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월당 유람록(醉月堂 遊覽錄)

정조正祖의 삼청동어찰(三淸洞御札) 1

작성일 작성자 茶泉



삼청동 어찰(三淸洞御札) 1


(1796. 5. 1 ~ 1800. 윤 4. 29)



  정조가 심환지沈煥之에게 보낸 편지





32.4×13.2                                                                                                           32.2×46.5cm

병진년(1796) 5월 1일. (정조 20년)




경卿은 사정을 잘 고려하여 노문路文을 작성하여 내려 보내라.

이것은 새로 자계資階가 오른 후 영소榮掃하러 가는 것이니, 예禮의 타영詫榮에 '조사朝辭를 생략하라'는 명령이 있는 것처럼

형편에 따라 편하게 떠나 조정에서는 서서히 돌아오라.


* 노문路文: 공무로 지방에 나가는 벼슬아치에게 역마와 음식을 제공하라고 연도의 관아에 미리 알리는 공문.

* 자계資階: 벼슬의 직품과 관계.  * 영소榮掃: 과거에 급제하거나 벼슬의 품계가 올랐을 때, 선영에 가서 고하는 것.



* 타영詫榮: 영광을 자랑한다는  뜻인데, 예서禮書의 편명이나 제목으로 보인다.

* 조사朝辭: 벼슬아치가 임금의 명령으로 지방으로 갈 때 사은숙배謝恩肅拜하는 것을 말한다.







31.6×11.8cm                                                                                    31.4×42.4cm

정사년(1797) 2월 23일. (정조 21년)



일간 편안한가? 오래 소식 없어 답답하다가 차분히 편지를 받으니, 그만한 후련함이 어디 있겠는가.

산림山林[송환기宋煥箕]의 거취는 그 사이 혹 들었느냐? 근자에 무슨 들을 만한 소식이 있느냐? 접때 편지 중에 당연히

기록하여 보여주겠다는 말이 있었는데, 편지가 오랫동안 오지 않아 몹시 답답하다. 다투는 소리로 날로 시끄럽다고 하니, 괴롭구나.

장릉莊陵 참봉 문제는 게와 그물을 모두 잃었다고 할 수 있다. 대저 그 작자【이조판서】가 음으로 양으로 부리는 수단을 절대

대수롭지 않게 여기지 말라. 정만시鄭萬始의 일이 어찌 두렵지 않겠느냐? 이만 줄인다.



* 게와 그물: 2월 13일 심윤지를 장릉 참봉에 임명했는데, 2월 18일 82세의 병든 노모 곁을 떠날 수 없다는 심윤지의 정장呈狀이

올라왔으니 그를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조吏曹의 계䁈에 따라 그를 교체하게 된다. 심윤지는 심환지의 가까운 친척이다.

이 평범한 인사문제의 이면에 어떤 알력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이조판서】: 만에 하나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하여 작은 글씨로 '장전長銓'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당시 이조판서는 이병정李秉鼎이다.


* 정만시鄭萬始의 일: 정만시가 2월 10일 성균관 사성司成에 임명되었으나,

2월 13일 몸이 아프다는 정만시의 정장이 올라왔으니 교체하는 것이 좋겠다는 이조의 계에  따라 그를 교체하게 된다.

정만시의 경우도 심윤지와 아주 비슷하다. 이 두 경우 이조판서 이병정이 농간을 부렸다고 정조는 생각하고 있다.







37.7×6.7cn. 정사년(1797) 2월 23일 해시. (정조 21년)



돌아오는 인편이 가져온 여러 장의 편지를 기꺼이 받고, 근자에 안부가 평안함을 알았다. 편지에 쓴 긴 말에는 가을의 소리나

아침의 기운과 같은 여운이 있어, 마치 겸가蒹葭 3장과 신풍晨風 1편을 읽는 것 같다. 경은 늙을수록 더욱 매운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나처럼 겁 많고 부끄럼 타는 사내는 망양지탄亡羊之歎만 느낄 뿐이다. 껄껄. 그러나 나 또한 무인武人 기질이 있다. 무력을 행사하지

않는 것을 무력으로 삼을 뿐이다. 천근의 쇠뇌[노弩]를 생쥐에게 쏘고 싶지 않다. 모某를 처치하는 데는 한 주먹 힘이면 충분하다.

지금 일의 모호함에 이르면, 이것이야말로 정말 확실히 일을 키우는 것이다. 그릇에 비유하자면, 안전한 곳에 두면 안전하고 위험한

곳에 두어도 역시 안전하다. 불가에서 말하는 능견난사能見難思와 다름이 없다. 그런 후에, 비로소 신기묘용神器妙用을 말할 수 있다.

