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월당 유람록(醉月堂 遊覽錄)

정조正祖의 삼청동어찰(三淸洞御札) 2

작성일 작성자 茶泉


삼청동 어찰(三淸洞御札) 2


(1796. 5. 1 ~ 1800. 윤 4. 29)



  정조가 심환지沈煥之에게 보낸 편지


33.1×12.6cm  32.7×46.7cm. 무오년(1798) 9월 12일. (정조 22년)


서계를 봉하여 보낸 후 즉시 출발하여 동교東郊나 강 건너 구려舊廬에 이른 후 사직서를 써야 된다.

사직서는 미리 생각하여 구상해 두라. 그런데 경들이 벼슬을 그만 둘 때 남의 손을 빌려 쓴 사직서로 세상에 소리 높여 알리는 것이

성인의 덕을 높이는 것, 성인의 뜻을 밝히는 것, 명분과 의리를 강론하는 것, 세상의 도덕을 확립하는 것 등 서너 가지일 뿐이다.

이것들을 사직서에 상세히 쓰되, 급하게 대강 써서는 안 된다. 둘째, 셋째 사직서도 차례로 생각해 두어야 할 것이다.

경이 비록 겸손하여 자신을 감히 옛사람에 비교하지 않지만, 어찌 자포자기하여 옛사람을 자처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직함職銜을

지난 직함으로 쓰는 것은 근래의 잘못된 방식이다. 옛 대신들은 바로 '신수운운新授云云' 이라 썼다. 이것 또한 유념하라.

요상僚相이 임금에게 쓰는 답장에는 '소인小人' 이라고 써서는 안 된다. '소생小生' 이라고 써서도 안 된다. 시생侍生이라고 쓰는 것이

좋다. 숙명肅命하는 날이 언제쯤인지 모르나, 반드시 후반候班 전에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소위 '벽패僻牌[벽파僻派]' 에 이제 통솔자가 없는 것이 임소任所와 정소鄭所에서 극에 달했다.

임야任也는 본래 동서東西에 두루 떠돌며 변신을 무수히 한 자이니, 그가 하는 말이 비록 눈에 거슬려도 너그러이 받아들이고 너그러이

용서해도 나쁠 것이 없다. 하물며 요즘 호남 인심에, 어찌 그의 입에서 한 마디가 튀어나오게 하여 칼끝이 먼저 미침으로써 그 무리에게

구실을 제공해서야 되겠느냐. 정야鄭也는 상소든 계문啓聞이든, 거기에 대하여 말을 하려고 해도 할 말이 없다.

'즉금의 급선무가 교근속[矯近俗] 세 자에 있다. 면, 돌이켜 자신의 풍속을 먼저 바로 잡기 위하여 숨을 헐떡이고 땀을 흘리며 따라가도

오리려 미치지 못할까 두려운데, 장차 무엇으로 인심을 복종시키겠는가? 임과 정의 두 일은 누구의 주장이 옳은지 모르겠으니, 정말

이른바 '밀실에서 바둑을 두는 것'이다. 만약 어야魚也[어용겸]가 있으면 어찌 모를 이치가 있겠느냐.

또 어찌 알고서 말리지 않을 이치가 있겠느냐.


* 요상僚相: 임금, 즉 정조가 동료로 생각하는 재상. * 숙명肅命: 임금의 은혜로운 명령에 나아가 숙배肅拜함.

* 후반候班: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조정에서 임금을 알현하는 반열.

* 교근속[矯近俗] 세 자에 있다: 정鄭의 상소에 나오는 말,. '교근속'은 천박한 풍속을 바로 잡는다는 뜻.






22.8×41.3cm. 무오년(1798) 10월 28일 아침. (정조 22년)


지신知申도 지금 함께 와서 즉시 나란히 조회하되, 차대次對를 초연初筵과 겸하여 행하는 것이 거조擧條에서 많이 나왔으나,

역시 옛 법규는 아니다. 오늘은 혼자 입궐하여 관직을 사양하는 정성을 대략 진술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자신할 수 없으니, 반드시 서료徐僚[서용보]에게 의논하는 것이 어떠한가?


* 지신知申 : 승정원 도승지   * 차대次對: 매월 여섯 차례 정기적으로 의정부 당상, 대간, 옥당 등이 입시하여 중요한 정무를 상주한 일.

* 초연初筵: 관직에 임명된 관리가 임금과 처음 만나는 자리를 말한다. 이 자리에서 평소 소신을 밝히기도 한다.

* 거조擧條: 임금께 상주한 조항.






36,7×45.0cm. 무오년(1798) 11월 11일. (정조 22년)



36.8×48.9cm


37.1×14.1cm  36.8×36.8cm.



편지 받으니 위로가 된다. 근자에 내가 경을 재상에 임명한 후 즉시 빈대賓對를 하지 않았다.

매우 바쁘다고 하나, 느긋해야 할 곳에는 느긋해야 한다. 그래서 지체한 것이다. 빈대를 20일 전후에 비로소 지작하려 한다.

그리하여 분수에 넘치는 것을 넘보는 그들의 습속을 한번 볼 계획이다. 이것은 하나의 일 같지만 세상이 도리에 관련된 것이다.

