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화(靑華) 스님 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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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취월당

청화(靑華) 스님 행장

茶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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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7년 세납 24세에 백양사 운문암에서 금타 화상을 은사로 득도.

● 출가 이후 무안 혜운사, 두륜산 진불암, 지리산 백장암, 벽송사, 사성암, 용문사 염불선원, 보리암 부소대,

부산 혜광사, 두륜산 상원암, 월출산 상견성암, 지리산 칠불사 등에서 수행 정진.

● 1985년 전남 곡성군 동리산 태안사에서 삼년결사를 시작으로 회상을 이루고 대중교화의 인연을 지음.

1995년까지 한국전쟁으로 화마를 입었던 태안사를 중창복원하여 구산선문 중 하나인 동리산문을 재창.

● 미주포교를 위해 카멜 삼보사, 팜스프링 금강선원 등을 건립하고 삼년결사 수행.

● 설령산 성륜사, 도봉산 광륜사 조실, 조계종 원로 의원 역임, 2003년 11월 12일 열반.




迷故三界城

 미혹한 까닭에 삼계가 성이나
悟故十方空
깨달으니 시방이 공 하네
本來無東西
본래 동서가 본래 없나니
何處有南北
어느 곳에 남북이 있으리오





백암산 백양사


1947년, 강호성이라는 젊은이가 '사상의 거처'인 전남 장성의 백암산을 찾는다.

백제 무왕 때 창건된 백양사(창건 당시는 '정토사')를 찾은 것인데, 그곳은 수 많은 고승대덕의 산실.






운문암


백암산 금강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상왕봉 바로 아래쪽에 운문암이 자리한다.

 북의 마하연과 더불어 조선 최고의 공부처로 널리 회자되는 장소로, 진리에 목말라 있던 젊은이의 눈을 반짝이게

 한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다름 아닌 만암 스님의 제자 금타화상이 벽에 붙여 놓은 「수능엄삼매도(首楞嚴三昧圖)」와

「순치황제출가시(順治皇帝出家詩)」그리고 「부설거사사허부구게(浮雪居士四虛浮漚偈)」였다.








  


    금타화상존영                                            청화선사가 직접 쓴 보리방편문











해남 두륜산 양도암(養道庵)






미혹한 까닭에 삼계가 성이나

깨달으니 시방이 공하네

본래 동서가 없나니

어느곳에 남북이 있으리오.




 

광주 추강사 사미 · 사미니 수계식 기념

















섬 속의 섬, 남해 보리암 부소대













호랑이 등에 올라탄 신선 암각화






진주 월아산 두방사






장흥 부산면 심천리 소재 능엄사 옛터












월출산 무위사






무위사 극락전 관음보살도





월출산 상견성암





백장암 금강대





두륜산 남미륵암





백장선원




 






곡성 태안사 능파각







   




아산 조방원 선생은 말한다.


"1987년 초부터 설산 아래 성령골 17만여 평에 문화예술촌 공사를 시작했다.

내가 워낙 어렵게 공부했기에 예술하는 사람들이 모여 함께 그림 그리고 글쓰고 노래 부르는 문화인촌을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구례 · 담양 등 전남 도내 곳곳에서 폐가 상태로 있던 50년 이상된 한옥 여섯 채를 한 채씩 옮겨 복원한 것이다.

 외삼문 · 중문 · 현문 · 몸체 · 사랑채 · 별채 등 총 150여 평 규모로 이루어졌다. 그런데 막상 들어와서 공부하며 살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마침 청화 스님이 주석할만한 암자 터를 구하러 다니는 사람한테서 연락이 왔다. 그것이 인연이다 싶어서

화실과 땅을 맡겨 버렸다. 그 집이 주인을 찾아갔다 할까. 성령동이 주인을 만났다 할까."





3년 결사 회향 기념





대웅전


1990년 3월, 대상그룹에서 성륜사에 거액을 시주하였다.

아산 선생께서 공양한 아름다운 임원(林園)과 임창욱 회장의 원력에 의한 막대한 보시금으로 조성되었다.








- 무아와 무소유에 철저해야 -


1990년 5월, 월간 대중불교(대원정사 발행)는 초파일을 맞아

 '대중 불교의 빛을 찾아서'에 스님을 소개한다. 법문의 요지는 이렇다.


"한국의 선은 주로 임제종의 선풍을 잇고 있어서 화두선을 위주로 한다. 화두선도 성불의 법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다.

그러나 화두선만이 선이고 딴 것은 선이 아니라고 생각할 때에 문제가 생긴다. 여러 선법 중 하나의 선법이라고 봐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다양한 선풍이 전개되었다. 현재는 기독교도 수용할 때다. 하물며 같은 불법 안에서 같은 참선 수행에서

꼭 어느 시대에 발전된 그것만을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교의 폭을 한정하는 것이다. 화두선이나 묵조선도 훌륭한 한 방법이지만

자칫하면 자력(自力) 쪽으로 치우쳐 타력(他力) 쪽을 멀리하기 쉽다. 염불선은 자력과 타력을 다 같이 원융한다. 부처님을 간절히

연모하는 마음은 대단히 소중하다. 그 간절한 마음은 인력이 되어 우리를 성불의 길로 이끈다. 그런 소중한 것이 우리으 감성적인

믿음의 태도다. 우리가 의심에만 치우칠 땐 그런 타력 신앙을 도외시하게 된다. 현대는 불안의 시대이기 때문에 우리의 신앙 대상

을 간절히 그리워 하는 염불의 측면을 중시하는 것이지 다른 수행법의 가치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본체를 안 여윈다는 입장에

서는 화두든 염불이든 주문이든 그때 그때 여러 방법이 사람에 따라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특히 이 사회에서는 동질성의 회복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누구든 같은 불성을 지녔다는 인격으로 서로를 대하다.





 

                                    청화 스님의 즉흥시











칠불사 선원 아자방











 성륜사 벽산당 금타대화상 탑비명 제막(2000년 10월 15일)

















 


                                                                                            청화 스님의 사세게, 학정 이돈흥 書





  


















此世他世間
이 세상 저 세상
去來不相關
오고감을 상관치 않으나
蒙恩大千界
은혜 입은 것이 대 천계만큼 큰데
報恩恨細澗
은혜를 갚는 것은 작은 시내 같음을 한스러워 할 뿐이네







인용: 『성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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