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暗 조 헌 섭

모악산(母岳山)도립공원(793.5m)

작성일 작성자 조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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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악산(母岳山)도립공원(793.5m)전북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번지

대덕산악회 227차 산행 2015년 5월 3일 참석인원 26명

거리=대명1동 주민센타~금산사 주차장 203km 2시간 50분 

날씨=비 흐림

 

산행코스=금산사주차장-금산사-모악정 삼거리-모악정-정상삼거리-모악산정상

-공터헬기장-심원암-삼거리-금산사-주차장

왕복 10 km 4시간 30분 

 

모악산은 『금산사지()』를 보면 ‘엄뫼’라는 말이나 ‘큰뫼’라는

 말은 아주 높은 산을 의미하는데, 한자가 들어오면서 ‘엄뫼’는 어머니산

이라는 뜻으로 의역해서 ‘모악’이라했고,‘큰뫼’는 ‘큼’을 음역하고

‘뫼’는 의역해서 ‘금산()’이라고 적었다고 되어 있다.

구전에 의하면 모악산 꼭대기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닮은

 큰 바위 (쉰길바위)가 있어 모악산이라 했다고 한다

자연경관이 빼어난 호남 4경 중 하나(母岳春景,邊山夏景,內藏秋景,白羊雪景)

호남평야와 김제평야의 젖줄 모악산 도립공원에 있는 금산사는 71末寺

 통괄하는 조계종 제 17교구 본사로 많은 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곳이다.

 

 

 

금산사 경내에는 금산사미륵전(국보 제62호)·노주(露柱 : 보물 제22호)·

석련대(石蓮臺 : 보물 제23호)·혜덕왕사진응탑비(慧德王師眞應塔碑 보물 제24호)

5층석탑(五層石塔 : 보물 제25호)·석종(石鍾 : 보물 제26호)·

6각다층석탑(六角多層石塔 : 보물 제27호)·당간지주(幢竿支柱 : 보물 제28호)·

대장전(大藏殿 : 보물 제827호)·석등(石燈 : 보물 제828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청석 소탑

정유재란 이후에 다시 중건한 미륵전

금산사 미륵도량의 시조인 진표율사님

 
 오층 석탑

조선 성종 23년(1492)에 작성된 "금산사 5층석탑 중창기"에 의하면, 금산사는

 이미 석가모니 부처님 이전의 가섭불 때에 있었던 옛 절터를 다시 중창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는 금산사의 터전이 오래 전부터 부처님과 인연이 깊었던 것임을 알수

있게한다. 흔히 통일신라 시기 진표율사에 의하여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엄밀히 따지면 그는 중창자이지 창건주는 아니다.

 

왜냐하면 "삼국유사"를 비롯한 기록에 의하면, 진표율사는 금산사의 순제법사

에게 출가한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진표율사 이전에 이미 금산사가 창건

되었음을 알게 한다. 남아있는 "금산사사적"의 기록에 의하여 금산사가 백제

 법왕 1년인 599년에 창건되었음을 알수 있다.
이후 금산사의 모습이 크게 부각된 것은 통일신라 시기 경덕왕때 진표율사에

 의한 중창 때문이다.


금산사에서 숭제법사의 가르침을 받아 수행을 하던 진표율사는 27세 때에 변산

 부사의암(不思議庵)에서 철저한 수행에 전념하였다. 17년 간을 몸을 돌보지

 않는 망신참의 고행을 통하여 마침내 미륵보살과 지장보살로부터 간자와

 계본을 전해 받게 된다.

이후 진표율사는 금산사로 다시 돌아와 금산사의 중창불사를 발원하고,

 경덕왕과 왕실의 후원을 받아 6년에 걸쳐 가람을 대규모로 일으켜 세웠다.

 

 이 때가 경덕왕 21년인 762년부터 혜공왕 2년인 766년에 이르는 기간이었다.
금산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금산사사적"의 내용을 근거로 불 때 599년 백제

 법왕의 자복사찰로 창건되었으며, 이 후 진표율사에 의한 6년여의 중창으로

 사찰다운 모습을 갖추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금산사가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 메김 한 것은 진표율사 때부터이다.

 

 

 

모악산 입구 폭포

 

 

 금산사 일주문

 모악정

 모악정

 연산홍 꽃

 중식

 

  

 

 

 안 휴계실 에서바라본 마이산

 

 

 

 

한국기행 - Korea travel_모악산과 전주 1부 모악산 맑은 물에 깃들어_#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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