군자君子의 불기佛器가 바로 이것이다. 만약 한 가지 일이 손 밑에 이르면 손 힘을 쓰지 않을 수 없으니,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쉽다.

경은 마음을 푹 놓으라. 나머지 사연은 별지別紙에 있다.



봉투 / 三淸洞門 (丁巳二月二十三日亥時)

* 수신자 심환지의 집이 삼청동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썼으나, 봉투의 일반적인 서식은 아니다.


* 신풍晨風: 『시경』「진풍秦風」의 시 제목.

* 망양지탄亡羊之歎: 바다를 바라보며 하는 탄식, 남의 위대함을 보고 자기의 왜소함을 개탄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

* 능견난사能見難思: 아무리 보아도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일. 예컨대 마술魔術 따위를 말한다.

* 군자君子의 불기佛器: 『논어論語』「위정爲政」에 나오는 말. 군자의 재능이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뜻.







151.5×28.3cm. 정사년(1797) 2월 23일 해시. (정조 21년)





모야某也 형제 문제는, 오히려 헤지고 떨어진 낡은 종이에 속한다. 그러나 어찌 훌륭한 벼를 해치는 잡초가 아니겠는가?

오늘의 세도世道가 이러한 것이 반드시 전적으로 더 두 사람에게 있는 것만은 아니다. 대저 난처한 단서와 말하기 어려운 일이 따로 있을 것이다.

편지로는 상세히 쓸 수 없다. 이명연李明淵의 일은, 명연 한 사람의 욕망과 행위에 허술한 틈이 없다는 것이 아니고, 설령 뜻이 다른 사람이라도

그 사이에 감히 한 마디 말도 용납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대저, 주심지법誅心之法을 말재주로써 상소하는 자에게 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다만

하회下回를 보는 것이 좋다. 임야任也가 몰래 서울 집에 왔다는 일은 낭설 중의 낭설로, 이것은 전한 자가 틀렸다.

그 집에 금기가 있어, 서울 집과 통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모삼帽蔘 문제는 내 생각도 그렇다. 설령 두 조항이 완벽하여 폐단이 없다고 하더라도, 대저 서울은 국가의 근본적인  땅인데 도성都城 안의 부호

들을 옮겨 보내는 것은 결코 좋은 계책이 아니다. 무릉茂陵에 이주시킨 것도 사방의 지방 부호富戶다. 서울의 사람들을 이송移送했다고는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나 이 일은 일제학一提學이 강하게 주장하므로 일단 그가 하는 대로 맡긴다. 널리 지방의 부호를 부르면 혹 흔적이 없고

편지한 행정이 될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몹시 걱정스러운 일이다. 이판부李判府[이병모李秉模]의 일을 어찌 편지를 보고 알았겠는가.

벽패僻牌로 들어갔다는 설로 귀가 몹시 시끄러운데, 이것 때문에 주저하는 바이다.


남포 현감[藍倅]의 일도 이미 들었다. 성실함과 근면함은 가상하며 착해지려고 하니 기뻐할 만하다.

그러나 이 사람은 대교待敎의 가까운 친척이니, 섣불리 믿었다가 속지 않도록 조심하라.

나머지 많은 사연은 가까운 날에 만나서 이야기하겠다.



* 주심지법誅心之法: 진晉의 조순趙盾이 적을 토벌하지 않은데 대하여, 임금을 시해弑害했다고 쓰는 『춘추』의 논법.

즉 직접적인 사실은 없더라도 그 마음의 불순함을 책망하여 드러낸 것.

* 모삼帽蔘 문제: 화성華城에 이주하는 자들에게 정착할 수 있는 경제적인 도움을 주기 위하여 관모官帽와 미삼尾蔘의 무역권을 주는 문제.

* 무릉茂陵 이주: 한 무제가 자기 능묘를 만들고, 그곳에 무릉현, 지금의 흥평현을 설치하여 군국郡國의 호걸과 부호를 이주시킨 일.

* 일제학一提學: 규장각의 두 제학 중 선임 제학으로, 여기서는 정민시鄭民始를 말한다.

* 벽패僻牌: 노론의 벽파, 즉 뒤주 속에서 아사한 사도세자를 배척한 당파.







30.8×28.3cm. 정사년(1797) 12월 1일. (정조 21년)



일간 평안한가?

유한由限이 지난 후 상소하여 비답批答을 받은 후 날짜를 여러 번 변경하여, 열흘 전후로 나오는 것이 좋다.

신대申臺[신구조申龜朝]의 일은, 비록 피혐避嫌이라고 하더라도 이때는 만에 하나라도 안 된다.

