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음악

1910~1945




▲ 1939년에 출시된 슈어의 유니다인 마이크로폰 모델 55



20세기는 라디오, 축음기, 전화의 발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앞으로 나아갔다.

래그타임, 불루스, 재즈 등 새로운 리듬을 주조로 한 장르가 탄생하면서 음악도 꽃을 피웠다.

뮤지컬은 대중음악의 발달을 가속화했다. 고전 음악에서는 바흐, 베토벤, 브람스가 확립한 전통이

스트라빈스키, 버르토크, 힌데미트, 아르놀트 쇤베르크가 이끌던 제2 빈 악파의 도전을 받았다.




파격적인 현대 음악의 출현


현대 음악은 출현한 지 1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날에도 현대적으로 들린다.

이러한 현대 음악이 하룻밤 새에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20세기 초반의 청중에게는

이 음악이 갑작스레 등장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당시 나온 현대 음악의 걸작들은 음악에 혁명을 일으켰다.



  


                                                 조롱의 대상

                                                                       독일의 주간지 「루스티게 블래터」에 게제된 캐리커처.

                                                                   슈트라우스가 자신이 잡은 포로의 뒷머리에 트럼펫을 불어 대면서

                                                                               '전기'로 경련을 일으키는 모습을 담고 있다.





베르크의 <서정 모음곡>

알반 베르크가 쓴 초고 악보에서 제1바이올린 파트로, 1926년 완성된 이 작품은

 12음 기법을 도입한 최초의 현악 4중주곡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1822~1971)


   





지휘하는 스트라빈스키

1958년 리허설에서 자신의 작품을 직접 지휘하는 모습으로 그는 지휘에 대해 확고한 시각을 견지했다.

음악에 '해석'의 여지가 있다는 생각에 반대했으며 철저히 악보대로 연주할 것을 주장했다.





<봄의 제전>

2011년 영국 런던 로열오페라하우스에서의 모습으로

 이 작품의 초연에서는 일부 청중의 격분을 사기도 했다.








민속 음악과 현대 음악


20세기 초반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이 이탈리아 북부와 체코 · 보헤미아에서 루마니아와 세르비아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이처럼 다양한 지역과 문화권의 다채로운 민속 음악에서 영감을 얻은 작곡가가 많았다.




        

                                             타라고토

                              헝가리와 루마니아 민속 음악에서 흔히 사용되는 이 악기는

                                  단일 리드 악기로섹소폰이나 클라리넷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날카로운 음색을 지녔다.



    





플루트

현대에 사용되는 금속 플루트는 수천 년 전 원시 시대의 단순한 악기에서 비롯되었다.

오늘날 플루트는 정교한 금속제 악기로서 매끄럽고 화사한 음색을 내며 목관 악기의 고음 파트에 광채를 더해준다.




오픈 홀 플루트

현대식 플루트는 주로 은이나 합금으로 만들기 때문에 빛나는 고음과 울림이 풍부하고 명쾌한 저음을 낸다.

사진의 플루트는 1867년 루이 로가 제작한 모델로 1847년 개발된 뵘의 키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열린 체계의 구멍 5개가 있다.






















 







   

                                 장식적인 버튼식 아코디언

                     밴드 '로스 티그레스 델 노르테'가 사용하던 버튼식 아코디언.

                     이러한 형태의 아코디언에서는 버튼이 건반 역할을 대신한다.



    





낭만주의의 최후


19세기가 끝나고 20세기가 시작될 무렵 음악계에는 모더니즘의 새 시대가 밝아 왔다.

하지만 일부 작곡가는 이처럼 급진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오히려 지나간 시대의 사조인 낭만주의에 깊이 빠져들었다.





살로메가 추는 '일곱 베일의 춤'

독일의 화가 막스 튈케가 그린 1910년<살로메>의 파리 공연 홍보 포스터.

이 오페라의 원작인 오스카 와일드의 희곡 <살로메>가 1896년에 초연된 곳도 파리다.




    





기 낭만주의 오페라

알렉산드로 포도로비치 루쉰이 1938년에 그린 그림. 라흐마니노프가 쓴 3개의 오페라 가운데

첫 번째 작품 <알레코>(1892)의 제작 당시 무대의상과 장치를 묘사했다.




   










     




   






래크타임

1세기 말 미국의 흑인 공동체에서 래그타임, 재즈, 불루스라는 새로운 장르가 출현했다

노예 해방 후에 태어난 1세대 흑인이 성년이 되면서 당김음 리듬을 기반으로 하는 장르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이다.





      




래그타임으로 부를 거머쥐다

4899년에 처음 출판된 <메이플 리프 래그>의 악보는 스콧 조플린의 평생 수입원이 되었다.

요즘 피아니스트들과 비교할 때 조플린은 자신의 곡을 느리게 연주했다.





컨트리 음악의 뿌리


1940년대 후반가지만 해도 컨트리 앤드 웨스턴은 애팔래치안, 올드타임 포크, 마운틴, 카우보이, 루럴, 웨스턴,

힐빌리 음악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렸다. 이것만 봐도 미국 민요의 유형과 특성이 참으로 다양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노래하는 카우보이

<뮤직 마운틴에서 온 사나이>(1938년)의 영화 포스터.

