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음악

(1945년~현재)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은 기세등등한 대중음악으로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재즈, 블루스, 록큰롤이 라디오, TV, 할리우드 영화 같은 매체와 결합되어 각국 사람들을 사로잡은 것이다.

관현악과 오페라는 눈이 돌아갈 정도로 댜채로운 양식으로 진화를 계속했고 '월드 뮤직'이 부상하면서

지구상의 모든 나라가 자국 음악을 뽐낼 수 있게 되었다.




실험 음악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하다 비타협적인 신세대 모더니즘 작곡가들이 유럽에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제각기 개성이 달랐지만 공통된 목표, 즉 혁명적인 작곡 방식을 고수함으로써

 평화 시대의 음악 풍조를 확립하겠다는 목표를 추구했다.




지휘자로도 활약한 불레즈

피에르 불레즈가 지휘를 맡은 스위스의 루체른 페스티벌 아카데미 오케스트라와 리허설 하는 장면.

그는 일생에 걸쳐 작곡가와 저술가로 활약했을 뿐 아니라 195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최정상급 지휘자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동양의 영향

반면에 존 케이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모더니즘을 활용했다.

동양의 철학과 불교의 일종인 선종에 관심이 있던 그는 우연성이 음악에 끼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전자 음악의 발달

새롭게 시작된 음악의 시대에는 전자 음악 스튜디오가 등장했다.

작곡가들은 악기나 음성의 제약에 구애하지 않고 전자음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작곡가의 묘책이 담긴 공구 상자, 프리페어드 피아노

존 케이지는 <소나타와 간주곡>등 '프리페어드 피아노 (현과 현 사이에 여러

물체를 부착해  음색을 변형하고 조절한 피아노)를 위한 곡을 다수 작곡했다.





현대 샹송


현대 샹송은 20세기 프랑스에서 크게 유행한 장르다.

주로 글쓰기에 능하고 카리스마 넘치며 개성적인 정치관과 시적, 해학적, 낭만적 세계관을 갖춘 작곡가 겸

연주자가 샹송을 썼다. 샹송 가수는 남녀를 불문하고 민중의 영웅으로 칭송받았다.



장르의 선구자

샹송 가수 샤를 트르네가 출연한 1941년 영화 포스터.

트르네는 제대한 후 나치 독일이 점령한 파리에서 활동을 이어 갔다.

그는 86세에 마지막 앨범을 내고 은퇴했다.



 


                                       독자적인 길을 걸은 브라상

                                                <The Bad Reputation>(1953년)은 조르주 브라상의 반자전적인 노래로

                                                 자신만의 독자적인 삶을 살려는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독일 음악의 부흥


전쟁에서의 패배로 나치가 저지른 범죄가 낱낱이 드러나는 수모를 겪은 독일에서는 한시바삐 독일 문화를

재건하자는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가장 독일적인 예술 형태인 고전 음악을 부흥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하지만 이념적으로 완전히 다른 동독과 서독, 두 나라로 분열된 독일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집시 음악


동양에서 시작된 영적이며 즉흥적인 집시 음악은 서양으로 옮겨 간 이후 소외되고 억압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는 세계 곳곳에서 찬사를 받으며 많은 청중을 끌어모으고 각종 상을 수상하는 음악이 되었다.



프랑스 집시의 나라

프랑스의 한 소년이 집시 음악에 맞춰 춤추고 있다. 이 나라에 사는 집시는 500만 명을 넘어선다.

또한 프랑스는 그 유명한 집시 킹스를 비롯해 많은 집시 음악가를 배출했다.



     



  










브라질의 음악


브라질은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음악 지형을 자랑하며, 원주민, 아프리카, 유럽 음악의 영향을 두루 받은

고유한 음악 언어가 특징이다. 삼바와 보사노바 음악은 1960년대에 전 세계로 전파되어 각국의 음악인과 청중을 사로잡았다.



