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기념물 수목(樹木)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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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천연기념물 수목(樹木) 3

茶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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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사

마당 왼편으로 회화나무와 오른편으로는 백송이 보인다.






서울 조계사 백송

천연기념물 제 9호


부처의 설법에 귀를 기울이기라도 하는 것일까?  가지가 대웅전 쪽을 향하고 있다.

땅에서 6m 쯤 되는 높이에서 3개의 가지가 뻗었는데. 현재는 가지 2개만 살아있고 나머지 가지 하나는 죽어 잘려져 나갔다.

보이다시피 줄기 대부분은 우레탄 수지 충전처리를 해서 분칠을 해놓았는데 그닥...


수고 14m, 가슴높이 둘레 1.8m, 가지펼침은 동서 10.9m, 남북 11.2m이고, 수령은 500년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 어떤 근거나 전설 조차 없는 모양. 아마도 가까이 있는 6호 재동 백송이 600년으로 알려져 있으니 약간 지름이 작은 이 나무는

일백 년을 에누리 당해 500년으로 낮춘 듯 한데 실제로는 약 300여 년 수령으로 짐작된다.


원래 조계사 일대는 조선조 궁중에서 쓰는 의약의 수급을 담당하던 전의감(典醫監)이 있던 자리였다고 한다.

전의감 관리들이 중국을 래왕할 시 백송 솔방울 몇 개을 얻어와 심었을 것으로 본다는 전언이다.

천연기념물 제도를 처음 도입할 때 서울에는 이 조계사 9호 백송 외에도 통의동 4호, 내자동의 5호, 원효로의 6호,

회현동의 7호, 재동의 8호 등 모두 6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고사하거나 여러 사정으로 해제돼

지금은 8호와 9호 2그루만 달랑 남았다. 전국적으론 12그루의 백송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됐으나 지금은 5그루만 남았다.


조계사 백송은 식생 조건에서는 최악이지만, 악 조건 속에서도 대체로 아직은 건강해 보인다.

목탁소리에 정신줄을 놓지않고 있음이 분명하다고나 해야할까?







영동 영국사 은행나무

천연기념물 제223호


충북 영동 천태산 중턱에 자리한 영국사(寧國寺)는 계곡을 따라 오솔길을 걸어 올라야 한다.

삼선바위를 뒤로하고 삼단폭포를 돌아서면 비로소 절의 동남쪽 낮은 곳에 위치한 커다란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 온다.

수고 31.4m, 가슴높이 둘레 11.5m에 가지 펼침은 동서 21.2m, 남북 26.7m에 이르는 장대한 모습이다.


나무의 현재 연세는 일천 년을 헤아린다는데 창건시 심었던 그 나무라면 약 1.300년인 셈이고, 공민왕 때 심었다면

650년이 된다. 나무나이는 얽힌 전설을 기준으로 한다지만 그나마 알려진 자료가 확실치 않으면 오리무중일 수 밖에.

이 나무도 몇 년 전까지는 500년 이라고 했다가 최근 갑자기 2배로 늘어나 천년수가 됐다는 사실이 재밌다.

두루뭉실 보다늕, 생물학적인 실제 나이를 정확히 알 수 있는 과학적 측정법이 동원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보은 법주사 正二品松

천연기념물 제103호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소나무로 정이품이라는 엄청난 벼슬을 얻은 바 있다.

정이품이라면 고려, 조선시대 18품계 가운데 자그만치 세번째 등급으로, 굳이 오늘날과 비교하자면 장관급에 해당한다.

까닭인 즉, 모두들 잘 알다시피 세조와의 인연 때문이다. 피를 뿌리며 14년의 권자를 지켰지만 하늘의 노여움인지,

이런 저런 병으로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던가. 건강을 염원하며 속리산 복천암을 찾는 과정에서 이 소나무가 가지를 들어 올려

세조의 가마 연이 걸리지 않게 했다는... 그리하여 소나무에게 벼슬을 내렸다는전설따라 삼십센티가...

