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월당 유람록(醉月堂 遊覽錄)

정조(正祖)의 번리어찰(樊里御札) 2

작성일 작성자 茶泉

번리어찰(樊里御札) 2


(1799. 8. 7 ~ 1800. 4. 30)



●  정조가 외삼촌 홍낙임洪樂任에게 보낸 편지로, 번리(樊里)는 지금의 강북구 '번동'지역을 뜻한다.



34.3×53.2cm. 기미년(1799) 9월 3일. (정조 23년)


접때 만난 일이 꿈처럼 아련하기도 하고 거울처럼 생생하기도 합니다.

지금 먼저 보낸 편지를 받아 일간 안부가 더욱 평안함을 기꺼이 알았습니다.

시부(詩賦) 두루마리의 성적을 엄격히 매겼는데, 지난번 규정을 고치지 않고도 노야(魯也)의 여러 작품이 하나하나 모두 일등을 했습니다.

재주가 빛나 승장(升場)에 두었는데, 감시(監試)에서 '등우(等優)' 두 자는 누워서도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특하고도 기특합니다.

어찌 다만 어린 아들을 편애하는 집사를 위하는 뜻으로 사적인 말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껄껄.

화수회(花樹會)는 단풍 들고 국화 피는 좋은 때에 맞추기 위하여 이달 보름과 스무날 사이를 손꼽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만천월서(萬川月序)」는 즉시 새겨 이 정간(井間)에 걸고 싶으니 속히 써 보내기 바라며, 한 본은 장주(長洲[홍용한])에게 보내는 것이

어떠한지요? 이만 줄입니다. 9월 2일 올림.


정간(井間)에 불과하니, 설령 약간 크거나 약간 작더라도 편한 대로 하세요. 이달이 계삭(季朔)이라

도계획방(都計획榜)을 써 보내고 상물(賞物)도 보내며, 전교(傳敎)의 등본도 보냅니다.


* 노야(魯也): 홍낙임(洪樂任)의 둘째 아들 노영(魯榮)   * 감시(監試: 생원과 진사를 선발하는 과거.

* 화수회(花樹會): 친척끼리 모여 여는 잔치   * 계삭(季朔): 사계절의 끝 달, 즉 3,6,9,12월.

* 도계획방: 임금의 명령으로 성균관 유생으로 하여금 글을 짓게 하여 매긴 성적을 분기말이나 연말에 통계를 내어 발표한 방목.




전교의 등본


38.1×57.7cm


34.2×57.1cm


34.5×53.5cm


38.6×57.8cm


유학으로 나라를 세운 것은 삼대(三代)의 아름다운 규범이다. 주공(周公)은 부모께 효도하고 임금께 충성하라고 했고, 태공(太公)은

똑똑한 사람을 등용하고 공로를 숭상했다. 그래서 주나라의 사(士)가 귀한 대접을 받았다. 한고조(漢高祖)가 장자(長者)였는데,

소하(蕭何)와 조참(曺參)이 깨끗한 정치로 보필했다. 이어서 문제(文帝)와 경제(景帝)가 순수하고 화목했으나 오히려 황로(黃老)에

오염되어 동한(東漢) 이후로는 선왕(先王)의 교화가 없어졌다. 홍범(洪範)의 오복(五福) 중에 '덕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好德]'이

넷째이고, 태재(太宰)의 팔통(八統) 중에 '현명한 사람을 관직에 등용하는 것이 셋째다.


오직 우리 왕조가 여기에 힘써 역박(域撲)과 청아(靑莪)의 시가 무성하게 흥했다. 목릉성제(穆陵盛際)와 같은 때에는 기룡(夔龍)이

조정에 가득하여 문순공(文純公0과 문성공(文成公)이 그 표준이 되었다. 영릉(寧陵[효종])과 같이 어진 임금 하에도 많은 훌륭한

 인물이 금석(金石)에 기록되어 있지만, 문경공(文敬公)이 좌우에 있어 이룬 눈부신 정치는 비할 바 없이 훌륭했으며 바른 학문이

발전하여 사악한 학설이 자취를 감추었으니, 동방의 추로(鄒魯)요 후대의 관민(關閔)이다.

