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暗 조 헌 섭

소록도(小鹿島 한센의 아픔이 서린 아름다운 섬,)

작성일 작성자 조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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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록도(小鹿島 한센의 아픔이 서린 아름다운 섬,) 전화 061-830-5527

 대덕 산악회 226차 여행 2015년 4월 5일

 참석 인원 34명

 

 

 

여행 코스=주차장-병원방향[수탄장]-감금실- 검시실-소록도 자료관-중앙공원-시비

 

소재지 : 전남 고흥군 도양읍 소록리 1번지  소록도(小鹿島) 소개

고흥반도 남쪽 끝의 녹동으로부터 약 500m 거리에 있는 소록도는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고 하여 소록도라 부른다.

이 섬은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아직도 약 700여

 명의 한센병 환자들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이 살아가는 생활공간이라 여느 관광지의

 흥겨움이나 소란스러움은 어울리지 않는다.

 

녹동항에서 바라보면 마치 손에 잡힐 듯 가까운 4.4㎢의 작은 섬이지만 울창한 송림과

 깨끗한 백사장이 아름다운 소록도해수욕장과 일제시대 강제수용되었던 한센병

 환자들이 손수 가꾼 것으로 알려진 중앙공원 등 볼거리가 많은 섬이다.

 예전에는 녹동항에서 배를 타고 10여 분을 달려야 했지만 2009년3월2일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자동차로 오갈 수 있는 섬이다.

 

 주차장에서 해변데크를 따라가면 해변을 감싸 안으며 시원스레 하늘을 바라보는

 소나무숲과 갯바위들이 멋진 경관을 연출하는 곳이다.

 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으로 가면 한센병 환자들의 생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생활자료

관과 한센병 환자였던 한하운 시인의 시비,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하나이젠키치 원장의 창덕비 등 소록도의 아픈

 역사를 접할 수 있다.

 

 제2안내소 앞에는 소록도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이자 가슴 아픈 사연을 간직하고 있는

 수탄장이 있다.

  한센병환자의 자녀를 강제로 격리해 놓고 병사지대와 직원지대에 있는 이 도로에서

 한 달에 한 번 만날 수 있게 했는데 그것도 전염을 우려해 서로 손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길가에 마주 서서 눈만 마주칠 수 있었다 한다.

 

실제 한센병 환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는 관광객이 들어갈 수 없다.

최근 소록대교가 개통되어 찾기가 더욱 쉬워졌다. 단, 일몰 후 출입은 통제된다.

소록도에 대한 기록은 <호구총수>의 도양면에서 소록도를 처음 볼 수 있다.

  <해동여지도>, <청구도>, <동여도>에도 묘사되어 있다.

  <1872년 지방지도>에는 소록도 옆에 주기로 녹도(鹿島)로부터 물길로 5리라는

 정보가 기록되어 있다.

 

  섬 지명의 유래는 풍수지리와 관련이 있다.

  즉, 도양읍 본토 녹동의 지형이 풍수지리상 사슴 머리에 해당하므로 녹두(鹿頭) 또는

 녹도(鹿島)라 하였고, 녹도의 맞은편에 있는 섬은

  '작은 녹도'라는 뜻에서 소록도(小鹿島)라 하였다고 한다.

 녹도는 뒤에 녹동(鹿洞)으로 바뀌었다.

 

소록대교는 녹동항-소록도-거금도를 잇는 연륙교 가설공사 구간 중 녹동항-소록도

 1단계 구간의 교량으로 2001년 6월 착공하여

  2008년 완공하였으나, 섬안의 연결도로 공사가 지연되어 명절 연휴에만 임시로

 통행해 오다가 2009년3월2일 완전하게 개통하였다. 

  길이 1,160m이고 왕복 2차선으로 이루어진 자정 모노케이블 현수교로서

 사업비는 2,960m 연결도로를 포함, 1,652억원이 들었다.

  12개의 교각이 설치되어 있으며, 교량 상판을 매단 케이블은 높이 87.5m에 이르는

 주탑 2개가 지탱하고 있다.

 

 

 

거금도

 

거금도

거금도 대교

 

소록도

 

 소록도 자료관

거금도 대교

소록도 중식 우측 문경애 통장님 남구 귄오준 의원님 이창호 동장님 도회장님 여총무

 

 

정면

소록도 국립 병원 정면

 국립소록도 병원(자혜의원)1916년

 2월 24일 시행된 조선총독부령

 제7호에 의한 조선총독부 지방관에 따라 전라남도 소록도 자혜의원으로 설립되어 1917년 5월 17일 개칭한

 한센병(노르웨이 의사 한센이 1873년 처음 나균을 발견하여 한센병이라 함) 진료를 위한 의료시설이다.

