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지다





흔들어 깨워 연결 시키는 예술가


강익중 姜益中, b, 1960








청주에서 태어났다. 미술대학을 졸업한 후 1984년부터 미국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다.

1994년 휘트니 미술관에서 백남준과 <멀티플 다이얼로그 ○○>전을 열었고,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을 수상했다.

2001년 UN본부에는 「놀라움에 찬 세계(Amazed World」를, 2005년 알리 센터에는 「희망과 꿈」을 선 보였으며,

 2013년 순천만 정원 엑스포에 세계 14만 5,000여 어린이가 그린 꿈을 표현한 작품으로 인도교 「꿈의 다리」를 설치했다.

2014년에는 한반도 DNZ 내 임진강에 평화를 상징하는 인도교 「동그라미」를 설치할 계획이며,

2014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한국 대표 건축가로 그 안을 선보인다.









서른둘이 되던 1992년, 강익중은 뉴욕 퀸스 미술관에서 단독 전시회를 가졌다.

불곰이 나무 기둥을 할퀴어 삼나무 숲에 영역을 새기듯 세계무대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2년 뒤, 현대미술계에서

실험성과 권위라는 양날의 칼을 쥔 휘트니 미술관에 그를 불렀다. 거장 백남준과 함께하는 <멀티플 다이얼로그 oo> 2인 전이었다.

그게 1994년이었다. 그리고 1997년, 그는 베니스 비엔날레에 가게 됐고, 그곳에서 특별상까지 거머쥐었다.

긴 여명 뒤에 불쑥 솟아나는 태양처럼 그는 순식간에 빛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대부분의 인재가 세상에 드러나는 방식,

오랜 숙련의 시간을 보내며 준비된 재능이 기회를 만나 세상에 자리를 넓혀가는 그런 경로 말이다.






「행복한 세상」, 3,700개 이상의 7.6×7.6cm 타일로 구성,

뉴저지 프린스턴 시 공립도서관 벽화, 2004




강익중은 그렇게 선명하게 돋보인 다음 기존과는 다른 길로 그의 미술을 끌고 갔다.

많은 도움과 기회 속에서 이룩한 명성을 더 많은 이들이 세상을 평화롭게 누리도록 하는 데 쓰고자,

 미술관을 떠나 광장으로 나아간 것이다. 10여 년 동안 그는 생활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그림을 걸었다. 공공미술이다

그의 메시지는 「행복한 세상Happy World」을 통해 수십 년 갈등하던 프린스턴 시 주민이 화해하는 열쇠가 되기도 했고,

대한민국 사람들의 마음에 통일의 염원을 달구는 「십만의 꿈」이 되기도 했다. 그의 설치는 2001년 유엔본부**에, 2004년

대한민국일산 호수공원에, 그리고, G8 정상회담이 열렸던 독일 하일겐담***을 지나 지금도 병원, 지하철역, 거리 등에서 이어진다.

우리 기억에 남아 있는 광화문 복원공사 가림막(「산과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작업들까지, 그림으로 모아진 염원이

흩어지는 흔적 속에서, 그의 메시지는 화학작용처럼 세상을 출렁이며 퍼져나간다.


강익중이 내게 들려준 그의 예술의 중심은 이러하다.




제게 있어 미술 작업은 말이죠. 요리로 비유해 본식本食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어린이와 함께하는 작업입니다.

그 외에는 다 전채이고 후식이예요. 베니스 비엔날레가 끝난 당시 그림과는 조금 멀어졌어요. 내 문제부터 풀자는 생각이 들었죠.

'내 땅이 갈라졌는데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20년 뒤에 북에 있는 철수와 남에 있는 영희가 만나게 하자.

세계도 함께 어울리게 하자.' 그러면서 미래를 말하는 프로젝트들을 했죠.

 누군가 제가 죽고 어떤 말이 남길 바라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어린이와 함께한 작가 강익중' 이라고 기억되고 싶습니다.










그는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고 미국 뉴욕으로 갔다. (····)


1980년대 뉴욕에서의 유학 생활은 하루 12시간의 점원 일과 잡역으로 채워졌다. 그림 그릴 시간이 없을 정도로 생활에 치여 있었다.