여담이지만, 아무튼 그 복천암은 한글 창제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는 사실도 주목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키 14.5m, 가슴높이 둘레 4.8m, 가지 펼침은 동서 13.7m, 남북 17.3m이다.

이 소나무의 우아함과 아름다움의 극치는 이제 과거형으로 묻어둘 수 밖에 없음이 유감이라면 유감.

노쇠한데다 병 치례로 상처투성이이기 때문에 과연 앞으로 남은 수명이 얼마나 될지 궁금할 뿐이다.

내가 처음 보았던 50여 년 전의 모습과는 너무도 명확하게 대비된다는 사실을 떠올리자니

괜스레 이런 저런 상념에 휩싸이게 되고...








보은 서원리 정부인송(貞夫人松)

천연기념물 제352호

정이품송에서 7km쯤 떨어진 곳에 자리한 마나님으로 손색이 없는 고상하고 우아한 모습의 서원리 貞夫人松,이다.

수구 15.2m, 가지 펼침은 동서 24.9m, 남북 23.9이다. 땅에서 70cm쯤 높이에서 뿌리목 둘레가

 4m와 3m인 두 개의 가지가갈라졌으며 나뭇가지는 거의 땅에 닿을 만큼 쳐져 넓게 퍼져 있다.

 왕조시대의 기준으로 보아도  정부인이 되기에 필요충분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셈이다.







한편, 1995년 경부터 오랫동안 별거해온 정이품속과 '합궁(?)' 을 시키자는 여론이 조성된다.

소나무는 암꽃과 수꽃이 같은 나무에 피는 암수 동체이지만 합궁은 인간들의 정성이고 바람이니 그 꿈을 모른 체 할 수는 없는 일.

하여 정이품 소나무의 노란 수꽃 가루를 가져다 정부인 소나무의 솔방울 암꽃에다 교배시키고자 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정부인 소나무가 겉 모습으로는 싱싱했지만, 나무의 유전 형질은 아무래도 젊은 처자 흉내가 버거웠던 모양.

그래서 건강한 자손을 생산해야 한다는 양반가의 법통에 따라 정이품 소나무에게 젊은 씨밭이 첩을 얻어주기로 결정,


2001년 강원도 삼척 태조 이성계의 5대조 준경묘의 방년(?) 일백 살의 팔등신 미인송에다 산림청장이 주례를 서

가져간 꽃가루를 암꽃머리에 발라 새장가를 보낸 바 있다는데 정부인송 입장에선 기가막힐(?) 노릇일 터.

2004년 3월 폭설에 가지 하나를 부러뜨려 아픈 속내를 내비친 게 전부라고.







보은 속리산 망개나무

천연기념물 제207호


법주사에서 문장대로 향하는 넓은 등산로를 따라가다 법주사 기점 2km 지점에서 왼쪽으로 탈골암 가는 길이 있다.

그 길로 400m쯤 따라 오르면 작은 개울 건너편에 희귀수종을 대표하는 이 망개나무를 만날 수 있다.


키 13.6m, 가슴높이 둘레 1.3m, 가지 펼침은 동서 12.7m, 남북 12.1m로 퍼져있다. 약 3m 높이에서 가지가 셋으로 뻗어

자라며, 생육상황은 양호하나 주위의 고로쇠나무, 팽나무, 굴피나무와 경쟁관계에 있다. 나무 주변으로 조

릿대가 무성하게 깔려있고 그 외 생강나무, 쪽동백나무, 국수나무 등의 어린나무가 자라고 있다.


그런데 이 나무가 천연기념물이라는 사실에 적잖은 사람들이 실망하곤 한다.

겨우 한 아름 정도에 멀대처럼 키만 크고 그닥 볼품이 없기 때문. 나이도 겨우 일백년을 헤아릴 정도.

