒眞彩) 화법을 쓴

 꽃과 새의 그림으로 송원시대 이래 제일인지로 높이 평가받았으며, 명 시대 이 장르 그림을 개척한 시조라고도 한다.

이 그림의 삼우는 송죽매를, 백금은 그림 속에 나오는 백 마리 새를 말한다. 수목 바위 사이를 나는 새, 나뭇가지에 앉은 새,

 나무의 풀을 쪼는 새, 여러 가지 자태를 생동감 넘치는 필치로 정밀하게 그린 변문진의 관찰안이 얼마나 예리한지 알 수 있다.






수황수석도(修篁樹石圖) | 이간(李衎), 원,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이간은 일찍이 저장 지방에서 살았으며, 1294년 교지(지금의 베트남에 있음)에 사신으로 가면서

'죽향(竹香)에 깊이 들어가' 대나무를 관찰하고 체험할 기회를 가졌다.

 옛 거장의 그림을 익힌데다 자연을 스승으로 삼음으로써 마침내 대나무 그림의 독특한 품격을 창조했다.

는 조자양(趙子昻) · 정거부(程鋸夫)의 추앙을 받았는데, 특히 조자앙은 문동(文同) 이후 200여 년간

오직 이간만이 대나무의 참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냈다고 평했다.

그는 조자앙, 고극공과 더불어 원대 초기 대나무 그림의 3대 명가로서, 후대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묵죽도(墨竹圖) | 이정(李霆),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반적으로 농담의 차이를 뚜렷하게 하여 원근을 가려 대나무를 배치했다. 전체적으로 격조가 있으나,

상단부 탄은(灘隱)이라는 관서 글씨가 약간 낮설다.





죽난 8폭 병풍<우측 4폭 부분> (가학박물관 제공)






죽난 8폭 병풍<좌측 4폭 부분>







묵죽도(墨竹圖) | 이정(李霆),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른쪽 아래를 큼직하게 메운 바위는 전체적으로 둥근 형태로서 가운데는 희고 양옆은 검게 처리한 후

큰 태점 몇 개 쳤다. 그 뒤쪽에 솟아난 대나무는 굵은 동죽으로서 끝까지 자라지 못하고 중도에서 텨져 버린 형태다.

이파리 역시 흔히 보는 것과 달리 끝부분이 가위로 잘려 나간 듯 특이한 형태로 마감했다.







여왕원기합작난죽파석도(與王原祁合作蘭竹坡石圖) | 석도(石濤), 청, 1691,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석도는 청 나라의 화승이지만, 명 왕실의 후손으로 망국의 설움을 그림으로 풀어냈다.

산수와 화훼, 난초, 대나무 등을 잘 그렸다.




오죽계당도(梧竹溪堂圖) | 하규(夏珪), 송,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오동나무, 수죽, 초가집, 먼 산을 그렸다.

구도상 '일각(一角, 산수화 화법의 하나로 자연의 일부분을 잡아 요점적으로 간결하게 묘사하는 기법)' 화법을 채용했다.

대나무와 오동나무는 산뜻하고 간결하게 그렸으며, 구조가 교묘하다. 전체 그림의 필법은 세련되고 박력이 있으며,

빠른 필치로 과단성이 있게 그렸다.





설어도(雪漁圖) 작가 미상, 오대(五代),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물가에서 무성하게 자란 죽림에 눈이 하얗게  쌓인 설경이다. 방림과 도롱이 같은 외투를 둘러쓴 늙은 어부가

어께에 났싯대를 메고 추위로 웅크린채 눈 위를 걸어가는 모습을 매우 생동감 있게 그렸다.





백의관음도(白衣觀音圖) 노아미, 무로마치 시대, 1468.


노아미가 그의 아들의 제삿날을 기념하여 관음보살의 초상을 그린 묵화이다.

대나무의 불가사의한 염험한 힘과 부처님의 법력으로 그의 아들이 다시 사람으로 환생해 

더없이 좋은 삶을 누리기를 기원했"을지도 모른다.






죽석도(竹石圖) 정학교(丁學敎), 조선,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중엄한 기상의 괴석과 힘찬 기세의 대나무가 길고 좁은 화면을 꽉 채우고 있으며, 문인화의 상징성을 강조하고 있다.

작가의 내면적인 심기를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인 왜곡이 시도되었다. 그의 마음속을 가득 채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대나무 병풍 | 해강 김규진.

박력있고 마디마디 군더더기 없이 곧게 상승하는 늘 푸른 대나무는 하늘에 접근하는 신통력이 있음직 하다.





