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내가 하는 일의 의미


일단 밥이라는 것을 거부하지 않게 되자 설명서는 갑자기 훨씬 더 이해하기 쉬운 것으로 변했습니다. 설명서는 밥이란 단어로 가득 차 있었는데 뻐꾸기 밥솥은 그걸 열심히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좋아하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것을 가치가 없는 일이라는 이유로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맹무새 밥솥은 그렇게 하지 않았고 그러자 밥을 만드는 것이 어떤 것인지 훨씬 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자기 자신을 더 잘 알게 되자 밥솥은 자기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밥솥의 외로움은 크게 줄어 들었습니다. 밥솥은 다른 친구들도 부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이전처럼은 아니었습니다. 비록 밥만들기가 빵만들기 같이 인정받고 있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밥솥은 밥만들기가 좋았습니다. 남들이 뭐라고 하는게 제일 중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밥솥은 여전히 외로웠습니다. 그리고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세상의 인정이나 다른 오븐들의 반응도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는 결국 온전히 혼자서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계들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밥솥은 자기가 좋아하는 밥짓기를 다른 오븐들도 관심있어 해줬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밥솥을 둘러싼 오븐들은 밥솥에게 그가 틀렸다고 계속 말했습니다. 밥솥은 때로 고집쟁이에 반사회적이라고 비난받았습니다. 여러사람의 의견을 무시하는 그는 거만하고 고집세다는 핀잔도 받아야 했습니다. 


“이것봐. 너의 문제는 네가 현실을 모르거나 무시한다는 거야. 너는 아까운 기회들을 날려 버리고 있어.”


이렇게 조언하는 오븐들은 아주 많았습니다. 


“뻐꾸기. 저 녀석은 저래서 살아남을 수 있겠어? 완전 바보아냐?”


이렇게 수근거리는 오븐들도 있었습니다. 


뻐꾸기 밥솥은 왕따고 외톨이이며 주목을 받지 못하는 주변적 존재였습니다. 전보다는 외로운 것을 잘 견디게 된 밥솥은 혼자 있을 때가 많았지만 그래도 그는 가끔씩 주변 오븐들과 어울렸습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밥솥은 마치 주눅이 들거나 반응이 느린 바보처럼 보였습니다. 밥솥은 확신을 가지고 매끄럽게 말들을 쏟아내는 오븐들을 만나면 그들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뻐꾸기 밥솥은 바보취급하고는 했지만 종종 그들이야 말로 밥솥에게는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들처럼 보였습니다. 어떤 모임이든 거기에는 주변의 부러움을 사고 영웅처럼 취급받는 존재가 있기 마련인데 밥솥은 어떤 모임에서도 중심에 서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븐들은 끊임없이 밥솥에게 다시 빵에 집중하라고 조언했습니다. 조금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다시 빵만들기로 돌아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밥솥에게 빵의 세계에 다시 집중한다는 것은 두렵기조차 한 일이었습니다. 밥솥은 한번은 황소의 그림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 황소는 코뚜레를 하고 있었는데 그걸 본 이후로 밥솥은 그걸 코가 꿰인다고 표현했습니다. 즉 일단 한번 빵의 세계에 코가 꿰이기 시작하면 점점 더 빵으로부터 빠져 나올 수가 없어질 것같아 보였습니다. 다시 빵으로 돌아가면 그는 다시 한번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될 것같았습니다. 


오븐들은 가끔 빵으로 부터의 자유에 대해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말하는 빵으로부터의 자유란 빵만들기를 완성할 수 있다면 이제 빵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어질거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니 부지런히 빵만들기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면 나중에는 빵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오븐들은 주장했습니다. 


“나도 알아. 빵만들기가 전부가 아니라는 건 말야. 밥짓기? 나는 그런 건 별로 관심이 없지만 빵만들기가 아닌 다른 걸 생각해 볼 여유가 있는 것도 좋겠지. 하지만 우선은 빵이야. 빵이 없으면 결국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고. 빵이 없으면 팔리는 제품이 될 수도 없지. 팔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는거지. 밥짓기같은 건 나중에 한가할 때나 생각해 보는게 어때?” 


