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경(烟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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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연경(烟經)

茶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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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방 풍정  작자미상, 《사계풍속도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8세기 조선의 흡연 문화사



조선조 담배와 흡연을 다룬 최고의 저작물로 평가된다는 이옥(李鈺 1760~1815) 著《연경烟經》

한낱 담배 따위(?)에 숭엄한 '지날 經'이 적용되었다는 점 만으로도 이내 구미를 당기기에 충분했다고나 할까.

전체 내용 중에서 이내 구미에 맞는 일부분만 발췌해 이 자리에 옮겨 보기로 한다.




조선 중엽 광해군 시절 우리나라에 전해져 순식간에 남녀노소를 불문하는 기호품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다는 담배.

시절은 흘러 흡연의 패해를 강조하는 작금에 이르고 있지만, 어쨌거나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하는 생활문화의 주요한 일부.

포루투갈인들이 일본에 전했고 다시 조선을 거쳐 여진과 중국 북방지역으로 퍼져 나간 아메리카산 신비의 풀 담배에

 우리 선조들은 남령초(南靈草)라 이름 붙이고 매혹되었다는데, 이로인해 한국인의 일상생활과 생활풍속, 문화와 예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골초 문인들의 담배를 향한 사랑이 시와 산문으로 등장하게 되었고,

 반면에 건강과 풍속과 인륜에 대한 폐해가 논란의 대상이 되어 흡연에 대한 찬반론은 여전히 논쟁 중이다.



서문과 4권으로 구성되었다는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 연경서(烟經序): 경오년(1810) 5월에 쓴 저자의 자서

* 연경 첫째 권: 담배씨를 거두는 내용인 '수자(收子)' 부터 담배 뿌리를 보관하는 '엄근(罨根)' 까지

담배를 경작하는 방법과 과정을 17조에 걸쳐 상세하게 기록했다.

* 연경 둘째 권: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 담배의 성질과 맛, 담배를 쌓고 자르는 방법, 태우는 방법 등을

19조에 걸쳐 소개하였다.

* 연경 셋째 권: 담배를 피우는 데 사용되는 각종 용구를 12조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했다.

* 연경 넷째 권: 흡연의 멋과 효용, 품위와 문화를 10조에 걸쳐 다각도로 묘사하였다.


이 중에서 넷째 권이 가장 흥미로운 부분인데 이유인 즉, 흡연의 문화적 측면을 골고룰 다루어서 문학지향적일 뿐만 아니라,

수사 또한 매우 아름다운데 이는 저자 이옥이 작심하고 쓴 문예적인 글로써 빼어난 소품문(小品文)으로 평가될 만한 매력적 글이다.

《연경》을 문학적 작품으로 평가하는 데는 바로 이 넷째 권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 이옥은 누구이며, 어떤 의도로 이 책을 지었단 말인가?

본관은 전주(全州)이고, 자는 기상(其相)이며, 문무자(文無子) · 매화외사(梅花外史) · 화석산인(花石山人)을 비롯한 많은 호를 썼다.

1792년 성균관 유생 시절, 국왕이 출제한 문장 시험에 소품체(小品體)를 구사하여 정조로 부터 불경스럽고 괴이한 문체를 고치라는

엄명을 받을 정도로 독특한 심성의 소유자였던 듯. 일과(日課)로 사륙문(四六文) 50수를 지어 옛 문체를 완전히 고친 뒤에야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는 징벌을 받았으며, 경상도 삼가현에 충군(充軍)을 당한 쓰라린 체첨도 겪었다. 이후 관계 진출이 막히게 되었고,

이후로는 문학에만 매달려 일생을 보낸 다양한 의중의 표출에 능한 인물이었음이 짐작된다.


 그는 이미 32세 때 담배를 의인화한 가전(假傳) 작품 <남령의 한평생(南靈傳)>을 지었으며,

또 법당 안에서 담배를 피운 사연을 소재로 하여 <담배 연기(烟經)>란 빼어난 소품을 쓴 적도 있다고.


서문에서 그는, 기록할 만한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라면 기록한다는 저술의 정신을 언급하고 있다.