 전(傳)에 칭송한 '군자의 나라[君子國]'가 바로 이것이다.


옛날과 비교하여 오늘을 볼 때, 오늘의 시대는 과연 어떠한가? 지금은 나라사람을 쓰면서 말하기를 "돈과 양식을 잘 담당할 사람이 없다.

병사와 전차를 잘 관리할 사람이 없다." 고 한다. 나는 "돈과 양식, 병사와 전차는 담당자가 잇다. 걱정스러운 것은 사람을 선발한 지 오래

된 것이다." 라고 생각할 뿐이다. 나예장(羅豫章)이 말하기를 "경술經術[경학經學]은 한나라 동중서(董仲舒)와 공손홍(公孫弘)이 시작하고

부터 주공과 공자의 마음을 잃었다." 라고 했다. 대저 이른 바 '경술' 두 글자로 말하자면, 내가 비록 도에 밝은 사람은 아니지만, 근래

삼 사십 년간 경술이라는 말은 들어보지도 못했다. 듣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은 책임은 사람에게 있지만, 노력해도 듣지 못한 책임은 시대에

있다. 설령 공자와 맹자 같은 선생이 다시 나온 것처럼 지극한 공정함과 피어린 정성으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도,

도저히 어찌 해 볼 도리가 없다. 도대체 그 책임이 사람에게 있는가. 시대에게 있는가?


지금 정초(旌招)의 열을 보니 단지 두 유신(儒臣) 밖에 없다. 흰 망아지가 빈 골짜기에 있으나, 마음이 멀어 데려올 수 없다.

나는 실로 반성하느라 겨를이 없다. 그러나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고 하여 애초에 구하지 않으면 초야에 독서하는 학자는 앞으로 등용될

날이 없을 것이다. 학자가 등용되지 않으면 나라가 다스려지겠는가? 이 시대 교육의 붕괴가 여기서 비롯되고, 조정의 갈가리 찢어진

모습이 여기서 비롯되고, 백성의 풍속이 저속하고 잡스러운 것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이 생각에 늘 한밤중에 서글퍼 탄식하다가

뜬 눈으로 새벽을 맞는다. 삼대 이후 전적으로 과거로 관리를 선발하다가 양관(楊綰)과 이덕유(李德裕)로부터 제도를 개혁하자는 논의가

있었으나 천년 동안이나 오래 그르쳐 온 것을 갑자기 고칠 수 없었다. 따라서 음서로 진출한 관리를 위한 과거를 설치하자는 논의가

납정(臘政) 때의 경연석상에서 나왔는데, 그것 또한 근본을 바로 잡고 새 출발을 하는 상책이 아니다. 한 사람의 학자를 얻으면 임금을

도와 나라에 공을 세울 수 있으니, 이 시대의 의리는 현인을 구하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다. 『서경(書經)』에 "덕이 있는 사람을 후대하고

어진 사람을 믿으면, 만이(蠻夷)도 서로 거느리고 와서 복종한다고 했다. 만약 조정에서 유학(儒學)을 숭상하고 장려하면, 바른 학문이

발전하지 않는다고 무슨 걱정이 있으며, 사악한 학설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주자(朱子)의 책 한 질을 편집하는 것은 바로 내가 세상을 깨우치고 풍속을 바로 잡으려는 뜻이다.

편집 작업고 명확한 해설에 몸소 노력하고 실행하는 학자가 함께 참여할 것이다. 대저 이른 바 초선(抄選)이 라는 말이 나왔으니,

그 초(秒)를 엄격히 하고 그 선(選)을 신중히 할 뿐이다. 또 선조(先朝)에서 이 규정을 정한 후 법의 의미가 더욱 특별해져, 한 번 이

초선에 들면 유일(儒逸)로 대접한다. 지금 내가 구하는 사람은 독서하는 학자다. 그들을 경전의 뜻을 자문하는데 쓰려 한다. 또 그들을

내외의 관직에 쓰려 한다. 진실로 초선에 합당한 사람이 있으면, 묘당(廟堂[의정부])과 이조(吏曹)는 『대전통편(大典通編)』과

수교(受敎)의 규정에 따라 빈청(賓廳)에 모여 초선을 의논하여 추천하는 것도 좋다. 아, 너희 의정부와 정조(政曺)의 신하들아, 반드시

이 전교(傳敎)의 뜻을 받들어 성심으로 학자들을 탐문하여 찾아 그들로 하여금 차례로 연달아 관직에 나아가게 하라.


