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나 아브라모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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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茶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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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관객을 깨우다





고통을 받아내어 해방시켜주는 치유사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Marina Abramovic, b, 1946











유고슬라비아 벨그라데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빨치산 출신으로 구 유고 연방의 국민영웅이었다.

마리나는 유고슬라비아에서 1960년대에 아티스트로 두각을 나타내었으며 행위예술가로 입지를 다졌다.

1970년대 들어 유럽 전역으로 활동의 폭을 넓혔고 반세기 가까이 정열적 작품 활동으로 주목받아왔다.



그녀는 행위자와 관객 사이의 관계를 탐험해왔고,

그 소통을 통해 물질에 압도당하는 세상에서 생명의 존엄을 자각하도록 관객을 이끌었다.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으며, 2010년 뉴욕 AoMA 회고전 이후 세상의 더욱 많은 관심을 받으며

 더 깊어진 사유를 예술로 펼쳐 보이고 있다. 그녀는 2014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에 꼽히기도 했다.

2014년 런던에서 갖게 될 전시에서는 작가인 마리나가 미술관 문을 직접 열어 문 닫는 시간까지 관객 속에서 소통할 예정이다.

특히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는 예술품이 진을 치고 있는 도시 런던에서 마리나는 관객과 예술의 만남에서 돈이라는 환금성을 걷어내고

예술 정신만으로 관객과 소통을 시도하려 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2014년 3월 13일 뉴욕에서 필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제 작가들은 스스로 전사가 되는 예술을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작품을 통해 세상이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예술적 전사의 역할 말이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 3개월간 지속된 퍼포먼스, 2010, 현대미술관, 뉴욕



(······)


이 작품에서 미술관이 열리는 오전 10시부터 문이 닫히는 오후 5시까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미술관 아트리움에 앉아 있었다.

작가는 매일 미술관에 출석하고 전시 기간 동안 관객은 작가와 한자리에 머물 수 있는 특혜를 누린다. 관객은 마리나 앞에 놓인

빈 의자에 한 명씩 돌아가며 앉고 싶은 만큼 오래도록 앉아 있을 수 있었다. 하루 종일 마리나 앞에 앉아 있다 일어난 아티스트도

한 명 있었다 그 여인은 그날 그 행위가 자신의 퍼포먼스라고 선언하기도 했다. 한 관객은 이런 의도된 시도에 순서를 기다리던

수많은 대기자들이 발길을 돌렸고, 그 중 일부는 한밤에 다시 와 줄을 섰다. 뉴욕 모마 건물은 사람의 띠로 감싸였다. 석 달 동안

이어진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회고전을 찾은 관객은 850만 명, 이는 모마 역사상 최다 관람객 기록으로 뉴욕시 전체 인구에

해당하는 숫자다. (·······) 그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인 2010년 11월에 마리나가 내게 들려준 말이다.



저처럼 그렇게 오랜 시간 움직이지 않으면, 누구라도 아주 예민해집니다. 몸 전체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돼요.

등 뒤에서부터 앞까지 관중을 느낍니다. 등, 손, 발 모든 곳에 눈이 달리죠. 우리가 움직이지 않을 때,

불필요한 다른 감각들은 문을 닫습니다. 정지합니다. 그곳엔 오직 현재만 있죠. 모든 것이 강하게 증폭돼요.

그런 다음 우리는 그곳에 진짜로 존재하게 되는 겁니다.



파도를 응시하다보면 눈은 푸른 바닷물에 고정되어 있어도, 시야가 점점 환해지고 지평선이 가로지르는 양 끝의 경계까지 한눈에

들어오게 된다. 파도 소리는 점점 커지고 들리지 않았던 갈매기 울음이 물결의 리듬을 깨뜨린다. 우거진 초록 숲 가운데에서 자작나무의

허연 몸뚱이, 외눈 같은 옹이에 눈을 두어도 마찬가지 현상이 벌어진다. 자작나무 잎 사이를 지나는 싸리 빗자루로 비질하는 것 같은

바람소리와 후박나무에 부딪혀 울고 가는 둔중한 바람소리까지 주변의 모든 것이 다른 감정으로 다가오니까. 아마도

모마 아트리움에서 감지한 세상도 이와 같지 않았을까?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관객 한 명에 집중하며

