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 영웅들을 우스꽝스럽게 '강등'시킨 해학


관우 신앙은 우리에게 낮설다,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갖고 있는 종교가 관우신앙이라면 대부분 놀랄 것이다.

워낙 많은 인구를 가진 중국인들과 화교들이 열렬하게 신봉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관우신앙은 임진왜란 때 중국에서 전해졌다.

명나라 장수들이 일본을 물리치는 원조의 조건으로 관우의 신전인 관성묘(關聖廟 관왕묘라고도 함)를 전국에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고,

조선 조정은 이를 받아들였다. 관성묘에는 관우를 비롯해 그의 심복인 주창(周倉)과 아들인 관평(關平) 등의 신상이 모셔졌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의 내용을 그림으로 표현한 '삼국지연의도'도 여기에 봉안됐다.

관성묘에 있는 삼국지연의도는 단순히 이야기 그림이 아니라 관우신앙을 가진 사람들의 '예배화'였던 것이다.


<삼국지연의>는 조선시대 최고의 베스트셀러였다.

임진왜란 직후 관우신앙과 함께 전래된 이 소설에 대해 초기에는 허망하고 터무니 없는

내용이 많은 책이란 부정적 반응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집집마다 이 책이 있었고,

그 내용이 과거시험 문제로 출제 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중국보다 우리나라에서 <삼국지연의>는 소설뿐만 아니라

만화, 영화. 게임 등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면서그 열풍을 이어가고 있다.




<삼국지연의도> <자룡단기구주> 1912년, 견본채색, 169×183cm,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홀로 말을 타고 주인의 아들을 구하는 조자룡의 용맹한 모습과 말에서 추풍낙엽처럼 떨어진, 목이 베인 적장의 모습이

극적인 대비를 이루고 있다. 우리 역사 속에  뚜렷한 자취를 남겼지만, 그 실체를 아는 이가 별로 없는 종교가 있다.

바로 관우신앙, 즉 촉蜀 나라 명장 관우關羽를 신으로 섬기는 민간신앙.







<삼고초려> 19세기말 20세기초, 지본채색, 54.0×38.0cm, 개인소장.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삼국지의 영웅들을 이처럼 우수꽝스럽게 표현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민화에서는 권위나 권력을 끌어낼고 인정하지 않았다. 백수의 왕인 호랑이를 '바보호랑이'로 끌어내리고, 중국에서는 신처럼 받드는

삼국지의 영웅들을 망가뜨린 모습으로 표현했다. 나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단한 배짱이다. 민화가들은 불룩 솟은 것은 깎아 내리고,

움푹 파인 것은 메워 나갔다. 그들이 소망한 것은 평등한 세상이었고, 지금도 그 소망은 변함이 없다. <삼국지연의>에 배경을 둔 민화는

관성묘에 봉안된 그림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신전에 모신 예배화도 아니거니와 구국의 염원과도 거리가 멀다. 그저 흥미진진한 이야기

그림일 뿐이다. 이 때문에 등장인물들도 엄숙하지가 않다. 중국에서는 관우를 신으로 모시고 있어 해학적으로 표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탈권위적인 성향이 강한 우리 민화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고사인물도> 19세기말 20세기초, 지본옅은채색, 33.0×76.0cm, 개인소장.


장판교 위 장비나 그 아래의 조조와 하후걸 모두 세련미가 전혀 없는 투박한 선을 활용해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장비張飛가 장판교長板橋 위에서 고리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에 장팔사모를 움겨쥔 채 위세를 부리고 있는 모습이다.

의심이 많은 조조曹操는 말을 타고 급히 달려왔으나 다리 부근에 있는 무기와 깃발 등을 보고 감히 공격하지 못하고 있다.

이를 눈치 챈 장비가 우레와 같은 소리를 버럭 지르자 조자 곁의 하후걸은 간담이 서늘해져 말 아래로 고꾸라지고 만다.