또 주자(朱子)의 책으로 말하면, 세상에서 지극히 귀한 글로 『중용』,『대학』,『논어』,『맹자』와 서로 표리를 이루나,

받들어 숭상하는 풍조는 옛날 같지 않다. 내가 그것을 환하게 해설하고 널리 알려 집집마다 사람마다 외고 익히게 하려는 것은,

바로 정부자(程夫子)가 『대례편(戴禮篇)』중에서 『중용』과 『대학』을 뽑아 드러낸 것과 같다. 조사(朝士)와 유생(儒生) 중에

주자의 책을 전공한 사람이 있거든, 중앙에는 대신과 전신(銓臣)이, 지방에는 각 도의 방백(方伯)이 각기 듣고 본 바를

기록하여 보고하게 하라. 오늘날 실제적인 정치 중에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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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57.2cm.기미년(1799) 9월 6일. (정조 23년)


근자에 가을날이 맑은데, 안부가 더욱 평안하시온지요?

나는 곡산(谷山)의 치마기(馳馬基)와 수라천(水剌泉) 성적(聖蹟0에 새길 글을 친히 써서 전하고, 아주 기쁩니다.

오늘은 여러 곳에 가서 예를 행하고 늦게 환궁할 것입니다. 상림(上林)에서 수확한 벼의 소출이 평년의 배나 됩니다.

이 수확으로 미루어 팔도의 풍년도 알 수 있습니다. 풍년의 복을 내려주신 하늘에 감사할 뿐입니다.

이만 줄이고 나머지 사연은 만날  때로 미룹니다.


상림의 벼 한 포.

제사에 올리고 남은 유자 다섯 개.

날전복 다섯 개.

게장 한 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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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53.3cm. 기미년(1799) 9월 7일 (정조 23)


편지가 와서, 밤새 안녕한 줄 기꺼이 알았습니다.

편기와 함께 온 편액의 글씨가 갈고리와 쇠줄처럼 힘이 있어 육순 가까운 노인이 쓴 것 같지 않습니다.

대저 글씨는 관상과 같습니다. 그 얼굴을 보고 그 사람의 상(相)을 보기는 어려우나 그 글씨를 보고 그 사람의 상을 보기는 쉽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붓을 당겨 쓸 때 그 힘은 비록 손에 있으나, 묘한 이치와 정신적 작용은 아마 마음에서 말미암기 때문일 것입니다.

장주長洲[홍용한]의 필획에 대하여 말하자면, 주부자(朱夫子)가 '구양공(歐陽公)의 글씨는 그의 글과 같다.' 라고 했듯이,

나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만 줄입니다. 편지 받고 즉시 올림.


장주[홍용한] 앞으로는 바빠서 편지 쓰지 못하여 안타깝습니다. 게장 항아리를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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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53.1cm. 기미년(1799) 9월 17일 (정조 23년)


서리가 내려 철을 알리는데, 안부가 근자에 또 어떠한지요?

나는 이달 초 이후 날마다 끊임엇이 일을 해서 정력이 버티기 어려우니, 도리어 가소롭습니다.

화수회(花樹會)를 단풍 좋을 때에 맞추어 열려고 했으나, 상림(上林)의 태평스런 나뭇잎이 단풍 들 날이 아진 아득하니,

형편상 그믐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합니다. 『주고(奏藁)』의 교정은 그 사이에 이미 시작했는지요?

조가(趙家)의 송사(訟事)는 한바탕 웃음거리가 될 만합니다.배껴 두었던 것을 보내는데, 전에 혹 이 일을 들은 적이 있는지요?

이만 줄입니다. 즉일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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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5×53.2cm. 기미년(1799) 9월 19일. (정조 23년)


일간 안부가 어떠한지 묻습니다.

들으니 장련(長連)이 이미 올라 왔다고 하는데, 여러 가지 보낸 것이 지나치고도 지나치게 많습니다.