묵죽도(墨竹圖) | 민영익(閔泳翊),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짙은 먹색의 댓잎을 계속 포개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을 묘사한 이 대나무는

근대로의 이행기를 살았던 한 불운한 지식인의 자기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대상의 사실성을 뛰어넘어 대나무와 바위의 형상에 자신의 정신을 불어넣음으로써 사군자의 또 다른 면보를 보여 주고 있다.





설암상(雪庵像) 요대수, 청,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한 노스님이 대나무 지팡이를 들고 있는 그림으로 오늘날 유일하게 남은 요대수의 작품이다.

많은 중생에게 불법을 전파했을 것 같은 노스님의 인상이 대나무의 텅 빈 줄기처럼 공허하면서도 우언가로 충만해 보인다.





묵죽도(墨竹圖) | 허련(許蓮), 조선, 고려대학교박물관 소장.


허련은 직업화가였으나 어떤 문인화가보다도 깔끔하고 담백한 문인화를 잘 그려 높은 평가를 받았다.

글, 그림, 글씨를 모두 잘해 삼절(三絶)로 불렸다. 특히 묵죽을 잘 그렸다. 이 그림은 그가 60세 때인 1869년에 그린 것으로

「땅을 스치는 맑은 바람 가을이 왔나 보다/ 붉은 태양 하늘을 가니 한낮도 모르겠네」라는 화제다.





설죽도(雪竹圖)


속이 텅 비었지만 얇은 껍질로 눈보라와 강풍을 견디는 대나무는

 청렴한 선비들의 강직한 삶 그대로를 보여 주고 있다.


삼봉(三峯) 정도전(鄭道傳)의 문집에 실려 있는 <죽창명(竹窓銘)>이란 글은 대나무의 은유성(隱喩性)을 극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선생의 호를 죽창(竹窓)이라 한다는데 대나무는 그 속이 비고 그 마디가 곧으며 그 빛이 차가우며 겨울을 지나도 변하지 아니하여

군자들이 그를 숭상하여 자신을 가다듬는다고 하였습니다. 《시경(詩經)》에도 스스로 학문을 닦아 이루어짐을 대에다 비유하였으니

선생 또한 학문이 깊다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옛 사람들이 대나무에서 얻은 바가 많다고 보는데 선생은 무엇을 택하셨습니까?


그러자 죽창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는 그와 같은 고상한 이론은 없습니다. 다만 대나무가 봄에는 새들에게 알맞아 그 울음소리가 드높고, 여름에는 바람 부는 데 알맞아

그 기운이 맑고 상쾌하며, 가을이나 겨울에는 눈과 달에 알맞아 그 기운이 쇄락합니다. 그리하여 아침 이슬, 저녁 연기, 낮 그림자,

밤 소리에 이르기까지 무릇 이목에 접하게 되는 것치고는 한 점도 진속(塵俗)의 누(累)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죽창에 앉아 서탁을 정돈하고 향을 피운 다음 글을 읽기도 하고 거문고를 타기도 합니다. 때로는 온갖 잡념을 떨쳐 버리고

묵묵히 꿇어앉아 있으면 자신이 죽창에 기대고 있는 것조차 잊게 됩니다.





대나무 병풍(우측 두 폭 부분)

사시사철 각각의 대무들은 조금씩 그 모습을 달리 하자면, 그 상징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다.




대나무 병풍(좌측 두 폭 부분)





죽석도(竹石圖) | 관도승(管道昇), 원,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관도승은 원초(元初) 유명한 사대부 화가 조맹부의 부인으로, 매, 죽, 난을 잘 그렸으며 특히 묵죽에 좋은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이 그림은 죽간(竹幹)이 가늘고 잎이 비교적 큰 대나무를 묘사하여 가냘프면서도 힘 있는 대나무의 특징이 잘 포착되어 있다.





우죽도(雨竹圖) | 고극공(高克恭), 원,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가을비에 씻기고 있는 두 그루의 대나무를 묘사하고 있는데, 나뭇가지가 뒤쪽을 향해 어지럽게 펴져 있어 부앙(俯仰)의

밀도 있는 자태를 보이고 있다. 가을바람과 성근비는 곧게 뻗은 대나무 줄기의 정취를 나타내고 있다.





춘화삼희(春花三喜) | 맹옥간(孟玉澗), 원,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대나무 위에 앉은 까치가 땅에서 노는 두 마리 까치를 보며 우는 모습은 그 소리마저 들릴 듯 극적으로 묘사되었다.

꽃과 ㄷㅐ나무 잎, 새 깃털의 세세한 묘사는 남송화원 화조화의 능숙한 기술을 보인다.





만죽도(萬竹圖) (우측 부분> | 송극(宋克), 원, 1369, 프리어갤러리.


