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하는 기계 : 2. 도시속의 원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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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하는 기계 : 2. 도시속의 원시인

격암(강국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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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사람들은 어리석은 일들을 하고 있다. 이유는 앞장의 문맥에서 이야기하면 인간은 지식을 다룰 있을 뿐인데 현대 사회가 데이터의 분석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점점 인공지능같은 기계의 도움없이는 합리적이고 일관성있게 행동하는 것이 불가능해 져가고 있다. 그것은 현대인들로 하여금 종종 스스로를 도시속에 떨어진 원시인처럼 느끼게 만든다. 

 

우선 데이터 분석의 문제가 과학이 성숙함에 따라 어떻게 자연스럽게 중요해지는지를 보여주는 한가지 사례를 고려해 보자. 

 

2002 경의 일이다나는 당시 뉴욕대학교에서 원숭이를 가지고 실험하는 로버트 샤플리 교수와 함께 시각신경에 대한 이론적 모델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물리학을 전공한 내가 원숭이를 가지고 실험하는 학자에게 필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데이터의 차원때문이었다

살아있는 동물의 뇌에서 뇌세포의 활동을 기록하는 가장 정확한 방법은 전극을 뇌속에 박아 넣는 것이다. 당연히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뇌세포란 보통 직경이 0.1 밀리미터밖에 되지 않으며 서로 가깝게 붙어있으므로 전극의 사소한 작은 움직임도 거기서 감지되는 신호에는 엄청난 영향을 미쳐서 기록을 망칠  있다.  몇십년전만 해도  방법은 동물이 완전한 마취상태에 있을 때만 가능했고 그것도  하나의 전극만 박아넣는 것이었다.

 

일단 전극이 설치되고 나면 실험자는 동물의 뇌세포활동을  전극에서 나오는 신호로 파악할 있다그런 뇌세포활동의 기록은 보통 특정한 조건들 하에서 이뤄진다. 예를 들어 원숭이에게 특정한 각도로 기울어진 막대기가 움직이는 화면을 보여주는 식이다그럴  과학자들은 원숭이 뇌의 일차 시각피질에 있는 뇌세포에서 스파이크  활동전위를 만들어 내는 빈도수가 어떻게 되는가를 확인한다또는 과학자들은 여러가지 얼굴들을 원숭이에게 보여주면서 측두엽의 뇌세포 활동을 기록한다.  측두엽의 어떤 뇌세포들은 특정한 얼굴을 보여주면 활성화되는 특징이 있다. 그래서  뇌세포가 활동전위를 만들어 내는 것을 스피커에 연결하면 특정한 얼굴을 보여 주었을  스피커에서 우두두두하고 기관총쏘는 소리가 쏟아져 나오는 것을 듣게 된다

이런 실험들은 어찌보면 그다지 대단한 일이 아닌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뇌에는 아주 많은 뇌세포가 있다. 예를 들어 인간의 뇌에는 천억개의 뇌세포가 있다고 말해진다. 그런데 외부의 자극에 대해 겨우 한개의 뇌세포가 우리가 이해할 있는 반응을 보인다는 것은 자체로 매우 놀라운 일이다. 이것은 언제나 이런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컴퓨터 모니터 화면을 크게 확대하면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그저 깜빡이는 점들이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모니터에 대통령이 나올 때마다 불이 켜지는 점이나 특정한 기울기의 선이 존재하면 불이 들어오는 점같은 것은 없다.

 

절에서 말한 문맥에서 이야기하면 우리는 하나의 뇌세포가 지식을 가졌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할 있는 정보를 가졌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이것은 20세기 뇌과학의 커다란 성취 중의 하나였다. 이때문에  분야에서 선도적인 연구를  데이비드 휴벨과 토스텐 위젤은 1981년에 노벨상을 수상했다이들의 연구는 시각분야에 대한 것이었지만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은 다른 감각에 대한 아주 다양한 외부자극들에 대해서 뇌세포들이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연구해 왔다. 

 

그러나 이것은 초기의 상황이다. 아무래도 뇌에 존재하는 뇌세포의 수를 생각해 보고, 존재할 있는 신호의 다양성을 생각해 봤을 뇌에는 우리가 쉽게 발견할 있는 반응관계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가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전극의 숫자만 봐도 하나의 전극으로 개의 뇌세포 활동을 기록하는 것은 당연히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기술의 발달에 따라 한개의 전극은  무리의 전극으로 바뀌었고 신호를 측정하는 것도 가벼운 마취를  동물에서 기록이 가능해 지더니 마침내는 깨어서 움직이는 동물의 뇌에서도 신호를 기록할  있게 되었다. 

 

이렇게 되면 이제 신경과학자들은 데이터분석을 위해 수학자나 물리학자 혹은 인공신경망같은 것을 연구하는 공학자들이 필요해 지게 된다. 복잡하게 주어지는 세포들의 신호속에서 의미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분석하는 데이터가 1차원일 때는 데이터에 대한 직관적 해석도 충분해 보였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는 데이터를 얻는 것이 문제지 데이터가 의미하는가 하는 것은 직관적으로 자명하다고 믿어졌다. 