 만 명을 끌어안았고, 그럼으로써 그 공간의 에너지를 변화시켰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 『예측 불가』, 퍼포먼스, 90분, 1977, 시립현대미술관, 볼로냐



(······)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다는 제목의 뜻처럼 관객이 예측 불가한 설정 속에 놓이는 작품이다. 좁은 통로에 벌거벗은 두 남녀 예술가가

25센티미터 정도 공간을 두고 마주하고 그 사이로 관객이 통과한다. 그 작품에서 60년 동안 모마를 후원해온 노신사가 남성 연행자의

 성기를 꽉 쥐고 지나갔다고 한다. 그 기사를 읽는 순간 '왜 마리나의 작업엔 누드가 많이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

문득 그녀를 만나 물어봐야겠다는 욕구가 차올랐다. 왜 700여 시간이며, 왜 누드여야 했는지

그리고 퍼포먼스 역시 무대 연기는 아닌지, 무지함이 부끄럽지만 용기 내어 묻고 싶었다.


(······)



그녀의 작업에는 대중이 많이 찾아오지만 내용이 대중적이지는 않다.

특히 1970년대에 선보였던 초기 작은은 매우 전위적이다. 유고슬라비아에 살던 열네 살 예술학교 학생 시절부터

죽음과 예술을 추구했고, 장전된 권총으로 러시안 룰렛을 하는 작업을 하기도 했다. 다행히 총알은 그녀와 파트나의 머리통을 비껴

도스토옙스키의 책 『백치』를 관통했다. 열네 살짜리가 목숨을 걸고 예술을 한 것이다.








「리듬 0」, 퍼포먼스, 6시간, 스튜디오 모라, 나폴리




1974년 발표한 「리듬 0」에서는 아예 스스로를 오브제로 던져버렸다.

고깃덩이가 된 오브제로서의 자신을 마음껏 다루라며 관객들에게 총을 포함한 87가지 도구를 제시한 것이다.

"나는 오브제 입니다. 오후 8시부터 새벽 2시까지 관객에게 (······)가 주어졌고, 그중 한 명은 그녀에게 장전된 총을 겨누기도 했다.

찢기고, 벗겨지고, 피 흘리면서도 그녀는 고깃덩어리 오브제 역할을 해냈다. 그 퍼포먼스가 끝나고, 오브제가 모든 사회적 권한을

회복하는 그 시각, 관객들은 어떤 기분이 들었을까? 전해 들은 이야기로는 혼비백산 도망친 이들도 있다고 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1976년, 서른 살에 유고를 떠났다.

그녀는 내게 자신은 현대의 유목민이라 말했다. 세계를 떠돌며 보낸 30여 년의 시간······ 그러나

그녀는 지금 뉴욕에서 제3의 시기를 펼치고 있다.



여행을 많이 했죠. 암스테르담에서 30년을 살면서도 한곳에 결코 3주 이상 머물러본 적이 없었습니다.

심지어 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나는 유고슬라비아 예술가라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모던 유목인 같은 기분입니다.

그런데, 2001년 9월 11일 이후부터 생각이 달라졌어요. 뉴욕이 집처럼 다가왔습니다. 이곳은 미국이 아닙니다. 온 세계가 섞여 있는

메트로폴리스이며, 아주 강한 에너지가 있는 곳이예요. 이런 에너지는 우리를 진짜로 죽일 수도 있고, 아주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죠.

그렇기 때문에 예술가로서 세상이 함께 추구해야 하는 메시지를 남겨야 하는 곳도 바로 이곳입니다.







『예술가가 여기 있다.』, 3개월간 지속된 퍼포먼스, 2010, 현대미술관 뉴욕



(······)

일단 마리나가 만들어 놓은 소도蘇塗와 같은 구역에 들어오면 얼마 되지 않아 마리나의 존재를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그녀가 거기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된다. 관객이 스스로와 마주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며, 마리나는 거울이 되는 것이다.