물결치듯 이어지는 토파(土坡) 위에 자라는 가는 대나무들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섬세하고 싱싱한 대나무와는 대조적으로

토파는 무게 있고 안정감이 있으며, 가늘고 날카로운 대나무 잎과 대나무 가지는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토파와 조화를 이룬다.


만죽도(萬竹圖) (좌측 부분>





호도(虎圖) | 카노 쇼에이, 무로마치 시대, 교토 대덕사 취광원 소장.


이 그림은 원래 대덕사 취광원의 의발각이라는 방의 장벽화로 그려진 것인데

《대덕사명세기》에는 카노가 아닌 에이토쿠의 작품으로 기록되어 있다.





매죽도(梅竹圖) 2쪽 가리개(부분) | 국립유물박물관 소장,


우뚝 솟은 대나무 아래 매화를 그렸다.




죽부인 


죽부인(竹夫人)


송나라 시인 여본중(呂本中, 1084~1145)은 <죽부인>이라는 시에서

죽부인의 일생을 인간의 영고성쇠(榮枯盛衰)에 빗대어 다음과 같이 노래했다.


그대와 예전부터 같은 침상에서 / 서풍에 앉으니 온 밤이 서늘하네.

문득 작은 등곶이 담 모퉁이에 버리듯 하니 / 둥근 부채 상자에 갈무리함만 못 하네.

우습구나, 반첩서와 지후가 / 일생 동안 고생하며 방 안 총애 독차지하려 한 것이 ···





수죽사녀도(脩竹仕女圖) |구영(仇英), 명, 상하이 박물관 소장.


소매가 넓은 장삼을 입은 한 사녀가 정원에서 발걸음이 내키는 대로 한가로이 거닐다가 먼 곳을 응시하고 있는데,

공허하고 무료함을 드러내고 있다. 화면이 깔끔하면서도 셈세하고 아름다우며, 무척 우아하다.

또한 담송사녀를 그리는 기법을 수용했다. 인물의 선은 현격하게 매끄러우며 틀어올린 머리에 자태는 풍만하다.

중국 당대의 화가 주방(周方), 618~907)이 그린 당대 귀족 아녀자의 모습과 유사하다.





자수병풍


새들도 대나무의 미덕을 알았던 것인가,

 암수가 다정하게 대나무 가지에 앉아 꽃을 찾아드는 벌을 희롱하고 있다.





칠석도 츠키오카 요시토시, 메이지 시대. 1886 | <가구야히메>는 대에서 사람이 태어난 일본의 대표적인 설화이다.





묵죽도(墨竹圖) | 이정, 조선(1622),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탄은의 나이 81세 때 그린 작품이다.

왼편 하단부에 자리잡은 언덕으로부터 화면 중앙을 향해 포물선을 그으며 솟아오른 대나무는 구도상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줄기를 따라 방향을 달리하면서 무리를 이루고 있는 대나무 잎들은 마치 오랜 장마비에 물기를 머금어

한껏 늘어져 있기라도 한 듯이 지면을 향한 마지막 잎새로 시선을 이끈다.





풍죽도(風竹圖) | 이정, 조선, 간송미술관 소장.


탄은의 대나무 그림들에서 찾아볼 수 있는 화풍상의 특색과 그의  뛰어난 지량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강한 대조를 보이면서 간략하고 빠른 필치로 처리한 언덕으로부터 솟아오른 대나무 줄기는 화면 중심부에서 세찬 바람에 의해

활처럼 휘면서도 꿋꿋이 버티는 풍죽의 기개를 보여 준다. 대나무 잎의 끝이 예리하고 약간 말린 듯한 이정 특유의 필치가

날카롭고 두드러져 보인다. 또한 세찬 바람을 받고 있는 풍죽의 자태가 더 없이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묵죽(墨竹) | 조희룡(趙熙龍), 조선, 19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 그림은 매 폭마다 독립된 한 작품으로 된 8폭 병풍 중 하나다.

화면 중앙에 5그루의 대나무를 그렸는데 두 간(竿)은 농묵으로, 세간은 담묵으로 그렸다.

 대나무 잎도 마찬가지로 담묵, 농묵이 혼용되어 산뜻한 조화를 보인다.

마치 첨예한 삼각형을 거꾸로 세워 놓은 것 같은 구도이다.

화면 오른쪽 화단에 4행의 긴 제발(題跋)을 적어 화면에 안정감을 부여하고 있다.