나와 경 사이에 틈이 없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찌 외부의 입김에 털끝만큼이라도 흔들려서야 되겠느냐.


정鄭[鄭民始]의 논설論說이 전 대사성大司成을 공격한 것은 한 줄기 춘추대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경은 조정에 있어 재야在野애 있는 그와 입장이 천양지차이니, 너그러운 논설을 주도하는 것이 어떠한가.

김조순金祖淳이 이 일에 대하여 유생의 편에 서서 始也[정민시]를 반대하는 것은 아마 유생을 위하고 시야를 위하는 공론에서

나왔을 것이다. 들으니 벽파 유생들이 김야金也[김조순]더러 '시야를 반대하는 논설이 본마음과 다르다' 라고 했다고 하는데,

차후에 김야를 만나거든 '군이 우단유생右袒儒生 이라고 하는데 과연 그런가?' 따위의 말을 해 보는 것이 어떠한가.


* 김조순金祖淳: 1765~1832. 본관 안동. 순조비純祖妃[순원왕후純元王后]의 아버지

* 우단유생右袒儒生: 벽파 유생이 시파유생詩派儒生을 지칭하여 말한 것으로 보인다. 우단은 옳지 않은 한 쪽을 가리키는 말.



눌로訥老의 일은 기어코 진정한 뜻을 깨닫게 해야 된다.

일마다 가만히 앉아 덕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면, 어찌 '다스려도 명령이 통하지 않는다' 라는 개탄이 있겠느냐.

성덕우成德雨의 일은 다음 차대次對에 반드시 들어 아뢰라. 아음 경연에 이도묵李度默 집의 일과 함께 훈계를 해야 된다.

이명성李明誠이 과연 춘추대의를 흐리게 했다고 하는데, 말이 나오면 사면한 후 영원히 금고禁錮하도록 상주上奏하는 것이 옳지,

앞의 두 집과 한꺼번에 아울러 거론할 필요는 없다. 이의직李義直의 일은, 과연 사류士類 쪽 사람이 아니고 스스로 와서 스스로

좋아하며, 게다가 사류 쪽에 대적시킬 수 있다. 그와 친한 자 모모 몇 사람은 모두 장애가 없으면 가난하게 살며 분수를 지킬 수 있는

자들이니, 발탁하여 관리로 등용해서 안 될 것이 어디 있겠느냐. 이것 또한 한 번 들어 상주하는 것이 좋다.



금번 영남의 상소는 최헌중崔獻重의 힘이 크다. 복종 여부를 어찌 논하겠느냐. 그를 거두어 권장하는 방법을 승지에게 힘써 말하고,.

복망復望의 논의를 이익운李益運 무리와 서로 만날 때 전관銓官에게 하는 것이 좋다. 사학邪學 문제는 풀을 건드려 뱀을 놀라게 할

염려가 있으나, 피할 필요는 없다. 김희순이 말하는 문제 중, 태안泰安의 전세田稅 조목과 심도沁都][강화부]에서 해조該曹에 납부할

세를 강제 징수하는 문제는, 만약 희야羲也[김희순]가 관직에 제수되기를 기다리면 때 늦은 폐단이 있을까 걱정되니, 경이 아뢰는 것도

좋겠다. 증열미拯劣米와 저장된 대동미大同米를 바꾸어 쓰자는 의견이 정말 좋으니, 경이 초연初筵에서 아뢰는 것이 어떠한가.

이만 줄인다.


* 복망復望: 범죄에 연루되어 관직 후보자 추천명단에서 제외되었던 [정망停望] 사람에게 다시 추천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는 것.

* 증열미拯劣米: 물에 빠졌다 건진 쌀. 

* 대동미大同米: 지방 특산물을 바치던 공물제貢物制를 폐지하고 전답의 결수에 따라 쌀이나 포로 바치게 한 제도







26.1×10.7cm. 모오년(1798) 11월 11일 밤.  (정조 22년)


근자에 여항閭巷에 전하는 말을 들으니, 세속의 이른바 '외예지믈' 을 우상右相이 금지하여 시끄럽다고 한다.

뜬 소문인 줄 분명히 알지만, 새로 임명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담당 유사有司가 거행할 수 있는 사소한 일로 공공연히 평민의 입에

으르내리는 것이 어찌 말이 되는가. 하물며 이 문제는 洪 奉朝賀[홍봉한洪鳳漢]의 일생 사업인즉, 당當과 부否, 시是와 비非를 막론하고

먼저 봉조하의 정령政令을 따라야 하는데, 어찌 처리가 심하지 않은가. 듣고는 지체하고 싶지 않아 이렇게 쓸 뿐이다.






56.3×28.3cm. 무오년(1798) 11월 19일 밤. (정조 22년)


우금牛禁은 실로 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만약 속전 28냥이 백성에게 작은 재물이 아닌데, 거리낌 없이 걷어내면 걱정스러운 일이다.