삼바춤의 대향연

매년 열리는 리우데자네리우 카니발 기간 동안 삼바 학교 학생들은 브라질 건축가

 오스카르 니엠예르가 설계한 700미터 길이의 도로 삼보드로무에서 퍼레이드를 펼친다.


      

                                                      이파네마 해변

                                                                       이우데자네이루의 볼거리인 이파네마 해변은 1965년 갑자기 유명한 곳으로 떠올랐다.

                                                                아스트루드 지우베르투가 부른 <The Girl from lpanema>가 그레미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이 히트곡은 역사상 가장 여러 차례 녹음된 노래가 되었다.






      






재즈에 스며든 라틴 음악


유동적인 음악 장르인 재즈는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라틴 재즈나 아프리카 · 라틴 재즈는 기존 재즈와

확연히 다른 종류다. 아프리카에서 카리브 해의 쿠바를 거쳐 미국으로 유입된 아바네라 리듬이 라틴 재즈의 특징이다.


      




 






셀리아 크루스

(1925~2003년)


"나는 내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행복하고 또 행복하게 해 주고 싶다."

-셀리아 크루스 「뉴욕타임스」의 인터뷰(1995년)



50년 넘게 살사, 룸바, 중남미 크로스오버 음악의 여왕으로 군림한 셀리아 크루스는 화려하고 이색적이며

과감한 스타일로 유명하며, 자신이 아프리카 혈통을 지닌 쿠바인이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태어난 아바나의 다양하고 활기 넘치는 음악을 전 세계에 전파했으며, 쿠바

혁명 후 미국으로 망명한 쿠바인 사이에서 자유로운 예술혼의 상징이 되었다.





    

                                                             볼거리가 화려한 살사

                                                                          크루스의 공연에서 화려한 의상은 빼놓을 수 없는 요소였다.

                                                                           그 가운데 일부는 현재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전지되어 있다.





     





오페라의 부흥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종전할 때만 해도 오페라의 미래는 불투명해 보였다. 기라성 같은 작곡가들이 활약하던 시대는

한참 전에 지났다. 그때 영국 서포크 출신의 작곡가 빈저민 브리튼이 혜성처럼 등장해 오페라계를 뒤흔들어 놓았다.




극적인 현대 오페라

브리튼이 작곡한 오페라 <피터 그라임스>의 런던 초연 장면으로, 에드먼드 돈레비가 맡은 극중 인물

네드 킨이 주인공 그라임스를 추적할 자경대를 조직하자고 버러의 주민들을 선동하고 있다.




  

 


        






초기 뮤지컬


20세기에 들어 미국에서는 극, 춤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극예술이 규모가 크고 생명력이 긴 장르로 발달했다.

이는 바로 뮤지컬이다.



뮤지컬의 전설

로저스와 헤머스타인은 어빙 벌린이 1946년 작곡했으며 미국 서부 개척 시대의 명사수 애니오클리의

 이야기를 허구로 구성한 <애니여 총을 들어라>를 제작했다.  위는 그 작품의 악보 표지이다.




  



  






마리아 칼라스

(1923~1977년)


"어떤 역할을 해석할 때는 천 가지 색깔로 행복, 슬픔, 두려움을 표현해야 한다."

- 마리아 칼라스, 존 아드완의 「칼라스의 예술과 인생」(1974년)



마리아 칼라스는 20세기가 낳은 가장 뛰어난 오페라 가수 가운데 하나다.

칼라스는 무대 위에서와 마찬가지로 극적인 삶을 살았고 그 모습에 매료된 일반인을 오페라로 이끌었다. 그 덕분에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오페라는 계속해서 인기 있는 음악 장르로 남을 수 있었다. 칼라스는 거의 혼자

힘으로 벨칸토 전통을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벨칸토는 아름답고 장식적인 선율을 위주로 하는

 양식이며, 대표적인 벨칸토 작곡가로는 로시니, 벨리니, 도네치티가 있다.