 '명패名牌를 기다려 예例에 따라 어기라' 는 뜻으로 즉시 약속하는 것이 어떠한가.

모름지기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일을 어지럽힌다.'는 경계를 생각하는 것이 어떠한가.


* 유한由限: 말미의 기한. 

 * '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일을 어지럽힌다: 『논어』「위영공衛靈公」.







30.2×61.4cm. 정사년(1797) 12월 17일. (정조 21년)



31.8×12.3cm                                                           31.6×27.1cm



편지를 받아 위로가 된다.

도정都政이 다가왔는데 여태 차분히 토의하지 못했으니, 그 답답함을 어찌 이루 말할 수 있겠느냐.

이번은 형편상 만나 토의하지 못하고 편지로 대신할 뿐이다. 대정大政은 의리를 따라야 하는 것이 이번에는 오히려 옳다.

삼남三南 사람들을 모두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급선무다. 이번에는 서승응천序陞應遷을 제외하고는 초사初仕, 복직復職,

통청通淸을 막론하고 모두 지방 사람들로 하면, 특별한 체제가 되기에 충분하고 모두 눈이 둥그레질 것이다. 이것을 과연 이대로 하겠느냐?

만약 역량이 미치지 못하면, 지난 발자취를 따라 전철을 지키는 것이 낫다. 이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해보고 답장을 보내라.

그런 후에, 이번에 보낸 책자 내용의 가부를 기록하여 보내겠다. 이만 줄인다.


봉투 하단

정초政草는 다음 편지와 함께 돌려보내겠다.


별지

이번에 편지 심부름 가는 놈이 근실하니, 반드시 잘 대해주라. 이후에는 이놈을 교대로 보내겠다.

다음에 선혜청宣惠廳의 행하行下를 넉넉히 주기 바란다.



* 도정都政: 도목정사都目政事, 즉 매년 6월과 12월에 있는 정기 인사.

* 대정大政: 도목정사 중 6월의 정기인사를 소정小政, 12월의 인사를 대정이라 한다.

* 서승응천序陞應遷: 연공서열에 따라 승진하여 다른 관직으로 옮기는 것.

* 통청通淸: 학식과 문벌이 높은 사람을 청환직淸宦職, 즉 홍문관, 예문관, 규장각 벼슬자리의 후보자로 천거하는 것.

* 정초政草: 정기 인사의 초안草案.  * 선혜청宣惠廳: 대동미, 대동포, 대동전의 출납으 맡아 본 관아. 

* 행하行下: 상전이 부리는 사람에게 주는 돈이나 물건.







296.2×28.3cm. 무오년(1798) 3월 14일. (정조 22년)








소한小韓[韓用龜]의 법도와 언행은 그 형 충청도관찰사[韓用和]에 조금도 미치지 못한다. 스스로 하대부下大夫  이하로 행동하니,

더불어 세도와 조상朝象을 논할 수 있는 자는 결코 아니다. 그로고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경은 한밤중에 벽을 돌 때가 없는가?

나는 성격이 편협하여 태양증太陽證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로 보고 싶지 않아, 매우 걱정이다.


* 하대부下大夫: 정3품 통훈대부通訓大夫로부터 종4품 조봉대부朝奉大夫까지를 말한다.

* 조상朝象: 조정의 형편, 또는 분위기  * 태양증太陽證:  성격이 조급하고 괄괄함.




심노숭沈魯崇 무리의 수가 많아, 깊은 근심과 걱정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다. 노론이라 이름을 붙인 사람으로 벼슬아치는 본래 말할

것도 없고, 스스로를 아끼는 유생의 무리도 모르는 사이에 그 투에 빠져들어 간다. 늘 생각이 여기에 이를 때마다, 나는 거의 침식을

잊을 정도다. 그러나 이것은 공식적으로 전해들은 것이 아니고 소문과 농담이 꾸며낸 일이니, 어찌 손을 쓰지 못할 곳이 아니겠느냐.

강원도 관찰사[동백東伯]를 하는 수 없이 점찍고 나서 하나의 불의를 행한다고 스스로 생각했으나, 조정에 가득한 신료 중에 발분하고

공정한 자는 정말 한 사람도 없었다. 이른바 '탄핵을 하겠다.' 던 자도 구덩이에 빠져 잊혀진 사람에 불과하니 어찌 세도에 일조를 할 수


있겠는가? 전에 힘써 말린 것도 조상朝象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지금 세상에는 공론도 없고 사류士流도

 없다." 이러기를 그치지 않으면 이른바 '우리 당의 사기士氣' 는 장차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니, 그만한 근심이 어디 있겠는가.