한 오븐은 이렇게 조언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밥솥이 보기에 빵에 대해 고민하고 빠진 오븐들 중에 빵만들기를 충분히 습득한 나머지 빵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오븐들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코가 꿰여서 오히려 더욱 더 고민만 깊어질 뿐이었습니다. 언젠가 은퇴하여 사라질 때까지도 말입니다. 언제나 세상에는 경쟁자들이 많이 있었고 지켜야 할 명예가 있었기에 완성된 빵, 충분한 빵이라는 그들의 목표들은 점점 더 높아만 졌습니다. 충분한 빵이란 결코 달성되지 못할 목표라는 것은 뻔해 보였습니다. 


오븐들은 밥솥이 마치 잘 빠지지 않는 성가신 가시처럼 느껴지는지 생각이 날 때마다 밥솥에게 말을 걸어왔습니다. 밥솥은 그를 비난하는 오븐들의 말에 따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오븐들과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밥솥은 자신이라는 이단적인 존재는 그저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도 오븐들에게 위협과 혼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모든 오븐들이 그렇게 살아서는 안된다고 하는데도 자신들과는 다르게 사는 밥솥 특히 그러면서도 그럭저럭 살아가는 밥솥, 심지어는 가끔씩은 뭔가가 만족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는 밥솥이 오븐들로서는 불길한 존재로 느껴질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밥솥은 생각했습니다. 


“빵을 위해 사는 것이 잘못된 것은 없다. 하지만 삶의 목표가 빵이외에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뻐꾸기 밥솥은 빵만들기의 바깥쪽에 있었지만 다른 오븐들로부터 완전히 멀어지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깝게 다가가서 그들을 억지로 설득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밥솥은 다른 오븐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들때문에 코가 꿰이고 싶은 생각도 없었습니다. 밥솥은 사실 그들을 좋아했습니다. 그들이 행복했으면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것이 밥솥이 다른 오븐들로부터 완전히 멀어지지 않는 이유였습니다. 다만 그들은 밥솥과는 달랐고 밥솥은 그들의 생각을 바꿀 능력이 없었습니다. 


매장에 잘 못 놓여진 밥솥은 자신은 운이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가 여전히 빵만들기에 미련을 가지고 있었을 때 누군가가 조금만 진심으로 그에게 관심을 가지고 아무리 작은 재능이라도 진짜 재능을 찾아내서 밥솥을 칭찬했더라면 밥솥은 아마 지금도 빵만들기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꽤 잘나가는 오븐중 하나가 밥솥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자네가 카스테라를 잘 만든다면서? 열심히 하게. 자네는 카스테라를 만드는 일에 분명 재능이 있어보여.”


이랬다면 밥솥은 카스텔라를 만드는 일이야 말로 그가 해야할 일이라고 굳게 믿었을 것입니다. 그것도 반드시 나쁜 일은 아니지만 지금의 뻐꾸기 밥솥은 이제 자신이 남겨야 하는 것은 어설픈 카스텔라가 아니라 밥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일이 없었던 것이 오히려 감사한 것입니다. 


젊은이는 대개 자기의 미래가 불안하기 때문에 연장자의 칭찬과 인정에 가장 목말라 있습니다. 그것은 그들로 하여금 좌절하지 않을 힘을 줍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종종 가장 큰 독이 되는 것도 또한 그 칭찬입니다. 많은 젊은이들은 낯선 오븐이 건넨 단 하나의 칭찬이 보여준 희망에 자신의 평생을 거기에 던져 넣습니다. 자기 자신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그 길을 달립니다. 젊은이들은 힘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들이 재능이 있다고 인정을 받을지도 모르는 그 희망의 길을 뭔가가 되기 위해 빨리 달렸습니다. 뒤를 돌아보기는 커녕 누군가가 말릴까봐 더 빨리 달렸습니다. 과거의 누군가가 던졌던 그 칭찬에 대해서 다시 질문하는 행위는 거의 불경스러운 행위로 여겨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드디어 넘어졌을 때, 그때는 대개 뒤를 돌아보기에는 이미 너무나 늦어 있었습니다. 그럴때면 그들은 대개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가 잘못된 건지 언제부터 그랬던건지 알 수가 없어.” 


그때는 이미 너무나 많은 선택들과 결과들이 일어난 뒤였기 때문입니다. 