청죽도(靑竹圖) | 전(傳) 조익(趙翼), 조선, 17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면의 중앙을 수직으로 뻗어 올라 상단에서 갑자기 꺾여 수평으로 향하고 있는 대나무를 그린 이 그림은 윤곽선으로 그 형태를

묘사하고 그 안에 청록으로 채색한 구륵법(鉤勒法)을 구사했다. 화면의 오른편에는 마디 부분의 생태를 정확히 파악해 보려는

작가의 의도가 엿보이는 굵은 대나무가 담묵으록 그려져 있다.





묵죽도(墨竹圖) | 오진(吳鎭), 원,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오진은 원대의 가장 뛰어난 묵죽화가 가운데 한 사람으로 황공망, 왕몽, 예찬과 더불어 원4대가로 불린다.

묵죽과 묵매에 능했다. 이 그림은 22장으로 된 《묵죽보(墨竹譜)》중의 하나로 1350년에 그려졌으며,

이간의 대나무 그림을 보고 후에 그 인상을 되살려 그린 그림이다.





기위도(淇渭圖) | 왕불(王불), 명,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기수(淇水)와 위수(渭水)의 이름을 합쳐 <기위도>라 했다.

예로부터 이 지방은 아름다운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 것으로 유명하며, 중국의 시문(時文)에도 자주 언급되어 왔다.

즉, 이 그림이 아름다운 대나무 한 그루는 기수와 위수 가의 경치를 실감케 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무후고와도(武侯高臥圖) 주첨기(朱瞻基), 명, 베이징 고궁박물원 소장.


제갈량이 무후(武侯)에 봉해지기 전, 융중(隆中)에서 은거생활 할 때를 묘사한 것이다. 제갈량이 죽림의 깊은 곳에 팔을 높이 베고 누워

한가로이 노니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가슴을 풀어헤치고 책에 팔꿈치를 기대고 있다. 과장되어 표현된 복부는 원대한 포부를 넌즈시 말해

주고 있다. 작자는 간결하고 소박한 먹선으로 인물과 배경을 힘 있게 표현해 냈으며, 묵죽의 빼어난 아름다움과 간결하고 유려한 인물의

형체를 그린 선은 법인탈속한 운치를 느끼게 해준다. 이 그림을 그린 주첨기는 당시 30세였으며, 원로 대신 진선(陣瑄)에게 하사한 것이다.





묵죽도(墨竹圖) | 정섭(鄭燮), 청, 홍콩 중문대학 부속문물관 소장.


양주팔괴의 특징은 개인의 다양성과 고독성에 있다. 정섭도 마찬가지여서 그의 그림에는 쓸쓸함과 상쾌함이 함께 존재한다.

정섭은 시에도 능했으므로 그의 그림에는 언제나 문자향(文子香)이 넘친다.





삼익재도(三益齋圖) | 1418,  세이카도 문고 미술관 소장.


지식을 의미하는 소나무, '성실'을 의미하는 매화, '정직'을 상징하는 대나무에 둘러싸인 서재(삼익재)가

고즈넉하면서도 정갈해 보인다.





채죽도 | 야나기사와 기엔, 개인 소장.


감색 종이에 백록으로 대나무를 그린 특이한 작품으로 대나무의 상징성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우죽풍죽도 병풍 | 마루야마 오쿄, 교토 엔코지 소장.


안개비에 젖은 대나무숲과 멎은 사이 한 줄기 지나가는 바람 그리면서 당시 작자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죽매도(竹梅圖) 병풍(우측 부분) | 가타 고린,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유수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오가타 고린의 수묵화.

대와 매화의 대위법적 구성이 절묘한 이 그림은 도쿄 국립박물관이 소장한 일본 중요문화재이다.






죽매도(竹梅圖) 병풍(좌측 부분)





좌) 청자상감모초화문매병 |고려, 14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우) 백자동화죽문호 |조선, 18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좌) 빅자청화양각매죽문각병 |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우) 백자청화죽문시명연적 |조선 18세기 후반,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청자죽순형주자 |고려





좌) 오채화조문화분 | 강희(康熙), 청,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우) 두채취죽문완  |옹정(雍正), 청.





좌) 백자유리홍송죽매파초문병 |원(元).   우) 묵채한강독조도병 |건릉(乾陵), 청,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소장.














오채송죽매병 | 나베시마, 18세기.





좌) 오채육일죽문접시    우) 철회설제문수발 | 18세기





십장생 대나무 | 조릿대 정도 크기의 대나무만으로도 그 상징성을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문자도 | 효(孝)를 형상화한 것으로 물고기 아래에 죽순을 그려 넣었는데 (맹종(孟宗) 설화와 관련이 있다.





'축(祝)'의 대나무 | 전설상의 천도(天桃)와 함께 그려진 대나무는 '춧수(祝壽)'의 의미가 있다.