소 도살을 본래 철저히 금했으나, 혹은 곤장을 맞거나 혹은 속전을 내며 간간이 법이 관대할 때나 엄할 때가 있었으니, 어찌 소를

잡을 길이 없었겠는가? 그랬기 때문에 관과 민이 한결같이 서로 지키지 않앗고, 심지어 각 상相이 새로 임명된 후 금령을 완화하기를

바라, 백성을 위하고 농업을 중시하여 금령을 세운 본래의 뜻이 도리어 불도佛道로 귀결되어 버렸으니, 이것으로 대개 민심이 나빠진

것이 전적으로 관장官長이 자기의 책임을 잃은 데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다음 경연에 모름지기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우금의 본래 뜻이 백성을 위하고 농업을 중시하는 데 있음이 법전에 실려 있습니다. 죽은[유고有故] 우상右相 윤시동尹蓍東이 연전에

경연에서 상주한 것과 재신宰臣 임제원林濟遠의 출거조出擧條애 대한 비지批旨는 모두 단지 신하에게만 맡기고, 한 번도 힘들여 하교

下敎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리하여 지방 고을의 겋애은 지극히 놀랄 정도이며, 서울도 도리어 다시 해이해졌습니다. 다시 출거조를 하여,

속전을 침어하는 지방의 폐단을 금지시켜야 마땅하며, 해서는 안 되는 행위를 하는 것과 서울의 사사로운 도살에 대한 금령을 거듭 엄히

신칙하십시오.' 상주문의 초고를 작성하여 보내니, 그대로 쓰는 것이 어떠한가.






139.4×28.3cm. 날짜미상.


|전결| 자기의 변신 여부는 물론 세도世道에 있어서도 심히 다행스러워, 도리어 전 우상右相 보다 낫다. 그 밖에 한용구는 머잖아

품계가 오를 것이고 이익모는 또 옥관자가 점점 넘치니 지혜로운 사람이 아니라도 알 수 있다. 바야흐로 별패別牌가 옆에서 엿보는

것이 날로 심하여 경이 한결같이 위축되니, 산론酸論은 졸개들에게 맡기는 것이 좋다. 이 한 조목을 각별히 유의하여 눈을 밝게 떠라.

이제 와서는 어장군[어용겸] 또한 처음 같기는 어렵다. 승정원에 오래 두어 일단 제 하는 대로 두엇다가 형편을 보아 역시 외직으로

보내려 한다. 외직으로 보내는 문제는 다시 함께 상의할 것. 그에게 이 뜻을 알게 하라. 내가 그를 중시하고 경시하고 경시하는 것을

절대 관직의 유무로 판단하지 말라는 뜻을, 반드시 다시 불러 단단히 타일러라.


'서용보가 세도를 주장한다.' 라는 설을 역시 친지나 친구들에게 말하되, 비밀스런 기색을 보인 후에야 사람들이 믿을 것이며, 경에게는

조금이라도 비방을 나누는 방법이 될 것이다. 내가 서徐에 대하여, 사적인 친분이 어찌 얕겠는가. 그러나 내가 사류士流의 두목이니,

지금 사류이 전형을 구한다면 형편상 경을 먼저 꼽을 것이다. 경을 위하여 진지하며 혹 상처를 주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나의 마음은,

서야徐也에게보다 열 배가 넘는다. 이것이 권모權謀를 꺼리지 않는 이유다. 이런 말로 늘 경에게 훈수하는데, 경은 과연 잘 이해하며

만에 하나라도 보답할 수 있는가?


근자에 들으니, 경을 비롯한 모모인사를 해치려는 소론少論이 마음과 붓으로 이루 다 형용할 수 없을 정도다. 게다가 별패別牌까지

붙는다. 이때 계략을 씀이 만약 혹 털끝만큼이라도 소홀아면, 경들은 차치하고 국가에 누가 됨이 어떠하겠는가. 다시 모름지기 사력을

다하여 부탁한 대로 한결같이 조심하라. 어야魚也에게도 다시 천번만번 당부하라. 생각하고 생각하라, 조심하고 조심하라.






16.7×26.5cm. 날자미상 3


|전결| 역시 문견聞見에 익숙하고, 또한 이런 모자라는 사람들의 모욕을 면할 수 없는 것은 본래 형세가 그런 것이다.

이후로는 모름지기 세속에서 이른 바 '준엄한 기상' 으로 위엄을 보여라. 비록 집에 출입하는 문객 무리에게라도 반신반의하는

기색을 절대 보이지 마라. 설혹 사소한 좋지 않은 결말이 있더라도 한결같이 흔들이지 않으면, 이것은 한 개인의 명망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세도世道에 일조가 되지 않는 것은 반드시 아니다. 힘쓰고 힘쓰는 것이 어떠한가. 근자에

|후결|






44.7×24.2cm. 날짜미상 4


편지 받으니 위로가 된다. 여러 조목은 상세히 잘 알았으나, 마침 업무가 있어 모두 다음 편지로 미룬다.

사학邪學 문제를, 이루 말로 할 수 있겠는가. 일전에 서로 만난 것도 이 문제 때문이다. 경이  힘써 배척하는 것에 대하여

한시도 잊지 않기로 간절히 생각하는 것은, 세도를 위한 고심에서 나온 것이다. 모름지기 친지와 친구 간에 서로 마음을 터놓고

때로는 마주 앉아 힘을 다하여 상의하면, 어찌 좋은 도리가 없겠는가. 가야家也와 안야安也를 앞에 세워놓고 출척黜陟시킨 것이

어지 깊이 생각한 것이 아니며, 사람을 쓰고 버리는 것을 어찌 한결같이 거꾸로 하겠는가? 진실로 사람이 있어 그 사람과 더불어

간악한 음모를 중단시키기 위하여, 스스로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주 앉아 상의할 때로 미루고, 이만 줄인다.