그들의 의식을 비춰주는 거울, 그 거울 속으로 들어간 관객은 자신의 과거와 미래의 불안이 만들어 놓은 고통들이 꾸역꾸역 올라오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러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밀려 나오는 울음을 터뜨리게 되는 것이다.

마리나는 자신이 전달한 것은 오직 사랑이었다고 했다.



그 고통을 함께 느끼며 앉아 있습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전달합니다.

이것이 제가 하려던 모든 것이었어요. 생판 모르는 사람에게 모조건적인 사랑을 준다는 아이디어 말입니다.

평가 없이 준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들의 영혼을 볼 수 있었어요. 오래 앉아 있을수록, 거 깊은 마음 상태로 들어갑니다.

상대는 내 에너지를 더 많이 느끼게 되지요. 그들과 나의 삶을 진정으로 바꿔내는 경험이었습니다.



전시 내내 마리나는 그 누구와도 의사소통 하지 않았고. 길을 걷지도 않았다.

그저 앉아 있다 집에 오는 일만 반복했고 스스로를 세상에서 격리시켰다.

그 작품 자체가 3개월짜리 인생이었던 것이다.



우리 의식은 확장될 수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가능한 능력이죠. 그러나 쉽게 건드릴 수는 없어요.

오로지 어떤 마음의 경지에서만 가능한데, 제게는 대부분 몸의 경험으로 완성됩니다.

그럴 경우 극복해야 하는 수많은 통증이 있죠. 근육은 경직되고 고통은 어느 지점까지 치닫습니다. 그러고는 사라져요.

시간이 흐르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정지 상태에 들어갑니다. 현재입니다. 사실 기간의 흐름 속에 현재란 없습니다. '현재'란 개념이죠.

우리가 과거와 미래를 생각할 때만 존재하는 것이니까, 현재는 시간이 흐르지 않는 상태라고 할 수 있죠.

시간이 없는 그 공간이우리 인간이 얻을 수 있는 가장 축복 받은 곳입니다.



마리나아 대화하며 마치 구도자의 설법을 듣는 느낌이었다.

그녀가 현재에 머물도록 안내하는 그곳은 오로지 완전히 깨어 있는 무아無我의 지점이 아닐까 짐작해봤다.

좋다 싫다 하는 판단도 선입견도, '나'의 모든 의견도 내려놓은 순수 지대Pure Land 말이다.



마리나는 자신에게 깨달음을 준 잊지 못할 경험들을 내게 들려주었다.

그녀가 인도 히말라야에 갔을 때다. 오래전부터 달라이 라마와 관계를 이어오던 그녀는 티베트에 가면 늘 환영받는 손님인데,

당시에도 절에 머무르는 혜택을 받았다. 마침 10년 동안 동굴에서 명상 수행을 한 스님이 드디어 세상에 나오는 날이라 환영 법회가

열렸다. 손님인 마리나는 스님들과 한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수행을 마치고 온 스님의 몸에서

마치 화로 앞에 앉은 것과 같은 열기가 뿜어져 나왔다. 축복을 받는 느낌이었다 했다.



어떤 사람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환희롭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분은 10년 동안 명상에 빠진 상태로

자신이 발산하는 엄청난 에너지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의 긍정 에너지는 증폭되었고 존재만으로 주위를 감화 시길 수 있었던 거죠.

이날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꿔나나는 데 집중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를 바꿔야 한다는 겁니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만 하는 첫 번째 일입니다. 내가 바뀌어야, 세상이 내게서 이로움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1980년 마리나는 오스트레일리아 사막에서 알몸으로 살아가는 원주민 애버리지니Aborgine 부락에 들어갔다.

그 이야기를 듣는 동안 자석에 뿌려진 쇳가루처럼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



그들은 55도의 고온에서도 바깥에서 살아요. 타들어가는 듯한 열기죠. 뜨거운 공기가 벽처럼 몸과 밀착된 것 같아요.

꼬 그곳은 돈이 통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사냥에 의존하죠. 다 같이 먹고 서로에게 의존해요. 처음 3개월 동안은 죽을 것 같았습니다.