남포藍浦의 영당影堂 문제는, 서용보徐龍輔와 남공철南公轍의 주장이 내 의견과 판이한데, 경이 이들의 말에 흔들려 마침내 요량 없는

충청도 관찰사[錦伯]로 하여금 상像을 들어내고 서원을 훼손하게 했다. 이것은 송인명宋寅明 무리가 한 것으로 사류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기왕지사를 말한들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근자에 들으니, 연상連相에 가까운 자가 앞장서서 건물을 개축하고 시비를 과연 누가

담당하며 누가 따지겠는가? 금백의 과거 명예는 돌아볼 가치가 없지만, 애석한 것은 경이다. 경이 전에 이미 주장을 폈는데, 이제 어찌

말을 바꿀 수 있겠는가? 사리와 대체大體는 내 말이 반드시 틀리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고란사皐蘭寺를 중건하는 논의를 내어 흙과 사람들의 억울함과 실망이 과연 자양사紫陽祠를 훼철하는 논의를 내어 호야呼耶

소리가 사방에서 들리니, 충청도 사람들의 억울함과 실망이 과연 어떠하겠는가? 사론士論은 격할지언정 변함은 없다. 경과 같은 자는

산론酸論을 주장하는 것도 옳다. 나는 법 밖에  뚝 떨어져 앉아 있으니, 어찌 그 일을 논할 겨를이 있겠는가. 정말 이른바 '유구무언

有口無言'이라, 문득 웃음이 나온다. 서산 군수[瑞倅]의 훼손된 명성에 관하여 어제 겨우 듣고, 정말 경에게 묻고 싶었다. 지금 그 종이

를 보니, 역시 교김僑金에게 기세를 제압당하여 이렇게 명성이 훼손된 것인가? 또 혹은 긁어모은 재물이 처음에 미치지 못하여 그렇게

된 것인가? 채찍질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어수魚帥[어용겸魚用鎌]와 상의하는 것이 어떠한가?


누암樓岩의 정鄭 가운데 적당한 사람이 있으면 반드시 한 사람을 쓰고 싶은 것이 내 마음인데, 어떨지 모르겠다.

송치규宋稚圭의 추천은 좋은 것 같다, 김기풍金基豊의 일은 형편을 보아 도모하되, 이시원李始源이 가까운 날에 올라올 것이니 반드시

그로 하여금 경연에서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이화李墷의 일은 어렵다. 장차 무슨 말로 풀어주느냐? 껄껄. 그러나 다만 유의

하겠다. 만약 잘 되면, 생색을 낼 수 있을 것이다. 김일주金日柱에게는 과연 이 말을 건넸는가? 확실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따로

생각하여, 그로 하여금 임금의 은혜를 알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자전慈殿의 본색本色이 근자에 누가 있는가?

 내가 보기에 일주 밖에 없다고 할 뿐이다.


* 양사紫陽祠: 전남 함평에 있었던 줗희朱熹를 향사享祀한 사당. 1783년에는 송시열宋時烈의 영정도 봉안했다.

* 호야呼耶: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며 힘을 합칠 때 내는 소리.

* 누암樓岩의 정鄭 : 누암서원에 배향된 정호鄭澔(16481736)의 후손, 정호는 송시열의 제자로 영의정을 지낸 노론의 대표적 인물이다.

* 자전慈殿의 본색本色: 피붙이를 말하는 것으로 보임




정일한鄭日煥에게도 연교筵敎를 전했는가?

이번 송재경宋載經의 의시議諡를 이미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차후에 다시 작성하는 것이 옳다.

 그리고 춘방春坊[세자시강원]의 제우際遇는,그 당시와 관련이 있는 사적이 하나도 없으므로 모두 자세히 기록해야 한다.

 또 그 아들이 모자란 사람인 것은 상세히 알아서 기록했는지, 알지 못하겠다.


충문忠文의 종상綜詳이 내일이니, 제수를 약소하게 보내라. 슬픔을 더욱 억제하기 어렵다.

몽상夢相[金鍾秀]의 해인사행을, 들으니 만류하는 사람이 있어 일단 정지했다고 하는데, 정말인가?

병야秉也[이병모李秉模]의 일은, 그 후 들은 바가 어떠한가? 하지 않는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하필이면 그에게 기미幾微를 보이겠느냐?


김려金鑢의 아우가 과장科場에 들어갔다는 일은, 결코 그럴 리가 없다. 전한 사람의 착오일 것이다.

성균관의 일은 한심하다고 할 만하다. 그러나 경의 원수와 적이 세상에 가득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은 연소자와 차이가 있으니,

지난 편지에서 내가 부탁한 바대로 각별히 조정하는 것이 어떠한가?