40.2×52.2cm. 기미년(1799) 3월 26일 오후. (정조 23년)


40.3×14.7cm


30.8×55.1cm


30.7×40.1cm                                                                        30.8×49.1cm


심부름꾼을 보내려던 차에 편지를 받아 아주 위로가 된다. 이번 윤음綸音은 정처鄭妻의 입장을 위한 것이 아니다.

조정의 신하들을 위하여 많은 정력을 다 쏟아 대의大義를 하나로 통합한 것이다. 북촌北村은 두려움에 쓸개가 찢어지고

나쁜 무리는 혼이 났으며, 죄를 용서함으로써 아름다움을 과거[석년昔年]에 돌리니, 일의 모양에 빛이 더하고 일의 근본이 더욱 단단하다.

이러한 것들은 질단 젖혀 두고라도, 정처가 용서받은 듯하나 아직 용서받지 못하고 있고 사람마다 모두 정처가 서울 집에 있는 줄 아는데도,

채 판부蔡判付[채제공蔡濟恭] 한 사람만 항의하는 차자箚子를 올렸다가 견책을 당한 후 조정에는 끝내 한 마디 말도 없었다.

감영과 고을이야 알든 모르든 심지어 군대까지 출동시켜 파주에서 지키게 했으니, 더욱이 이렇게 불성실하고 형편없는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지금 제일 첫 번째 의리로 이 일을 논하는 것보다 급한 것이 없다. 그런데도 말이 없을 정도라면, 정처가 강화도에 귀양 간 후

오래지 않아, 응당 이 예를 따랐어야 했다.


경이 재상으로 들어온 후 이 일을 논하도록 권하여 차후의 비방을 면할 계책으로 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요상僚相의 방해가

없지 않아 한 번 조용히 마주 앉을 때를 기다려 상의할 계획이었다. 마침 상궐上闕하여 유숙留宿할 때를 만나고 선왕의 휘신諱辰도

임박하여 겸사겸사 부득이 사면하여 석방한다는 교서敎書를 발표할 것이다. 그리고 『명의록明義錄』의 의리義理와의 관계가 어떠하거늘,

어찌 위력으로 국론을 막고 누를 수가 있겠느냐. 반드시 이 대의大義 중에서도 특별한 대의를 고무시키는 것이 어떠한가. 미워하는 자들의

말을 아직 듣지 못했으나, 잡소리는 잡소리대로 버려두고 공명정대한 말을 내 스스로 할 뿐이니, 이것이 바로 선인先人이 사람을 움직인

기술이다. 이해하겠는가?


윤음을 선포한 후 서매수徐邁修와 이익모李翊模  같은 자는 당혹하여 다른 의견을 내세우려 하겠지만, 역시 좋은 일을 위하여 해될 것이

없다. 차후로는 세밀하게 연구하여 바로 깨달아 다양하고 복작한 의견을 한 곳으로 모으면, 모두 무사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혹 사람을

마주하여 좌절한 듯한 기색을 가리지 못하면 도리어 의리가 더욱 어두워진다는 개탄이 있을 것이니, 이것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만약 그날 삼사三司 중 한 사람이라도 미처 이해하지 못하고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하는 자가 있으면 극히 엄한 처분을 내릴 것인데, 경들은

선각자로서 한편으로는 그 사람을 깨우치고 한편으로는 등대登對하여 그 사람을 힘써 구하라. 그러면 조정의 밝고 선명함이 어떠하겠느냐.

지금 사람의 계책이 이것을 벗어나지 못하니, 심히 안타깝다. 지금 하필이면 지난 일을 논의하겠는가. 이후로는 비록 급암汲黯이라도 말을

용납할 수 없다. 윤음 중 '시거是擧' 이하 운운한 열세 글자는 석년昔年의 구절에 속하며, 그리고 '황원원況遠遠' 운운한 것은 『맹자孟子』

「만장편萬章篇」의 순舜의 이야기다. 그런 후에 정처의 일을 결말지을 수 있고 조정 신하들의 이어지는 반발을 영원히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그 계책이 전혀 없어 천번만번 생각하여 과거를 칭송하는 것과 대의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 두 가지 좋은 방법을 얻어, 마침내 그제

윤음을 발표한 것이다. 이 윤음 중의 의리에 마음으로 복종할 수 없고 밝혀 설명하지 못한 사소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더라도, 시의적절

하다는 점에서 '정미精微'한 의리를 이제야 윤음을 통하여 알았으니, 마치 깨달음을 얻은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니다. '운운'이라는 한 마디

말로 칭찬해야 실로 마땅하다. 그런데 이 윤음에는 의리를 밝혀 설명하지 못한 부분이 털끝 만큼도 없고 마음으로 복종할 수 없는 부분이

털끝만큼도 없다. 단지 빛나는 칭송과 탄탄한 대의로 불성실하고 형편없는 조정 신하들의 죄를 말없ㅈ는 가운데 깨끗이 씻을 수 있으니,

이후로는 어찌 다른 말이 있겠는가. '우리가 태어나 성세聖世를 만나 영광이다.' 라는 말로 한결같이 백성에게 크게 외치면, 윤음을 반포

하기 전후의 행동거지가 판이하여 충분히 의거하는 바가 있을 것이다. 그리 알고, 그리 말하라. 상象을 처리한 성인[순舜]의 덕을 지금

차용한 것이다. 그것 말고 어디서 얻었겠느냐?