 이 영화에서 금광의 사기꾼을 색출하는 역으로 출연한 진 오트리는 총 93편의 B급 웨스턴 영화에 출연했다.



      

                                  어쿠스틱의 제왕

1937년에 처음 제작된 깁슨의 J200은 로이 로저스와 진 오트리가 애호하는 모델이었다.                                                                                                     

 이 모델은 깊고 강력한 소리 때문에 '플랫톱 기타(표면 상판이 평평한 기타)의 제왕으로도 불렸다.                                                                                      





틴 팬 앨리


틴 팬 앨리의 음악은 주로 감상적이거나 경쾌한 음색과 귀에 쏙쏙 박히는 선율의 대중가요를 가리킨다.

틴 팬 앨리에서는 경박한 노래도 배출되지만 미국 대중음악의 고전이 되어 오늘날까지 사랑을 받는 노래도 많다.



      




래그타임으로 거둔 대성공

틴 팬 앨리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송라이터 어빙 벌린의 악보 모음.

그의 첫 대형ㄷ 히트곡 <Alexander's Ragtime Band>(1911sus)도 보인다.


   

                                       호키 카마이틀

독학으로 음악을 배운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그는 재즈 양식으로 피아노를 연주했다.

다작형 송라이터였던 그의 댚작으로는 <Slardust>, <Georgust>, <Georgia on My Mind> 등이 있다.






조지 거슈원

작곡가(1898~1937)




조지 거슈윈은 대중음악과 고전음악 양 분야에서 영속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점에서 독특한 작곡가다.

그는 창의력을 발휘하여 브로드웨이 뮤지컬에 세련됨을 더했다.

또한 선율을 만드는 재능으로 더 많은 청중을 고전음악 공연장으로 이끌었다.





프랑스 음악의 영향

피아노 앞에 앉은 라벨을 지켜보는 거슈원(오른쪽).

 그는 동시대 프랑스 음악의 영향이 강하게 드러난 고전음악 작품을 썼다.



        

                                                    국제적인 성공

                                                                     <포기와 베스>는 <Summertime>과 <ltAin't Necessarily So>같은 노래를 담고 있으며

                                                                                          1959년 오토 프레밍거 감독에 의해 영화화되어 세계적인 성공을 거뒀다. 이 포스터는

                                                                              독일에서의 영화 홍보에 사용되었다.




    






재즈의 탄생


19세기 말 뉴올리언스엣 아프리카와 카리브 해의 리듬이 취주악과 대중적인 댄스 음악에 결합해 새로운 음악이 탄생했다.

이 장르는 훗날 '재즈'로 불리게 되었다. 20년 후 재즈는 전 세계를 단숨에 휩쓸었다.






마르디 그라

뉴올리언스의 취주악단은 모든 종류의 행사에 참여해 음악을 연주했다.

매년 사순절이 시작되기  전날 열리는 마르디그라 축제에서도 이들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코넷

루이 암스트롱이 어린 시절부터 연주하던 코넷.

1913년경 뉴올리언스의 부랑 아동을 위한 소년원에년 송치되었을 때 이 코넷으로 연주법을 배웠다.

그가 전문적인 재즈 뮤지션이 된 것은 그로부터 과 5년 후였다.




        






빌리 홀리데이

(1915~1959년)


"감정을 담지 않는다면 무엇을 하든 빈 껍데기만 남을 뿐이다."

- 빌리 홀리데이(1956년)





재즈 역사상 가장 뛰어난 가수로 평가되는 빌리 홀리데이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났지만 결국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녀는 일생 동안 인종주의와 여성 혐오에 찌든 사회와 끊임없는 투쟁을 벌여야 했다. 또한 매 순간 그녀를 괴롭혔던

내면의 고통으로 약물 중독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노래는 그녀에게 고갈될 줄 모르는 즐거움의 원천이었다.


송라이터이기도 했던 홀리데이는 깊은 감정을 담은 노래로 유명하다.

특히 <Strange Fruit>나 <Gloomy Sunday> 등 어둡고 가슴을 후벼 파는 노래에서 그녀의 풍부한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경쾌하고 신나며 독창적인 노래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여 주었다.





강한 자기 주관

단편 뮤지컬 영화의 한 장면으로 카운트 베이시의 밴드와 공연중인 홀리데이.

베이시는 홀리데이가 남들과 함께 작업하기 보다는 "자기주관대로 노래했다."고 작업을 회고했다.




       

                                                         재즈 드라마

                                                                              1946년 홀리데이가 자신의 우상이던 루이 암스트롱과 출연한 재즈 영화

                                                                       <뉴올리언스>의 스웨덴 상영 포스터.



 










인용서적: 이안 블렌킨솝, 키쿠 데이 外 著 | 서정아 옮김 『MUSIC











Lay It Down / Matt Schofie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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