   




        

(왼편) 그리스의 비극

 칼라스가 출연한 영화 <메데야>의 포스터.

칼라스는 이 영화에 노래를 부르지 않는 역할로 출연했다.피에르 파올로 파솔리니가 감독한 이 영화는

 그리스 신화의 에우리피데스를 소재로 했으며, 칼라스의 유일한 영화 출연작으로 혹평과 호평이 엇갈렸다.


(오른편) 칼라스의 결정반

추치니의 <토스카>는 칼라스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다.

그녀는 19세에 처음으로 토스카 역할을 맡았고 1953년 음반을 녹음해 큰 찬사를 받았다.

사진은 당시 발매된 LP음반의 표지다.



 








    






크루너의 시대


마이크로폰이 발명되고 라디오 방송이 인기를 끌자 개성적인 대중가요와 신세대 가수가 탄생했다.

느긋한 가창 스타일은 20세기 전반의 음악을 특징짓는 요소일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감상적인 노래

                                                                  1930~1933년 앨 볼리는 로이 폭스, 레이 노블이 이끄는 밴드와 함께 500개가 넘는 노래를 녹음했다.

                                   <Love ls the Sweetest Thing>으로 대표되는 볼리의 노래는 그 시기 영국 댄스 밴드의 음악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영화 음악


한 때 영화 음악은 클래식 음악 작곡가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작곡하던 상업 음악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수준 높은 영화 사운드트랙이 이어지면서 영화 음악 작곡가의 위상도 높아졌으며

기량이 뛰어난 이들이 이 분야에 도전하고 있다.





        




                         










할리우드의 뮤지컬 영화


무대에서 히트한 뮤지컬 작품을 영화로 옮긴 할리우드 뮤지컬은 명가수의 노래와 화려한 볼거리를 관객에게 제공했다.

영화를 통해 혁신적인 음악을 무한히 탐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세계 최정상급 작곡가와 작가가들이 뮤지컬에 참여했다.



뮤지컬 영화의 스타

1940년대에 MGM이 제작한 뮤지컬 영화의 주연을 도맡았던 주디 갈러드는 처음 <오즈의 마법사>에

도로시 게일로 출연해 일약 스타로 떠올랐다. 이 영화는 영화사상 가장 사랑을 받은 작품 가운데 하나다.




      



    



    





한 목소리를 낸 흑인 음악


1950년대에는 미국의 흑인 음악을 대표하는 두 장르인 가스펠과 소울 간의 경계가 이미 모호해진 상황이었다.

종교적인 음악이 좀 더 상업적인 색채를 띠게 된 것이다. 동시에 흑인 음악은 민권 운동을 촉진하는 수단이 되었다.




          







       







인도네시아의 음악


인도네시아는 17,508개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다 그런 만큼 음악 양식이 다양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인도네시아를 대표하는 음악은 모두 가믈란으로 연주된다.

가믈란은 징, 실로폰, 피리, 북으로 구성된 타악기 합주단을 말한다.



가믈란 합주단

가믈란 악기는 표준음에 맞추는 대신 다른 악기의 음에 맞춰 조율하므로 각자 고유한 특성을 지닌다.

가믈란의 악기에는 '완벽의 정령' 등 재미난 이름이 붙기도 한다.



        



    













태평양 제도의 음악


하와이를 비로새 태평양 제도의 음악은 고대 폴리네시아의 전통 음악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유입된

이주자와 관광객이 소개한 요소를 두루 갖춘 흥미로운 혼성 음악이다.






현대 하와이 음악의 시조

필립 쿠니아 '개비' 파히누이는 슬랙키 기타리스트로서 독주 음반을 내고

밴드 선스 오브 하와이를 창설해 현대 하와이 음악의 아버리로 불린다.