나머지 사연은 미루고 이만 줄인다. 이 편지는 심히 번잡하니, 즉시 찢어라.


수원유수[화류華留]이 부인을 들어가서 만난 일은, 전하는 말이 옳다. 5촌이면 가까운 친척인데, 만난들 무엇이 나쁘겠는가?

그때 경과 서료徐僚[서용보]는 내국內局의 계사啓辭 일로 편전에 갔기 때문에,

내각內閣의 의막依幕에 들어갔을 때 경이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서 믿지 않는 것인가? 껄껄.



* 연교筵敎: 경연에서 내린 교지.  * 의시議諡: 시호諡號늘 의논하여 결정함  *  제우際遇: 만나 대우를 받음.

* 계사啓辭: 임금에게 경하할 만한 일이 있을 때 신하가 편전에 나아가 축하하는 말씀을 올리는 일.








184.8×27.8cm. 날자 미상 1






효종 때는 단지 김홍욱金弘郁의 금령禁令이 있었고, 선조先朝 때는 이광자李光佐 무리의 금령이 있었다.

그때 감히 말하는 사람이 없었으나, 오직 송우암宋尤菴이 독대獨對할 때 말하고 이양천李亮天과 민형수閔亨洙 무리 한두 사람이 말했다.

지금 김홍욱, 이강좌 같은 무리의 수가 심히 많은 까닭에, 보는 바가 걱정이 되고 듣는 바가 걱정이 된다. 그런데도 지금 만약 이렇게 금령을

세우지 않으면, 조정에 있는 여러 신하는 장차 금수와 다름이 없게 될 것이다. 이 금령을 만든 것은 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로 하여금 오히려

의거하는 바가 있게 하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여러 신료의 입장을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겉으로 보면, 어찌 다만 말이 되지

않을 뿐이겠는가. 이 문제를 애 앞에서 한 번 죽 진술하고, 남은 뜻을 물러나 차자箚子로 올리면, 말하지 않는 것보다

오히려 나으니. 편할 때 반드시 나의 주의를 환기시켜라.


* 김홍욱金弘郁: 1602~1654. 황해도 관찰사로 재임 중에, 인조 때 사사賜死된 민회빈 강씨[소현세자 부인]와

그 아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다가 효종의 친국親鞫으로 장살杖殺 당했다.

* 이광자李光佐: 1674~1740. 소론의 대표로 노론과이 당쟁에 부침을 거듭했다. 1755년

나주괘서사건羅州掛書事件으로 관직이 추탈 당했다.



조영순趙榮順의 일이 어찌 몽상夢相[김종수金鍾秀] 뿐이겠는가? 그때 사류士流의 공격이 인겸의 무리보다 심했다.

이재간李在簡에 이르면 여기에 비하여 풍조라고 할 수 있어, 내려와 오늘날 사류의 여론으로 남았다.

경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입론하는 것이 옳다.

이번 사전赦典이 소탕疏蕩한 것은 소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실로 매듭을 짓고 대사업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리事理를

경들이 연석에 입시할 때 대략 말하면, 어찌하여 그 내용을 본래이 뜻을 모르는 지방에 있는 사람들에게 명백하게 알리지 않는가?

다음에 경들이 연석에서 물러날 때, 역안逆案을 고치려고 한다. 그래서 그보다 가벼운 죄에 대하여 이번에 거론한 것이다.


* 조영순趙榮順: 1725~1775. 호는 退軒. 노론 4대신인 조태채趙泰采이 손자. 소론의 영수 최석항崔錫恒의 신원伸寃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갑산甲山에 유배되어 서인庶人이 되었다. 1774년 유배가 풀려 벼슬을 내렸으나 응하지 않았다.

* 사전赦典: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 죄인을 사면해 주는 은전恩典.

* 소탕疏蕩: 얽매임이 없이 탁 트임.  * 역안逆案: 역모를 꾀한 자들의 명단.



홍전洪典의 일을 어찌 몰랐겠는가. 이때 한 사람을 살려 平人평인으로 만드는 것에, 어찌 10층 탑을 비교할 수 있겠는가.

경 또한 늙고 단지 종야種也[沈䏻種]뿐인데 그 아이가 성공하기를 바라거든, 이런 곳에 반드시 덕의 씨앗을 뿌릴 방도를 생각하여 후손을

보호할 음덕으로 삼음이 어떠한가? 형조刑曹의 속전贖錢 문제, 이러한 문제에 정말 나라의 기강이 걸려 있다. 이후에 비변사備邊司나

빈청賓廳에서 형조와 한성부의 속전을 논의할 때 당상관이나 낭관[당랑堂郞]이 사적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하고 엄하게 분부

하고, 【비록 집에 있을 때라도 분부해서 안 된다는 의미는 없다.】그래도 어기는 일이 있거든 초기草記를 올리고 논감論勘하라.