그래서 골똘하게 짜낸 작업 시간이 이동 시간이었다. 주머니 속에 들어갈 작은 캔버스를 만들어 지하철 객차 안에서 작업한 것이다.

사방 7.6cm(3인치)짜리 작품의 시작이다. 객차 안의 군상, 일상의 단편, 영어 단어 암기 등 그의 하루가

문자나 기호, 그림으로 기록되었다. 이런 이미지들은 모두 융합되어 강익중이 바라보는 '나'로 표현된다.

동양과 서양, 선함과 악함, 얻음과 잃음, 기쁨과슬픔 등이 커다란 줄기를 이루며 나타난다.








또한 이 작은 손바닥만 한 작품 1만8,000점이 모여

「모든 것을 던지고 더해라Throw Everything and」(1994)가 되기도 했고,

 6만여 개가 모여 「삼라만상」(2009)이 되기도 했다.

한 화면이 무한대로 증식하며 무한대의 세상 이야기를 전하는 작업이다.


그에게 물었다. 왜 아직까지 이어붙이고 있는지······

불편하게 들릴 수 있는 질문이었지만 그의 대답은 부드러웠다.



저한테 편해요. 옛날에는 3인치 작업할 때, 사람들이 흉봤어요. 작은데 보이기나 하느냐고.

이제는 아이폰이 있어서 사람들이 더 작은 데를 들여다보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됐죠.(웃음) ······ 하나의 물방울이 모여서 바다를

이룰 수 있잖아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생각이 들어요. 제 마음이 작은 물방울이라고 하면, 그 물방울이 어망에 걸려 있어요.

그 물방울에 어망이 또 비쳐요. 어마어마하게. 내가 연결되어서 하나의 큰 바다를 이루지만,

또한 내 작은 물방울에 어망이 비치는 거예요. 그게 우주예요, 사람이고.








「영어를 배우는 붓다」, 3,000개의 캔버스(각각 7.6×7.6cm)에 영어 표현

초콜릿으로 감싼 부처 상(108×40×40cm) 2000, 루트비히 미술관, 퀼른




(·······)

그는 그의 직관으로 「오페라를 부르는 붓다」「영어를 배우는 붓다」 「초콜릿을 먹는 붓다」등을 짜 세상을 자극했다.

그에게 붓다의 의미를 물었다. 2010년 9월 뉴욕, 맨해튼에 있는 그의 스튜디오에서 한 인터뷰다.




붓다·······

 제가 알기로는 제가 붓다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붓다가 되어서 영어도 배우고, 초콜릿도 먹고, 이탈리아 오페라도 부르고

그렇게 작품으로 등장하는 거죠. 그러니까, 나와 너가 아닌 모두가 되는 겁니다. 수면 아래로 내려가고 또 내려가면

하나의 핵이 있잖아요? 씨가 되는 건데, 그 씨앗을 모두가 공유합니다. 그 씨앗이 붓다가 되는 거라고 봐요.

생명성生命性이요, 붓다의 그 작은 핵으로 세상을 보는 거죠.


재미있는 예가 있는데요. 존 케이지라는 분이 아침마다 창가에 앉아 먼지를 보면서 명상을 했대요.

그분이 어떻게 명상을 했느냐 하면, 본인 스스로 먼지가 되어 자기를 바라보고, 그렇게 바라보는 자기를 또 쳐다보고,

그렇게 재미 있게 놀았대요. 스스로 먼지가 되면 알갱이만큼 작아질 수 있고, 작아진 눈으로 봤을 때, 나머지 세상은

엄청나게 크게 다가오죠. 그런 스스로를 또 관찰하고, 자기를 보는 자기를 또 보고, 먼지는 가벼워서 어디든지 통과할 수 있죠.

우리가 생각하는 이고ego나 깨달음은 너무 무겁잖아요. 먼지처럼 됐을 때 자유로워집니다. 그게 생명성이예요.

그것들이 다 존재하고 있는 부처님이고요. 저한테 부처님이 몇 분 계시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부처님은 제 살갗에서부터 우주 끝까지 꽉 차 있어요. 그리고 다행히 제 안에도 있어요.

