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우스 성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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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界史

세르비우스 성벽

마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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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 요 ]
BC 378년에 공화국 로마시대에 세워진 도시성벽이다.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성벽으로 알려져 있다. BC390년 도시 로마는 켈트족에 의해 무자비하게 약탈 당하는 대참사를 겪었다. 이 사건을 통해 도시방어를 위한 성벽건설에 필요성이 대두되어 세워졌다. 이 성벽의 이름은 로마의 6대 왕 세르비우스(BC578-534)의 이름을 따서 세르비우스 성벽으로 불려지고 있다. 이렇게 부르는 이유는 세르비우스 왕 시절에 세운 성벽을 기초로 하여 이를 보강하며 세웠기 때문이다.

성벽의 총 길이는 약 11km로 로마의 일곱 언덕 주변을 모두 둘러싸고 있다. 성벽은 제2차 포에니 전쟁 기간 중인 BC 217년, 한니발의 로마 공격에 대비하여 보강되었다. 이때 성벽의 두께는 4~10m, 높이 10m, 성벽 밖의 해자(垓字)는 폭 30~40m, 깊이 17m였다. 한니발 장군이 알프스를 넘어 로마에 도착한후 이 성벽을 살펴보고는 도시 로마 공략을 포기했다고 한다. 현재 이 성벽의 유적은 로마시내 군데군데 조금씩만 남아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생몰 BC100~44)가 도시 로마를 확장하면서 BC45년에 성벽을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목차
1.역사
  1.1.세르비우스 왕 시대
  1.2 카밀루스의 성벽보강
  1.3 포에니 전쟁중 성벽보강
  1.4.성벽을 부서버린 카이사르
  1.5.새로운 성벽의 건설
2.기타 사항
3.참고자료


[ 역 사 ]
세르비우스 왕 시대
제 6대 왕이 된 세르비우스(BC578-534)는 선왕 타르퀴니우스(BC616-578)가 착수한 사업을 마무리짓고자 서둘렀다. 그중에 하나가 타르퀴니우스가 착수한 도시성벽을 완성하는 일이였다. 로마의 일곱언덕 사이에는 습지대가 많았는데 대규모 지하수로의 건설등 간척사업을 진행한후 평지에도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도시전체를 지키는 방어용 성벽이 필요했다. 재위중에 성벽이 완공되였지만 규모나 시설이 도시 전체를 보호하기에는 허술했다. 성벽이 요충지(要衝地) 방어에 지나치게 치중되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카밀루스의 성벽보강
BC4세기 들어 그 세력이 강성했던 켈트족이 알프스를 넘어 북이탈리아의 에트루이아 지역을 휩쓸더니 로마로 침략해왔다. 라틴동맹의 주도국이였던 공화국 로마는 즉각적으로 군대를 파병하여 켈트족의 침략에 맞섰지만 알리아 전투(BC390)에서 대패하고 말았다. BC390년 7월 18일 알리아 전투에서 승리한 켈트족은 로마시내를 침공하여 도시를 파괴,방화하며 약탈을 자행했다. 로마점령 7개월만에 양측간에 협상이 진행되었고 엄청난 협상금과 전리품을 잔뜩 챙긴 켈트족은 점령을 풀고 미련없이 로마를 떠났다.

알리아 전투의 패배와 로마약탈이 벌어진 근본원인은 로마의 귀족과 평민들간에 벌어진 권력투쟁으로 분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권력투쟁의 결과로 유능한 군인이자 지도자였던 카밀루스를 사실상 추방(자진 망명)하면서 크게 국력이 약해졌다. 따라서 켈트족이 떠나자 가장 먼저 카밀루스를 불러들였다. 귀국한 카밀루스(사망 BC365)는 독재관에 임명된후 도시 재건사업에 착수했다. 특히 그는 금번 켈트족 침공시 도시방어에 큰 도움이 되지 못했던 세르비우스 성벽을 대대적으로 보강하였다. 

포에니 전쟁중 성벽보강
BC753년에 로물루스가 건국한 로마는 244년간의 초기 왕정시대를 거쳐 BC509년에 공화정이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로마는 주변국들과 연맹을 맺지 않으면 존립이 힘들 정도에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했다. BC390년에 있었던 알리아 전투 당시 로마는 켈트족을 감당하기에는 여러면에서 버거웠기에 패전은 당연한 수순이였다. 그러나 로마인들은 실패에 좌절하지 않고 원인분석과 반성통해 끓임없이 자신들을 개혁하였다. 그리고 시행착오를 발전의 계기로 삼아 차분히 국력을 키워 나갔다. 이런 노력이 드디어 BC272년에 이르러 결실을 맺었다. 이탈리아 반도를 완전히 통일하게 된것이다.