이런 문제에 기강을 세우기가 정말 어렵다. 성일원成一源의 일 또한 반드시 즉시 조치하는 것이 어떠한가. 이렇게 좋은 때에, 어찌 이러한

습성이 나와서 되겠는가. 상소문 작성을 권하여 보류시키고 거기에 참여한 소론小論 유생을 엄히 타일러라. 이것이 바로 조정에서무언중에

하는 유신維新 교육이다. 이러한 습성은 노론이 있어서도 지나친 바램이거늘, 남인南人[午輩]은 오히려 묘리妙理도 모르고 감히 대항하는

계책을 내었으니, 다만 오랜 시골 어리석음의 소치다. 지금 조용히 계책을 세워야지, 결코 평지풍파를 일으켜서는 안 된다. 이런 문제는

경 같은 사람이 받아들인 후에야 다스림과 교화가 이루어지니, 모름지기 이 뜻을 말할 만한 곳에 말하여

즉시 순조롭게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어떠한가?


* 平人평인: 죄 없는 사람.  * 속전贖錢: 죄를 면하게 해주고 받는 돈.

* 빈청賓廳: 비변사 당상, 옥당 옥당 등의 관원이 모여 중요한 정무를 논의하는 곳.

* 초기草記: 어떤 사실을 간단히 써서 임금게 상주하는 것.  * 논감論勘: 죄의 경중을 따져 판정함.



벽패僻牌가 쫒겨났다는 설을 경 또한 연이어 들었는가? 정말 중진重鎭으로서 굳건히 앉아 있어야 하는 것을, 경은 과연 생각하고 있는가?

전 이판吏判이 원한을 숨기고 혐의를 잊은 것이 사람을 크게 부끄럽다고 할 수 있다. 인사에서 있었던 한두 가지 추천을 감히 무슨 말로

스스로 해명하겠는가? 순조롭게 은퇴하여 돌아가는 것을 흠집없이 보내는 것도 세도를 위하여 다행스런 일이다. 그러나 간간히 이런 사람

과 서로 섞이는 것도 혹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댖 서료[서용보]가 그 후임이 되어 필시 명예를 듬뿍 얻을 것이니, 도리어 웃을 만한

일이다. 나머지 사연은 편지로 쓸 만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근자에 정력이 날로 소모되어, 을묘(1795)년 무렵만 돌이켜 생각해봐도

판이하게 딴 사람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의 일에 대하여는 늘 잊지 못하고 마음을 잠시도 놓을 수 없어, 이따금 이렇게

어리석은 마음을 쓴다. 껄껄. 다음으로 미루고 이만 줄인다.






32.1×12.2cm                                                                                    31.7×38.2cm

무오년(1798) 6월 5일 저녁 (정조 22년)



안부는 생략한다. 처분의 개략을 기록하여 서료徐僚[서용보]에게 보냈으니, 바로바로 얻어보기 바란다.

임금의 처분이 비록 이와 같아도 겉으로는 아주 온화하고 지나치리만큼 느슨해야 하니, 즉시 서료와 右相[이병모李秉模]에게

편지를 보내고 경은 힘써 준론峻論을 견지하는 것이 어떠한가. 즉시 거행하기에는 경들이 실제로 할 수 있는 길이 없으므로,

우선 논의를 통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 어떠한가. 이 편지는 즉시 찢어라.







36.8×54.3cm. 무오년(1798) 6월 14일. (정조 22년)


29.4×38.8cm


37.0×14.2  29.4×38.4cm



밤새 평안한가? 법이라는 것은 천하 공공共公의 귀중한 그릇[名器]이다. 법이 용서할 수 있는 것을, 임금이 사사로이 죽일 수 없다.

법이 죽일 수 있는 것을, 임금이 혼자서 용서할 수 없다. 한나라 효문제孝文帝의 다스림이 방목謗木을 제고하고 육형肉刑을 없앤

두 가지 일에 불과하지만, 지금 삼대 이후의 훌륭한 군주로 칭송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바로 장석지張釋之가 법을 지킨 것이다.

그래서 문제文帝가 힘들이지 않고 다스릴 수 있었다.


내가 경을 생각하는 것이 어찌 효문제가 석지를 생각하는 것뿐이겠는가. 그런데 경이 처신하는 것이 석지에 비하여 과연 어떠한가?