 우주가 얼마나 큰가요. 그 큰 곳에 생명성이라는 것이 꽉 들어차 있습니다.

거기서는 다 하나가 되는 거예요.







(······)

그는 1999년에 「십만의 꿈」을 준비하며 북한 당국에 어린이들 그림 5만 장을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한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은 비워진 채 '침묵의 벽'으로 이름 지어졌고, 작가는

그 후로도 계속 답을 기다리고 있다. 강익중은 2002년에 평양을 방문해 그의 또 다른 꿈이었던 임진강 「꿈의 다리」를 준비했다.






   









남북 어린이와 세계 어린이들의 꿈을 담은 그림 벽돌로 지어질 다리로, 그의 그림과 세계 어린이들이 보내온 그림

14만5,000여 점이 다리를 채우게 된다. 그리고 마침내 '꿈의 다리'는 2014년부터 제자리에 그 뜻을 뿌리내릴 수 있게 됐다.

그것은 「동그라미」라고 제목을 바꿔 DMZ 내 임진강 위에 세워진다. 인도교로 동그랗게 만들어질 다리에는 남과 북으로

 두 개의 출입구가 나게 된다. 그 다리를 건너는 관람자가 만약 통일 이후에 발을 내딛는다면, 북으로 난 출입문을 통해

북한 지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이는 긴장 지역인 한반도의 평화를 통해 세계 전체가 안녕을 꿈꾸는 희망을 상징한다.




강익중이 정의하는 미술은 딱 두 가지다. '흔들어 깨우는 것' 그리고 '이어주는 것'.

그는 공부를 마치고 더욱 골똘하게 고민했다. '도대체 그림이란 무엇일까?' 라는 화두다.



학교 마치고 너무 창피하더라고요. 남들은 가방 들고 어디론가 쫙 가는데, 저는 혼자고 갈 데도 없는 거예요.

내가 뭐하고 있는 거지? 내 영혼을 철학이라는 바늘로 깨우는 겁니다. '강익중 자면 안 돼!'

철학은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짚어주는 바늘이죠. 그 바늘로 나를 찔러야 해요.

내가 책을 많이 읽는다고 철학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해요.

 창문으로 보는 나를 다 모으는 거, 그게 철학의 시작이예요.


그림도 마찬가지죠. 우리가 천지인에서 나왔듯이, 땅을 밟고 하늘을 우러러보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거든요.

인간은 땅을 밟지 않고선 살 수 없으니까, 바닥에서 힘을 가져와 바로 서서 안테나같이 심을 바가아 하늘을 바라본다는 것,

그게 바로 원리예요. 예술은 흔들어 깨워 연결시키는 건데,

결국 내가 서 있어야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연결되어 작업이 생명성을 갖게 되죠.







강익중은 자신이 아는 것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조금 알더라도 자신이 아는 것을 그리고자

주위에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작품으로 옮겼다. 편한 것, 익숙한 것부터 모아나간다는 작업 방향은 그가 작가로서 건져낸 깨우침이다.

그리고 그는 2010년부터 「내가 아는 것Things I Know」이라는 제목으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세상사에 능통하고 미래를 예측하고자, 우리는 지식을 좇고 정보를 탐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와 동시에 사유하지 않으면 세상을 내 힘으로 읽어내는 눈을 뜨지 못한다.

결국 남의 생각을 지식이라 받들며 휘둘리면서도 알지 못한다. 지식만을 좇다 보면 무거워진 머리에 눌려 내 마음의 소리도,

타인의 마음이 외치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강익중의 '내가 아는 것'에서 시작하자는 주장도

솔직한 모습에서 관객과 마주하는 출발점을 가리키는 것같다.


그가 들려준 어느 화가의 이야기가 있다.

다리가 불편했는지 화가는 늘 방안에서 작업했다고 한다. 그는 방 안의 정물만을 그렸다. 꽃, 창틀, 커튼, 책꽂이······

그 사람의 모든 그림 소재는 방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밖의 풍경을 그린 것만 봐도 밖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밖의 풍경을 그린 것도 아닌데 그림 속 방의 요소만으로 세상의 변화가 감지되는 그림이었다. 책꽂이에서 나무가 연상되는 작품이라 할까.