한 가지 정말 굉장한 일이 있었는데, 당시 수백 만의 파리들이 제 몸을 뒤덮었습니다. 떨쳐낼 재간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거기서 지낸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모든 파리가 떠났습니다. 어느 날 일어났는데 한 마리도 없는 거예요.

'왜 파리가 없지?' 알고 보니 내가 그제야 그들과 같은 냄새를 풍기기 시작했던 거예요.

내가 외부에서 온 물건이 아니라 자연의 일부가 된 거죠.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울라이, 「결합(Conjunction)」, 티베트 라마승 나왕 세파 루야.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아투마 타루루 툰가라이와 함께한 퍼포먼스, 4일 동안 4시간씩 진행, 1983



(······)

마리나는 그렇게 뙤역볕에서 1년 동안 명상을 하며 지냈고, 현대의 문명으로 돌아오자마자

작품 「발광Luminosity」과 「예술가가 여기 있다」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밤바다 건너기Nightsea Crossing」를 발표했다.







「발칸 바로크」, 퍼포먼스, 4일 6시간 동안 진행, 1997, 베니스 비엔날레



그렇게 에너지를 증폭시킨 몸으로 마리나가 세상을 향해 정치적 · 역사적 메시지를 전달한 작업이 있다.

사죄하지 않고는 도저히 지나칠 수 없었던 살육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성의 시간을 깨워 죄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기도하듯 의례를 치렀다.

베니스 비엔날레 참가작인 「발칸 바로크Balkan Baroque」(1997)이다. 마리나는 나흘 하고도 여섯 시간 동안

1,500개의 소뼈에 묻은 피를 닦았다. 그리고 세 개의 필름을 스크린으로 공개했는데, 거기에는 마리나와 제2차 세계대전의 빨치산

영웅이었던 마리나의 어머니, 아버지가 각각 등장한다. 마리나는 실험실 가운을 입고 "발칸에서 우리는 이렇게 쥐를 늑대로 만듭니다"라고

이야기하며 가족을 끔찍하게 아끼는 본성을 지닌 쥐가 어떻게 자기 가족과 종족을 몰살하는지 설명한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이 작품으로 베니스 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



흑과 백의 논리에서 용서란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베푸는 아량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서를 하기 이전에 누가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 싸울 수밖에 없고, 여기에는 다시 힘의 논리가 작용하게 된다.

세르비아계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용서'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고 했을 때, 이는 자칫 오해를 살 수도 있었다.

아무리 피에 물든 뼈를 닦으며 살육을 고발하고, 그 죄가 결코 씻기지 않을 것임을 인정했다고 해도, 그녀는 가해자의 피를 갖고 있는

세르비아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녀 역시 자신이 모던 노마드지만, 출신 꼬리표는 늘 달고 다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그래서 그 작업을 더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마리나가 제시한 방식은 서로의 고통을 바라보자는 좀 더 근원적인 접근이었다.

옳고 그름을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가 아니라 세월 따라 켜켜이 쌓여온 고통의 고리를 들여다보며

그 속에 피해자와 가해자 구분 없이 서로 동여매인 공동체임을 알아가자는 상징이었다. 서로가 서로의 상황을 깊게 인식할 때만이

보복의 반복이 아닌, 용서를 가능케 하는 이해의 싹이 틀 것이다. 죄를 묻는 과정 속에 또 다른 억울함을 탄생시켜

죄가 죄를 키워온 인간의 역사, 「발칸 바로크」는 바로 그 역사를 향해 거울을 비춰 준 것이었다.






「예술은 아름다워야 해, 예술가는 아름다워야 해」, 1975




마리나의 작품 가운데, 머리를 빗으로 박박 빗으며, "예술가는 예뻐야만 돼, 예술은 아름다워야만 돼" 하며

입술에 힘을 가득 실어 욕을 내뱉듯 독백하는 작품이 있다. 그 비디오를 보며 작품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생활 속 모습 같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배에다 유리조각으로 별을 그리며 피를 터뜨리고,

 채찍으로 때리는 장면들(「Seven Easy Pieces」(1975, 2005)은 의문을 자아냈다.