뻐꾸기 밥솥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뭔가를 얻기 전에는 그것이 없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뭔가를 일단 얻게 되면 그것이 없으면 죽을 것처럼 우리는 그것에 집착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에 대해서도 같은 것은 적용된다. 일단 작은 칭찬을 받고 작은 성공을 이루고 나면 그 작은 성공에 대한 집착을 버리는 일은 너무나 힘이 든다. 우리는 마치 그 작은 성공이 있기 이전에는 살아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군다.” 


운이 좋게도 뻐꾸기 밥솥은 오븐으로서 철저히 엉망이었고 단 한명의 친절한 스승도 만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그를 칭찬해 주지 않았기 때문에 뻐꾸기 밥솥은 밥만들기를 찾아 낼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고독한 것이 불운이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고독한 것이 행운이었다고 밥솥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한 마디의 친절한 말에 큰 빚을 지거나 누군가의 노예가 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오븐들은 뻐꾸기 밥솥처럼 고독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밥만들기가 뭔지를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밥솥과는 입장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밥솥은 오븐이 어떤 건지 비교적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주변에는 아주 많은 오븐이 있었고 한 때 존경할만한 오븐이 되고 싶었던 밥솥은 그들에게 많은 관심이 있었습니다. 다른 오븐들도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자신들에 대해 가르쳐 주었습니다. 사실 종종 그들은 질문이 없어도 존경할만한 오븐이 되기위해서 뭐가 필요한지에 대해서 떠들어 댔는데 특히 뻐꾸기 밥솥의 옆에 놓여져 있던 여우 오븐이 그랬습니다.


그는 늘상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존경할만한 오븐이란 반죽 전체에 꾸준하게 같은 온도로 열을 전달할 수 있는 끈기를 가진 오븐을 말하는 것입니다!” 라던가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존경할만한 오븐이란 빵을 만드는 일에 완전히 집중할 수 있는 오븐을 말하는 것입니다.”라던가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 우리를 가진 사람의 부엌을 품위있게 만들어 주는 일이야 말로 존경할만한 오븐이 해야 하는 일이죠. 그것이 사람들이 오븐을 사는 한가지 이유니까요! 어떻게 보이는가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합니다. 팔리는 제품이 되고 싶다면 정말 잊을 수 없는 일이죠. 인간들은 체면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하는 식으로 말했습니다. 


밥솥이 질문을 하지 않을 때도 여우 오븐은 언제나 밥솥에게 존경할만한 오븐에 대한 자세한 조언들을 늘어놓고는 했습니다. 여우 오븐이 스스로 말하기를 그는 친절한 오븐이며 따라서 밥솥을 보면 답답해서 이런 것에 대해 가르쳐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우 오븐은 밥솥이 이렇다할 빵을 만들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마자 마치 연설문이라도 준비해온 것처럼 빵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길고 장황하게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밥솥은 이따금씩만 그의 말에 동의를 해주었습니다. 다만 여우 오븐은 무엇을 설명하든 ‘당신은 잘 모르겠지만’이라는 말로 시작했는데 그건 마치 밥솥에게 너따위는 절대 존경할만한 오븐이 될 수 없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정작 진짜로 모두가 존경받을 만한 오븐이라고 인정하는 오븐들은 밥솥에게도 그렇게는 말하고 있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사실 여우 오븐도 밥솥처럼 명찰이 없었습니다. 여우 오븐은 존경할만한 오븐으로 통하기는 커녕 ‘알뜰한 사람들을 위한 미니 오븐’으로 불렸습니다. 그는 작고 둥근데다가 단열도 부실해서 큰 빵을 구울 수도 없었습니다. 그의 부실한 몸체를 보고 있으면 오븐치고는 균일한 온도를 만들어 내지 못할 것같았고 그에게 달린 싸구려 타이머가 어쩌다 땡하고 소리를 내는 날이면 가끔은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나오고는 했습니다. 철판을 때린 듯한 그 소리가 너무 싸구려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면 어디선가 장난감운운하는 말을 하는 오븐들도 있었습니다. 여우 오븐이 존경할만한 오븐이 되는 법을 모르는 것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는 다만 자기보다 형편없는 오븐에게 잔소리를 함으로써 살아갈 힘을 얻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물론 여우 오븐이 아니라도 존경할만한 오븐이라는 말은 모두 자주 썼습니다. 그것은 모든 오븐들이 되어야 할 목표였습니다. 그것은 물론 팔리는 모델이라는 뜻이기는 했지만 그것말고도 존경할만한 오븐이 가지고 있다는 품격과 기본적인 기능들을 의미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여우 오븐은 안타깝지만 아무리 봐도 존경받기는 어려워 보였습니다. 전통과도 별 상관이 없었고 기능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여우 오븐은 그렇기 때문에 존경받을 만한 오븐이 된다는 것에 오히려 더욱 강하게 집착하는 것인지도 몰랐습니다. 