그것은 망개나무의 식물학적 희귀성과 중요성을 모르니 당연지사.


긴 타원형의 잎을 가지며 여름에 연노랑 꽃이 피었다가 가을이면 팥알 굵기의 붉은 열매가 날리는 갈잎나무.

그저 평범한 모습이긴 하지만 그 서식지가 속리산, 월악산, 주왕산, 내연산을 잇는 중부 내륙의 석회암 지역으로 한정돼 있다.

자연 번식이 어려워 그 개체수가 적으므로 그대로 두면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한 나무이기도 하다.

당연히 희귀식물 보호 목적에서 보호되어야 하기에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식물 2급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산림청 자료에 의하면 약 2백만 개의 종자 중 겨우 한 그루만이 큰 나무로 성장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다 나무 재질이 단단하고 질긴데가 곧게 뻗어 비교적 빨리 자라니 농기구 용이나 땔감으로도 제격인지라

잘려자갈 영순위 나무일 수밖에 없는데다 번식력까지 약하니 그야말로 희귀수종이 될 수 밖에 없었을 터이다.


원래의 망개나무 천연기념물은 지금의 정이품송과 법주사 사이의 상판리란 곳에 훨씬 더 굵은 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무는 '만지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나돌아 사람들의 손을 타다보니 결국 죽고 말았다.

지금의 망개나무는 법주사 근처에서 가장 큰 나무를 찾아 대신 지정하게 된.

이를테면  대타(代打)의 영광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청도 운문사 처진소나무

천연기념물 제180호


해마다, 이내 생일 날 막걸리 12말에 물 12말을 타서  받아 마신다는 운문사 처진소나무의 자태.

키가 9.4m, 가슴높이 둘레 3.4m, 가지 펼침은 동서로 22.2m, 남북으로 24.3m로 키가 낮고 옆으로 넓게 퍼진 형태이다.

땅위 2m쯤에서 줄기가 여럿으로 갈라져 사방으로 고루 뻗어 가가 있고, 처음에는 가지가 대체로 수평을 유지하다가

끝으로 갈수록 차츰 아래로 처진다. 늘어진 가지의 전체 무게를 감당키 어려워 수 십개의 받침대 신세를 지고 있다.


처진소나무는 대체로 2가지 형태가 있다. 이 소나무를 비롯해 울진 행곡리 천연기념물 409호 및 포천 직두리 460호,

 함양 개평리의 경남 기념물 211호 처진소나무라도 이처럼 버들형태의 류송(柳松)은 대단히 희귀하다.

물 건너 일본 땅 이와테현 타마야마 마을에 이 나무와 똑같이 생긴 한 그루가 있을 뿐이다.


류송과 비슷한 모습을 갖춘 또 다른 나무로는,

 강원도 창도군 장현리에 북한 천연기념물 235호로 지정된 '창도 늘어진 소나무'가 있다고.


처진소나무는 아무래도 암나무일 것 같다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전체 모습이 우아하고 가지 뻗음이 섬세하며 솔잎마저 갓 머리감고 나온 소녀의 머릿결 같이 부드러울 것만 같기 때문.

더군다나 운문사는 비구니 승가대학이 있는 절로, 학장 스님의 배려로 내 몇 번인가에 걸쳐

 스님네들의 내밀한 처소에까지 진출했던 전력이 있는 터인지라...







이 처진소나무가 심어진 유래는 명확치 않다는데,

어쨌든 임란 때 왜구들의 불길질로 모든 절 건물이 태워져 버렸는데도

이 소나무만은 무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해야겠다.

 이런 저런 정황상 이 나무의 수령은 적어도 500년 이상으로 봐야할 터.







남해 화방사 산닥나무 자생지

천연기념물 제152호


섬을 래왕하는 다리가 둘 씩이나 놓였으니 이제 남해를 섬으로 인정하기엔 웬지 어색한 느낌.