《연경》이 결코 한 때의 붓장난에 불과한 소산이 아님을 힘주어 말 하고 있는 것이다.  이옥의 이러한 생각은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초엽의 신예 학자들에게 확산된 의식이자, 학술에 중대한 변화가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징표적 저서라는 설명.




꽃이 필 때 연기를 내뿜고 달이 뜰 때 연기를 들이마시노라면, 담배는 술을 마실 때의 오묘한 맛을 겸비하였고.

파란 연기를 태우고 붉은 연기를 피워내노라면, 담배는 향을 사를 때의 깊은 멋까지 갖추고 있다.

담뱃대를 은으로 만들고 담배통을 꽃무늬로 아로새겨 즐기노라면, 차(茶)를 마시는 멋진 풍치(風致)까지 간직하였고,

담배 꽃을 가꾸고 담배 향을 말리노라면, 진귀한 열매와 이름난 꽃에 비교해도 부끄러울 것이 전혀 없다.


나는 담배에 심한 고질병을 가지고 있다. 담배를 몹시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즐기는 사람이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남들이 비웃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망령을 부려 자료를 정리하여 저술을 내놓는다.


- 연경서(烟經序) 중에서 -







2종의 연초 그림


일본의 담배 전문가인 오츠키 겐타쿠가 1796년에 쓴 《언록焉錄》에 삽화로 그려진 그림.

당시 남아메리카 페루에서 재배하던 품종으로 유럽까지 널리 퍼진 품종으로 소개하고 있다.







담배꽃


분홍빛 화관을 쓴 것처럼 자태를 뽐내고 있지만,

꽃을 피우면 독성이 줄기 때문에 대부분 순자르기를 하여 꽃을 보기 어렵다.







말린 담배잎







북간도에서 한국인이 담배를 말리고 있는 1910년 사진.

















호랑이 민화  개인 소장

호랑이 입에 토끼가 긴 장죽을 물려주고 있는 해학이 재미있다.












담배 썰기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대쾌도(大快圖) 부분, 유숙, 1846, 서울대박물관 소장






후원유연(後園遊宴) 부분, 김홍도 《사계풍속도병》제3폭, 프랑스 기메박물관 소장



















시름에 잠겨 담배를 피우고 있는 여인   이재관, 소장처 미상





주자(朱子)는 사물의 이치를 논하는 사리에서 "꽃병에는 꽃병의 이치가 있고, 촛불 등롱에는 촛불 등롱의 이치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른바 이치라는 것은 이렇게 하면 되고 이렇게 하면 안 되며, 이렇게 하면 좋고 이렇게 하면 좋지 않은 것을 일컫는다.

그렇다면 담배를 피우는 행위가 그저 한가하고 여유로운 일 하나에 지나지 않지만 꽃병이나 촛불 등롱에 비교하면

 오히려 더 긴요한 물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담배를 피우는 행위에 이치가 없겠는가?




1. 담배의 쓰임새


첫째, 밥 한 사발을 배불리 먹은 뒤에는 입에 마늘 냄새와 비린재가 남아 있다.

그 때, 바로 한 대를 피우면 위(胃)가 편해지고 비위(脾胃)가 회복된다.


둘째, 아침 일찍 일어나 미처 양치질을 하지 않아서 목에 가래가 끓고 침이 텁텁하다.

그때, 바로 한 대를 피우면 씻을 듯 가신다.


셋째, 시름은 많고 생각은 어지러우며, 하릴없이 무료하게 지낸다.

그때, 천천히 한 대를 피우면 술을 마셔 가슴을 씻을 듯하다.


넷째,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간에 열이 나고 폐가 답답하다.

그때, 한 대를 피우면 답답한 기운이 그대로 풀린다.


다섯째, 큰 추위가 찾아와 얼음이 얼고 눈이 내려 수염에도 얼음이 맺히고 입술이 뻣뻣하다.

그때, 몇 대를 연거푸 피우면 뜨거운 탕을 마신 것보다 낫다.


여섯째, 큰비가 내려 길에는 물이 넘치고 습기로 눅눅하여 자리와 옷에는 곰팡이가 핀다.

