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폭                                        제2폭                                       제1폭 


경기감영도 京畿監營圖

작자미상, 19세기, 지본채색, 135.8×442.2cm, 호암미술관


어떤 행사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병풍은 기본적으로 <首善全圖>와 같은 지도식의 구성이다.

화면 위로 백악산 · 인왕산 · 북악산 · 삼각산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고, 그 아래로 경기감영을 중심으로 한 서대문 밖의 풍경과

생활상이 묘사되어 있다. 부감법의 높고 넓은 시점에, 건물들은 오른쪽 위에서 왼쪽 아래를 향하는 사선방향의 평행투시법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병풍에서 주목할 점은 19세기 초반 감영과 관아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각종 생활장면이다. 각종 집들과

가계상호명까지 적었다. 지금까지 공개된 그 어떤 기록화도 19세기 초반 도시의 생활상을 이처럼 상세하고 생동감 넘치게

묘사한 것은 없다. 이 병풍은 회화뿐만 아니라 역사 · 도시계획 · 건축 · 생활 · 복식 등

여러 분야에서 관심을 기울일만한 중요한 내용이자 자료이다.






제6폭                                        제5폭                                        제4폭






제9폭                                    제8폭                                    제7폭






제12폭                                      제11폭                                        제10폭







제11폭의 부분 : 군영의 음악






제5 · 6폭의 부분 : 취고수와 세악수


취고수가 13명, 세악수가 6명이며, 취고수가 앞쪽, 세악수가 뒤쪽에 배설되었다.

이와 같이 취고수와 세악수를 함께 편성한 것을 대취타라 한다.







조선통신사행렬도 朝鮮通信使行列圖


임란 후 일본의 도쿠가와 이에야쓰는 두 나라간의 평화를 위해 통신사 파견을 요청하였고, 조선은 1607년(선조40)부터

 1811년(순조11)까지 총12회 통신사를 파견하였다. 통신사가 파견된 것은 1607년부터이나 행렬도는

1624년(인조2)부터 나타난다.





관영조선인내조권 寬永朝鮮人來朝券

작자미상, 일본화, 1624년, 지본채색, 32.1×9*84.2cm, 국립중앙도서관


1624년(인조2) 제3차 조선통신사 일행이 일본에 사행한 장면을 그린 기록화다.

조선통신사행렬도 가운데 가장 시대가 올라가는 작품이다. 두루마리 형태로 되어 있고, 첫 머리에 <관영조선인내조권>이란

제목이 적혀 있다. '관영(寬永)'이라는 일본의 연호와 조선인이 일본을 방문한다는 '조선인내조(朝鮮人來朝)' 이라는 글귀가 시사하듯,

이 작품은 일본인 화가가 그린 조선통신사행렬도다. 일본인의 호위를 받는 조선통신사들의 모습이 표현되었는데,

호위하는 병사, 취고수, 말이나 가마를 탄 통신사, 사신 등이 보인다.




















관악대영조선인내조권 부분 : 취고수 악대





관악대영조선인내조권 부분 : 취고수 악대






인조14년 통신사행렬도 仁祖十四年 通信使行列圖

김명국, 1636년, 지본채색, 30.6×596.0cm, 국립중앙박물관


1636(인조14) 제4차 조선통신사인 정사 임광(任絖), 부사 김세렴(金世濂)을 포함한 475명이

일본의 에도성(지금의 도쿄)에 들어가는 모습을 그린 기록화이다.
























숙종37년조선통신사행렬도 肅宗三十七年 朝鮮通信使行列圖

작자미상, 일본화, 1711년, 지본채색, 27.0×4300.0cm, 국사편찬위원회


1711년 아라이 하쿠세끼의 외교의례 개정에 대한 국가의 체면유지와 일본과의 계속적인 우호관계를 목적으로 파견한

조선통신사의 행렬을 그린 기록한화다. 행렬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되고, 소제목을 세로로 길게 쓰며,

 다소 장식적으로 표현한 점으로 보아 일본인 화가가 그린 작품으로 보인다.















































숙종37년 조선통신사행렬도 부분 : 취고수 악대











숙종37년 조선통신사행렬도 부분 : 취고수와 세악수








명묘조서총대시에도 明廟朝瑞蔥臺試藝圖

작자미상, 16세기 중반, 견본채색, 42.6×57.3cm, 홍익대학교박물관


명종(明宗, 재우ㅠㅣ 1534~1567)이 서총대에서 문문신하들에게 기사(騎射) 및 제술(製述)을 시험하고 거괴자(居魁者)에게

각각 말을 한 필씩 주기로 했는데, 문무에 뛰어나지 않은 남응운이 문무 양시에서 모두 일등을 차지하여 말 두 필을 하사받고

매우 자랑스러워 하는 모습을 그린 기록화다.












대사례도 大射禮圖

작자미상, 1743년(영조19년), 견본채색, 60.5×260.0cm, 연세대학교박물관


영조19년(1743년) 윤4월 7일에 있었던 대사례 행사를 그린 기록화다.

대사례는 조선조 임금이 성균관에 거동하여 성인에게 제향하고 신하들과 더불어 활을 쏘던 예(禮)이다.

대사례는 본디 중국 주나라에서 크게 성행한 전통적인 천자(天子)의 의식이었다.










어사도 御射圖

<어사도>에 등장하는 악사는 모두 24명이다.







시사도 侍射圖

<시사도>에 등장하는 악사는 모두 20명이다.






시상도 施賞圖

<시상도>에 출현하는 악사는 모두 22명이다.






책례계병 冊禮契屛

작자미상, 1800년, 견본채색, 각 154.2×55.6cm, 서울역사박물관

1800년(정조24) 왕세자의 책례(冊禮)를 기념해 그린 <요지연도>이다.











책례계병 부분 : 음악과 춤

조선시대 왕세자 책례에는 전정헌가를 진설했고, 『악학궤범』에 전정헌가는

 악사 2명, 악공, 59명으로 구성되었다.



인용서적 : 조선시대 음악풍속도   국립국악원 편




The Silence Of The Sphinx - Paul Heiner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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