<담배 썰기> 김홍도, 18세기 후반, 지본채색, 22.7×27.0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소설을 읽어주는 강동사의 극적인 말솜씨는 담배를 써는 일의 고단함을 잊게 한다.

조선시대에는 '전기수(傳奇叟)' 또는 강독사(講讀師)'란 직업적인 이야기꾼이 있었다. 책 읽어주는 남자다.

이업복(李業福)이란 사람은 맵시 있게 읽을 뿐만 아니라 소설 내용에 따라 여러 등장 인물의 모습을 연출하여,

부잣집에 불려 다니며 소설책을 읽어주는 것을 업으로 살아갈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고 한다.







<구운몽도><성진과 팔선녀, 돌다리에서 만나다> 19세기 말, 지본채색, 73.0×35.8cm,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성진 스님의 공손한 모습과 이에 반응하는 팔선녀의 다양한 표정들이 설산 같은 모습의 산속 배경에서 두드러져 보인다.

김만중(金萬重1637-1692)이 『구운몽』을 지은 것은 남해 노도에서 귀양살이 할 때다. 1688년 평북 선천으로 귀양갔을 때

이 소설을 구상했다고 한다. 첫 대목 성진(性眞) 스님과 선녀 8인이 돌다리에서 만난 장면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불교의 스님과 도교의

선녀만남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닌데다 선녀가 돌다리를 건너는 통행세를 받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왜 스님이 선녀를만났을까?

이 대목부터 독자들은 색다른 흥미를 느끼는것이다. 결국 이 일로 말미암아 이들 모두 인간계로 쫒겨나는데, 성진 스님은 양소유라는

유생으로 환생하여 점차 출세 길에 오르고 선녀들은 미인으로 변신해 차례로 양소유의 처첩이 된다. 종교의 성스러운 세계에서

공명과 애정이교차하는 세속의 세계로 바뀐 것이다. 양소유가 염원하는 꿈속 세계는 세속적인 유토피아일 터이다.

인간의 욕망이 진솔하게 표출되고, 통속적 욕망이 거리낌 없이 이루어진 그러한 세계인 것이다.







<구운몽도> 19세기, 지본채색, 69.0×41.5cm, 김세종 소장.


수평방향의 돌다리에서 만나는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관례인데, 이 그림에서는

 수직방향의 돌계단 형식으로 재해석하여 극적인 흥미를 높인다.

민화풍<구운몽도>는 궁중화풍 <구운몽도>와 달리 완전 한국 배경의 이야기로 번안된다.

팔선녀의 옷부터 달라진다. 중국 패션이 아니라 큰 비녀를 찌른 가체에 타이트한 저고리, 풍성한 치마로 영락없는 조선 후기의 패션이다.

수평의 돌다리도 수직으로 바뀐다. 두 선녀가 통행료를 요구하러 맨 위의 성진 스님에게 다가서고, 다른 선녀들은 길을 막아서고,

다른 선녀들은 길을 막아서고 앉아있다. 같은 이야기이지만, 한국적이고 극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구운몽도> <낙유원에서 기예를 겨루다> 19세기 말, 지본채색, 73.0×35.8cm, 온양민속박물관 소장.


왼쪽의 양소유와 오른족의 월왕이 보는 앞에서 백능파가 비파를 연주하고,

심요연이 칼춤을 추며, 적경홍이 준마 위에서 활로 꿩을 겨누고 있다.

<구운몽도>의 클라이맥스는 양소유가 4년 만에 공주의 남편인 부마의 지위에 올라 월왕과 함께 낙유원에서 풍류를 즐기는 장면이다.

이곳에는 그동안 양소유와 인연을 맺었던 여인들이 모두 참가하게 된다. 그 가운데 적경홍이 나는 듯이 준마를 타고 활시위를 당겨

수풀 속에 날아오르는 꿩을 잡고, 심요연이 눈송이가 복사꽃 떨기 위에 뿌려지는 듯 몸을 날려 칼춤을 추고,

백능파가 물이 산골짜기에 떨어지며 기러기가 추운 하늘가에서 우는 듯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호렵도(胡獵圖)


호렵도는 참으로 묘한 용어다. 조선후기라는 독특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탄행한 역사적 개념이다.