그때, 여러 대를 피우면 기분이 밝아져서 좋다.


일곱째, 시구(詩句)를 생각하느라고 수염을 비비 꼬고 붓을 물어 뜯는다.

그때, 특별히 한 대를 피우면 피어오르는 연기를 따라 시가 절로 나온다.




2.  담배를 피우기 적절한 때


달빛 아래서 피우기 좋고, 눈이 내릴 때 피우기 좋다.

비가 내릴 때 피우기 좋고, 꽃 아래에서 피우기 좋다.

물 위에서 피우기 좋고, 다락 위에서 피우기 좋다.

길을 가는 중에 피우기 좋고, 배 안에서 피우기 좋다.

배갯머리에서 피우기 좋고, 측각에서 피우기 좋다.

홀로 앉아 있을 때가 좋고, 친구를 마주 대하고 있을 때가 좋다.

책을 볼 때가 좋고, 바둑을 두고 있을 때가 좋다.

붓을 잡고 있을 때가 좋고, 차를 달이고 있을 때가 좋다.




3. 흡연을 금하는 때


첫째, 어른 앞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둘째, 아들이나 손자가 아버지나 할아버지 앞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셋째, 제자가 스승 앞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넷째, 천한 자가 귀한 자 앞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다섯째, 어린 자가 어른 앞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여섯째, 제사를 지낼 때 피워서는 안 된다.

일곱째, 대중들이 모인 곳에서 혼자 피워서는 안 된다.

여덟째, 다금한 때 피워서는 안 된다.

아홉째, 곽란이 들어서 신 것을 삼킬 때 피워서는 안 된다.

열째, 몹시 덥고 가물 때 피워서는 안 된다.

열한째, 큰 바람이 불 때 피워서는 안 된다.

열두째, 말 위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열셋째, 이불 위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열넷째, 화약이나 화총 가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열다섯째, 기침병을 앓는 병자 앞에서 피워서는 안 된다.



◎ 예절을 엄격히 차려야 할 일체의 장소에서는 안 된다. 화제를 조심해야 할 장소에서는 안 되고,

연기 피우는 것을 꺼리는 곳에서는 안 되며, 발끝이 차여 넘어질 염려가 있는 곳에서는 안 된다.

◎ 내가 일찍이 어떤 절간에서 부처를 마주하고 담배를 피운 적이 있었는데, 그때 중이 몹시 괴로워 하였다.







장터길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담배가 맛있을 때


◎ 책상 머리에 앉아서 글을 읽는다. 중얼중얼 반나절을 읽으면 목구멍이 타고 침이 마르지만 달리 먹을 것이 없다.

글 읽기를 마치고 화로를 당겨 담뱃대에 불을 뭍여 한 대를 조금씩 피우자 달기가 엿과 같다.


◎ 대궐의 섬돌 앞에서 임금님을 모시고 서 있다. 엄숙하고도 위엄이 있다. 입을 닫은 채 오래 있다 보니 입맛이 다 떨떠름하다.

대궐문을 벗어나자마자 급히 담뱃갑을 찾아 서둘러 한 대를 피우자 오장육부가 모두 향기롭다.


◎ 기나 긴 겨울밤 첫닭 울음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이야기 나눌 사람도 없고, 할 일도 없다. 몰래 부싯돌을 두드려

단박에 불씨를 얻어 이불 속에서 느긋하게 한 대를 조용히 피우자 빈방에 봄이 피어난다.


◎ 도성 안에 햇볕은 뜨겁고 길을 비좁다. 어물전, 저잣거리, 도랑, 뒷간에서 온갖 악취가 코를 찔러 구역질이 난다.

서둘러 친구집을 찾았더니 채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는데 주인이 담배 한 대를 권한다. 갑자기 갓 목욕을 하고 나온 듯하다.


◎ 산골짜기 쓸쓸한 주막에 병든 노파가 밥을 파는데, 벌레와 모래를 섞어 찐 듯하다. 반찬은 짜고 비리며, 김치는 시어 터졌다.