그러나 로마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북아프리카에 있는 강대국 카르타고였다. 카르타고는 페니키아의 식민지로 출발하였으나 해상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며 당대에 지중해 최대 부자도시이자 제해권을 움켜쥐고 있는 국가였다. 신흥세력으로 급부상하고 있던 로마와 카르타고의 대결은 불가피했다. 양국이 충돌한 1차 포에니 전쟁(BC264-241)에서 로마가 승리를 했으나 BC 218년에 전쟁이 다시 벌어졌다. 

2차 포에니 전쟁은 카르타고의 영웅 한니발(생몰 BC247-183)과 로마간에 벌어진 전쟁이라고 할 정도로 한니발의 활약은 대단했다. 한니발은 그 누구도 생각지 못한 작전을 감행했다. 군대를 이끌고 에스파냐(스페인)을 출발하여 알프스를 넘어서 육로를 통해 북이탈리아를 침공하였다. 놀란 로마인들은 급히 세르비우스 성벽 보강공사를 진행할수 밖에 없었다. 지난 BC 390년 켈트족에 의한 로마 약탈의 악몽이 되살아 났기 때문이다.


성벽을 부서버린 카이사르
포에니 전쟁(BC264-146) 이후에 로마는 계속 번영했다. 이에 따라 수도 로마의 인구는 증가했고 도시로서 로마는 세르비우스 성벽 밖으로 확장되었다. 기원전 1세기경에 세르비우스 성벽은 수도 로마의 행정구역 경계선 정도로만 인식될 정도로 필요성이 사라지고 말았다. 용도가 실종된 것인데 강력한 대제국의 수도 로마는 외적의 침입을 걱정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가 사회적으로 발전하며 대제국으로 성장했지만, 로마라는 도시자체는 극히 무질서한 상태로 남아 있었다. BC 390년 켈트족에 의한 약탈과 파괴가 자행된후 도시 로마의 상태는 거의 폐허 수준이였다. 도시 재건사업이 시작되었으나 계획성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진행될수밖에 없었다. 알리아 전투에서 대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 도시국가들은 라틴동맹에서 떨어져 나갔을뿐만 아니라 로마를 점령하려고 침략해왔기 때문에 전쟁을 병행해가면서 도시 재건을 하다보니 빚어진 결과였다. 
    
도시복구는 단기간에 이루어졌으나 계획성 없이 급조되다보니 지형이나 교통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건물이 세워지고 도로가 만들어졌다. 이런 혼란은 200년 후 율리우스 카이사르(생몰 BC100-44)가 도시계획법을 제정할 때까지 그대로 지속되었다. 카이사르는 도시 로마를 정비하면서 도시확장에 방해가 되는 세르비우스 성벽을 기원전 45년에 헐어버렸다. 수도 로마의 안전은 국경선에서 지켜져야지 도성(都城)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성벽 해체의 명분을 내세웠다. 그 결과 오늘날 도심 곳곳에 세르비우스 성벽의 유적이 조금씩만 남아있게 되었다.



새로운 성벽의 건설(아우렐리아누스 성벽)
AD 275년에 도시 로마를 방어하기 위한 성벽이 다시 세워졌다. 이 성벽은 271년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 의해 착공된후 275년 프로부스 황제때 완공되었다. 세르비우스 성벽이 BC 45년에 파괴된후 무려 320년 동안이나 도시 로마는 도성(都城)없는 도시로 살아왔다. 그러나 3세기부터 야만족들이 국경을 넘어 제국의 영토쪽으로 대거 이주를 시작하였고 일부 야만족들은 북이탈리아 지역을 침공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도시 로마의 방위를 보다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재위 271-275)의 지시로 성벽 축조를 하게 되었다. 
      
성벽은 캄푸스 마르티우스를 포함하여 로마의 일곱 언덕에서부터 테베레 강(Tiber river) 우측 제방에 있는 트라스테베레 구역까지 걸쳐 있다. 도시가 확장된 만큼 세르비우스 성벽보다 더 넓은 지역을 둘러싸도록 건축되었다. 총 길이는 19km, 두께는 3.5m, 높이는 8m이며, 29.6미터마다 정사각형의 탑을 세웠다. 완공이후에도 수차례 보강공사가 진행되었다. AD 830년과 846년에 사라센 해적들이 로마를 공격 했으나 아우렐리아누스 성벽 덕분에 도시 방어에 성공하며 큰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다.



[ 기타 사항 ]
1.수도 로마의 안전은 국경선에서 지켜져야지 도성(都城)에서 이루어져서는 안된다는 카이사르의 말은 로마 제국 방위 전략의 기본이 되었다. 또한 과거 영국 역시 브리튼 섬의 안전은 해상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방위 전략을 고수해왔었다. 이런 영국의 전략은 미사일과 전투 비행기가 발명되면서 수정될수 밖에 없었다. 오늘날에는 미국이 이런 정책을 고수하며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 본토가 아닌 해외에 있는 미군 시설은 약 3500개가 넘는다. 



[ 참고 자료 ]
건축으로 만나는 1000년 로마.........21세기북스
로마인 이야기 1권........................한길사
로마인 이야기 15권......................187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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