말 그대로 풀면, 오랑케의 수렵장면을 그린 그림이 된다. 그런데 그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청나라 황제가

목란위장(木蘭圍場)에서 사냥하는 장면을 가리킨다. 청나라 황제들은 가을에 목란위장에서 청나라 군대의 정예군인 팔기군(八旗軍)

 3천여명을 비롯하여 일만 명의 군사들을 동원하여 사냥을 즐겼다. 그래서 '목란추선(木蘭秋獮)' 즉 목란의 가을사냥이라고 부른다.

이 대대적인 수렵행사는 팔기군을 비롯한 청나라 군사들을 훈련하는 것도 있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청나라가 가장 두려워 하는

몽골족을 회유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런데 조선에서는 황제가 가을사냥하는 그림에 업신여기는 뉘앙스를 지닌 '되놈' 혹은 '오랑캐'란

뜻의 호(胡) 자를 붙인 것일까? 이 말에는 청에 대한 조선인의 증오와 열망의 이중적인 감정이 엇갈려 있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을겪은 뒤,

조선에서는 청을 배척하자는 배청의 여론이 들끓었다. 청에 볼몰 잡혀갔다 풀려나온 효종은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기 위해 청을 정벌하려는

계획까지 세웠었다. 하지만 현실성이 부족했으며, 130여 년 뒤의 젊고 진보적인 한양의 지식인들이 청의 존재를 인정하고

 배우자는 운동을 펼쳤다는 사실. 이런 맥락 속에 등장한 그림이 호렵도와 책거리다. 양면적 의식의 반영인 것이다.





<호렵도> 18세기 후반, 지본채색, 크기 미상, 개인소장.


김홍도의 작품에 가장 가까운 화풍의 호렵도로 널널한 공간에 적은 인원이 등장하지만.

드라마틱한 표현에 생동감이 넘친다.






(좌측 부분)

<수렵도병> 19세기, 지본채색, 586.0×106.5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민화 호렵도가 그려진 12폭 병풍에는 가파른 산을 배경으로 한 사냥 장면이 역동적이고 해학적으로 표현돼 있다.






(우측 부분)


궁중에서 제작되었던 호렵도는 점차 민간에 퍼졌다. 민간화로 그려진 호렵도는  군사적 목적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잡귀를 쫒는 액막이로 삼거나 길상의 용도로 쓰였다. 황제 일행이 게르에 앉아 사냥장면을 바라보는 장면, 수렵하는 장면, 포획물을

갖고 돌아가는 모습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그렇지만 곳곳에 한국적인 상황에 맞게 변형한 특색이 보인다. 굴곡이 심한 구릉이 이어지는

가운데 곡예를 하듯 채찍을 휘두르며 자유자재로 내달리는 군사들은 스릴감을 준다. 호랑이가 사냥꾼에게 대드는 모습도 있다.

이는 호랑이를 잡는다는 명분으로 관리들이 서민을 더 괴롭히는 현실을 풍자한 것으로 민화 호렵도에서만 발견된다.







(좌측 부분)

<호렵도> 19세기, 지본채색, 78.5×351cm, 독일 개인소장.


난데없이 서수들이 등장하고 재밌는 캐릭터가 돋보이는 민화다운 호렵도이다.

