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게 바라본 일상의 이면




사진으로 현대미술의 장을 넓힌 시네마토그래퍼


제프 월 Jeff Wall, b, 1946









1946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났다. 20대 후반부터 노바스코사 대학을 비롯해,

아이먼 프레이저 대학교,부리티시 콜롬비아 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교수로 재직했고,

1977년부터는 지하철 광고판 같은 대형 스크린에 라이트박스로 비춘 사진을 선보여 켜켜이 쌓인 의미를 전하고자 했다.

2뉴욕 MoMA(2007), 시카고 현대미술관(2007), 런던 테이트 미술관(2004), 파리 죄드폼 미술관(1994) 등에서 회고전을 가졌다.

핫셀블라드상((2002) 을 수상했고 캐나다 최고 훈장인 캐나다 훈장(2007) 등도 수훈했다. 그의 사진에는 인종, 빈곤, 소외, 문명,

 개발 등의 이슈가 일상에 놓인 그 모습 그대로 다층적으로 포착되어 있어, 시대이 좌표를 읽게 하는 다큐멘터리 정신이

 살아 있다는 평을 받는다. 제프 월의 사진은 주제를 시각적으로 완성도 있게 재연하는 드라마 같은 다큐멘터리다.




뉴욕행 밤 비행기를 타려고 공항 검문대에 섰을 때였다.

철 지난 부추를 벗어 바구니에 담고, 연두색 스카프와 보라색 트렌치코트를 풀어놓았다. 내 손끝에 따라붙는 눈길이 느껴졌다.

보브 헤어 단발머리에 등이 깊게 파인 하얀 원피스를 입은 금발 청년이다. 두터운 마스카라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그의 속눈썹에 뭉쳐 있다. 허벅지까지 분홍빛 맨살덩어리를 내보였지만, 여자로는 그껴지지 않았다. 허들을 잘 넘게 생긴

 매끈한 사내로 보였다. 그래도 살굿빛 립스틱은 그와 어울렸다. 주목받고 싶은 열망에 들뜬 눈, 남성의 기운이 감춰지지 않는 몸,

그러나 그의 눈은 소녀 같았고, 맑았다. 그를 기록하고 싶어졌다. 제프 월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카메라를 들이댈 용기가 없는

 나 자신을 책망했겠지만, 당시엔  잠자코 상황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 있었다. 사물의 실체가 조금은 감춰지는 밤,

공항이라는 다종多種의 사람이 모인 공간, 그럼에도 도드라지는 청년의 존재, 주위 배경은 물 흐르듯,

그 청년을 중심으로 어떤 시선의 소용돌이조차 일으키지 않고 흘러가고 있었다.

청년은 내 속에 있는 동아시아 문화와 캘리포니아 특유의 '공존'이라는 질서,

 그 차이 너머에 있는 인간의 심성을 화두처럼 끌고 가도록 자극했다.


제프 월은 사진을 현대미술의 범주로 포함시킨 작가라 칭송 받는다.

그는 감동의 순간을 카메라도 찍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리고 그 순간을 재현하여 사진으로 만든다.

자신에게 채택된 장면을 곱씹어서 그 장면이 표출하는 세상의 구조를 탐구한 다음, 그것을 재연하고 카메라로 포착하여

세상에 내놓는다. 그래서 그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잇으면, 마치 오븐 속에서 한 겹 한 겹 살아나는

 페이스트리처럼 이야기들이 층층이 일어난다.







그의 초기작 「우유」에는, 언젠가 어느 길모퉁이에서 마주쳤을 법한 지친 사내가 한 손에 우유를 쥐고 있다.

감지 못해 엉겨 붙은 머리에서 화창한 도시의 공기와 격리되어 있는 그 남자의 삶이 읽힌다.

누런 우유봉지 위로 튀어 오른 우유 방울은 살겠다는 의지를 대변하는 양 안쓰럽기도 하다.

사실 거리의 부랑자로 보이는 그 남자가 우유를 들고 있는 모습이 어색했다.

 캐나다에서는 길거리에서 술병을 보이며 술을 마실 수 없으니, 누런 봉투 속에 있는 것은 술이어야 더 그럴싸하다.

그런데 왜 제프 월은 우유를 택했을까? 궁금했다. 제프의 답은 간단했다. 우유는 그 남자가 선택한 것이었고, 자기는 그저보았을 뿐이라고.

제프는 피사체가 휘저었던 자신의 통념이 무엇이었는지 집요하게 파고들어, 주제의식을 부각 시킨 「우유」로 제조해냈다.

그 사진을 보며 나는 도시의 보도블록에 앉아 있는 그 추레한 남자에게 알코올중독자라는 이름표를 덧씌웠던 나의 통념을 마주했다.