취야[총위영]도 강서(江西) 현령일 때 내게 똑같은 말을 들었는데, 그 사람 또한 말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니, 후야[홍후영]가

취야와 같은 처지에서 이런 짓을 한 것입니다. 한 고을의 힘을 다 쏟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물며 그 집이 가난하고 부모가

연로하여 수령으로 보냈는데, 나에게 이렇게 지나친 선물을 함으로 인하여 노인 봉양에 전념할 수 없고 따라서 빚까지 지는 것은,

고을 수령으로 보낸 내 본래의 뜻이 결코 아닙니다. 벼슬길의 일 또한 알 수 없으니, 이미 진 부채를 무슨 수로 갚겠습니까?

집사는 어이하여 미리 엄히 타이르지 않았습니까? 또한 그에게 말해 둘 것은, 이후에는 선물이 두 세가지를 넘지 않아야 된다는

내 말을 반드시  따르라는 것입니다. 각별히 당부하기 바랍니다. 마침 그쪽으로 가는 역편(驛便)이 있어 대략 쓰고 이만 줄입니다.

즉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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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53.1cm. 기미년(1799) 9월 22일 (정조 23년)


일간 안부가 어떠한지요? 나는 어른 모시고 가족 거느리고 잘 있으니, 심히 다행입니다.

어머니께서 내게 보내신 찬(饌)이 있어 두 합(榼)에 나누어 담아 드립니다. 알성시(謁聖試) 하루 전에 일 초군(哨軍)을 한꺼번에

들여보내는 일을 취야[홍취영]가 상세히 전할 것입니다. 바쁜 가운데 잠깐 대필시키고 이만 줄입니다.

즉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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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53.5cm. 기미년(1799) 9월 23일. (정조 23년)


밤새 안부가 더욱 평안한지요? 나는 잘 있습니다. 다 본 여섯 책을 모두 돌려드리니, 교정할 때 함께 편입시키도록 하는 것이

어떠한지요? 29일 들어오는 사람이 몇 명입니까? 그것을 상세히 알고 싶어 이렇게 인편을 보냅니다. 이만 줄입니다.

즉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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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8×53.3cn. 기미년(1799) 9월 25일. (정조 23년)


34.8×53.6cm


일간 안부가 어떠한지요?

어제 어머니 말씀을 들으니, '긍대(肯大) 무리가 빠졌다.' 라고 하십니다.

그놈들이 기왕 관광을 하고 싶어 하는데, 하필이면 빼놓아 실망의 탄식을 하게 합니까? 더욱이 사자(獅子)가 들어오는데,

긍대를 어찌 빼놓을 수 있습니까? 껄껄.

화수회(花樹會)를 단풍 들 때 열려고 했으나 마침 또 관광과 서로 겹쳐 형편상 다음 달 초로 미루어야 하는데, 다음 달 초는

대향(大享)을 앞두고 서계(誓戒)한 후입니다. 대향이 지나면 또 추위가 시작되니, 한 번 모이기가 이렇게 어렵습니다.

화수회의 절목(節目) 중 누락되어 첨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과 계전을 관리하는 문제를 함께 써 보냅니다.


*긍대무리: 홍낙임의 손자들을 말하는 것으로 보임.   *관광: 대궐에 들어가 구경하는 것을 말함.

* 대향(大享): 종묘에서 선왕들을 합사(合祀)하는 제례.  * 서계(誓戒): 제사를 앞두고 예를 어기지 않겠노라 맹세하는 것.

* 화수회 절목(節目): 화수회의 규정 항목




문상汶上[홍낙윤]의 이일학(二日瘧)이 걱정됩니다. 의서에 이른 바 '해(痎)'라고 하는 것으로 증세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허실(虛實)을 봐야하는데, 어떻게 약을 쓰는지 모르겠습니다. 주자(朱子)의 시를 지금 인쇄하려고 그 서문을 자양(紫陽)의

구법(句法)을 사용하여 쓰려 하지만, 눈은 높고 손은 닞아 마음대로 되지 않고 한갓 역량의 부족만 느낄 뿐입니다.