병풍 시작 부분에는 황제가 말을 타고 사냥장면을 관람하고 있는데, 그 친위병들 중에는 난데없이 말을 타고 있는 원숭이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서 할술 더 뜬 장면은 그 아래에는 호랑이가 담배피고 토끼와 멧돼지가 시중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사실 죽음이 오고가는 긴박한

순간인데 사냥물인 호랑이가 이처럼 여유롭게 담배 필 수 있을까? 파격은 병풍 끝 부분에서도 이어진다. 사자와 불가사리가 등장하고,

그 밑에는원숭이 두 마리가 창을 들고 있다. 왜 상서로운 동물인 서수와 원숭이들이 등장하는 것일까? 뛰어도 시원찮은 판에 사슴은

 거의 직각으로 인 자세로 걷는 듯 뛰어가고, 사냥개가 아니라 애완용 강아지들이 등장하며, 기병이 창을 들고 말등을 딛고 서서

 마상재를 벌린다. 유머러스한 장면들로 가득한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우측 부분)








<수렵도> 19세기말 20세기 초, 지본채색, 각 74.9×30.5cm, 미국 뉴아크박물관 소장.


입체 도형을 평면으로 펼친 전개도처럼 자유로운 방향으로 표현한 인물과 동물의 모습이 이채롭다.

맨 위의 사람은 수평 방향으로 서 있지만, 그 아래 백마 탄 사람은 말과 몸이 약간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맨 아래 사람은 사슴과 더불어

아예 수직방향으로 위치하여 기본축이 바뀌어 있다. 이것은 전통적인 건물의 배치도에서 볼 수 있는 구성방식이다. 내용도 흥미롭다.

사냥꾼들이 말을 타고 저마다 새, 사슴, 호랑이를 사냥하고 있다. 맨 위의 사냥꾼은 날아가는 새의 가슴에 화살을 꽂았고, 화살을 맞은 새는

고통의 날개짓을 하고 있다. 호랑이는 갑작스럽게 닥친 혼란 속에서 백수의 왕답지 않게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 위 아래의 배경에는

이러한 소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평화로운 정경이 펼쳐져 있다.





강태공조어도


고사인무화 가운데 인재의 중요성을 일깨워주는 모티프인 '강태공조어도' 가 있다.

주 문왕이 강태공의 도움으로 은나라를 무너뜨리고 중국을 통일하는 기반을 마련했고, 강태공은 제나라의 임금이 된다.

인재의 중요성과 더불어 기다림의 지혜에 대한 교훈이 담겨있다.



<태공조위도> 『예원합진』에 수록. 양기성, 18세기 전반, 지본채색, 34×29cm, 일본 야마토분카간 소장.


강태공이 후에 주나라 문왕이 되는 서백에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은 통치자의 입장에서 그린 강태공 이야기 그림이다.

그림 속 산 위로는 창과 깃발들이  뾰족 솟아 있는데, 이는 주 문왕이 꽤 많은 병사를 대동하고 왔음을 보여준다. 양기성은 영조어진과

세조어진을 그릴 만큼 인물화로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은 이다. 그의 서정적이고 사실적인 필치가 잘 드러난다.







<강태공조어도> 19세기, 지본채색, 90×57cm, 파리 기메동양박물관 소장.


강태공과 서백 사이에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다.

뒤돌아보지도 않는 강태공의 눈치를 살피는 서백의 모습에서 감상자는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백자도


조선시대에 사내아이를 낳기를 바라는 마음은 단순한 소망이라기보다는 '신앙'에 더 가까웠다.

농사를 짓기 위해서 많은 생산 인력이 필요하고, 가부장적인 권위가 지배한 전통사회에서 득남에 대한 열망은 당연한 일이었다.




<정승놀이> <백자도 병풍> 중, 19세기 말 20세기 초, 지본채색, 34.0×60.0cm,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공공누리.


정승의 행차를 아이들이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그림에는 사내아이를 많이 낳기를 바라는 마음과 함께

자식이 높은 벼슬을 하기를 바라는 출세의 염원도 담겨 있다.







<백자도> 19세기, 지본채색, 52.0×28.0cm, 개인소장.


중앙에 씨름하는 장면을 배치했다. 2~4인씩 짝을 지어 구경하는 하이들의 모습도 자연스럽다.