예전엔 화방사에 지소(紙所)가 있어 한지를 만들었다고. 조선조 종이 만드는 일은,

 특히 말기로 오면 스님네들의 주요한 수입원이었고, 웬만한 절에서는 양반네들의 문집을 비롯해

각종 책의 목판을 제작, 인쇄하고 물론 종이까지 직접 만드는 곳이 많았다고 한다.


우리네가 흔히 아는 닥나무 이외에도 꾸지나무, 삼지닥나무, 두메닥나무, 산닥나무 등 종류가 여럿이다.

물론 대부분 닥나무를 이용했지만 고급종이에는 산닥나무가 제격이었고, 더 고급지에는 귀한 삼지닥나무까지 동원되었다고 들었다.

안피(雁皮)라고도 불리는 산닥나무는 일본에서 처음 가져온 것으로 보인다고. 『조선왕조실록』에 의함녀 세종 29년(1447) 전라,

충청, 경상도 감사에게 왜저(倭楮)의 종자를 수입해 널리 심도록 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왜저가 바로 산닥나무일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산닥나무는 추위에 약하기 때문에 남부 해안과 강화도에 심게 한 것이 오늘날까지 살아 남은 것이다. 산닥나무는 일반 닥나무 보다

질기고 더 질 좋은 종이를 만들 수 있었다. 때문에 산닥나무를 매우 귀중하게 여긴 기록이 여기저기 나온다. 심지어 산닥나무 관리를

소홀히 한 수령이 파직 당하는 일까지 있었을 정도다.


산닥나무는 키가 1~2m 정도에 줄기는 몇 개로 갈라져 자라고 잔가지가 많으며 껍질은 황갈색이다. 뿌리는 굵은 편으로 황색이고

섬유질이 많다. 잎은 마주보기 하며 타원형이고 엄지손가락 첫마디만 하다. 언뜻 광대싸리 같다. 지름 5mm정도로 양끝이 뾰족하고

9~10월에 익는다. 열매는 기름을 함유하고 있으며 나무껍질의 인피 섬유와 뿌리의 섬유질은 질기고 튼튼해 고급 제지 원료로 쓴다.


화방사의 산닥나무 자생지는 당시 일본에서 들여와 심고 가꾸던 것이 야생화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할 당시인 50여 년 전에는 화방사 계곡에 제법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차츰 그 수가

줄어들자 산닥나무를 한곳에 모아 가꾸기에 이른다. 나무가 자라는 곳은 지금의 범종각 건너 개울 옆이다. 이곳에다 20여 그루를

모아 놓고 보존해왔는데, 그나마 관리소홀로 거의 없어지고 겨우 몇 그루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곳 이외에는 강화도 일부에서 드물게 만날 수 있다고 한다.







부산 범어사 등나무숲

천연기념물 제176호


공원이나 민가 등의 해가림 틀에서 만나는 등나무와는 달리, 숲속 계곡 전체가 등꽃으로 뒤덮이는 곳.

범어사 등나무는 절 옆의 흘러내리는 얕은 계곡부터 무리를 이뤄 자란다. 덩굴나무로 다른 나무에 묻혀

눈에잘 띄지도 않던 등나무가 꽃이 만발할 즈음 비로소 사람들의 주목을 받게 된다. 이곳 등꽃은 수백 그루가

계곡을 타고 올라가면서 연달아 피어나는 모습은 마치 뭉개구름이 피어오르는 듯 장관을 이룬다.


이곳 등나무 서식이 언제부터 였는지는 알 수가 없다. 심은 것인지 자생인지도 명확치 않은 것이다.

다만 짐작해 볼 수 있는 근거로는 고려 때 송나라에서 사신으로 왔던 서긍이 쓴 『고려도경』에, 한지를 만드는 원료로

닥나무 이외에 등나무 껍질도 흔히 사용했다고 한다. 이곳 등나무도 한지의 원료로 쓰기 위해 일부러 심은 것이 널리 퍼진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지금 자라고 있는 등나무 나이는 100여 년 남짓인데, 아마도 베어 쓰기를 반복한 탓일 것이다.