단지 전에 임헌(臨軒) 때 제(題)로 썼던 것을 베껴 보내니,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이만 줄입니다. 즉시 올림.


* 이일학(二日瘧): 이틀을 걸러서 발작하는 학질.   * 자양(紫陽): 주희(朱熹)의 호.

* 구법(句法): 문장의 낱말과 구절을 구사하는 방법. 

* 임헌(臨軒): 과거 시험이나 큰 행사가 있을 때 대궐의 정전 앞 계단 위 양쪽에 난간이 있는 곳에 임금이 나와 앉는 것.

* 제(題): 과거의 책문(策問) 시험 제목으로 낸 별지에 쓴 「아송책(雅頌策)」을 말한다.





아송책雅頌策


38.7×57.8cm


38.8×57.8cm


38.8×57.8cm


35.2×55.9cm


35.0×56.2cn


34.3×53.3cm


임금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先王이 사람을 가르침에 詩의 가르침이 컸다. 시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말로 표현된다. 마음에 느긴 것이 바르면 그 말이 그르침이 될 수 있다.

순舜 임금이 기夔에게 명령하여 말하기를 "시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라고 했고, 주관周官에는 음악을 배우고 시를 낭송한다." 라고 했다.

이것은 바로 시의 가르침이 음악에 바탕을 두고 성음聲音을 이용함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남二南이 『시경詩經』삼백편三百篇의 첫

머리에 실려 가정과 마을로부터 한 나라와 온 천하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교화하고 좋은 풍속을 만드는 길이 되었고, 모두 금석金石에 새겨

태사太史가 관장하도록 하여 공경함과 엄숙함으로 선왕의 덕을 펼치고 환희와 화합으로 군신群臣의 감정을 모두 발산하게 하였다. 비록

제후국諸侯國의 작은 마을의 민요民謠라도 채집하여 조정朝廷에 올려 선한 것은 권장하고 악한 것은 징계懲戒했다. 선왕의 시대가 멀어지자

아름다운 시도 부진하여 온유하고 돈후敦厚한 다스림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다.



이 글은 『아송雅頌』의 서문인데 '책策'이라고 한 것은 과거 시험의 대책對策을 볼 때 응시자들에게 말한 것이기 때문이다.

정조가 쓴 『아송』의 해제가 있어 전재轉載 한다.


"아송雅頌은 아언雅言과 같은 말이다.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늘상 말하게 되고 몹시 좋아하고 항상 말하다 보니 다시 사람들에게까지

미쳐서 내가 늘상 말하는 것처럼 모든 사람이 항상 말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을 엮고 이 책을

『아송』으로 명명하게 된 이유다. 나는 일찍이 우虞나라의 조정에서 주자胄子를 교육할 때 악樂을 우선으로 삼았으니, 오늘날에 악교樂敎

를 행하려면 마당히 시詩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시경』삼백편三百篇 이후에 나온 시 중에서 사무사思無邪의 뜻을 담고

있는 것은 오직 주자朱子의 시 뿐이다. 그래서 우리의 보통 선비들은 흥기興起시키고자 한다면, 주자의 시를 가르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

이다. 그래서 내가 주자의 글 가운데 사詞 2편, 부賦 1편, 금조琴操 1편, 고체시古體詩와 근체시近體詩 359편을 가려 뽑고,  끝에 명銘

20편, 잠箴 2편, 찬贊 9편, 제사題辭 1편, 문文 1편을 붙여서 총 415편을 문신文臣들에게 지시하여 정밀하게 교정하게 하고, 그중 인명

人名 · 지명地名 · 시사時事 · 실적實蹟과 선석仙釋에 관한 문자의 인용과 도가櫂歌 등의 시에서 道를 비유한 단어들은 널리 자료를 수집

하여 간략하게 주석을 잘게 하였으니, 모두 8권이다. 주자소鑄字所에 맡겨서 임진자壬辰字로 인쇄하고, 번각飜刻하여 판목板木을 보관해

두어 오래도록 전하게 하고, 또 경연經筵과 주연胄筵에 진강進講하고 존경각尊經閣에 소장하여 유생儒生들이 월강月講할 때에 쓰는

책으로 삼도록 하였다." ('아송雅頌' 「군서표기羣書標記『홍재전서弘齋全書』제182권, 민족문화추진회, 2000. 12)



그러자 공자孔子가 시를 산정刪定하여 관풍지정觀風之政을 대신하게 하고 후세에 물려주어 천하 만세萬世의 법으로 삼게 했다.