'작품을 위해 굳이 스스로를 학대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다고 작품성이 높아지나?'

영화 평론하듯 바라보게 된 것이다.


무대예술과 행위예술, 둘 다 무대에 오른 일정 시간 동안 진행되는 예술이다.

그렇다면 대체 무엇을 행위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

둘 다 조작되는 상황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일었기에 직접적으로 물었다.



행위예술과 무대예술에는 커다란 구분이 있습니다. 극장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누군가의 역할을 연기하는 사람입니다.

칼은 칼이 아니고, 피는 피가 아닙니다. 그것은 '극장 피'예요. 내면에서 창조된 감정이 아니라, 연기해야 하는 역할에서 나온 겁니다.

거기에는 일종의 '현실 아닌 것non reality' 이 있습니다. 퍼포먼스는 현실에 대한 것입니다. 실시간, 실제 공간, 실제의 상황입니다.

그것은 커다란 차이예요. 당신은 마지막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절대 알 수가 없습니다.



행위예술은 예술가(미술)의 영역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란 누구인가? 마리나의 답이다.



예술가인지 아닌지는 스스로에게 질문하면 나옵니다. 답은 단순해요. 우리가 숨 쉬는 것과 같습니다.

'숨 쉴 수 있어?' 이렇게 물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냥 숨을 쉬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죽잖아요. 예술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작해야만 살 수 있다면 당신은 예술가입니다. 자, 그런 다음 어떤 타입의 예술가인지 알아야겠죠?

나는 다행히 아주 일찍 내 도구가 퍼포먼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해골 옮기기(Carrying the Skeleton」, C-프린트, 206.4×183.5cm, 2008, 현대미술간, 뉴욕




모마에서 열린 마리나의 회고전에서 본 한 장면이 있다.

해골을 몸 위에 걸치고 찬 바닥에 알몸으로 누워 한곳을 응시하는 삭발한 중년의 여성 행위예술가였다.

마리나의 2002년 작품 「해골이 있는 누드Nude with skelton」를 재현한 것이다. (······)



마리나는 모마 회고전에 나온 예술가들을 이른 봄 아침 강물에 발가벗고 몸을 담그게 했고,

한 시간 동안 팔을 떼지 않고 단 한 번만 이름을 쓰는 훈련을 시키기도 했다.

그 중 몇 명은 이름을 다 쓰지 못하기도 했다. 침묵 속에 진행된 엄청난 집중력 훈련이었다.



내면으로 들어가는 집중력을 만들어주려 했습니다. 의지력, 절제력, 지각력을 보게 되죠.

그리고 타인과 함께 작업하는 힘도 기르게 되고요. 퍼포먼스는 공동체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행위자와 관객 사이에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타인에 대해 너그럽게 베풀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관객의 숨결을 느끼는 상황에 놓이기에 타인의 에너지까지 견뎌내야 하죠.



마리나가 집중하는 것은 교감이었다.

완전한 소통, 현재에 집중하는 능력을 강화하여 시간을 늦춰내는 과정에서 상대와 환경과 일치하는 교감이 완성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느리고 또 느리게 과정에 집중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품을 넓혀야 한다.

그 열쇠를 마리나는 '느림'이라고 짚어냈다.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현대 행위예술의 대모다.

그런 그녀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의  마음은 어디 있습니까? 여기 있나요?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죠?



그녀 스스로 늘 묻는 내용이자 우리에게 비춰주고 싶은 거울이다.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의 저자 안 희 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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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의 난해한 부분에 대한 이해는 나를 비롯한 평범한 미술 애호가들을 좌절시켜 왔던 게 사실.

 『여기, 아티스트가 있다』라는 책은 졸렬하기만한 이내 사고에 큰 경종을 울려주었다.


 작품을 탄생시킨 작가들과의 만남을 통한 통렬한 물음과

그들의 사고와 작업 의도를 글로 버무려 낸 작가의 바지런함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책 내용을 필사하는 여러 날의 과정을 통해

  '미술철학'의 본질에 대한 이해도를 크게 높일 수 있었음도 아울러 고백하련다.

 





Song From The Meadow - Samuel Re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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