큰 것은 둘레 약 1.4m, 길이 15m에 이르는 등나무도 있다. 그런데 등나무는 원래 숲속 공생의 원칙과는 무관한 개체이다.

다른 나무를 휘감고 올라가는 것이 특기로 꼭대기까지 타고 올라가 나뭇잎을 완전히 덮어 광합성을 차단해버리는 것.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한 결과 주위 다른 나무들을 모두 고사시켜 버려 하는 수 없이 등나무의 서식을 제한하는 모양.






부러져 나가기 전의 천황사 전나무


이 땅에 일찌감치 터를 잡아왔지만 천연기념물 반열에 오른 것은 진안 천황사 전나무가 유일하다.

천황사에는 두 그루의 아름드리 전나무가 있다. 사찰 입구에 둘레 5.2, 높이 20m의 윗 부분이 부러져 나간

전나무 보호수가 한 그루 있다. 원래 키는 35m에 이르는 거대한 나무였지만 수 년 전 태풍 루사로 부러져 나간 것이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전나무는 이곳에서 남쪽 계곡으로 300m쯤 올라간 남암(南庵)이란 허름한 암자 앞에 서 있다.






진안 천황사 남암 전나무

천연기념물 제495호


『조선왕조실록』숙종 39년(1713) 조를 보면 부교리 홍치중이 백두산을 답사하고 임금께 보고한다.

"백두산과 어활강(魚濶江) 사이에는 거의 3백리에 걸쳐 삼나무가 하늘을 가리어 해를 분간할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삼나무는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 삼나무가 아니라 전나무로 추운 지방에 자라는 대표 수종이다.

백두산을 비롯한 북한의 고산지대 원시림을 이루고 있는 전나무는 오대산 월정사, 청도 운문사, 부안 내소사

입구 등에서 흔히 만날 수 있다. 전나무는 재질이 너무 물러 힘 받는 기둥으로는 쓸모가 없지만

크고 곧게 자라는 나무 특성상  한꺼번에 많은 양의 목재를 조달할 수 있다.


키 30m, 가슴높이 둘레 5.5m, 가지 펼침은 동서 및 남북방향 각각 16m에 이른다.

엄청난 굵기는 주변 모두를 압도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 전나무는 우리나라 제일로 어느 방향에서 보아도 긴 원뿔형의

아름다움이 돋보인다. 목질부가 튼튼하지 못해 바람에 잘 부러지므로 동료 나무들과 숲을 이루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반해

이 전나무는 그야말로 독야청청 홀로 우뚝 선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천황사와 남암의 전나무 모두 약300년의 풍상을 헤쳐온 것으로 보인다.








정읍 내장산 굴거리나무숲

천연기념물 제91호


굴거리나무가 자랄 수 있는 가장 북단지역, 흔히 자생북한지대(自生北限地帶)이기에

내장산 일대는 식물분포학적으로 매우 귀중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 굴거리나무는 금선계곡 입구 경사면에 집중되어 있고

오른편의 원적계곡에도 있으며, 산 넘어 백암산 백양사 계곡까지 퍼져 있다.

굴거리나무의 진가는 엄동설한 차디찬 눈 속에서 그 독특한 매력과 진가를 제대로 확인할 수 있다.







굴거리나무는 원래 제주도에서 남해안 일대 섬 지방의 온난한 기후 아래 자라는 나무이다.

보통 최대 키는 10여 미터 이내이며 지름은 20cm이하가 보통이지만, 울응도의 해하령 부군에는 한 아름이 넘는

개체가 있다는 소문만 들었을 뿐이다. 잎이 두텁고 긴 타원형으로 가지 끝에 방사성으로 달려 있다.