그는 자신이 작품을 하는 방식을 이렇게 말했다.


저는 사물을 아주 많이 바라봅니다. 사신에 담지는 않아요. 기억할 따름이죠.

그러면서 점차 아이디어를 얻어요. 내가 본 것을 내가 만들고자 하는 사진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그 둘이 만나는 지점을 발견하는 것이 저의 창작이예요.

일상에서 경험하고, 그 경험이 사진이 되는 기회를 부여하는 작업이죠.

주제를 위해 두 번째 기회를 마련해주는 방식입니다.




그는 자신의 작업을 '시네마토그래피(Cinemat0graphy'라고 부른다.

자신도 영화인들이 하는 방식으로 작업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기자를 케스팅하고, 리허설을 하기에,

이를 여느 사진 작업이라 하기는 어렵다. 그는 내게 시네마토그래피는 사진을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니까, 어쩌면 글 스는 작가가 일하는 것과 같은 방식일 겁니다. 작갇르은 무언가를 보고 나중에 글을 쓰잖아요?

화가도 어떤 것을 보고 난 다음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저 역시 어떤 방식으로는 사진에서 내 스스로를 자유롭게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겁니다. 제 작업은 회화와 영화 그리고 사진을 섞어놓은 느낌이죠. 이 세가지와 동등하게 사랑을 나누고 있습니다.

 제 작업은 당신이 지적하듯 정확한 의미의 사진이 아니라는 것도 맞아요. 그렇다고 회화도 아닙니다.

하지만 간혹 회화 작업과 비슷한 면이 있죠. 그리고 시네마도 아니고요. 바로 시네마트그래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필름의 한 신에서 얻는 것과 비슷한 감상을 느낄 겁니다.

내 생각에도 내 작품 속에는 퓨전fusion(섞임)이 있고, 심지어 콘퓨전confusion(gptrkffla)도 있습니다.




그의 작업에는 '섞임'도 있고 '헷갈림'도 있다. 그러나 언제나 마무리는 사진이다.

그는 사진이기에 이 모든 혼동을 끌어안을 수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진이란 매체는 그만큼 풍부한 성질을 갖고 있는 품이 넓은 매체이기에 그는 시네마트그래피를 고수한다.








「문을 미는 남자」, 라이트박스에 슬라이드 필름, 249×112cm, 1984

Courtesy of the artist






작품 4 가쓰시카, 호쿠사이, 스루가 지방의 에지리(후가쿠 36경 가운데 35번째 그림) 작품 사진

가쓰시카, 호쿠사이, 「에지리의 돌풍에 붙들린 여행객들」, 『후가쿠 36경』 가운데 35번째 그림), 1832년경.




(······)

제프 월은 공개된 프로필 사진이나 강연할 때의 모습과는 달리 온화한 성격에 설명도 풍부하게 하는 자상한 사람이었다.

깨끗한 스튜디오에는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그의 대작들이 온 벽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런던 테이트 미술관이 소장한

「돌풍(호쿠사이를 따라서)A Sudden Gust of Wind(afier Hokusai)」도 종이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은 채로 걸려 있었다.

수정 작업을 하는 중이라 했다. 이미 팔려나간 작품을 수정한다는 것이 의아했다. 알고 보니 그 당시 컬러 사진 작품을 모두

원래의 퀄리티로 보정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이 책에 실린 제프 월이 모든 이미지도 현대 디지털 기술로 복원한 파일들을

사용한 것이다.). 제프 월 뿐만 아니라 컬러 사진 작업을 하는 대부분의 작가는 세월에 너무 빨리 항복해버리는 색감 때문에

늘 골머리를 앓는다. 제프 월의 경우 그 문제를 해결하고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이다. 특히 「돌풍」의 경우는

많은 조각들을하나하나 연결해서 만든 작품이기에 그 복원 과정이 오래 걸렸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원된 「돌풍」은 다시 전시되지 않을 것이며, 언젠가 런던 테이트 미술관에 건네줄 계획만 있다고 했다.


제프 월에게 오리지널, 즉 '원본'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물었다.



처음 한 그 작품이 언제나 오리지널입니다, 그렇지만 이는 어느 날 반듸 죽을 겁니다.

색이 바래거나 더 이상 좋은 상태를 유지하기 힘들게 되는 것이지요. 그럼 그것은 더 이상 나의 사진이 될 수 없습니다.

그때 소장자들에게 새로운 오리지널을 줄 거예요. 제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오리지널을 계속 만들 수 있습니다.

물론 어느 것시 더 가치 있는가는 제가 아니라 소장자가 결정할 부분이겠고요. 그렇지만 제게 있어 더 가치 있는 것은

가장 최고로 보인는 하나입니다. 그 외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제프 월은 그날 막 마무리한 작품을 대중에게 처음 공개할 기회를 줬고 나는 이 작품을 월간지를 통해 처음 소개했다.

