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는 공간

전주에서 가는 목포 기차 여행

작성일 작성자 격암

나는 운전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러다보니 기차여행이 하고 싶어졌는데 마침 이 날이 내 생일이었다. 나는 뭘 하고 싶냐고 묻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 


기차를 타고 싶어.


애초에 목적지가 정해진 것은 없었다. 우리 부부는 일본에 있을 때도 여행인듯 여행이 아닌듯한 기차여행을 하고는 했는데 지하철 역에 가서 무조건 기차를 타고 얼마간 떨어진 마을로 가서 산책하고 밥먹고 오는 것이다. 내가 제안한 것은 같은 일을 한국에서 해보자는 것이다. 되도록 준비없이 즉흥적으로 가서 산책하고 밥먹고 오자고 했다. 나는 집에서 만든 커피와 파운드 케이크를 챙기고 출판사에서 보내준 책을 가방에 집어 넣었다. 아내는 계란을 삶았다. 기차는 계란이니까. 


어딘가에 도착하는 것이 목적은 아니었으므로 우리는 값싸고 느린 무궁화호를 타기로 했다. 전주에서 무궁화호를 타는 방법은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전주역에 가서 기차를 타는 것이고 이 기차는 여수까지 2시간정도에 간다. 또 하나는 김제역으로 가서 주차장에 차를 세워놓고 기차를 타는 것인데 이것도 2시간 정도면 목포로 간다. 우리는 결혼한 이후로 목포에 가본 적이 없었으므로 목포에 가기로 했다. 우리는 기차에서 재빨리 커피와 파운드 케이크 그리고 계란을 소비했다. 잠까지 한잠 자니 정말 금방이었다. 


그래서 도착했다. 목포. 호남선 종착역. 



역사는 평범하다. 하지만 카페며 깨끗한 전광판을 보면서 나는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가본지 오래된 지방을 실제보다 낡은 것으로 상상한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왠지 카페가 아니라 다방이나 낡은 슈퍼가 있을 것을 상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방을 돌아다녀 보면 다들 생각보다 좋고 볼거리가 많다. 



역에는 목포 지도가 붙어 있다. 우리는 지도를 보면서 이제서야 오늘의 일정을 짜기 시작한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목포에 처음이면 당연히 유달산에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목포역에서 유달산은 걸어서 얼마 되지 않는 곳이다. 



역사를 나오니 목포의 중심 상가들이 펼쳐져 있다. 나름대로 축제분위기를 내려고 골목마다 등같은 것을 달아놓았지만 아직 오전이라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했다.




그런데 유달산이 어딜까? 일단 유달산이 보이는 쪽으로 걸었다. 걷다보니 낡은 목욕탕이 나온다. 일본에는 고독한 미식가처럼 서민 식당을 순례하는 드라마가 있는가 하면 목욕탕을 순례하는 드라마도 있다. 낮의 목욕탕과 술이라는 드라마인데 매회 이야기는 아주 간단하다. 영업사원인 주인공이 근무시간에 목욕탕에 가고 그 다음에 맥주를 마신다는 이야기. 대단한 드라마는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도 나름 매력이 있다. 목포의 낡은 목욕탕을 보니 깨끗한 찜질방보다 저런곳에서 목욕을 하고 맥주한잔 하고 싶어졌다. 





하지만 목욕탕을 뒤로 하고 계속 오르막길을 오르니 얼마지나지 않아 노적봉에 도착했다. 산의 한 봉우리에 이렇게 쉽게 도착한다는 것이 신기하다. 사실 유달산은 최고봉의 높이가 228미터인 낮은 산이다. 하지만 펼쳐지는 전망을 보니 왜 목포사람들이 우선 유달산에 가라고 했는지 알 것같다. 



노적봉에서 약간만 더 가면 유달산 둘레길의 일부인 대학루에 도착한다. 이곳에 앉아서 아이스 커피를 마시며 목포를 내려다 보는 기분은 아주 멋지다. 도시가 마치 지도를 보는 것처럼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유달산 둘레길은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올레길 같은 것이 아니고 산길을 따라 걷는 등산에 가깝다. 물론 산을 오르는 것보다 주변을 도는 것이기 때문에 경사가 크게 있지는 않지만 여름철에 가볍게 도전해서 한바퀴 돌 수 있는 그런 길은 아니다.






유달산 둘레길을 4분의 1쯤 돌아서 낙조대에 도착했다. 걸으면서 결정한 것이지만 우리 부부의 1차 도착지는 북항으로 결정했다. 북항에는 회타운이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수 회타운에서 가성비 좋은 식사를 한 경험이 있으므로 목포도 그렇게 먹어보기로 한 것이다. 차가 없으니 북항까지는 걷는다. 택시를 탈까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내가 좀 고집을 부려서 북항까지는 그냥 걷기로 했다. 차를 타는 것과 걷는 것은 다르기 때문이다. 