대개 공자의 산시刪詩는 태사의 채시採詩를 본받고, 태사의 채시는 전악典樂이 주자胄子를 가르친 것을 본받았다.

 이것이 또한 시의 가르침이 문왕文王으로 인하여 일어나고 공자로 인하여 밝아진 까닭이기도 하다.

그로부터 1600년이 지난 후에 또 주자朱子의 시가 나와서 삼백편 이후에 삼백편의 의미가 다시 밝아지게 되었다.

그 시어詩語는 장중하고 엄숙하며 그 뜻은 간결하면서도 심오하여 성찰할 때는 조용하고 말할때는 아름다워, 비유하자면

 마치 순임금의 전당에서 소음韶音을 연주할 때에 오직 승가升歌만 하여 악기 소리가 사람의 목소리를 혼란시키지 않는 것과 같다.

주자의 시가 날로 사방에 전파되자 주자이 시를 들은 자 중에 감동하여 분발할 생각을 갖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니,

주자의 시가 사람들에게 끼친 공로와 교화는 이남二南과 서로 견줄 수 있다. 주자가 공자를 빛낸 것이 진실로 깊고도 넓도다.



* "시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순임금이 기夔를 음악에 관한 일을 담당하는 전악典樂에

임명하면서 한 말로,『서경書經』「순전舜典」에 나온다.

* 주관周官: 송宋 역발易袚 찬 『주관총의周官總義』권 14.  * 관풍지정觀風之政: 민정을 살펴 시정의 득실을 잘 파악하는 정치.

*  소음韶音: 순임금 시대의 음악.  * 승가升歌: 제사나 연회 때 주재자가 당에 올라 갈 때 연주하는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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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25.7cm. 경신년(1800년 1월 1일. (정조 24년)


저궁儲宮[세자]의 정호定號, 관례, 혼례를 동시에 하고 싶습니다.

한 번 일을 치르고 세가지 좋은 일이 구비되면 아주 기쁠 것입니다.

즉시 들어오세요. 나머지 사연은 다음으로 미루고 이만 줄입니다.






34.7×25.5cm. 경신년(1800) 1월 2일. (정조 24년)


아침에 잠시 뵌 것 또한 아주 기쁘고 다행스러웠습니다. 오에 더욱 평안하시지요?

새해에 받은 각종 공상供上 음식물을 보내니, 마음으로 알고 하나하나 받기 바랍니다.

나머지는 이만 줄입니다. 즉시 올림.





37.2×57.3cm. 경신년(1800) 3월 2일. (정조 24년)


35.1×53.8cm


먼저 보낸 편지를 받아 화신풍(花信風)이 쌀쌀한데도 안부가 평안함을 아니, 한 번 조용히 만나는 것과 같이 기뻤습니다.

나는 초하루 날 좋은 때 삼가 묘궁廟宮을 알현했는데, 『시경』에 이른 바 "무왕武王의 도가 이렇게 밝으니, 후세에 그 발자취를 이으면

만인이 영원히 하늘의 복을 받으리라." 라고 한 것과 같은 느낌이 있었습니다. 나는 또 명문의 덕성을 훌륭한 모후母后로 부터 받았는데

『시경』에 이른 바 "장한 태임太任이여, 문왕文王의 어머니로 주강周姜의 사랑을 받아 주周 왕실의 부인이 되었네.

태사太姒가 그 아름다움을 이어 아들이 백 명이었네." 라고 한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복은

 바로 하늘이 내리신 것이며, 나의 조상들께서 도우신 것입니다.