성균관의 통문을 베껴 보내라. 그 일이 청금靑衿을 욕되게 하고, 명가名家를 욕되게 하고, 맑은 조정을 욕되게 한다.

말을 하며 입이 더러워지고, 생각하면 마음이 싸늘하다. 그놈의 죄는 용서할 수 없다. 치세治世에 어찌 이런 일이 있느냐?

처리하기 어렵다고 말해서는 안 되는데, 어떻게 처리할지 모르겠다. 그 일의 전말을 상세히 알지 못하여 심히 답답하다.

내 생각은, 덮어두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것인데, 정말 덮어도 되는 것인지 사정을 아직 모른다.

반드시 다음 인편에 상세히 답하라. 바빠서 만에 하나도 쓰지 못한다.

밤에 또 김예金隸를 보내겠다. 이만 줄인다.






29.6×45.4cm. 기미년(1799) 3월 28일. (정조 23년)


대간大官으로, 좌상左相 외에 경이 혼자 수고하여 걱정스러웠다.

이번 경의 해임은 정말 신복新卜을 위한 것이다. 만약 경의 잉임仍任 후 신복을 하면 좌상이 영상領相으로 되는 것이 마땅한데,

이것은 실로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경의 잉임 전에 신복하는 것이다. 신복자를 체직遞職한 후 경이 잉임할 수 있으니,

적어도 몇 달은 기다려야 인사문제가 완화될 수 있다. 그 사이에 형편상 약원도상藥院都相에 제수함으로써

경이 등연登筵할 수 있는 길을 열어두려 한다. 이 편지는 즉시 찢어라.


* 신복新卜: 정승 자리에 새로운 인물을 후보로 내세워 임명하는 것.

* 잉임仍任: 해직된 자를 원래 관직에 임명함. 임기가 만료된 관리를 그 자리에 계속 임명한다는 뜻도 있다.

* 약원도상藥院都相: 내의원 도제조 內醫院 都提調.







40.7×52cm. 기미년(1799) 4월 21일. (정조 23년)


봉투 40.8×15.2cm                                                                                  32.1×46.3cm


천하에 큰 것이 세 개 있다. 대본大本이라 하고 대기大機라 하고, 대법大法이라 한다. 대본은 하나의 마음이고, 대기는 온갖 변화이고

대법은 삼강三綱이다. 대본이 있은 후 천하의 무리를 다스릴 수 있다. 대기를 본 후 천하의 일에 응할 수 있다. 대법을 행한 후 천하의

의義를 바로 세울 수 있다. 의는 으리義理다. 의리는 천하의 공公이다. 그러므로 선유先儒가 의리를 뭇 사람의 성性이라고 생각했다.

성은 같다. 다만 내가 지키는 것이 의리다. 내 한 마음을 바로 가져 나의 삼강을 바로 세움으로써 하늘 끝과 땅 끝에 이르는 온갖 변화에

응하며 성인께 물어보고 삼대三代에서 찾고 세계와 비교하면, 이것 밖에, 이것 다음에 어찌 감히 이름지어 의리라고 할 수 있는 별반

다른 일이 있겠느냐. 이것이 이른바 도의로써 사람을 복종시키는 것으로, 그 어려움이 나에게 있다. 세력으로 사람을 복종시키려 할 때,

그 어려움은 다른 사람들에게 있다. 도의를 펼쳐 그치지 않고 세력을 금하여 행하지 않으면 사람들이 마음으로 복종하여 천하가 평안하다.


* 『맹자孟子』「고자古子」상.



내가 당하고 만난 일이 옛날에도 드문 것들이다. 의리와 관련된 모든 고비에는 미묘함 속에 곡절이 있고, 곡절이 있는 곳에 엄정함이 있고,

엄정한 곳에 미묘함이 있음을 깨달아,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아 균형을 이룬 금칭金稱이나 옥형玉衡과 같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지금 만약

지난날 신축년(1721)이나 을묘년(1735) 이전의 해결되지 않은 대의代義를 끄집어내어 근거로 삼고 자기 주장을 고집하며 논란을 일으키면,

그것은 삭남의 예치에 가깝지 않은가. 게다가 내가 40년간 연구하고 생각하여 한 시대를 통솔하고 인도한 것이 여기에 있고, 천지의 법칙을

본받아 사방을 교화시킨 것이 여기에 있다. 그리하여 동쪽이든 서쪽이든, 높은 곳이든 낮은 곳이든, 먼 곳 가까운 곳을 구분함이 없이, 안과

밖을 가림이 없이 햇빛과 달빛을 받고 서리와 이슬을 맞으며 나와 혈기가 통하는 무리들로 하여금 제각기 하나의 내극太極을 갖추게 했으니,

이것이 조정 신료들이 일찍부터 나를 믿는 까닭이다.