약으로 널리 쓰이는 만병초와 매우 닮았기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기 이전에는 많이 잘려 나가기도 했다.








백암산 백양사 굴거리나무 군락지


굴거리나무는 암수가 다른 개체로서 암꽃은 연초록, 수꽃은 갈색으로 때로는 붉은 색이 강한 적갈색을 띄기도 한다.

가지 끝에 모여 달리는 잎자루 역시 붉은 색이다. 이 나무의 한자 이름은 교양목(交讓木)이다.

 새 잎이 나오기 시작해 제법 자리를 잡았다 싶으면 묵은 잎은 일제히 떨어져 버리기 때문이다.

위 사진은 위치를 밝히기 곤란한 어느 계곡 굴거리나무 군락지다.








고창 선운사 송악

천연기념물 제367호


선운사 입구 왼편 도솔천 옆 바위 벼랑에 붙어 사시사철 푸르름을 자랑하는 송악 군락이다.

방문객들의 시선을 받거나 말거나 선운사 마스코트인 격인데, 이 역시 엄동설한에 감상할 맛이 난다고 해야겠다.

공기뿌리의 한 종류인 부착근(附着根)을 내밀어 자신의 몸을 붙여가면서 서식지를 빌려준 이에게 폐가 가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벼랑에 매달린 모습으로 북한식 이름은 담장나무이고 남부 일부에서는 소밥나무로 부르기도 한다고.

이 역시 송악이 자연상태에서 자랄 수 있는 북방한계선에 위치한다.






바위에 찰싹 달라 붙은 송악 줄기의 하단 부분인데  나이로는 200~300년 이상이라고 한다.








고창 선운사 동백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84호


선운사 경내 뒷쪽 비탈을 감싼 형국의 동백나무 숲이다.

약 1,500 그루가 무리지어 자라는데 나무의 키는 대략 6m 전후기고 가슴높이 둘레 44cm가 대부분이며

그 중 굵은 개체는 둘레 1m에 이르기도 한다. 간혹 비자나무가 섞여 있긴 하지만 거의 동백나무 순림(純林)이다.

워낙 밀생하기에 나무 밑은 대낮에도 거의 컴컴할 정도다. 여러 정황상 자연림이 아닌 인공림으로 보는 게 타당할 듯.

나무 굵기로 보아 약 10~200년 전에 심었을 것으로 보이는데, 풍치 목적도 있겠지만

산불을 막는 방화수(防火樹) 역할에 무게가 실린다.








선운사 동백은 개화가 늦은 편에 속한다. 동백 분포 위도상 북쪽에 속하기 때문.

동백림 속 점점히 박힌 동백꽃을 보노라면 어설픔을 떠나 누구나 한번 쯤 시심에 젖기 마련이다.







선운사 도솔암 장사송(長沙松)

천연기념물 제354호


장사녀(長沙女)가 사랑하는 지아비를 그리다 투신한 절벽 아래 자라났다는 전설을 간직한 소나무 한 그루.

도솔암 가는길 오른편 진흥굴 앞쪽에 자라고 있는데 미끈하게 뻗어 올랐다. 가슴높이 둘레 3.1m로 두 아름 남짓이고

키는 23m나 된다.  땅위 4m.쯤에서 다시 갈라져 일곱 갈래이다. 대부분 10~30도 각도의 가지 뻗음새 때문인지

키가 훨씬 더 커 보인다. 가지 펼침은 동서 13m, 남북 14.5m 정도인데 소나무의 한 품종인 반송으로 구분한다고 한다.

나이는 600년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근거는 불명확하다. 대략 300년 수령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는 게 중론.





 

고창  은사리 문수사 단풍나무숲

천연기념물 제 463호


은사리 단풍나무숲은 나라 안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곳이다.

100~400년 이상의 고목 애기단풍의 황홀한 자태는 일반 당단풍과는 비교 자체를 불허한다.