느슨해야 할 곳에 지나치게 느슨하고, 격렬해야 할 곳에 전혀 격렬하지 않다. 근자의 모양이 마치 맨 땅에서 그냥 졸고 있는 것과

같으나, 사람들이 눈을 씻고 보고 있고 적이 쓸개를 빼 간다고 책망하기가 실로 어렵다. 이것이 어찌 몹시 개탄스럽고 안타까운 일이 아닌가.


* 효문제孝文帝: 유항, 고조의 넷째 아들. 검약을 실천하고 덕으로 다스려 삼대 이후 훌륭한 군주로 칭송된다.

* 방목謗木: 궁궐 밖에 세워 황제에게 올라온 간언을 배껴놓은 나무.  *육형肉刑: 육체에 가하는 잔혹한 형벌. 

* 장석지張釋之 : 漢 도양인, 법을 지킴이 엄격하고 공평하여 천하에 억울한 백성이 없었다고 한다.



금교錦校 문제에 대해서도, 경이 답한 것이 어찌 그리 엉뚱하고 엉성한가? 임금의 명령을 받아 표신標信을 받들고 역마驛馬를

 타고 가서 세 놈을 잡아 압송하다가 중도에 풀어주었으면 소위 토교土校를 과감히 지체 말고 즉시 그 자리에서 다스리고 처리할

일이다. 말을 몰고 감영의 옥[영옥營獄]으로 향하다니, 어찌 이런 법이 있는가. 임금의 명령은 지극히 엄하고 표신은 지극히 중요하다.

비록 사성지思晟之처럼 발호하여 강한 군대를 끼고 웅대한 진鎭을 점거한 자도 감히 말 한 마디 못하고 오라를 받았거늘, 

저 토교土校가 국법을 어긴 것이 살 수 있는 것이냐? 살 수 없는 것이냐?

기유(1789)년에 천단擅斷한 대신과 금당禁堂은 오히려 자전慈殿의 하교를 받들고 자전의 뜻을 빙자하여 근거로 삼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토교는 감사의 지휘도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이 변괴를 만들었다.

그 영향으로 일어나는 폐단에, 체포된 무리를 중간에 탈취하는 일이 있을 것이고 석방된 죄수에게 제 마음대로

가쇄枷鎖를 채우는 일도 있을 것이다.


* 금교錦校: 충청감영이 장교를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 표신標信: 급하고 중요한 일을 전할 때나 대궐문을 드나들 때 증명으로 차는 표.  * 토교土校: 지방의 장교.

* 천단擅斷: 일을 마음대로 독단적으로 처리함.  * 금당禁堂: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

* 가쇄枷鎖: 죄인을 묶는 형구, 칼과 쇠사슬.



머리를 풀어 헤치고 들에서 제사를 지내는 야만인의 천박한 습속인데, 옛날의 철인哲人이 오히려 경계했다.

 이것이 어찌 토교가 무지하다고 함부로 용서해서는 안 된다. 토교는 감영 문에 현수懸首하고, 도신道臣은 체포하여 유배를 보내라.

 이것은 결코 그만 두어서는 안 된다. 경이 만약 백성들에게 '그 놈이 역적질을 했으니, 왕법王法에 따라 죽는 것이 바로 의리다.

토교가 사사로이 잡고 사사로이 묶었으니, 왕법에 용서 받을 수 없는 것 또한 의리다. 만약 토교에게 법을 적용한 것이 징벌의

 대의에 어긋난다고 하면, 그것은 이른 바 의리가 아니다.' 라고 큰 소리로 말하면, 어찌 전대前代에 빛남이 없으며

후세에 이야기가 남지 않겠는가. 경이 비록 무력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이런 일에 어찌 매의타격과

맹호의 돌진을 생각하지 않는가? 이만 줄인다.


* 도신道臣: 관찰사觀察使를 달리 이르는 말.






31.1×12.7cm                                                                           30.8×32.7cm

무오년(1798) 8월 7일. (정조 22년)



천안 풍서면豊西面은 도적의 소굴이자, 도가都家다. 속칭 '分西村'이라고 하는 것이 바로 그곳이다.

작년에 강이천 무리가 소란을 피운 곳으로 그곳에 광덕산廣德山이 있는데, 그 산에 골짜기와 도수구都水口가 많다.

거기가 바로 풍서면 분서촌이다. 마을 마을이 각각 10호 내외며 또는 수십 호가 되는 곳도 있어, 모두 사백여 호가 된다.