그저 몸 생각하여 억지로 삼켰다. 구역질이 나오는 것을 참자니 먹은 것이 위에 얹혀 내려가지 않는다. 수저를 놓자마자

바로 한대를 피우니, 생강과 계피를 먹은 듯하다. 이 모든 경우는 당해본 자만이 알리라.




담배 피우는 것이 미울 때


◎ 어린아이가 한 길이나 되는 담뱃대를 입에 문 채 서서 피운다. 또 가끔씩 이 사이로 침을 밷는다. 가증스러운 놈!


◎ 규방의 다홍치마를 입은 부인이 낭군을 마주한 채 유유자적 담배를 피운다. 부끄럽다.


◎ 젊은 계집종이 부뚜막에 걸터앉아 안개를 토해내듯 담배를 피워댄다. 호되게 야단맞아야 한다.


◎ 시골 사람이 다섯 자 길이의 흰 대나무 담배통에 담배잎을 가로 내어 침을 뱉어 섞는다. 그 다음 불을 당겨 몇 모금 빨자

벌써 끝이다. 화로에 침을 퉤 뱉고는 앉은 자리에 재를 덮어버린다. 민망하기 짝이 없다.


◎ 망가진 패랭이를 쓴 거지가 지팡이와 길이가 같은 담뱃대를 들었다. 길 가는 사람을 가로막고

한양의 종성연(鐘聲烟) 한 대를 달랜다. 겁나는 놈이다.


◎ 대갓집 종놈이 짧지 않은 담뱃대를 가로 물고 그 비싼 서초(西草)를 마음껏 태운다.

그 앞을 손님이 지나가도 잠시도 피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몽둥이로 내려칠 놈!












흡연의 멋


◎ 천하의 일은 모두 제각기 격식이 있다. 그 격식을 잃게 되면 바로 어색한 느낌이 든다.

이제 담배를 피우는 격식을 두고 논해 보리라.


지위가 높은 판서나 관찰사, 고을 원님은 남들이 이목을 집중하는 분들이라, 사령들이 그 앞에 수두룩하다.

"담배를 대령하라!"  한마디만 하면 영리한 종좀이 어디선가 나타나 서둘러 청동 합을 열고 금빛 담배를 꺼내 

관음자죽(觀音紫竹)으로 만든 7척의 담뱃대를 가져다 불을 붙여 중간쯤 타오면 뒤집어 담뱃대를 닦아서 허리를 굽신 구부려 올린다.


◎ 나이가 많은 노인을 손자와 증손자들이 죽 모시고 앉아 있다.

노인이 편하게 몸을 마음껐 움직인다. 담배를 피우는 것도 드물게 한다.

죽을 먹고 나서 잠깐 뒤에 비로소 담배 한 대 내오라고 분부한다. 어떤 때는 나이 어린 손자가,

어떤 때는 계집종이 시중을 들어 기름종이로 만든 담뱃갑을 천천히 열어 가벼운 대통을 골라 손대중을 하여 담배를 넣는다.

불이 충분히 붙었으면 침을 닦아서 올려드리고, 재털이를 옮겨다 앞에 놓는다. 그러면 노인은 앉아서도 피우고 누워서도 피우는 등

자기 편한 대로 한다. 이것이 바로 복격(福格)이다.







연당(蓮塘)의 여인  신윤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연소한 낭군이 소매에서 작은 담배갑을 꺼내 은으로 만(萬)자를 새긴 동래(東來)산 담뱃대를 당겨 담배를 넣는다.

왼쪽 입에 살짝 물고 또 주머니에서 좋은 부싯돌을 꺼내 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불은 벌써 손가락에 다가온다. 불씨를 담배 중앙에 붙여

입술과 혀를 빡빡 빨아 한두 번 피우면 연기가 벌써 입에서 피어나온다. 이것이 묘격(妙格)이다.


◎ 어리고 아리따운 미인이 님을 만나 애교를 떨다가 님의 입에서 반도 태우지 않은 은삼통(銀三筒) 만화죽(滿花竹)을 빼낸다.