이에 앞서 어머니께서 환후를 회복하셨습니다. 내가 밤에 허리띠를 풀지 못한 지 4, 5일 만에 가만히 몸조리하시다가 건강한 혈색을

찾으시고 나의 초조함이 기쁨으로 변했으니, 예로부터 나라와 신민의 경사라고 일컫는 것 중에 이보다 더 큰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만 나의 기쁨을 표하고 싶은 마음으로 술잔을 올려 축하하는 의식을 거행해야 마땅하나, 남은 날이 부족한 의미가 있어, 약을 잘 쓴

데 대한 상만 내렸습니다. 그러나 나의 마음에는 못마땅한 기분이 있습니다. 이때 유모孺慕가 더욱 새롭고 계절도 청명하니 보름에서

스무 날 사이에 동릉東陵에 배알함으로써 경사慶事를 고하는 예를 행할 계획입니다.

어머니의 환후가 정상적으로 회복되기를 다 기다려 문상汶上[홍낙윤]과 더불어 만나 조용히 회포를 풀도록 할 것인데,

이제 비로소 짬을 내어 대략 알립니다. 이 편지는 돌려 보기 바랍니다. 연초에 장주[홍용한]의 편지를 받고

여태 답장을 쓰지 못했는데 이 뜻도 전해주세요. 나머지 사연은 모두 다음으로 미룹니다.

즉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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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1×57.3cm. 경신년(1800) 3월 18일. (정조 24년)


34.5×53.2cm.


근자에 덕문德門에는 좋은 일이 많습니다. 늘그막에 딸과 손부가 비씨費氏의 신비한 방술을 쓰지 않고도 금방 천상의 꽃과 같은

아들과 진주 같은 딸을 낳았으니, 그 기쁨이 어찌 해로하는 가문에 가득한 행복일 뿐이겠습니까.

연초에 한 번 만난 후 어머니의 환후가 완전히 회복되기를 기다려 술과 안주를 갖추어 초대하려 했으나, 곧 귀댁에 높은 손님이

오는 바람에 만나지도 못하고 편지 또한 없어 그리워 잊지 못하고 하루가 한 해 같았습니다.

지금 안부가 어떠한지요? 전에 들으니, 이외재李畏齋가 대신大臣 때 퇴궐하여 집으로 돌아가다가 동구 밖에서 그 손자가

 아들을 낳았다는 말을 듣고 대문에서 관을 벗고 바로 객상客床 앞으로 달려 들어가 경건히 기도했다고 합디다.

옛 사람의 진실이 이와 같으니, 집사도 정성을 다하고 복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동안 무슨 일을 하며 지냈습니까? 나는 근자에 틈틈히 송시宋詩를 보았습니다. 산곡山谷은 옥천玉川에 근접하고,

후산后山은 초당草堂보다 못하고, 간재簡齋는 소주蘇州보다 낫고, 성재誠齋는 향산香山보다 기교적이고, 석호石湖는 달부達夫보다

서사적인데, 반산半山이 중국을 두루 읊은 것과 동파東坡의 해박한 전고典故도 모두 당시唐詩의 격조만 못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축하편지를 쓰면서 두서없이 이렇게 말합니다. 능행陵幸하고 환궁한 후 날을 잡아 만나 조용히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나머지 사연은 모두 그때로 미루고 이만 줄입니다.

즉시 흠배欠排



* 덕문德門: 남의 가문을 높여 이르는 말.    * 비씨費氏: 한漢 비직費直. 역점易占에 뛰어났다고 함. 

* 산곡山谷: 송宋 황정견黃庭堅   * 옥천玉川: 당 唐 노동  * 후산后山: 송宋 진사도陳師道. 그의 시체時體를 후산체라 한다.

* 초당草堂: 당唐 두보杜甫.  * 간재簡齋: 송宋 진여의陳與義. *소주蘇州: 당唐 위응물韋應物. * 성재誠齋: 송宋 양만리楊萬里.

* 향산香山: 당唐 백거이白居易.  * 석호石湖: 송宋 범성대范成大.  * 달부達夫: 당唐 高適. 

* 반산半山: 송宋 왕안석王安石. * 동파東坡: 송宋 소식蘇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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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7×53.5cm. 경신년(1800) 3월 24일. (정조 24년)


아침부터 이슬비가 오니, 꽃이 더욱 싱그러워 보입니다. 게다가 이 비가 보리농사에 도움이 되어, 아주 기쁩니다.