이 호들이 모두 근년의 소설패騷屑牌가 유랑하여 붙어사는 곳이며, 또 도망간 아전, 풍기문란죄를 범한 자, 사당거사祠堂居士,

초라니 따위의 무리가 박혁博奕, 투전投錢, 개잡기, 닭서리 등을 일삼는데, 그 수가 실로 많다. 어찌 사학邪學은 사학이고

도적은 도적이라고 하는가? 작년 풍서豊西사건 이후 궁벽한 곳에 한 구역을 이루어 가고 있으니, 기록하여 보낸 여러 인물의 행적을

덩탐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분서촌이 여러 놈부터 더욱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정현달鄭賢達은 죽었다고 한다.

그러나 분서패 중에 서울과 통하는 자가 많다고 하는 것 같다.


* 도가都家; 같은 계나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일를 의논하는 장소.

* 강이천: 1768~1801. 본관은 진주, 강세황의 손자다. 1786년 진사시에 합격했다. 1797년 천주교와 관련되었으며

민심을 교란시켰다는 죄로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1801년 신유박해 때 주문모와 함께 효수되었다.

* 도수구都水口: 한 골짜기의 물이 모두 모여 골짜기를 빠져 나가는 곳.  * 소설패騷屑牌: 소란을 일으키는 무리.

* 사당거사祠堂居士: 무리를 지어 다니며 노래, 춤, 재주를 파는 패.

* 초라니: 기괴한 형상의 각시탈을 쓰고 붉은 저고리를 입고 푸른 치마를 두루고 재주를 부리는 놀이패.

* 박혁博奕: 솟대장이.   * 사학邪學: 천주교도를 말함.

*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천주교도보다는 분서촌 부랑배의 단속이 더 급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66.5×27.4cm. 무오년(1798) 8월 13일. (정조 22년)





어수魚帥[어용겸]의 병 때문에 걱정이다. 이질에 삼계蔘鷄를 쓰는 것은 바로 필사적인 약이다. 게다가 이태만李泰萬과 용가龍歌 중에

누구를 과연 추천하겠는가? 그 집 아이들은 모두 개돼지만도 못한 물건들로, 제 아비의 병을 서서 보다가 병에 닿는지 안 닿는지도

모르는 약물을 먹이니, 그것들을 사람이라고 나무라겠는가. 제 아비를 모르는데, 임금 섬길 줄을 어찌 알겠는가? 이후에 과거 공부는

하지 않고 얼토당토않게 과거 욕심을 내겠지만 그 아비이 얼굴을 씻지 못할 것이니, 비록 이의필李義弼 무리가 성균관 대사성[泮長]

으로 있다 해도, 무슨 걱정이 있겠는가? 강야康也의 이야기를 연달아 들으니 약은 제대로 쓰기 시작한 것 같으나, 위 언저리의 열을

씻으려고 해도 장차 토패土敗의 우려가 있다고 하니, 비록 기백岐伯으로 하여금 치료하게 한들 어찌 그 기사회생을 바라겠는가?

번조煩燥는 약간 덜하나 혈변은 여전하다고 하니, 내 생각에는 반드시 그가 다시 일어난다고 결코 볼 수 없다.


* 토패土敗: 위에 土氣가 부족한 증세.   * 기백岐伯: 중국 고대 황제 때이 명의로 전해지는 전설상의 인물.

* 번조煩燥: 몸속의 열로 입이 마르고 손발이 떨리는 증상.



어수가 죽으면, 서용보徐龍輔나 한용구韓用龜 같은 생기는 대로 팔아먹어야 될 무리가 많이 있은들, 장차 어디에 쓰겠는가.

경의 나이가 70이니, 역시 아침저녁을 기약하기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이른 바 남론南論도 저절로 허풍으로 끝나고 말았으니, 어찌 이럴 수

가 있는가. 어수를 '신증新增' 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그 사람이 중요하지 어찌 신新인지 구舊인지가 중요한가. 강야에게는 옆에서

도우고 조심시키도록, 내가 애써 부탁하지 않아도 반드시 늘 채찍질하라. 그런 약과 그 정도 의술이라면, 십에 칠은 죽고 삼만 살아도

반드시 죽는다고 할 수 없다. 소위 '벽패僻牌' 중의 쓸모없고 불성실한 물건은 모두 제주 큰 바다에 던져 버리고, 그 대신 다 죽어가는 어수

한 사람을 구할까? 왕래하는 사람이 오늘 비록 돌아와 현신했으나, 거처하는 곳이 필시 객으로 붐빌 것 같아 편지를 보내지 못했다.

모름지기 이 편지를 소매에 넣어가서 문안하는 것이 어떠한가.


* 왕래하는 사람: 어용겸에게 편지를 가지고 왕래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보임.







Fly High - Nadama

멀티미디어는 표시되지 않습니다.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