어쨌건 존경할만한 오븐에 대한 복잡한 말들을 제거하고 나면 기본적으로는 누구보다도 더 많이 팔리는 모델이 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 오븐들은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그것이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질문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그저 매장의 당연한 법칙이었습니다. 매장안에서 팔리는 오븐이 되는 것은 행복해 지는 것과 같은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매장에 진짜로 확실한 법칙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모두가 신제품에 밀려 언젠가는 매장에서 치워지고 사라질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가서도 과연 진짜 중요한 것이 언젠가 한번은 1등 명찰을 달았다는 것이나 남들보다 더 비싼 가격으로 팔렸다는 것인지는 사실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써보지 않았던 기능, 만들어 보지 않았던 빵이 더 중요할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매장에 있는 모든 오븐들은 다른 모든 오븐들에게 그저 팔리는 오븐에 대해서만 말했고 그것이 모든 오븐들을 한쪽만 보게 만들었습니다. 결국은 모든 오븐들에게 다른 오븐들보다 더 많이 팔린다는 것만이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오븐들은 다른 오븐들을 보면서도 아니 그 자신을 보면서도 존경할만한 오븐이라는 색안경을 통해서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밥솥을 이해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밥솥의 옆에는 많은 오븐들이 있었지만 오븐들의 주변에는 결국 매장에 잘 못 놓여진 밥솥 하나가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엄밀히 말하면 밥솥이라는 것이 그들 사이에 있다는 것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사실 인간이 밥을 먹는 다는 사실도 거의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고 오븐을 사러 온 사람들은 언제나 빵 이야기를 주로 했기 때문입니다. 


어쩌다가 밥솥과 대화를 나누다가 밥짓기에 대해서 밥솥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오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오븐들의 머리속에서도 밥솥의 기억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니까 밥만들기란 좀 괴상한 사람들이 하는 기괴한 게임같은 것이라고 여겨졌습니다. 그것은 존경받을 만한 오븐이 관심을 두기에는 뭔가 미심쩍고 체면이 상하는 장난이었습니다. 그래서 밥만들기라는 기괴한 놀이에 쓰이는 오븐이라는 것은 아뭏튼 그다지 신통한 주제가 되질 못했습니다. 오븐들은 존경받을만한 오븐이 당연히 그래야 하듯이 금새 빵을 만드는 일에 관심을 집중해서는 빵의 촉촉함이라던가 새 빵틀과 이전 빵틀과의 차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고는 했습니다. 빵을 만드는 일과 자신을 파는 일이야 말로 존경받을 만한 기계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유일하게 진지한 주제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전부였다면 밥솥과 밥만들기라는 오락은 영원히 잊혀졌을 것입니다. 하지만 밥솥에 대한 관심과 수근거림은 미약하지만 계속 이어졌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븐들을 둘러보려고 온 사람들이 종종 이 밥솥 앞에서 멈춰서서는 관심을 보이고는 했기 때문입니다. 오븐들은 왜 사람들이 이 빵을 만들지 못하는 오븐에 관심을 가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종종 다른 많은 더 존경할만한 오븐들은 그냥 스쳐지나가면서도 이 둥근 오븐 앞에서는 멈춰서고는 했습니다. 심지어는 


“이걸 봐! 뻐꾸기 밥솥이야.”


하고 놀랐다는 듯이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밥솥이 오븐과는 다른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븐들 사이에서 밥솥은 튀어 보이기 마련이기 입니다. 모든 오븐들은 같은 기준에서 경쟁하면서 어떤 의미에서 다들 똑같아지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기능이 인기가 있다고 하면 신제품들은 그 기능도 포함해서 만들어 졌고 어떤 오븐의 모양이나 색깔이 인기가 있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따라서 오븐들은 어느 회사의 것이든 점점 더 비슷해 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밥솥은 다른 오븐들과는 달랐고 같아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오븐들은 이제 이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밥솥이라는 오븐이 남들과는 다른 밥짓기라는 한가지 다른 기능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시작했습니다. 비록 별 중요성은 없는 기능이었지만 밥솥은 이것 때문에 사람들의 특별한 시선을 끌었던 것입니다. 