재가 비단 치마에 떨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침이 뚝뚝 떨어져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앵도 같은 붉은 입술에 바삐 꽃아 물고는 웃으면서 빨아댄다. 이것이 엄격(艶格)이다.


◎ 논에서 김을 매는 농부가 김매기를 잠시 쉬고 논두렁 풀밭에 풀썩 앉는다. 보리술을 한 순배 돌리고 나서 맨 상투에서 가로 꽂은

곰방대를 뽑아 담배 잎사귀를 둘둘 말아 연통연(烟洞烟)처럼 만든다. 그것을 대통에 올려놓고 왼손으로 대통을 받쳐잡고 오른손으로는

불을 잡아 담뱃불을 붙인다. 담배 견기가 봉홧불처럼 피어 올라 콧속으로 그대로 들어가니 이것이 진격(眞格)이다.


◎ 사람마다 제각기 나름의 격식이 있고, 격식마다 나름의 아취가 있다.

남이 피우는 모습을 보고 비아냥거린다면 "그대는 그 못을 모르기 때문이다" 라고 말할 일이다.







점심참에 피우는 담배, 1910년 찍은 사진.







길 떠나는 선비  성협(成夾), 《성협풍속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내가 나그네가 되어 송광사(松廣寺)의 향로료(香爐寮)에 머물던 그때, 석가여래 앞에서 가부좌를 틀고 《원각경圓覺經》을 낭송하였다.

그때 나그네가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어 상아로 만든 담배통을 꺼내고 향로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사미승 행문(幸文)이 앉은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들어 합장하며 나그네에게 말하였다. "우리 석가여래께서는 연화대에 앉으셔서 향로료에 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 작은 세계에서나마 일체의 연기를 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 말에 나그네가 크게 웃고 행문에게 말하였다.

"부처 앞에는 향로가 있어 조석으로 향을 사른다. 화로가 향을 사르면 향은 반드시 연기가 된다. 일체의 세간에서 모든 사물은 불에 타는데,

아직 연기로 화하지 않은 때는 향은 향이고 연초는 연초라서 가자 절로 같지 않다가, 화로에서 태워진 뒤 변화하여 연기가 된다.

향 연기도 연기요, 연초 연기도 연기이다. 그러니 연초 연기나 향 연기나 똑 같은 연기로 평등한 연기 무리 속에서 이 연기과 저 연기일

뿐이다. 게다가 나는 연기를 사랑하여 연초 연기도 사랑하고 향 연기도 사랑한다. 여래께서는 어찌 다만 향 연기만을 사랑하고 연초 연기를

사랑하지 않으실까? 또한 나는 나그네를 대접하며 나그네인 내게 담배 한 대 피우라고 권하지 않으실 리 있겠는가?"


내 말을 듣고서 행문은 웃음을 터뜨리고 공손히 향로를 옮겨왔다. 나그네가 앉아 담배를 태우면서 행문에게 말하였다.

"똑 같은 화롯불인데 네 향기를 태울 때는 연기가 향 연기인데, 이제 내 연초를 태우자 연기는 담배 연기가 되므로 앞의 연기와

뒤의 연기는 똑 같은 연기가 아니다. 너는 담배 연기가 너의 향 연기와 서로 인연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없다고 생각하는가?"


행문이 합장하고서 나그네에게 답하였다.

"앞 연기는 앞 연기이고, 뒤 연기는 뒤 연기일 뿐입니다. 뒤 연기와 앞 연기가 무슨 인연이 있겠습니까?"


나그네가 말하였다.

"좋은 말이다. 앞 연기와 뒤 연기가 인연이 없다면 뒤 연기가 앞 연기의 면목도 알지 못하고 성명도 알지 못하고 서로 아는 사이도 아니라는

말이다. 어찌 구태여 앞 연기가 뒤 연기를 위해 자리를 만들어주겠는가? 앞 연기가 향 연기라면 뒤 연기는 담배 연기요, 앞 연기가

 담배 연기라면 뒤 연기는 향 연기이다. 향 연기와 담배 연기는 각기자기 연기를 태울 뿐이다.