 

하지만 데이터가 고차원일 예를 들어 뉴론 하나의 신호만 보는게 아니라 뉴론 10개나 100개의 신호를 동시에 고려해야 사람은 수학과 기계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무력해 진다당시에 내가  일중의 하나는 고차원적 데이터의  확률분포를 비교하는 기준을 제시하고 그걸 토대로 데이터들을 분석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물론 뇌과학분야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데이터를 기록하는 기술이 증가할 수록 우리는 데이터의 직관적 해석에 매달릴 없다. 예를 들어 야구선수의 평가는 어떤가. 최근에는 야구분야에서 데이터를 수학적으로 분석하는 일은 상식적인 일이 되었다. 그전에는 스카우터나 감독이 선수들을 보고 직관적으로 판단하는 일이 보통이었다. 선수는 좋은 선수가 근성이 있다던가 나이때 배트를 이렇게 휘두르는 선수는 몇년 후에는 홈런타자가 된다는 스카우터가 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야구분야는 아주 많은 데이터가 존재하고 그걸 컴퓨터가 분석할 있기 때문이다. 

 

물론 뇌과학과 야구에서 끝이 아니다. 돌아보면 우리는 이미 현대 사회가 데이터 분석으로 가득 차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일기예보도 데이터 분석이다. 경제전망도 데이터 분석이다. 약을 실험하는 일은 당연히 데이터 분석이고 환자를 진단하는 일도 당연히 데이터 분석이다. 회사가 직원을 고용하는 일도 당연히 데이터 분석이고 어느 회사에 투자할 것인가 하는 것도 당연히 데이터 분석이다. 

 

우리는 결국 정의나 윤리도 현대 사회에서는 확률계산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된다. 윤리적 문제나 정의의 문제는 인과성을 증명하는 일과 항상 연관이 되기 때문이다.예를 들어 임산부 옆에서 담배를 피우면 될까 안될까? 담배를 피우면 임산부나 아기가 반드시 상처입는다면 담배와 피해가 100% 인과관계를 가진다면 이것은 확률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것은 확률의 문제가 된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내가 가습기 세정제를 잘못만들어서 사람들이 죽는다면 그것은 살인일까? 하지만 그걸 사용한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니다. 사람이 죽을 확률이 얼마가 되면 살인일까? 사람이라도 죽으면 살인이라고? 그걸 받아들일 있을까? 결국 죽음과 가습기 세정제와의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것에서도 확률추측이 핵심적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정책이 비윤리적이고 어리석은 것이라고 비난하고 싶은가? 당신이 실질적으로 해야하는 일은 데이터를 분석하고 확률을 계산하는 것이다. 학교에서는 종종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가르치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모든 것이 확률적으로 인과관계를 가진다. 아이를 체벌 하는 일은 나쁜가? 살인자를 사형시키는 것은 쓸모가 없다고 하는가? 오늘날 우리가 통계적 분석에 근거하지 않고서 주장하는 것은 거의 없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익숙한 패턴과 만나게 된다. 과거에 그런 것들은 대개 통상 경험에 근거한 것이라고 말해졌다. 마치 수학자를 부르기 전의 뇌과학자들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이 말하는 것인지 직관적으로 말할 있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문제는 주로 많은 경험과 데이터를 얻는 것이지 그것을 해석하고 확률을 계산하는 쪽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시대는 이미 바뀌었고 지금도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점점 문제가 되는 것은 확률을 계산하는 쪽이다. 그리고 분야에서 인간의 직관이 가지는 중요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우리의 직관적인 확률감각은 그런 방대한 데이터를 다룰 있도록 진화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의 창시자이자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은 바로 문제를 지적한 사람이다. 그가 실험한 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확률적인 계산에 있어서 매우 무능하며 종종 비이성적인 선택을 한다 비이성적인 선택이 경제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고민하는 분야가 바로 행동경제학이다. 

 

카네만에 따르면 인간의 직관적 반응이란 좁은 시야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그는 이런 예를 든다당신이 어느 대학의 간호학과에 갔다고 하자거기서 당신은 뿔테안경을 쓰고 양자역학책을 들고 복도를 걸아가는 남학생을 만났다이런 상황에서 누군가가 당신에게 저학생이 어느 학과의 학생일까요라고 묻는다고 하자그럴때 당신이  학생은 분명히 물리학과 학생일거라고 답한다면 당신은 지금 당신이 어느 건물에 있는가를 잊고 있는 것이다 건물의 학생들의 대부분은 간호학과 학생이다그런데 당신은 물리학과 학생을 떠올리게 하는 증거들에만 몰두한 나머지 기본적인 상황적 확률을 잊어버린다