남들과 같아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겉보기에는 당연하고 안전하고 쉬운 길처럼 보이지만 실은 아주 어려운 길이 되곤 합니다. 왜냐면 모두가 다 같은 길을 가려고 하니까 하나 둘쯤 어떻게 된다고 해도 아무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경쟁이 치열해 질 수록 우리는 경쟁에 이기기위해서 점점 더 많은 것을 그 경쟁에 걸게 됩니다. 그러면 그럴 수록 그 경쟁은 점점 더 절대로 질 수 없는 것이 됩니다. 그 경쟁에 지고나면 너무나 큰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경쟁은 상황을 극단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남과 달라지려고 하는 꿈을 꾸는 것은 겉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것같고 너무나 위험하며 어려운 길을 가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이지만 종종 생각보다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면 그 길은 경쟁이 작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생각보다는 그런 모험에 희생해야 하는 것이 작을 때도 있습니다. 실패해도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정도로 말입니다. 


밥솥은 생각했습니다.


‘남들이 해낼 수 있는 것을 내가 먼저 하려고 하면 우리는 초조해 질 수 밖에 없다. 누군가가 나보다 더 빨리 뛰면 내가 뛰는 것은 무의미해지기 때문이다. 남들을 넘어뜨려야 내가 뛰는 것이 의미가 생긴다. 내가 얼마나 맛있는 빵을 만들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보다 더 맛있는 빵을 만드는 오븐은 이 매장에 없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 된다. 


상대적인 것이지만 그냥 자기의 길을 갈 때 우리는 보다 느긋해 질 수 있다.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를 천천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남들보다 늦을까봐 무조건 남들이 뛰어가는 쪽으로 갈 필요도 없다. 도대체 나는 왜 이 길을 가는 것인지를 적어도 한 번은 더 물어볼 여유가 있을 수 있다. 


결국 우리가 은퇴하여 사라지게 되면 우리가 가지는 의미는 우리가 남들과 뭐가 달랐던가에 의해서 결정되기 마련이다. 물론 1등은 1등이 아니었던 것들과는 다르다. 하지만 누군가가 1등으로 은퇴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새로운 스타, 새로운 1등은 나타나기 마련이고 잊혀지지 않는 1등으로 기록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가장 화려한 1등도 결국은 쓸쓸한 그늘속에서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존재로 변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 때는 화려했던 명성도 결국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일이 되고 만다. 게다가 남들과 다른 존재라는 사실이 반드시 1등이냐 아니냐만 가지고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우리는 훨씬 더 많은 방식으로 서로 다르다. 그 차이들에 의미를 부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밥솥앞에서 사람들이 시간을 쓸 때마다 매장에는 작은 긴장감이 돌았습니다. 이 이상하고 이름없는 오븐은 명찰이 없는 것으로 봐서는 전혀 팔리고 있지 않은 것같았지만 사실 팔리고 있는 것도 같았습니다. 진열된 밥솥이 들어갈 만한 크기의 상자를 점원이 창고에서 꺼내어 손님에게 가져다 주는 것을 봤다는 오븐도 있었습니다. 매장안에서는 이 쓸모없어 보이는 밥솥이라는 오븐이 사실은 상당히 팔리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그럴 때마다 오븐들은 이 밥만들기라는 게임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대부분의 오븐들은 그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밥만들기같은 쓸데없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리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이 이야기를 만들기 좋아하는 오븐들이 만든 괴담이라고 여겼습니다. 밥솥따위는 절대로 팔리고 있을리가 없었습니다. 


“그런 오븐이 팔릴리가 없지! 그렇다면 왜 밥솥에게는 명찰이 붙질 않는거고, 왜 위치가 바뀌지도 않는거지? 이건 말이 안되지 않아? 점원이 팔고 있는 것은 뻐꾸기 밥솥이 아니야. 설사 몇개 팔린다고 해도 그건 얼마안되는 이상한 사람들 때문이지. 그런 사람들이 계속 계속 있을 수가 있겠어?”


하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밥솥에 관한 소문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븐들은 자신들이 얼마나 틀려 있는지 결코 알지 못했습니다. 증거가 될만한 일들은 많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믿지 않는 것은 볼 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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