그런데 괴이한 형상으로 된 고급 정원석 배경은 새로운 요소다. 중국에서 태호석으로 정원을 꾸미면 망한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만큼 태호석과 같은 고급 정원석은 부유함의 상징이다. 얼핏 궁중화풍과 배경에서 별 차이가 없다. 아이들의 헤어 스타일과 복식이

중국식이긴 해도 이들을 표현한 선과 이미지에는 한국적인 정감이 깃들어 있다.







<백자도> 지본채색, 각 73.0×27.2cm, 개인소장.


궁궐 같은 집, 고급스런 나무와 괴석, 쌍상투를 튼 아이들 등 궁중회화에서 보이는 백자도의 형식을 따랐으나,

자유로운 구성이나 질박한 표현에서는 민화적인 정감이 넘친다.





초상화


한국에서 간행된 민화 관련 책에서는 초상화를 다룬 경우가 많지 않다.

18세기 정조 때에는 초상화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다. 사실적인 화풍이 유행한 시기다.

민화 작가들은 빼어난 외모로 남정네의 사랑을 받는 기녀나 신분은 낮지만 돈이 많은 만석꾼을 앉혀 놓고 초상화를 그렸다.

이들은 모두 전통적인 초상화의 세계에서 주목을 받지 못했던 인물이다.




<덕행초상> 1796년, 지본채색, 110×71.5cm,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공공누리.


탁자에 팔꿈치를 기대고 편히 앉아 오른손에 부채를 들고 무언가를 가리키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조선새대 초상화에 익숙했던 포즈가 아니다. 산수화와 사군자를 모티프로 한 삼단 병풍을 배경으로 탁자 위에는 씨가 보이게

위를 자른 수박, 책 위에 놓인 안경, 책갑, 도자기 그리고 필통 등 민화 책거리에 보이는 한 장면이 펼쳐져 있다








<조철승초상> 1920년(1890년상 모사), 견본채색, 187×91cm,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공공누리.


손에 들고 있는 의하서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었다. 의원의 초상화다.

정자관을 쓰고 옥색 도포를 입고 허리에 청색의 세조대를 맨 채 팔걸이의자에 앉아 있다.

 오른손에는 『잡병제강雜病堤綱』이라는 의학서를 들고 있음으로써,  그림의 주인공이 의원임을 넌지시 밝혔다.

제발에 의하면, 이 초상화는 광주 원효사 화승 징헌이 1890년에 그린 것을 1916년 최병육이 다시 모사했다고 한다.







<초상> 19세기 말, 견본채색, 132×82.9cnm, 개인소장.


이 작품은 하급관료의 초상화다. 무언가 옹색해 보이는 자세와 배경에 자리한 책과 문방구에서 민화적인 표현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비록 말단 관직의 인물이지만 학자적인 배경에서 그의 생활철학을 엿볼 수 있다. 뒤로 갈수록 크게 그리는 역 원근법으로 묘사된

서안 위에 책과 문방구를 놓은 모습은 영락없늕 민화 책거리의 한 장면이다. 평정건을 쓰고 청단령을 차려입었다.

꼿꼿하고 딱딱한 자세의 여류롭지 않은 앉은 모습에서 오히려 친근함이 배어 나며 무언가 어색하고 안경까지 쓴 어수룩한

캐릭터가 참으로 살갑다. 이는 우리 민화의 큰 장점이다.







<노부인상> 채용신, 1926년, 견본채색, 63.0×104.5cm, 서울대박물관 소장.


혼례복을 입은 할머니의 모습에선 젊음과 늙음이 미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 그림은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 채용신이 그렸다.

그런 채용신이 산수화를 배경으로 새색시처럼 꽃단장을 하고 있는 할머니를 그렸다는 것도 이례적이랄 수 있겠다.






꿈의 세계를 향하여


(좌측 부분)


<청룡백호도> 19세기, 견본채색, 110.5×499cm, 개인소장.