다른 예를 들어 보자. 길을 걷던 당신은 죽어가는 돌고래를 살립시다라는 포스터를 본다 포스터는 돌고래들이 멸종하고 있으며 그들을 살리기 위해 돈을 모금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고통스러워하는 돌고래 사진을 보고 당신은 돈을 기부하기로 한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과정에서 고통받는 돌고래의 숫자가 도대체 얼마인지고통받고 있는 다른 것들은 어떤게 있으며 따라서 우리가  돌고래 문제에 어느정도의 신경을 써야 합리적인 것인지 같은 것은 고려하지 못한다그저  한마리의 돌고래가 고통스러워 한다라는 것이 우리의 성금액수를 크게 좌우한다 한마리의 귀여운 북극곰 아기사진이면 북극곰살리기 운동이 벌어지는 것이다

확률이론적인 용어를 써서 카네만이 하는 말을 요약하자면 이렇게 된다우리는 베이지언 추론 (Bayesian inference)  해야 하는데 최대 우도 추론 (Maximum-likelihood inference) 결과가 전부라고 생각 한다 데이터를 얻기 전에 기본적으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인 프라이어 확률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이다우리는 세상을 적합한 프레임으로 보지 못하고 지나치게 좁은 창을 통해서 보고 있다.  

 

이외에도 카네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은 인간의 비합리적 행동의 예들을 수없이 나열하고 있다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는 유일한 사람은 아니다우리는 서점에 가면 심리학적 오류들을 소개하는 책을 쉽게 발견할  있다.  예를 들어 스튜어트 서덜랜드의 비합리성의 심리학이 그런 책중의 하나이며 나심 탈렙의 블랙스완도 우리가 저지르는 오류들을 나열하고 있다.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오류들을 나열한 책을 읽은 후에 우리가 배워야 가장 중요한 교훈은 그런 오류들을 앞으로는 저지르지 말자는 것이 아니다. 이런 인간의 오류는 타고난 것이라서 쉽사리 고쳐질  없다그것은 마치 인간이 시속 백킬로미터로 달릴  없고 후각을 개처럼 좋게 만들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결국 인간의 타고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는 수학이나 기계같은 인간의 발명품을 이용해야 한다인간의 판단착오가 단순히 그걸 알게되는 것으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 위해 카네먼은 뮬러-라이어 환상을 자주 언급한다아래의 그림을 보자. 

 

물러-라이어 환상

 

 

직선의 양쪽에 달린 화살표의 방향에 따라 중앙의 직선의 길이가 달라 보이게 된다는 것이 바로  뮬러-라이어 환상이다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점선으로 길이를 비교한 아래의 그림에서  수가 있다여기서 카네먼이 지적하는 것은 우리는 우리가 환각을 본다는 것을 알면서도 환각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는 것이다점선을 긋기 전에는 여전히 중앙의 선이  아래의 선보다 길어보인다우리가 뮬러-라이어 환상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것이  효과를 없애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심리학적 오류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면 마치 그런 지식이 우리를 그런 오류로부터 구해줄 것처럼 생각한다 이제 우리의 심리적 오류를 알았으니 다음부터는 틀리지 않겠다는 식인 것이다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대개 충분치 않다심리적 오류도 뮬러-라이어 환상효과처럼 지식만으로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그것은 우리의 타고난 한계와 관련이 있다그것은 우리의 DNA 각인되어 있다. 

 

인간이 통계적 분석에 약하다는 사실도 마찬가지다그것도 단순히 조심한다고 해서 해결되어지는 문제는 아니다카네먼은 확률적 직관에 대한 실험을 수행하면서 그들은 통계학자의 확률에 대한 직관도 테스트해봤다고 말한다 결과 심지어 통계학자의 확률적 직관조차 신통치 않기는 마찬가지였다통계학자도 이론적으로 사고하도록 요구하기 전까지는 심리적 오류를 저지른다카네먼은 심지어 그런 오류를 평생연구한 자기 자신의 사고도 끝없이 자기 자신이 지적해온 편견에 계속해서 빠져든다고 말한다.

따라서 이성적인 선택을 하기 원한다면 우리는 오히려 어느정도 직관을 버리고 직관에 저항하면서 우리가 만들어  새로운 기준에 따라 사고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기준의 중심이 되는 것은 물론 확률이론이고 데이터들이다

 

다시 말해 현대 사회와 같이 확률적 분석이 요구되는 환경에서 살면서 확률이론에 따르지 않고 직관에 따라서 살면 우리는 비이성적인 일을 하게 된다만약 확률이론이 미래 예측은 무익하므로 당신의 주식투자가 돈을 벌고 있는지 아닌지를 확인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렇게 해야 한다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가 예측할  없는 것을 예측할  있다고 느끼고 행동을 취하며  결과는  나빠진다그래서 많은 사람은 주식가격이 떨어지기 직전에 주식을 구매하고 주식이 오르기 직전에 주식을 팔아버리게 되는 것이다. 


현대인들은 종종 스스로를 과거에서 타임머쉰을 타고온 원시인처럼 느끼게 되는가? 그건 그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데이터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없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자연적인 인간은 부족한 존재다. 합리적 판단이 객관성을 가지려면 우리는 수학이 필요하고 기계가 필요하며 방대한 데이터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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