이 작품은 역사학자이자 수집가인 강사가 옛 의상에 대해 설명하는 강의 장면을 담고 있다. 온통 하얗고 연한 노랑으로 가득한 공간에

검은색 드레스와 모자를 쓴 여성이 그 공간이 빛을 다 흡수한 듯 광채를 뿜어내는 사진이다. 눈부신 검정이었다. 얼마 전 아내와 함께

듣고 온 강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작품이라 했다. 사진 속 여인의 몸짓이 고전적이었다. 제프에게 그 작품에서 19세기 화가 마네의

「바이올렛 부케를 든 베르트 모리조」가 떠오른다 말하며 염두에 두었는지 물었다. 실은 제프 월의 작업들 중 상당수를 마네,

 세잔, 푸셍, 고야 같은 화가들의 명작과 비교하며 거장들의 구도나 아이디어를 재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권위 있는 비평가들이

더러 있는데, 그 고정된 시선이 불편했던 터였다. 그래서 내친 김에 제프 월이 과거 명화를 의도적으로 좇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그렇게 연결 지어 보이던가요? 여인의 드레스가 12910년 거예요. 모델이 그 느낌을 살리는 제스처도 보여줬고요.

하지만 옛 명화를 염두에 두고 작업을 한 것은 평생 세 번 혹은 네 번 뿐입니다. 그리고 그럴 경우 「돌풍」처럼 그런 사실을 밝혔고요.

그런데 사람들이 내 사진을 모두 19세기 작가들의 작업과 연관 지으려 하더군요.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읽어내는 감상도 존중합니다. 느낌은 보는 이의 몫이고, 가능성은 모두 열려 있으니까요.



(······)


옛날 명화와 연계된 모든 사진 작업 역시 제게 일어난 우연들입니다. 당신이 나한테 만나자고 전화했고, 그 전화를 내가 우연히

놓치지 않아 우리가 지금 이렇게 만날 수 있었던 것과 똑같죠. 그래요, 저는 계획을 세우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가 세우는 계획이란

오직 '어떻게 사진으로 만들어 낼 것인가'와 같은 문제를 풀 때뿐입니다. 내 작업에 대한 진부한 평이 '모든 것이 계획되어 이뤄졌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모든 것이 아니라 어떤 일부만 계획되었다는 것이죠. 왜냐하면 우리가 계획할 수 없는

어떤 것이 반드시 개입하기 마련이니까요. 예술 작업의 생이란 바로 이 우연들로 이뤄져 있어요.

그리고 모든 시대의 모든 예술에서 이 우연의 메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랠프 엘리슨의 『보이지 않는 인간』서문을 따라」, 라이트 박스에 슬라이드 필름. 174×250cm, 1999~2001

Courtest of the artist



제프 월이 작품화한 소설이 있다. 북아메리카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소설 중 하나로 꼽히는 랠프 엘리슨Ralph Ellison의

『보이지 않는 인간Invisible Man』이다. 제프 월이 대학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동료 교수가

『보이지 않는 인간』을 재밌게 읽고 있다기에 20대에 읽었던 기억이 났고, 문득 그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35년 동안 기억 속에 삭혀지고 있던 감흥이 제프의 사진으로 탄생되었다.

『보이지 않는 인간』은 사회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받는 흑인들의 삶을 다룬 소설이다. 제프는 이를 한 장의 사진으로

축약해 관객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자신이 안 보이는 존재로 느껴지던 순간을 상기하게 했다. 어둠 속에 형체가 사라진

듯 보이는, 피부색이 어두운 남자의 방을 1,548개의 전구로 밝혔다. 선명하게 드러난 사내는 관객에게

등을 돌린 채로 라디오에 집중한다. 그가 소통하는 세상이다. 요즘이라면 모니터일 텐데,

점점 그 안으로 숨어 들어가는 현대인의 외로움을 비춰보게 했다.


소설을 한 장의 사진으로 압축한 구성, 제프 월의 계획은 딱 거기까지다. 마지막 순간 그는다시 우연에 기댄다.

그는 자신이 캐스팅한 화면 속 등장인물들이 '연기'가 아닌 '행동'을 하도록 가장 최소한으로 개입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다.







(······)


그가 1년에 걸쳐 작업해온 「총을 든 남자」의 경우도

사진에 등장한 모델에게 '한 남자가 빈손으로 총을 쏘는 행동을 하는 걸 봤다'라고만 말해줬을 뿐이다. 자신의 감상도 전하지 않고,

가능한 한 조금만 말함으로써 그들 스스로 그 상황에 존재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원래 거기 있던 사람처럼, 그들 스스로

그 상황에 존재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원래 거기 있던 사람처럼. 그는 상대가 드러내는 그 순간을 포착하는 길을 택했다.

