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레기는 요즘 자주 이야기되는 주제다. 이제는 심지어 기자들도 기레기라는 말을 보통명사로 인식하고 이것을 인정하고 반성도 한다. 하지만 언론에서 나오는 말이나 글들은 왠지 가려운 곳을 긁어주지 못하는 느낌이 든다. 왜 그럴까?




기레기라는 말이 널리 쓰이는데에는 언론에 대한 큰 불신이 있다. 그런데 이 불신은 물론 똑같지 않다. 태극기부대의 사람에게 언론들은 친정권적이고 반보수적이라는 항의를 듣는다. 그리고 반대로 많은 사람들 특히 친여권성향의 사람들에게 지금의 언론들은 대개 반정권적이며 친보수적이라는 항의를 듣는다. 


그걸 싸잡아 모두 불신이라고 부르면 이야기가 좀 엉망이 되고 만다. 왜냐면 그렇게 불신이라는 말을 던지고 그것을 극복하려고 할 때 언론은 모든 사람에게 옳은 이야기, 모든 사람이 칭찬하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곳이 되며 따라서 그것은 결국 스스로를 절대적 진실과 정의의 주체로 세우겠다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옳은 말을 하기 때문에 언론이 신뢰를 얻는 사회가 아니라 언론이 말하면 모두가 진실이라고 믿는 사회가 옳은 사회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지적이 말꼬리잡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이 문제는 좀 다른 각도에서도 말해질 수 있는데 그것은 언론이 객관성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객관성이란 실은 극히 제한된 경우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언론은 제한된 시간에 정보를 내보내서 정보를 선택적으로 반복해서 내보내는 것이기 때문에 1+1 =2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어도 그것은 어떤 의미로 객관적이지 않다. 왜냐면 맞는 말을 하고 있어도 굳이 그 사실만을 강조한다는 점이 지적될 수 있고 뒤집어 말하면 그 말을 하는 시간에 말해야 할 어떤 말들을 안하고 있음으로써 편파적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광주학살같은 일이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데 누군가가 맛있는 컵케이크 만드는 법만 내보내고 있을 때 우리가 물어야 하는 것은 그 컵케이크 레시피가 정말 옳으냐 틀리냐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므로 언론은 진실만 말하고 있어도 객관적이지 않은 것이다. 


오늘날같이 복잡한 사회에서는 어느 나라나 겪을 수 밖에 없는 문제이기는 하지만 한국언론이 유독 취약한 부분은 바로 정체성이다. 정체성을 말한다는 것은 이 방송이 국민의 방송인지 이 방송이 한국의 방송인지를 묻기 시작했다는 뜻으로 이미 엄격한 의미에서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을 이기적인 것이거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예를 들어 한국 공동체를 위한 방송이라면 아무래도 한국에 관련된 보도를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세계와 한국의 관계를 생각하는 방송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현상을 무시하고 객관성을 추구하거나 이기적인 것으로 말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예를 들어 맨 처음에 말한 양비론비슷한 상황을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말해보자. 한국의 언론이 내가 이렇게 말해도 일본인에게 욕을 먹고 저렇게 말해도 한국인에게 욕을 먹으니 나는 한국인에게 욕을 먹는 것을 상관하지 않겠다는 태도는 중립적이고 옳은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해서 기레기가 되지 않는 언론이란 자신의 정체성이 무언가를 고민하고 그 위에서 주관을 가지고 하는 방송이다. 한국의 언론은 어디나 돈의 영향을 받는다. 이건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 어디나 마찬가지다. 한국의 비극은 정치가 돈에 따라 갈라져 있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부자면 어느 당을 지지할 것인가가 뻔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한다. 이러니 언론사가 보수 정치 세력에게 유리하게 기우는 것은 뻔한 일이다. 


그런데 언론사들은 자신들이 돈의 영향을 받는 다는 것을 거의 인정하지 않는데다가 치사하게도 자신들은 중립을 취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애매하게만 가져간다. 사람은 누구나 돈의 영향을 받지만 그래도 주관이 있고 철학이 있는 사람은 팔 것과 팔지 못할 것을 구분한다. 예를 들어 자기 철학을 소중히 한다면 자기 말의 일관성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이 망가지는 것을 굉장히 가슴아프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돈의 영향을 받는 것이 뻔한 언론이 주관도 없고 철학도 없이 애매한 중립운운 하면서 기레기라는 말에 대해서 반성을 하니 알맹이가 있을게 뭔가. 지금의 언론사 기자들은 돈받고 뭐든지 써주는 프린터기 이상으로 보이지 않는다. 소신과 철학이 없다면 프린터기 이상이 될 수가 없다. 조선일보나 자유한국당같은 곳의 최대 문제가 철학과 일관성이 없다는 것이다. 생각이 맞고 틀리고는 둘째치고 일관성이 없으니 그들의 주장이나 말은 의미가 없다. 그래서 박근혜가 박근혜 정권때 연설한 것을 그대로 몇년뒤에 읽어도 자유한국당은 꿀먹은 벙어리고 당시에는 그걸 칭찬하던 사람들도 꿀먹은 벙어리가 되는 일이 많다. 


언론이 진짜 반성해야 한다면 그 반성은 자신들이 아무 정체성이 없고 철학이 없다는 것에 대한 것이 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철학으로 10년 20년이 가도 일관성을 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지 못하겠다면 훨씬 더 겸손한 태도를 가져야 한다. 맛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이 맛집 추천을 하면 되겠는가? 이 시대에 대해서 남과 이야기할 수 있는 어떠한 일관성있는 철학도 가지지 못한 프린터기가 스스로 기자를 지식인이요 우리사회의 진실과 정의를 세우는 곳으로 과대평가해서야 되겠는가. 


그것이 바로 기레기라는 말이 존재하는 이유다. 능력없는자가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면서 행동하면 사회적인 악이 된다. 지금의 한국언론은 그렇게 사회악이 되었고 기레기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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