* 금칭金稱: 정조가 종종 쓰는 말로,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룬 상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 삭남의 예치: 실제 통치력이 미치지 못하는 먼 북쪽과 남쪽 변경에 둔 행정기구.




어제의 삼전三銓[이조참의] 문제를 여기에 함께 논하기에는 부족하지만 거기에도 의리가 있으니, 주자의 글에 '큰 일에는 큰 합벽闔闢이

있다. 라고 한 것이 진실로 그것이다. 정원貞元처럼 훌륭한 조사朝士가 많지 않아 잠랑潛郞의 옛 자취를 오히려 기억하고 호적을 조사하여

상주하라고 특별히 명령하여 관품官品을 높여주는 단계로 삼았는데, 삼전의 행위는 과연 무슨 뜻이었는가? 혈구絜矩의 의리가 있지 않은

곳이 없다. 정자程子가 말하기를 "성의로 사물을 대하고 자기의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까지 미치게 한다." 라고 했다. 비록 연나라 사람이나

초나라 사람이라도 할 수 있으니, 오히려 공정하게 대하고 그들이 핍박당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하물며 세신世臣에

있어서겠는가. 또 하물며 그의 처지와 같음에 있어서겠는가. 경은 나라를 몸으로 생각하는 대신으로서 마침 경연의 상석에 있으니, 전신

銓臣을 나무라고 깨우쳐 임금의 뜻을 밝히고 심오한 의리로 비유해야 하거늘, 계교가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것에서 벗어나지 않다가

갑자기평원의 야생마에 의지하여 도리어 갑작스런 퇴폐풍조를 조장하였으니, 이는 실로 평소 경에게 기대했던 바가 아니다.


* 합벽闔闢: 열림, 우주의 생성원리. 여기서는 사물의 일반적인 원리를 말하는 것으로 보임.『주자어류』권 115 「훈문인」3

* 정원貞元: 당唐 덕종德宗 연간. 조정에 훌륭한 인재가 많았다. * 잠랑潛郞: 재능이 있으면서도 낮은 관직에 오래 묻혀 있는 인물.

* 혈구絜矩: 법도, 또는 도덕적 규범.  * 세신世臣: 대대로 공훈이 있는 집안 출신의 신하.

* 전신銓臣: 인사를 담당한 신하. 구체적으로는 이조참의를 말함.




옛날 진晉 주백인周伯仁은 임금에게 신임을 얻은 것이 경만 못했지만 오히려 무홍茂弘을 구원했고, 가까이는 송宋 이연평李延平은 지위가

 경에게 미치지 못했지만 또한 높은 뜻을 펼쳤다. 경이 그렇게 전적으로 신임을 얻고 그렇게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 도리어 이조참의를 위하여

 변명하는 거조를 취했으니, 어찌 그렇게 전현前賢들과 동떨어짐이 심한가? 경이 이제 늙어 머리가 허옇게 셌는데, 세속의 먼지 속을 출몰

하고있으면, 어찌 노년의 영광을 말할 수 있겠는가. 경들이 의지하여 사람들을 호령하는 것은 바로 이른바 '독신篤信' 두 글자다.

내가 실로 한 가지 정령政令도 신임을 받지 못했지만, 경들은 나를 믿음이 지나치다고 전에 이미 사람들에게 말했다. 이제 와서는 말을 주워

담을 수도 없고 지울 수도 없으니, 이른바 독신이라는 것이 본래 이런 것인가? 일이 만약 위기危機와 한적漢戝에 관련되었다면 당초 내가

어찌 이렇게 했겠는가. 경의 마음이 실로 숨김이 없는 데서 나왔기에. 나도 숨김이 없는 의리로써 다시 이렇게 자세히 말한다.

모름지기 잘 알아듣기 바란다.


* 위기危機와 한적漢戝: 원래 '한과 적은 양립할 수 없다' 라고 한 제갈량의 「후출사표後出師表」에 나오는 말로,

한漢은 촉한을, 적戝은 위魏를 가르키는데, 여기서 한은 정조의 친위세력을, 적은 반대세력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32.1×11.8cm                                                                                        32.1×46.5cm

기미년(1799) 5월 3일 아침. (정조 23년)


밤비가 크게 내려 천만다행이다. 밤새 평안한지 문득 궁금하다.

나는 갈증이 조금 덜하여 다행이다.

편지에 쓴 일은 잘 알았다. 초기草記를 도로 출급하니, 귀양가는 수령의 예에 따라 사조辭朝하게 하라.

이제 와서 어찌 감히 다시 혹 머뭇거리겠는가. 모름지기 즉시 내려 보내는 것이 어떠한가. 편지 가져온

하인이 비를 만나, 이제야 보낸다. 이만 줄인다.






24.8×36.4cm. 기미년(1799) 5월 26일 저녁. (정조 23년)


27.3×42.7cm


33.0×12.8cm                                                                                   32.8×42.6cm


낮에는 구름이 모였다가 밤에는 문득 별빛이 초롱초롱해져 비가 내릴 가망은 까마득하니, 애만 탈 뿐이다.