일간 안부가 어떠한지요? 나는 일곱 능陵가 열 강岡을 두루 배알하고 신전申前에 무사히 돌아왔으나, 그 후 과거시험 일로 연일

응대하느라 지쳐 쓰러질 뻔했습니다. 이번 과거시험 보는 유생의 수가 이렇게 많은 것은 처음 보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 시험장에 입장하여 시권試券을 바친 사람의 수를 적어 보내드리니, 보시면 크게 웃음이 나올 것입니다.

인일제人日製 때 나도 시 한 수를 지었는데, 함께 보내드립니다. 이만 줄입니다.

즉시 欠排.





인일제人日製


 절일제節日製의 하나로, 인일人日 즉 정월 초 이레에 성균관 거재 유생과

지방 유생에게 보이는 제술製述 시험으로 이때는 3월 22일에 치렀다.














춘당대春塘臺에서 설행設行한 인일제人日製에 임어臨御하여 읊다.

경신(1800)년 봄 과거를 설행하여 선비를 뽑는 것은 경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초시는 시험장을 셋으로 나누었다.

제 1시험장은 남궁南宮인데, 추부樞府[중추부]를 통과하고 광화문 밖을 거쳐 마침내 경조京兆[한성부] 앞길에 이르도록 펼쳐져

성城을 이루었다. 응시자는 32598명, 시권試券을 바친 사람은 13737명이다. 제 2시험장은 성균관의 비천당丕闡堂인데, 대성전大成殿

문밖을 거쳐 향교香橋까지 이르렀다. 응시자는 39870명, 시권을 바친 사람은 10520명이다. 제 3시험장은 명륜당明倫堂인데, 식당食堂

다리를 거쳐 벽송정碧松亭까지 이르렀다. 펼쳐서 성을 이룬 것은 제 1, 제 2 시험장과 같다. 응시자는 39370명,

시권을 바친 사람은 38614명이다. 과거시험을 시행한 이래 응시자의 수가 이렇게 많은 적은 없었다.


인일제人日製는 초시初試 다음날이다. 시험장을 춘당대에 설치했는데, 관덕정觀德亭에서 관풍각觀豊閣까지 이르렀다.

응시자는103579명. 시권을 바친 사람은 32884명이다. 시권을 바친 사람을 지역별로 보면, 서울이 2211명, 경기가 3586명,

해서가 3111명, 관서가 3173명, 호서가 6096명, 관동이 1025명, 호남이 4700명, 영남이 5231명, 관북이 관동과 같아 1025명,

화성이 368명, 광주가 356명, 송도가 210명, 강도江都가 90명, 제주가 3명, 그리고 거주지를 쓰지 않은 사람이 766명이다.

규모가 장대하다고 할 수 있다.


호경벽옹鎬京薜癰의 동서남북 사방에 응시자들이 지은 부賦를 걸고 서울과 지방에서 장원 한 명씩을 뽑아 급제及第를 주었다.

그 아래 삼하三下 일백 명에게 문과 초시 합격 자격을 주었는데, 서울 10명, 경기 10명, 해서와 관서 각 8명, 호서 11명, 관동 7명,

호남과 영남 각 11명, 북관 8명, 화성 5명, 광주 · 송도 · 강도  각 3명, 제주 2명이다. 그 아래 차상 次上에게도 각각 상을 주었는데,

서울과 각 지방의 배분 비율은 삼하의 예에 따르되 제주에서 1명을 덜어 화성에 1명을 더했다. 시권의 성적을 매긴 후 합격자의

발표는, 해서, 관서, 호서를 먼저 하고, 다음에 관동, 다음에 호남과 영남, 다음에 관북을 했는데, 『시경』본장本章에서 말한 바의

순서를 따른 것이다. 마침내 '인人' 자를 뽑아 시를 짓는다.



춘당대의 봄볕에 만물이 싱그러워

남북동서에서 모인 손님 맞이하기 좋구나

바다처럼 넓은 뜰의 시권 삼만 장 중에

과연 누가 충효장원忠孝壯元을 할까





인용서적 / 국립중앙박물관 『정조임금편지』





Ubi Caritas - Melinda Dumitres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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