일월오봉도를 좌청룡 우백호가 호위하고 있는 형국이다.






(우측 부분)







경복궁 자경전 십장생 굴뚝. 보물 제810호,


민화풍의 십장생도가 궁중에 영향을 미친 대표적인 예다.








<자수십장생병풍> 19세기 후반, 자수, 73.0×31.5cm, 일본 고려미술관 소장,


강렬한 붉은 색 바탕 위에 십장생의 유토피아가 단정하면서도 활기차게 표현되었다. 두 폭이 하나로 어울릴 때, 아름다운 대비와

조화를 이룬다. 오른편 폭은 윗부분ㅇ에 학이 중심이고 맞은폭은 산봉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한쪽에 물과 거북을 아래에 비채하면,

맞은 폭엔 그것들을 위에 둔다.  한쪽의 소나무와 대나무가 황이이면, 맞은 폭엔 녹색이다. 궁중 화원이나 솜씨 좋은 화승이 민화 스타일로

밑바탕을 그렸을 것으로 보인다. 여러모로 궁중 자수가 아닌가 짐작할 수 있지만, 왼쪽 폭 오른쪽 위 바위에 불교식 '만' 자가 새겨져

있는 점으로 보아 사찰이나 적어도 불교와 관련되어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화조도> <십장생도> 지본채색, 60×32cm, 조선민화박물관 소장.


춤을 추는 듯한 소나무 아래 사슴 두 마리가 평화롭게 불로초를  뜯고 있다. 평화롭고 흥겨운 장생의 낙원이다.






<금강산담무갈지장보살도현신도>

노영, 1307년, 흑칠 바탕에 금니, 22.4×10.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공공누리.


수직준으로 그린 금강산의 표현 가운데 가장 이른 예에 속한다.







<산월과안> 19세기, 지본에 먹, 68.5×30.0cm, 일본 구라시키 민예관 소장.


평사낙안과 동정추월을 한 화폭에 조합한 그림이다. 모래펄에 내려앉는 기러기떼는 자살특공대처럼

줄을지어 떨어지고 있고, 산 능선 위 나무들의 표현을 보면 간결하면서도 흥취가 느껴진다.








<소상팔경도> <연사모종>


 19세기말 20세기초, 지본채색, 각 73.4×32.4cm, 김세종 소장.

평면적인 구성에 자유로운 스케일은 민화의 전형적인 표현인데, 여기에 덧붙여 산과 바위의 준법 표현이 매우 독특하다.














<관동팔경도> <청간정> 지본채색, 56×31.5cm, 김세종 소장.


청간의 뜻을 살려 맑은 시냇물을 바라보는 풍경이고, 인간적인 정취가 풍기는 산수화를 그렸다.








<금강사군첩> <청간정>, 김홍도, 1788년, 견본채색, 30.4×43.7cm, 개인소장.


만경대를 중심으로 펼쳐진 청간정 주변의 바닷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관동팔경도> <경포대>, 1746-1748년 추정, 견본채색, 31.5×22.5cm,서울대 규장각 소장.


해맞이 하는 경포대의 풍경을 개념적으로 풀어내었다. 아마 작가는 동해안의 강한 에너지를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관동팔경도> <경포대>, 지본채색, 56×31.5cm, 김세종 소장.


바다에서 바라보는 경포대의 풍경으로 전통적인 화풍으로 개념적이면서 낭만적으로 그려냈다.








<죽서루> 정선, 32.3×57.8cm, 간송미술관 소장.


죽서루와 오십천 절벽을 화면 가득 담았다. 죽서루를 그릴 때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장면이다.








<관동팔경도> <죽서루>, 지본채색, 56×31.5cm, 김세종 소장.


폭포같은 오십천과 솟구쳐 오르는 절벽으로 과장하여 화면에 긴장감을 불어 넣었다.





●  인용서적 ;  정병모 著『民畵는 民話다』






The Silence Of The Sphinx - Paul Heinerman

멀티미디어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