단풍의 진가와 급수를 따지는 안목을 지닌 애호가들만이 찾아들던 옛 시절은 지났지만

그 매력만큼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






 

빨갛다고 모두 단풍이라면 할 말이 없지만, 조금이라도 단풍을 구분할 줄 아는 이는 찬사 일색이다.

단풍의 분포 면적이 그리 큰 것은 아니지만, 애기 조막손 처럼 귀여운 단풍 숲의 붉음은 마주하는 순간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탄성을 내지르지 않곤 배길 수 없다는 사실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은사리 단풍나무 숲. 긴 말 필요 없이 가을날 한 번 찾아 보시라.

왜 조선 최고의 단풍인지 절절함으로 접수하게 될 터이니...








영광 불갑사 참식나무

천연기념물 제112호


참식나무는 아열대와 난대에 주로 자라는 녹나무과의 늘푸른 넓은잎나무이다.

그리 흔한 나무도 아니고 그렇다고 특별한 쓰임새도 없기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남녘 해안가 여기저기서 많이 볼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불갑사 일대는 참식나무 북방한계선에 해당하기에 식물지리학의 관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한다.

이곳 참식나무 군락은 일제 강점기부터 일찌감치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불갑사 산내 암자인 해불암 계곡을 따라 오르면 참식나무 군락을 볼 수 있다.

이곳 참식나무는 한 스님과 인도 공주와의 사랑 이야기가 전설로 남아 있어서 특별히 보호 받지 않았나 싶다고.

이룰 수 없는 사랑을 다음 세상에서 이어가기로 약속한 뒤 이별의 징표로 자주 만나던 참식나무를 찾아 열매 몇 알을

스님의 바랑에 넣어 주었다고. 그리하여 스님은 봄날 불갑사를 찾아 양지바른 곳에 심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한다.






인도 공주의 섬섬옥수가 연상되는 참식나무 새잎





경운스님이 선물로 받았다는 참식나무 열매







장성 백양사 비자나무 숲

천연기념물 제153호


사진상 짙은 녹색으로 보이는 나무는 모두 비자나무이다.

백암산 백양사의 비자나무와 이팝나무, 굴참나무 군락 등은

1350년(충정왕 2) 각진국사(覺眞國師)가 백양사를 3창하면서 심은 기념비적인 나무들이다

분명 역사를 증언하고 있는 이시대의 소중한 보물들인 것이다.










백양사 청류암 오름길 비자나무 군락


대부분 백양사를 방문하면 큰절을 지나 약사암 오름길 일대의 비자나무  몇 그루만 보고

그게 백암산 백양사 비자나무의 전부로 알고 만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사실.

산내 암자인 천진암 오름길과 청류암 오름길 여기저기 고목으로 자라난 비자나무를 감상해야 한다는 말씀.


백양사 이외에도 고흥 금탑사, 장흥 보림사, 영광 불갑사, 화순 개천사, 진도와 해남 일대 등

비자나무는 남도를 대표하는 수종 중의 하나로 비자열매는 약, 음식 기름 등 쓰임새도 다양하다는 사실.

목재는 최고급 대접을 받는데 지금은 거의 구할 길이 없다. 그만큼 보호 받는 수종이라는 얘기다.








가을 날, 백양사 약사암 오름길 단풍숲을 한 번 찾아 보시라.

역광에 부서지는 단풍의 찬란함, 대한민국 최고의 애기단풍숲이 예임을 확실히 보증할 수 있다.








장성 백양사 고불매

천연기념물 제 486호


보통은 백매, 홍매, 청매, 홑매, 겹매 등으로 구분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보면 천태만상임을 알 수 있다.

백매(白梅)에도 청백, 유백 등이 있고, 청매(靑梅)도 진청, 명청(明靑) 등으로 나뉜다.