자신의 작품 속에 타인의 영역을 비워둘 수 있는 것은 세상일이 흘러가는 이치를 탐구해온 그만의 성찰이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제프 월의 사진에서 서로 존중하며 조응하여 이뤄지는 완성미를 본다.

그렇게 우연은 또 다른 우연으로 화면에 드러나게 된다.








제프의 작업엔 마치 사회부 기자가 쓴 고발 기사처럼 불편한 실상이 파헤쳐져 있다.

시선을 계속 두기도, 거두기도 언짢은 미련에 사로잡히게 된다. 특히 그의 작품 「죽은 병사들의 대화Dead Troops-매복 공격을

당한 뒤의 소련군 정찰병틀의 습격, 아프가니스탄 모코르 근처, 1986년 겨울」은 상당히 거대하고 사회성 짙은 담론을 건드린다.

하지만 심각한 설정과는 달리 피 흘리면서도 웃는 병사들이 보인다. 불공정한 정치 · 사회적 이슈를

기묘한 농담으로 들려주는 불랙코미디다. 과연 제프 월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죽음에 대한 이미지를 만들고 싶었어요. 일종의 사후세계요. 아주 일반적인 판타지죠. 식상한······ 만약에 행복하게 오래 살다 늙어

죽었다면, 그리 할 말이 많지 않을 거예요. 그런데 전쟁으로 죽었다면 다르죠. 전장에서 죽은 경우는 다른 어떤 죽음보다 많은 의미가

담길 겁니다. 역사적인 의미, 사회적인 의미, 정치 · 종교적인 의미 등등. 그래서 전쟁을 선택했습니다.

일종의 문학적 구조를 갖고 이야기를 써 내려가려고 노력했어요.

시민군을 제외하면 전장엣 죽는 것은 거의 젊은 남자들이죠. 만약에 당신이 병사였고 전쟁에서 죽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죽고 나서 깨어 보니 사후세계에 와 있는 거예요. 느닷없이 말이지요. 아마 주변에 있는 전우들하고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겁니다.

이것이 전쟁이 만들어 가는 죽음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잘 모르는 전쟁을 원했어요. 당시 가장 관심이 가는 전쟁이 아프칸

전투였습니다. 이미 끝났고 금방 잊혔거든요. 그런 다음에 병사들이 돌아왔습니다. 이미 그들조차 잊힌 다음이었는데 말이죠.

결국 그 전쟁은 이야깃거리조차 되지 못했어요. 그 자체가 사후세계가 되어버렸습니다.

 내가 사후세계에 대해서 쓰고 싶었던 시詩의 적절한 배경이 될 것 같았기에 그렇게 진행하게 됐습니다.



그는 사막의 전투 장면을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밴쿠버에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찍었다.

 마치 종군기자가 기록하듯 1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의 한 전투를 실내에 살려냈고, 그러고는 죽은 병사들이 웃고 떠드는 왁자한

판타지를 펼쳐 놓았다. 죽었다는 사실을 믿지 못하며 몸을 더듬는 사자死者의 당혹한 모습까지 담아낸 블랙 유머 속에서 인간세상의

비정한 구조를 짚고 있다. 상상과 서정을 잃지 않는 제프 월은 그렇게 영상으로 기록하는 시인이고자 했다.



(······)


제프 월의 작업을 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영화같은 작업에는 상당한 인력과 기자재와 자본이 투입되어야 하는데, 가난에 빠지기 쉬운

구조 속에 있는 자본주의 시대 청년 예술가들은 무엇을 꿈꿔야 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핵심 산업으로 자리 잡은 영화의 경우 투입되는

자본의 규모에 비례하여 안정적으로 주목받을 수 있다. 판을 키우는 것이 주요 전략이 된 마당이다. 결국 '현대미술도 산업화의

길을 가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제프에게 당돌하게 돈과 예술작품의 관계에 대해서까지 물었다.



재정적인 부분에서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처음에는 작업하는 데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았어요. 초기 사진인 「우유」를 예로 들면

거의 돈이 들지 않았죠. 사진 작업을 하기 위해서 많은 돈을 써야 할 이유란 없습니다. 사진은 아주 싼 값에도 완성될 수 있는

작업이니까요. 저는 작품에 돈을 더 많이 쓴다고 해서 그 작업이 더 잘될 거라고는 믿지 않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주 강하게 주의를 주고 싶습니다. 제 경험에 비춰 말씀드리면, 많은 돈을 들여 2년에 걸쳐 만들었던 작품보다

 10분 걸려 생산한 작품이 더 좋았던 적도 있어요. 좋은 작품을 만드는 것과 비용 간에는 관계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