밤새 안부가 또 평안한가?

나는 갈증, 체증, 현기증, 피곤증과 더불어 한 입으로 다 말할 수 없는 온갖 잡스런 증세가 있다.

연사흘 상참常參에 고사故事를 서술하려 했으나 정력이 미치지 못하니, 그만한 아타까움이 어디 있겠느냐.

신야申也의 일은, 지나간 옳지 못한 인간의 일을 반드시 꺼낼 필요는 없다. 경 또한 사람들에게 분석하여 말하기를

'대각臺閣의 풍채요, 또한 아름다운 일이다. 융적戎狄은 치고 용사龍蛇는 몰아낼 뿐이다. 이것이 바로 성인의 심오한 뜻이니,

그 무리의 점점 물든 더러움이 하루아침에 씻어져 깨끗해질 것이다.' 라고 할  따름이니, 다만 허락하고 인정하여

스스로 새로워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는 것이 마땅하다. 어찌 과거의 일로 허물을 잡아 이미 개과천선한 후에

그렇게 죽이고 처벌함으로써 착한 데로 향하려는 마음을 막을 수가 있겠느냐?


* 상참常參: 의정議政, 중신重臣, 시종신始終臣이 날마다 편전에서 임금께 정무를 아뢰는 일.

* 신야申也: 대사간大司諫 신헌조申獻朝.

* 융적戎狄: 융은 서쪽 오랑캐, 적은 북쪽 오랑캐로, 주나라 초기에 주위의 여러 종족을 쳐서 무찌른 것을 말한다. 『시경』 「노송」.

* 용사龍蛇: 우禹가 치수를 하며 사나운 짐승을 중원에서 몰아낸 것을 말한다. 『맹자』 「등문공」하.



이렇게 처분하는 것이 바로 전에 이른 바 '성인의 깊은 뜻' 으로 사람들에게 거듭 말하고 또 말해도

지루하다고 싫어하지 않고 반드시 경청하여 믿을 것이다. 이것이 또한 몽상夢相이 이른 바 '성덕聖德을 높이는 한 가지 실마리' 다.

만에 하나 여기서 어긋나서 차호류천差毫謬千이 되지 않을까, 정말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걱정스럽다.

깊이 말하지 않아도 반드시 이해할 것이다. 깊이 헤아려라. 대저 물物에 있으면 의義가 되고, 사事에 있으면 리理가 된다.

같음 가운데 다름이 있고, 옳은 것 같으나 혹 그르다. 반드시 이 금칭金秤이 균형을 이룬 연후에 그것을 의리라고 할 수 있다.

의리는 일을 대하고 만물을 대하는 곳에 있으니, 경과 같은 사람이 머리부터 쪼개어 부수어 철저히 발휘하는 것이 정말 마땅하다.

성인을 높이고 정학을 지키려는 나의 고심과 상도常道와 권도權道에 의거하여 균형을 이루려는 나의 본듯을 아는 자는 더욱 잘 알 것이고,

모르는 자는 비로소 알 것이다. 바라건대 모름지기 처하는 상황에 따라 노력하라. 그리고 신야를 불러 반드시 이러한 도리를 설명하고

아울러 어리석은 무리를 깨우칠 수 있는 방법을 힘써 말하라. 전 충청관찰사[錦伯]의 처리 또한 그 사람을 위하는 마음에서 나왔다.

하하. 이만 줄인다.


* 몽상夢相: 김종수金鍾秀(1728~1799). 본관은 청풍으로 벽파僻派의 영수.

* 차호류천差毫謬千: 처음의 털끝만한 차이가 결말에는 큰 차이를 빚는다는 말.






32.2×13.2cm                                                                                    31.7×45.4cm

기미년(1799) 11월 4일 초저녁



낮 동안 평안한가?

들으니, 내일 청좌廳坐하여 상소한다고 하는데, 내용의 개략을 보여 주는 것이 어떠한가?

각별히 다듬어 들추어낸다는 비방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를 바랄 뿐이다. 이만 줄인다.






32.1×13.0cm. 기미년(1799) 11월 5일 밤. (정조 23년)


인사말은 생략한다. 우상右相의 처의處義가 이렇게나 점점 긴박하니, 경이 혼자 편안하게 행공行公하는 것은 아직 논의 되기 어렵다.

지금 분등장계分等狀啓의 회계回啓는 바로 민사民事이니, 한편으로는 회계를 하고 한편으로는 재상직을 차인箚引하든지,

혹은 회계를 거행하지 않고 바로 차인하든지 즉시즉시 도모하라.

우상이 출장出場하기 전에는, 절대로 행공하는 것처럼 발설하지 않는 것이 어떠한가.


* 처의處義: 의리에 따라 처신함  * 행공行公: 공무를 집행함.

*  분등장계分等狀啓: 재해의 등급을 나누어 올린 장계.

* 회계回啓: 임금의 하문에 답하여 아룀.

* 차인箚引: 책임을 지고 사임하는 차자箚子을 올림.






24.8×38.7cm. 기미년(1799) 11월 20일 밤. (정조 23년)


32.3×13.2cm 32.2×38.7cm.