낙조대에서 낙조를 볼 수는 없지만 예상할 수 있듯이 바다 전망이 좋다. 바다에 보이는 다리는 목포대교다. 군함도 지나가는 것이 신기했다. 





유달산 유원지에서 북항까지는 2킬로 미터쯤 된다. 본래는 중간에 목포해양대학앞에 카페라도 있으면 쉴까 했는데 별다른 매력적인 카페를 찾지 못했다. 그래서 계속 걸었다. 택시들이 우리 부부를 보고 경적을 울려 댄다. 이 여름에 여기를 걷는 사람이 비정상으로 보이나 보다. 




걷다보니 계단이 엄청난 유아원도 있다. 애들이 올라가기 힘들 것같은데 들려오는 아이들 목소리는 매우 즐겁게 들린다. 기묘하게 보여서 사진을 찍었다. 



드디어 북항 활어 회 거리다. 이곳에는 횟집들이 정말 백개 이상 있는 것같다. 나중에 들어간 회센터에서 이렇게 횟집이 많아서 어떻게 다 먹고 사냐고 물어봤을 정도. 아마도 주말에는 사람이 많이 오나보다. 우리가 간 날은 평일이었고 이미 2시여서 거리에 사람이 별로 없었다. 잠깐 검색해 보니 이렇게 큰 회센터가 생긴 것도 2012년이다. 새것이고 그래서 인지 깔끔하다. 



이렇게 말을 했으니 멋진 음식사진이 올라와야 정상인데 먹고 마시느라 사진이 없다. 우리는 술 세병에 농어회 한접시 그리고 지리탕과 상차림 2인분을 받았는데 다해서 8만2천원을 냈다. 가성비만 보면 여수 회센터가 더 좋았던 것같지만 그래도 목포 회센터도 이만하면 아주 훌룡하다. 


점심을 먹었으니 카페에 가서 책을 읽기로 했다. 술도 한잔들어가서 인지 걸어서 인지 아내는 피곤해 했다. 북항의 바닷가에는 카페들이 죽 늘어서 있는데 그 중에서 우리는 피귀어 카페 리스에 들어갔다. 결론은 대만족. 일단 피귀어 구경으로 눈이 만족하고 앞의 바다 전망이 좋으며 자리가 아주 편하다. 2층에 올라간 우리는 사람이 없어서 넓은 자리를 잡았는데 아내는 거기서 한잠 잤을 정도. 나는 그 옆에서 책을 읽었다. 아 무엇보다 커피가 맛있다. 나는 카페 커피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인 편인데 여기 커피는 드물게 맛있었고 아이스 커피도 스테인레스 보온 머그잔에 주는 등 서비스가 좋으면서도 가격도 4천원으로 엄청 비싼 가격은 아니었다. 이정도면 내가 목포에 살면 또 오고 싶은 카페다. 






책읽고 커피 마시고 짧은 낮잠까지 잔 우리 부부는 이제 해가 기울어 가는 바깥으로 나왔다. 목포는 아름답지만 7시 20분차를 타고 김제역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다가온다. 



목포역까지는 택시로 돌아왔다. 시간이 몇십분 정도 있어서 목포역 앞을 약간 걷다보니 지역 빵집이 하나 나오는데 아내가 어딘가의 블로그 포스팅에서 봤다고 한다. 들어가서 크림 롤 케이크와 크림 바게트를 사가지고 왔다.



오랜만의 기차여행은 매우 만족스러웠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보니 그것은 바로 결핍때문이 아닌가 싶다. 차가 있었다면 우리는 목포시내 뿐만 아니라 주변의 더 많은 곳을 돌아다니려고 했을 것이고 더 유명하고 대단한 풍경을 찾아 헤매였을 것이다. 차가 없으니까 이동에 제한이 생기고 그래서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유럽 배낭여행을 하듯이 혹은 차도 없었던 젊은 대학생처럼 여행을 했다. 기대하지 않고 발 앞의 것에 집중하면 세상은 기대보다 훨씬 더 훌룡하다. 무엇보다 이것 저것 놓치지 않고 다 해보려는 생각이 여행을 망치게 하고 고생스럽게 만든다. 


역앞의 김밥집에서 김밥을 샀다. 2천원짜리 김밥이 맛이 좋다. 눈을 감고 여행을 되돌아 보며 언젠가는 여수도 이렇게 여행해 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맨위로
통합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