 어찌 구태여 뒤 연기가 앞 연기를 아껴서 덕을 배풀겠는가?"


행문이 합장하고 속으로 감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 나그네가 담배를 다 태우고 나서 행문에게 말하였다.

"향을 태우든 담배를 태우든 반드시 연기가 나온다. 그대는 이 연기가 화롯불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향과 담배에서 나온다고

생각하는가? 만약 이 연기가 화롯불에서 나온다고 할 것 같으면 향을 넣지 않았을 때는 어째서 연기가 나오지 않는가?

만약 이 향기가 향과 담배에서 나온다고 할 것 같으면 불에 들어가지 않았을 때는 어째서 연기가 나오지 않는가?"


행문이 합장하고서 나그네에게 답했다.

"불이 없으면 연기가 없고, 향이 없으면 연기가 없지요. 불이 향이나 담배와 합해져야만 비로소 연기가 나옵니다. 나그네가 말했다.

"좋은 말이다. 그대가 불이 있어 화로 속에 감추어두고 있고. 그대가 향이 있어 향합에 가두어두어, 끝내 향이 화로에 가서 불을 붙이지

않거나 끝내 불이 향합에 다가와 향을 찾지 않는다면, 향은 그저 향일 뿐이고 불은 그저 불일 뿐이다. 어디에서 그대의 향 연기를 내어

여래께 공양할 지 모른다. 대천세계(大千世界)에 한 점의 연기도 없어서 여래라도 향 연기를 마시지 못할 것이다."

그러자 행문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오체투지(五體投地)하고 나그네에게 말하였다.

"나이 열다섯에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어 부득불 절에 가서 머리를 깎았습니다. 지금껏 절에 머문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남들이 머리를 깎은 것은 거대가 스스로 향과 담배를 들고 자진하여 불에 들어가 타는 것에 비유하겠지만, 이 제자의 경우에는 불에 탈

마음이 없었지만 잘못하여 불에 떨어져 탄 격입니다. 비록 불에 탈 마음이 없었지만 이미 불에 다 타버렸습니다. 아무런 다른 도리가 없으니

아승지겁(阿僧祗劫)토록 영영 죄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레 같은 말씀을 듣고 보니 마음 가득 부끄럽습니다.


나그네가 이러한 한탄을 듣고서 행문에게 말하였다.

"향은 향 연기가 되고, 담배는 담배 연기가 된다. 연기는 비록 다르지만 연기라를 점에서는 똑 같다.

사물이 변화하여 연기가 되고, 연기가 바뀌어 무(無)가 된다. 연기가 나서 삽시간에 똑같이 허무 속에 돌아간다.

그대는 보라! 이 향로료 가운데 향 연기와 담배 연기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를,

 염부제(䦲浮提) 세상은 하나의 큰 향로료이다."



※ 위 글은 9월 24일 비로 인해 전북 완주 송광사란 절제 머물 때,

법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제지를 받은 것을 적은 것으로, 불경의 문체를 구사하여 쓴 희작성(戱作性)이 농후한 글이다.

겉으로는 심오한 철학적 내용이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다분히 문학적이라는 사실.

엮은이의 말 처럼 글 자체는 꼭 《능엄경》을 보는 듯하다.












풍속도 작자미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겨울에 산행 가는 일행이 주막에서 잠시 쉬고 있다. 주막 앞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한 사람은 담뱃불을 붙이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말을 탄 귀인에게 담뱃불을 붙여 대령하고 있다. 추운 겨울 산행의 따뜻한 정취를 담배로 표현하고 있다.







담배가게 <연광정연회도> 부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주막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점괘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계도권(修契圖卷) 부분, 유숙, 1853, 개인소장







고누  김홍도 《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부상  권용정, 19세기, 간송미술관 소장







벼 타작   김홍도 《단원풍속도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휴식   이교익,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투전  성협 《성협풍속화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기잡이   김홍도 《단원풍속도첩》,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수갑계첩(壽甲戒牒) 부분, 작자미상, 191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인용서적 : 이옥 著 | 안대회 易 『연경, 담배의 모든 것』

















The Sunset - Katsuhisa Hatt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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