 홍매(紅梅)는 연분홍에서 부터 흑매(黑梅)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색감이 존재한다.

사진상의 고불매는 예전 모든 수세가 온전할 때의 모습으로,

현재는 수 년 전 왼편 가지가 폭설에 찢겨 쇠줄에 의지 더 이상 찢겨나가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는지라

수세의 아름다움이 예전에 비해 다소 반감된 상태다.









 

소위 탐매(探梅)의 대상은 단연코 고매(古梅) 라고 보면 되겠다.

나무가 고유명사를 가지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 중에서도 고매는 반드시 고유명사를 지닌다.

탐매인들에게 있어 그 대상의 최고봉 한 그루를 들라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백양사 고불매(古佛梅).


 어린 시절부터 즐겨왔던 너무도 친숙한  매향 샤워의 진원지.

탐매인에게 있어 홍매는 사실 거의 논외로 치지만 이 백양사 담홍색 홍매 만큼은 절대 그 대상에서 제외된다.

그만큼 격조있고 더군다나 매향(梅香)에 있어서 전국 그 어떤 개체보다 월등히 앞선다는 게 개인적 판단이다.


모름지기,  매향에 대한 관심과 탐매에 대한 안목과 훈련은

모두 이 고불매로 부터 시작되어 오랜 기간 매향을 좇아 삼천리 방방곡곡을 훑고 다녔다는 사실.

그러한 과정은 감성이 메마르지 않는 한, 이내 살아 생전 내내 현재진행형일 터이다.






강진 백련사 동백나무숲

천연기념물 제151호


만덕산에 올라 백련사를 내려다 보면  온통 동백나무가 둘러싼 모습이다.

엄청난 개체의 이 동백숲은 장흥 천관산, 광양 옥룡사지 등과 함께 우리나라 최대 규모이다.

동백나무 뿐만 아니라 후박나무, 비자나무, 붉가시나무 등의 늘푸른나무와 푸조나무 등의 갈잎나무가 고루 섞여있다.

모두 남부지방에서만 만날 수 있는 풍경이다. 나무의 굵기와 규모를 봐서는 500여 년 전 효령대군의 시주를 받아 중창을 할 때

선운사나 옥룡사 동백나무숲처럼 방화수로 심은 것이 대를 이어 숲을 이룬 것이 아닐까 짐작할 뿐이라고.







백련사에 당도, 돌아서면 강진만 구강포 일대가 눈에 들어 온다.

바닷가에 접해 있으니 왜인들에 의한 피해는 불을 보듯 뻔한 사안이었을 터.

 백련사를 논 할 때, 혜장(1772~1811) 과 다산을 빼 놓고선 도대체 얘기가 성립이 안 된다.







백련사 동백숲 감상 최대의 포인트는 단연 부도림 일대라 할 수 있다.

다산과 혜장의 어울림을 떠올리며 이 동백숲에서 선(禪)과 실학(實學)의 의미를 곱씹어 보는 것도... 







혜장은 불과 40의 나이로 입적하고 말았지만 다산은 1818년까지

그야말로 지난한 유배생활을 이어갔다. 지금의 만덕산을 예전엔 다산(茶山)이라 불렀다니

약용의 호(號)가 다산임에 쉬 수긍이 가는 사안.





고교시절, 백련사에서 다산초당으로 이어지는 이 길을 따라 막 지어진 천일각에 당도,

흑산도로 유배 간 '자산어보(玆山魚譜)'의 주인공 약전 형을 그리곤 했다는 다산의 심경을 떠올렸던 기억이...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오는 것 보다 반대로 걷는 것이 더 매력적이다 라는 사실을 

얘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동백은 절대 시들어 꽃을 떨구는 법이 없다.

싱싱한 상태로 부러져 내린다는 점에서 선비의 기개와 수행자의 의지를 포괄한다고 보면 틀림 없다.




인용서적 : 박상진 著 『우리 문화재 나무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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