강익중은 깨달음 역시 이와 같기에 작가로서 시작해야 할 지점은 바로 스스로 찾아낸 그곳이라고 조언한다.

 또한 그림의 생명성은 붓을 내려놓는 그 시점에 담긴다고 귀띔해주었다.


그의 말을 듣고 음악 하는 이들을 생각해봤다.

득음의 경지 역시 힘을 뺄 때 도달할 수 있다. 화가의 작업도 마찬가지다.

기교와 기술을 연마하고 꽉꽉 채워내던 자신을 다시 비워내며 도달하는 그곳, 나무로 치면 겨울나무일 것이다.

무성했던 시절을지내고 군더더기를 털어낸 몸통으로 곧 뻗어 나올 초록의 생명을 잉태하고 있는 당당함 말이다. (······)



담백하다는 것은 바로 경지에 올랐을 때, 다 버리고 그냥 하는 거예요.

그냥, '하되 하지 않는다' 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 경지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하고 있지만, 하지 않는 거죠.

 또 하고 있지 않지만 하는 거고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장사, 글쓰기 비행기 운전같이 다른 많은 직업에 몰두하는 것과 차이가 없어요.

결국 하나를 보고 가는 거죠. 그런데 그 하나를 구하지 않고, 사업해서 돈을 벌겠다. 그림을 그려서 명예를 덛겠다. 그러면 어긋납니다.

세상에 선과 악은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래도 있다고 하면, 집중과 산만이예요. 제가 말하는 집중은 그저 내려놓는 거예요.

가운데다 마음을 내려놓는 겁니다. 새가 가만히 앉듯이 내려놓을 때. 그게 선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강익중에게 2007년부터 발표해온 그의 작품 「달항아리」연작에 대해 물었다.



달항아리를 만든 분이 왜 대단한가 생각했어요. 대단한 도공이 만들었나?

그 형식이 대단한가? 흙이 특이한가? 달항아리 작가가 한두 명이 아닐 텐데······ 다 기막힌 거예요.

왜냐면요. 마음을 비우고 했어요. 그 사람도 기술자죠. 숙련된 것을 그냥 무심으로 만드는 거예요.

숙련된 손가락에서 나오는 그 경지에서요. 그 다음에 이 사람 심성이 나올 때, 일부러 애쓰지 않아도

몰입하면서 꾸준히 그 기교가 다 이뤄지고, 하나 더 심성이 들어가 완성되는 겁니다.









'어느 작가를 좋아하세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강익중은 이렇게 대답한다.



이름은 모르는데요, 금동미륵반가사유상 있잖아요? 그걸 만든 분입니다.

 미륵반가사유상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왔을 때 미술관으로 매일 출근했습니다. '와 내려놓았구나!'

금동미륵반가사유상에는 남김없이 내려놓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잔잔한 미소가 있습니다. 조각 작품을 만들다 보면

대상이 누구이든지 결국 작가 자신의 얼굴이 작품에 묻어 나오게 되는데요, 천 년 전의 무명 작가는 내려놓을 때 내려놓을 줄 아는

 행복한 작가였을 겁니다. 아마 순수하고 당당한 달항아리를 만든 도공들의 마음도 다 내려놓은 마음이었을 겁니다.

걸을 때는 걷고, 들을 때는 듣고, 먹을 때는 먹고, 잘 때는 자고, 웃을 때는 웃고, 바람 불면 바람에 안기고······

내려놓아야 할 때 내려놓을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2013년을 보내며 강익중은 대나무와 바람, 분청을 그리고 있다.

뉴욕에 사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고향의 바람과 흙이 더욱 그리워진다고 한다.

작업실 마당에 깻잎, 상추를 심어서 여름 내내 행복했고, 찬바람 나자 국화가 봉오리를 열기 시작했다.

그가 직접 적은 작가 노트의 한 구절을 전해왔다.



맨해튼 빌딩 숲 사이로 바람이 분다.

고향의 대나무 숲 바람이 돌고 돌아 이제야 왔네.

바람으로 섞이고 땅으로 이어진 이 세상.

기쁘고 감사하다.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의 저자 안 희 경








A Place In The Sun - Ganda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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