책가도 | 언제고 세한삼우를 가까이하고 싶어 그림으로 그려 방 안에 두어

그 의미를 되새겼을 선비들의 겸손함이 느껴진다.





육조작죽도(六組斫竹圖 ) 양해(梁楷), 송, 도쿄 국립박물관 소장.


선종의 육조 혜능이 대나무를 자르는 정경을 나타낸 것이다. 그림 중앙에 육조가 한 고목 아래에서 한 손에 칼을 들고, 한 손에는

대나무 줄기를 쥐고 고죽(枯竹)을 다듬고 있는 중이다. 필치는 힘이 있고 예리하며, 리드미컬하다. 또한 매우 간결하고 세련되게

육조이 생동감 있는 자태를 간단히 묘사했으며, 기세가 비범하다.





선동취생도(仙童吹笙圖) | 김홍도,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화면에 배경 없이 피리부는 선동을 그렸다.

선동의 자세가 8폭병풍 <신선도> 중 <선동취적도>와 똑 같으나 사슴은 생략했다.




선인야적(仙人夜笛) | 김홍도,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산수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면서도 인물이 비교적 크게 부각된 그림으로 오른쪽 상단을 비운 변각 구도다.

약초를 캐러 산에 올랐다가 잠깐 쉬는 듯한 모습으로 끈이 있는 바구니에는 영지(靈芝)가 보인다.




선인취소도(仙人吹簫圖) | 김홍도,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전혀 배경이 없이 생황(笙篁)을 불고 있는 선동의 모습은 그 자세가 <선동취소도>와 비슷하고

 김홍도가 비슷한 시기에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천도와 대나무 | 누구의 축수(祝壽)를 기원하기 위함인가!

축(祝)을 기원하는 대나무와 먹으면 천년을 산다는 천도(天桃)가 누군가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선물로 바쳐지는 것 같다.




봉황도(민화) | 봉황은 오동나무에 깃들고, 대나무 열매와 이슬을 먹고 산다.





주죽봉황도(朱竹鳳凰圖) | 임, 청, 창서우 시박물관 소장.


주죽과 봉황은 모두 허구의 것이므로 민간에서는 경사의 징조이다. 흰 봉황이 태연한 자태로 오동나무에 깃들어 있고,

주위에 붉은 대나무 수간이 있어 흰 봉황과 대비를 이뤄 생생히 빛나고 있으며, 화면에서 장식적인 의미가 극히 풍부하다.





신중탱화(부분) | 1852, 울진 불영사 소장. | 대나무로 만든 생황을 불고 있다.





묵죽도(墨竹圖) | 유덕장, 조선, 고려대학교 박물관 소장.


가운데 줄기가 부러진 왕죽(王竹) 두 그루를 그린 이 그림은

마디마디에서 나온 잔 줄기와 잎이 성글고 고절(高節)한 느낌을 주고 있다.





기석수황도(奇石殊荒圖) | 하창(夏昶), 명, 타이페이 고궁박물원.


예전부터 사대부들이즐겨 그린 대나무는 서늘한 성질과 뭉친 것을 풀어 주는 기운이 있어

 번열을 내려 주고 맑은 정신을 유지하는 효능이 있다.





묵죽도(墨竹圖) |송민고(宋民古),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정치가 혼란해지자 과거를 포기하고 평생 은거하여 살았다는 송민고의 삶이 반영된 듯 의로우면서도 외롭게 느껴진다.





백자청화국죽문각병 | 조선,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로회첩(五老會帖) | 조희룡, 조선, 서울대학교박물관 소장.

함풍 신유 등 5인의 회합을 기념하여 혜산 유숙이 그린 소집도이다.





안중식의 혈죽도(좌)와 양기훈의 혈죽도(우)


민중정공 분향소 마룻바닥에 솟아오른 혈죽을 안중식과 양기훈이 실사한 그림이다.





최근에 발견된 혈죽도 |진위 여부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


지난 2004년 한 개인 소장자가 구한말 화가 홍순승(洪淳昇), 1875~?)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민충정공 <혈죽도>를 공개했다. 그림의 화제 대신 '찬(贊)'이 들어 있다. 일부를 번역하자면,


「소멸되지 않는 것은 충의이고/ 흩어지지 않는 것은 정기인데/ 그 기운이 하나로 뭉쳐/ 대나무가 자랐다네/.....

장차 그 장렬한 절의 힘 입어/ 기울어진 국운이 부지될 거네/ 이를 그림으로 그려 전하거니/ 꽃다운 이름 만고에 빛나리라.


참고서적 : 『대나무』






Free As A Seagull -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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