검시실 전경

검시실 전경

 이 검시실은 1934년 건립
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들이 한센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정관 수술과 시체 해부를 했던 곳으로 소록도의

 인권 유린의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사망자는 가족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우선 검시 절차를 마친 뒤에야

 장례식을 거행할 수 있었고 시신은

 구북리 뒤편의 바닷가에 있는 화장터에서 화장되었다. 건물 내부에 수술대와 검시대 그리고 세척 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전경

전경

 1937년 건립만령당은 한센병 환자들의 유해를 나무 상자에 담아 보관하던

 납골당이다. 일본의 보탑을 모방하여 콘크리트로 원통형 몸통을 구성하였고, 지붕은 갓을 씌운 형태이며, 지붕 위쪽은 탑의 상륜부처럼 구성하였다.

 정면에 감실을 두어 참배객들이 망자에 대해 배향을 할 수 있게 하였고,

 뒤쪽 문으로 들어가면 유골함이 안치되어 있고 작은 분향대가 마련되어

 있다. 한센병 환자라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소록도에 강제 수용을 당하여

 한 많은 삶을 살다 생을 마감한 환자의 납골당이라는 역사적 의미가 있는 건물이다.

전경

전경

 1937년 건립이 건물은 일제 강점기 당시 소록도에 격리시킨 한센병 환자들을 관리, 감독했던 곳으로 일제의 인권 유린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물이다. 사무 본관은 붉은색 벽돌 건물로 건립되었으나 현재 정면이 핑크색 타일로 마감되어 기본 골격만 건립 당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강당은 사무 본관 뒤편으로 증축하여 복도로 연결하였으며,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마룻바닥 하부를 환기할 수 있도록 장방형의 환기구가 설치되어 있다.


 

 

 

 

 

 

 

 

 

 

 

 

 

 

 

 

 

 

 

 

 

 

 

 

 

 

 

 

 

 

 

 

 

 

중앙공원

중앙공원

애환의 추모비

1945년8월22일, 해방을 맞아 원생 자치권을 요구하던 84명의 협상대표단이 이를

 거부하는 자들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 당했다.

참사 56년만인 2001년12월8일 화장, 매몰된 현장에서 유골발굴작업을 실시하여

 다수의 유골을 발굴하였다.

당시 학살당한 현장에 2002년8월22일 상징적인 기념비를 세웠다.

중앙공원안내도

 

1936년12월1일 착공, 3년4개월 동안의 공사기간을 거쳐 1940년4월1일 완공하고,

‘부드러운 동산’이라 불렀다.

당시 산림을 깎아 만든 공원의 면적은 약 1만 9,800㎡에 달했다. 소록도에 수용된

 한센병 환자 연인원 6만여 명을 강제동원하여

조성하였으며, 득량만과 완도 및 소록도 주변 섬에서 암석을 채석하여 옮겨오고,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관상수를 반입하여 식재하였다.

 

광복 후 공원 명칭이 ‘소록도 중앙공원’으로 변경되었고, 1971년과 1972년 공원 확장이 이루어져 현재 면적은 약 25,000㎡에 이른다.

솔송과 황금편백을 비롯하여 향나무·후박나무·삼나무·팽나무·히말라야시더·종려·치자·

팔손이나무 등 잘 손질된 관상수 100여 종이

심어져 수목원을 방불케 한다.

 

미카엘 대천사가 한센균을 박멸하는 모습을 형상화하고, ‘한센병은 낫는다’라는 문구를

 적어 놓은 구라탑(求癩塔, 1963년 건립)과

한센병을 앓았던 시인 한하운(韓何雲 1920~1975)의 ‘보리피리’가 새겨진 시비(詩碑), 공덕비 2기가 있다.

 

 

 

 

  • 보리피리 한하운 시

 

  • 보리피리 불며
          봄 언덕
          고향 그리워
          피―ㄹ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꽃 청산(靑山)
          어린 때 그리워
          피―ㄹ닐니리.

 

  •       보리피리 불며
          인환(人 )의 거리
          인간사(人間事) 그리워
          피―ㄹ닐리리.

 

.    보리피리 불며
      방랑의 기산하(幾山河)
      눈물의 언덕을 지나
      피―ㄹ닐리리.』
                 
 

 


 

여기가 아파 - 백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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