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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틀이 중요할까 정보가 중요할까

작성일 작성자 격암

요즘 인공지능이 화제가 되고 있다. 그런데 인공지능을 연구하다보면 두가지 중요한 요소를 만나게 된다. 하나는 인공지능 기계의 구조다. 그리고 또 하나는 그 인공지능이 규칙을 배울 데이터다. 우리는 통상 인공지능의 연구를 주로 학습하는 기계의 구조를 연구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사실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도 그 이상으로 중요하다. 예를 들어 좋은 번역이 어떤 것인가를 기계가 배우려면 많은 데이터가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같은 질문을 인간에게도 던질 수 있다. 우리가 합리적으로 사고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올바른 혹은 더 뛰어난 사고의 틀일까 아니면 더 많은 정보일까? 물론 둘다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기는 쉽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마치 이 둘중의 하나를 양자택일하는 것처럼 되기 쉽다. 


가장 흔하며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경우는  우리가 사고의 틀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것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고 따라서 이 경우에는 대안적 사고의 틀을 찾으려고 한다거나 하는 노력 자체가 없다. 사실 도대체 사고의 틀이란게 존재하기는 하는지 있다면 그게 뭔지를 설명하는 일은 어렵다. 그건 마치 태어나서 한번도 선그라스를 바꿔 써 본 적이 없고 벗어 본 적이 없는 사람에게 세상에는 다른 선그라스가 있으며 그걸로 바꿔쓰면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그라스를 벗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자신이 선그라스를 쓰고 있다는 자각이 없고, 다른 선그라스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그 선그라스를 벗을 수 있다면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은 자기 자신 뿐이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을리가 없다. 


하지만 사고의 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미디어의 이해를 쓴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가 메세지다는 말로 유명한데 이것은 사고의 틀이 아주 중요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한가지 방법이다. 즉 우리가 어떤 미디어, 예를 들어 전화기나 신문으로 어떤 정보를 받고 있던지 간에 우리는 그것을 전달하는 미디어 자체의 특징에 의해서 제약되고 변화된다는 것이다. 유튜브만 보는 사람과 신문만 보는 사람은 이론적으로는 다른 미디어를 써서 같은 정보를 전달 받을 수 있지만 결국 세상을 보는 눈이 크게 달라지게 된다. 미디어의 특징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고의 틀이 다르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 혹은 합리적인 일로 느끼는 것이 달라지게 된다. 그러니 사고의 틀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오늘날 합리적이거나 현명해 지고 싶은 많은 사람들은 대개 좀 더 쉬운 쪽에 집중하는데 그것은 한마디로 정보를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책을 한권 읽은 사람보다는 백권 읽은 사람이 훨씬 더 현명하다. 어떤 글이 정보로 여겨 질 수 있는 것을 많이 가지고 있으면 있을 수록 그 글은 더 좋은 글이 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그리고 불행하게도 이런 일을 열심히 할 수록 사고의 틀을 고민하는 문제는 헛소리로 들리게 된다. 


그 이유는 사고의 틀을 고민한다는 것은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이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의 의미가 바뀐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글이 영어로 써진 줄 알고 열심히 번역하던 사람이 알고 보니 이 글들은 프랑스어로 쓰여져 있더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다시 읽는 식이다. 


어떤 것이 중요한지, 어떤 것이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이 바로 사고의 틀이다. 사고의 틀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당연한 것, 우리가 더이상 왜를 묻기를 그만둔 것들로 이뤄져 있다. 나는 이런 예를 들기를 좋아한다. 만약 우리가 범인을 찾아야 한다고 하자. 그런데 건물안에 천명의 사람이 있고 범인은 그 중의 하나다. 이때 누군가가 범인은 키가 1미터 이상이다라고 말했다고 하자. 이 정보는 건물안에 있는 사람의 키가 모두 1미터 이상이라면 용의자의 범위를 줄이는데 아무 도움이 되질 않는다. 반면에 용의자는 여자다라는 정보가 있다고 하자. 만약 그 건물안에 여자라고는 단 한명밖에 없다면 그런 정보는 범인을 잡는데 있어서 결정적인 것이 된다. 


다시 말해서 정보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놓여진 환경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가에 따라 다른 중요성을 가진 정보로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어떤 사고의 틀을 유지한 채 중요해 보이는 정보들을 부지런히 모은다는 것은 사고의 틀을 바꾸고 바라보게 되면 무의미한 것들을 산더미처럼 모아놓는 행위로 보이게 될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고 있는 지, 지금 우리가 직면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인지,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해 생각이 틀려 있으면 부지런히 바쁘게 중요한 정보들을 모아놓는 일은 자학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는 일이 될 수 있다. 


그러니까 더 많은 정보들을 소유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에게 사고의 틀을 설명하는 일은 마치 땅투기 하는 사람에게 당신이 산 땅은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열심히 노력해서 투자가치가 높아보이는 땅을 많이 사모았는데 누가 이거 다 헛짓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에 쉽게 동의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더 많은 지식을 소유하려고 하는 노력은 우리로 하여금 지금의 생각의 틀에 더 집착하게 만든다. 노력한 사람은 더 깊숙하게 그 사고의 틀에 빠진다. 이것이 때로 많은 책을 읽었다는 사람들이 어린애도 알 것같은 상식을 모르게 되는 이유다. 


반대로 생각의 틀의 문제에만 집중하는 사람은 마치 자주 이사다니는 사람과 같다. 그는 정착해서 뭔가를 쌓아 놓는 일에 힘을 쓰지 못한다. 왜냐면 어차피 이사가면 이 모든 것을 다 뒤에 두고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이 강력한 미디어라도 그걸 써야 정보가 소통되며 그걸 유지하기 위해서는 따로 희생이 필요한 것처럼 생각의 틀도 그렇다. 미각을 잃은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법은 소용이 없는 것처럼 더 크고 복잡한 사고의 틀을 유지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언제나 보상을 주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처한 환경에 달려 있다. 반면에 사고의 틀을 끝없이 파괴하는 사람은 정신병원에 점점 더 가까워 지게 된다. 상식이라는 바닥을 깨버린 결과 그는 새로운 상식체계에 도달하게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생각의 틀을 수정하는 것은 분명 위험한 비약이다. 그러니 위험한 짓만 계속 한다면 그 사람은 결국 사고를 당할 것이다. 게다가 최종적이며 절대적인 사고의 틀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한다고 해도 인간이 도달 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가장 쉽고 재미있는 방식인지는 모르겠으나 문자나 언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 그리고 과학적 사고 방식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고 재미있는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인간들이 어떻게 '선그라스'를 바꿔끼게 되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런 생각이 때로 우리의 생각의 틀이 어떤 것인가를 느끼게 해줄 때가 있다. 


나역시 예외는 아닐테지만 세상은 자신이 선그라스를 쓰고 돌아다닌다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떤 것이 자명하고 자연스럽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정도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사고의 틀이 공유되지 못하는 세상은 큰 비극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가볍게 밟고 지나간 풀 한포기가 실은 누군가의 생명보다 소중한 것일 수 있다. 사고의 틀이 다른 사람들이 자주 부딪히면서 가까이 살게 되면 그런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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