   




    






켈트 음악


영국, 프랑스, 아일랜드, 스페인의 전통 음악에서 악기를 비롯해 많은 공통점을 찾아볼 수 있다.

모두 고대 켈트족이 거주하던 지역이기 때문이다. 최근 수년 새에 이러한 지역을 아우르는

켈트 음악의 걸작이 쏟아져 나오고 음악적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아일랜드 하프



   




     

                                                   아일랜드 바우런

                                                                       바우런은 아일랜드의 틀북으로 팽팽하게 잡아당긴 양가죽으로 만들며

                                                                     타구로 연주한다. 연주자는 북 속에 손을 넣어 음역을 조절한다.






파두에 대한 갈망


포르투갈의 민속 음악인 파두가 노래하는 주제는 바다, 열망, 비애, 가난한 이들의 삶이다.

포르투갈 기타로 반주되는 파두는 리스본 부두 지역에 깊이 뿌리를 내린 유형과 코임브라의 대학가에서

전통으로 자리 잡은 유형으로 나뉜다.



듣는이를 사로잡는 파두

포르투갈의 화가 주제 말오아가 1910년에 그린 <파두>는 선술집에서 파두가 연주되는 장면을 보여 준다.

음악가는 자신이 연주하는 파두의 구슬픈 곡조에 어울리는 표정을 띠었으며,

탁자에 기댄 여자는 음악가의 노래에 사로잡힌 모습이다.



          




   






대도시의 명암이 담긴 블루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블루스는 어쿠스틱 독주자가 연주하던 음악에서 벗어나 소규모 밴드가 음을 증폭시킨 전자악기로

연주하는 음악으로 거듭났다. 구세대의 '시골풍 블루스'에서 신세대의 '도시풍 블루스'로 전환된 것이다.



      







아름다운 도시 시카고

이 컬러 엽서에는 1893년 만국박람회가 개최될 당시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던  시카고 호숫가가  그려져 있다.

대공황 시대에 시카고는 빈곤한 남부 지역에서 근로자들이 모여드는 도시였다.




거장과의 연주

1959년 뉴욕에서 머디 워터스가 하모니카 연주자인 아이작 워싱턴과 연주하는 모습.

초보 시절에 워터스의 밴드에서 실력을 다듬은 블루스계의 유명 음악가로는 리틀 월터, 오티스 스팬,

주니어 웰스, 버디 가이 등이 있다.







하모니카


하모니카는 단순한 화음부터 매우 복잡한 선율 진행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악기로서

용도가 다양하며 휴대가 간편하다. 여러 음악 장르에 걸쳐 사용이 가능하며 누구나 쉽게 배워 연주할 수 있다.





 



    









리듬 앤드 블루스


'리듬 앤드 블루스'는 음악 차트를 집계하는 「빌보드」지가 기존의 '인종 음반' 차트를 대체하기 위해

1949년 만들어 낸 용어다. 흑인 대중음악을 총칭하는 이 용어는 현지 'R&B'라는 약자로 더 유명하다.



R&B의 대부

조니 오티스가 1947년 자신의 음반<tHE Jelly Roll>에 둘러싸여 포즈를 취한 모습.

그리스 출신 부모에게서 이오아니스 벨리오테스라는 이름으로 태어난 오티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사회가 개개인에게 흑인과 백인 중 한 가지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나는 흑인이 되는 길을 택하겠다."



    


  





소리의 증폭


로큰롤은 이전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대중문화 전반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게다가 10대 청소년의 정서를 대변함으로써 신세대의 음악이 되었다.

무엇보다 전자 악기가 창출하는 강력한 전율이 없었다면 로큰롤은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빌 헤일리와 커메츠

원래 컨트리 음악을 연주하던 빌 헤일리는 방향을 바꿔 앰프로 음량을 티운 로큰롤을 택했다.

'커메츠'라는 밴드를 결성한 헤일리는 새로운 로큰롤 사운드를 주류 청중에게 소개한 최초의 음악가다.