상갑上甲에 비가 내려 반드시 추울 줄로 본래 알았는데, 밤새 겨울 날씨를 비로소 아니 심히 다행스럽다.

그사이 비로소 새로 인쇄한 『춘추春秋』로 공부를 하는데, 오늘은 제 2권을 읽는다. 30일을 기한으로 삼고, 만약 한가한 짬을

 얻으면 수고로움을 줄일 수도 있겠다. 몇 년 전부터 독서를 시작하여 한 해에 한 질을 읽는 것을 목표로 삼아, 을묘년에는

『朱書百選』을 읽고, 병진년에는 『五經百篇』을 읽고, 정사년에는 『사기영선史記英選』을 읽고, 무오년에는

『팔자백선八字百選』을 읽었다. 금년 겨울의 『춘추』도 다행히 첫 뜻을 이루었으니, '뜻이 있으면 끝내 이루어진다.'

라고 할 수 있는가? 껄껄껄. 독서의 효과는 가슴의 막막함과 답답함이 사라지고 흩어진 데서 이미 얻었으니,

요즘 기분은 구름이 걷힌 것과 같을 뿐만이 아니다.


평안감사[기백箕伯]의 망望은 실로 '이것이 아니면 안 되는가' 라는 혐의가 있으나, 적당한 사람이 없으니 그것을 어찌하겠는가?

의주부윤[灣尹]의 망은 마침 교묘하게 잘 되었다. 남이 하는 말을 즐거이 받아들여야 진실로 마땅하나, 대신이 임금을

섬기는 것은 일반 관리와는 다르다. 오직 그 사람일 뿐이다. 진실로 큰 사단에 연루되지 않았으면, 어찌 버릴 수 있겠는가?

 의주부윤은 근자에 자못 좋아지고 있어, 심지어 남당청증소청南塘請贈蔬廳에도 도운 바가 있다고 한다.

 그 집안으로 볼 때 이러한 거동을 한 뜻을 알 수 있으나, 이렇든 저렇든 따질 것 없이 외직은 내직과 다르니,

이것을 어찌 아첨이라고 해서 되겠는가? 내가 그 때 오히려 즉시 추천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 알고 있었다.


나는 본시 산론酸論이다. 그리고 몽상夢相[김종수金鍾秀]의 준론峻論도 익히 들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추천하지 않을 필요는 없다. 천망薦望을 보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모름지기 흔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믿지 않는 것이 어떠한가.

민유閔兪의 추천은 관직을 위하여 사람을 택하는 뜻이 전혀 아니다. 여기에 대하여 사람들이 사정私情이 개입되었다고 하면,

무슨 수로 스스로 해명하겠는가? 근자에 들으니, 당옹塘翁[한원진]의 일 후에 피차의 쟁론이 심히 듣기에 거북한데,

그것이 어찌 이런 일이겠는가?


김이영의 이른바 변문辯文은 더욱 놀랍다. 응대하지 않으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게다가 길게 쓴 발문跋文은

전혀 긴요하지 않은데, 그 자는 무엇 때문에 이런 짓을 하여 스스로 모욕하고 선배로 하여금 모독을 취하게 하느냐?

정복환鄭復煥이 자신의 덕德으로 믿음을 전파한 것은 그 자신에게 세 가지 덕일 뿐만이 아니다.

나의 이 뜻을 알게 하는 것이 어떠한가. 희야羲也[김희순]는 근자에 왜 소식이 없는가?

역시 엄하게 타이르는 것이 좋겠다. 이만 줄인다.






33.2×11.7cm                                                                             33.2×46.2cm

경신년(1800) 2월 11일. (정조 24년)


편지를 받아 기쁘다.

대신이 금령을 위반하는 행동을 결코 해서는 안 된다. 그 중에서도 경은 더욱 특별해야 마땅하다.

어찌 털끝만큰이라도 체통을 손상시켜야 되겠는가. 어제 답장에서 이미 말했는데, 어찌 바로 굳게 믿지 않고 이렇게 다시 물어보는가?

오직 다음 경연에서 등대登對 할 때, 잡아가두라는 청을 다시 말해야 될 뿐이다.

이조판서가 인사에서지천 遲川[최명길崔鳴吉]의 후손인 정鼎과 항恒의 종손從孫을 선공감繕工監에의망 擬望 했는데,

특히 청음淸陰[김상헌金尙憲] 후손의 본색이 아니라, 안타깝다. 이만 줄인다.


 * 정鼎과 항恒: 최명길의 손자인 최석정崔錫鼎(1646~1715)과 최석항崔錫恒(1654~1724).






27.1×11.2cm                                                                                   26.6×29.5cm

경신년(1800) 윤4월 29일 새벽


차대次對는 새벽을 기다려 하려 한다. 조금이라도 자강自强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초안은 반드시 베껴서 사용하되, 본래 초안은 베낀 후 들여보내라. 두 유현儒賢 집안일은 먼저 상주하는 것이 좋다,

그 아래 윤야尹也의 일과 그 아래 이야李也의 일을 하는 것이 어떠한가?

 이만 줄인다.



인용서적 / 국립중앙박물관 발행 『정조임금 편지』






Elegy - Jethro T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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