       


              

                                   볼륨을 높인 헨드릭스

기타 음색의 볼륨과 강렬함에서 지미 헨드릭스만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영국의 오디오 엔지니어인 짐 마셜, 로저 메이어와 작업해 출력이 극대화된

 기타 앰프를 개발한 결과 이국적인 음향 효과를 냈다.








로큰롤 음악


로큰롤은 음악 장르일 뿐 아니라 사회현상으로서 부분의 합을 초월한 영향을 낳았다.

로큰롤의 기원은 흑인 음악인 블루스와 R&B가 확실하지만 로큰롤은 인종을 초월한 음악으로 발전했고,

1950년대 미국 대중음악의 새로운 풍조가 되었다.



영화에 진출한 로큰롤 음악

진 빈센트와 그의 밴드 불루캡스가 제인 멘스필드가 주연한 1956년 영화 <The Girl Can't Help lt>에 직접 출연해 공연하는 모습.

「롤링스톤」 지는 이들을 '세계 최초의 로큰롤 밴드'라 칭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1935~1977년)


"프레슬리는 모든 사물에 박자를 부여하고 음악을 변화시켰다."




 




    





브릴빌딩 사운드


엘비스가 등장한 1950년대 후반부터 비틀스가 등장하기 직전인 1960년대 초반까지 뉴욕의 브릴빌딩을 기점으로

젊고 재능이 뛰어난 작사 · 작곡가들과 관련 업계 전문가들이 그 시대를 규정짓는 팝 히트곡을 내놓았다.



필 스펙터와 로네츠

가족 보컬 그룹 로네츠는 1963년 필 스펙터와 연을 맺으면서 일생일대의 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스펙터가 리드싱어인(사진에서 악보를 들고 있는) 로니와 결혼하면서 상황이 꼬이기시작했다.


  



     




 


                                                리틀 에바


1962년 <The Loco-Mtion>을 홍보할 목적으로 촬영된 이 사진은 브릴빌딩의 에너지를 생생하게 포착했다.

왼쪽부터 출판업자인 던 커시너와 앨 네빈스, 가수인 리틀 에바, 작사 · 작곡가인 제리 고핀과 캐롤킹이다.





소울 음악


흑인 민권 시위, 베트남전 발발, 케네디 대통령과 마틴 루터 킹의 암살로 점철된 1960년대 미국에서는 새로운 종류의

흑인 음악이 표면 위로 부상했다. 열정적이고 은밀하고 동시대를 반영하며 정치적이 이 장르는 '소울(soul)'로 불리게 되었다.






       


(좌) 모타운의 히트 제조기

1965년 스티비 원더와 마빈 게이가 모타운의 녹음실에서 함께 녹음하는 모습

그해에 게이(오른쪽)가 발표한 <I'II Be Doggone>은 게이에게 100만 장의 판매 기록을 선사한 1호 음반이 되었다.


(우) 멤버의 죽음으로 헤체된 소울 브러더스

바케이스가 1967년 멤피스 스택스 레코드의 본사 앞에서 포즈를 취한 모습. 트택스의 본사는 '미국의 소울 도시'로

불리던 곳이다. 바케이스 가운데 4명은 같은 해 비행기 사고로 오티스 레딩과 함께 목숨을 잃었다.



    






저항 음악


1960년대는 팝 음악이 성년기에 이르렀을 뿐 아니라 민속 음악이 부활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젊은 가수들은 정치적인 격변에 대응하고자 직접 기타를 들고 시위에 참여해 목소리를 높였다.





      




     


                                        저항 음반

                            밥 딜런, 마일스 데이비스, U2, 피터 게이브리얼 등은 1985년

                          <Sun City> 라는 음반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을 비판하고 이 나라에 대한 불매 운동을 선언했다.




인용서적: 이안 블렌킨솝, 키쿠 데이 外 著 | 서정아 옮김 『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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