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暗 조 헌 섭

창녕조씨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발간사)

작성일 작성자 조헌섭
 .

 

창녕조씨  시조 및 본관의 유래 

 

부사직 공파 종친님 안녕하세요.
이번에 내가 마음 먹고 휴대용 족보책자 
창녕조씨 부사직공파 계보도
<창녕조씨 덕봉 각 집안 계보도> 편찬을 완료하여 우선 여러분에게 카톡으로 전송합니다.
보시고, 잘 되었는지? 오류는 없는지? 등 지도편달 바랍니다.
특별한 지적사항이 없으면, 여러분들의 성함을 감수자 명단에 올리려고 합니다.
허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창녕조씨 부사직공파보 계보도
<창녕조씨 덕봉 각 집안 계보도>

                              조 응섭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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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창녕조씨 부사직공파 일가 친척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고 조동식과 김연(두사댁)의 장자 
덕봉 출신 조응섭입니다.
요새 젊은이들이 타향살이에 가족부양하느라 바빠서 그런지 우리 창녕조씨 족보를 잘 모를 뿐만아니라 가까운

 집안과 행렬도 잘 모르는 자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족보책 보기가 여간 쉽지가 않고 휴대하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내가 이것을 답답하고 딱하게 여겨 새로 
[창녕조씨 부사직공파보 계보도]
<창녕조씨 덕봉 각 집안 계보도>를 만들었습니다.
원컨데 각자 쉽게 익혀서 날마다 편리하게 쓰기를 바랄 뿐입니다.
내가 이번에 나름대로 작정을 하여 휴대용 족보책자을 만들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요새는 인터넷 세상이라 휴대폰에 저장하여 볼 수 있는 방법을 생각 끝에 연구하여

 [창녕조씨 부사직공파보 계보도]
<창녕조씨 덕봉 각 집안 계보도>를 
편찬하여 여러분에게 보급하고자 합니다.


휴대폰 화면은 제한되어 있고, 족보 용량은 많아 편집상 부득이 생졸년월일 및 사위명 등은 일체 제외하고,

 족보이름 위주로 알아보기 쉽게 한글로 편찬하였습니다.
저장할 용량이 많아 본권 6권, 부록 4권, 
총 1책 11권으로 수정과 감수를 거듭하여 심혈을 기울여 어렵게 편찬, 완성하였는바,
부록 제1,2,3권은 본권 제4권이 저장용량이 가득차서 분리하여 각자가 자기 집안 계보도를 첨가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부록 제4권, 제5권은 각자 자기 작은 집안의 족보 계보도를 만드는데 참고할 수 있도록 나의 집안 계보도를

 첨부하였으므로 참고하여 직접 계보도를 만들어 보시기 바랍니다.
족보책과 비교하여 탈자, 오자 등 혹 잘 못된 점이 발견되면 전화 또는 문자로 연락하면 바로 잡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직접 감수를 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장용량이 많아 일반문자 메시지로 발송이 불가하여 카카오톡으로 발송합니다.


여러분이 카톡으로 전송 받아 그대로 카톡으로 보관하여 시일이 지나면 카톡이 뒤로 밀리어 찾아보기가 어렵고,

 실수로 삭제하여 지워지기 쉽습니다.
그리고, 카톡으로 보면 글자줄이 비틀어지고, 줄이 맞지 않고, 저장용량이 많아 휴대폰 기능 작동이 잘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바르고 안전하게 보관하면서 찾아 보기 쉬운 방법을 생각해 봤습니다.


<방법>
1)네이버에 회원가입을 합니다.
(네이버 메모에 저장하려면 회원가입 필수?)
2)플레이 스토아 등으로 네이버 메모를 다운 받습니다.
<무료. 저장 용량이 많음>
(다른 메모는 저장 용량이 적어 모두 들어가지 않음.)
휴대폰을 잃어 버려도 저장 내용은 네이버포털에 그대로 보관됩니다.


<옛날에 집에 불이 나도 족보책과 신주는 가지고 나온다고 하지 않습니까?
요새 북한에는 불이 나면 김일성 부자 사진만 들고 나오면 영웅이 된다고 합니다만, 쯧쯧쯧>
3)전송 받은 카톡 족보 계보도의 좌측 아래 전체보기를 터치합니다.
4)전체화면이 뜨면 화면위를 꾹 눌러서 복사를 터치합니다.
5)네이버 메모를 엽니다.
6)네이버 메모 화면 우측상단
(간단한 메모는 여기에 우측)에 있는 연필모양<메모하기>을 터치합니다.
7)화면이 뜨면 화면 위 커스를 꾹 누릅니다.
8)붙여넣기가 뜨면 붙여넣기를 터치합니다.
9)붙여넣기가 완성되면 우측상단에 있는 체크표시를 터치하여 연필모양으로 바뀌면 저장이 완료됩니다.
10)같은 방법으로 반복하여 메모하기, 저장을 합니다.


※ 메모쓰기란에는 고쳐쓰기, 더쓰기가 가능하여 여러분들의 이름 또는 자손들 이름을 추가,저장할 수 있습니다.
필요하다면 여자 이름,사위,외손 성명도 첨가하여 저장 하세요.
글자 크기는 화면상 보통(중간크기)으로 설정하였으며 더 크게 하면 줄이 바뀌어 보기 어렵습니다.
여러분들이 휴대폰을 항상 휴대하기 때문에 
[창녕조씨 부사직공파보 계보도]
<창녕조씨 덕봉 각 집안 계보도>
를 항상 휴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네이버 메모에 여러분들의 중요한 메모 등도 저장하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습니다.


※ 계보도를 자신에게 또는 다른분에게 카톡 등으로 발송하는 방법은 네이버 메모 화면 아래 우측에서 두번째

 [화살표]를 터치, 선택하여 보내기하면 됩니다.
또,전송받은 카톡을 친척분 또는 자녀 보학용으로 재전송시에는 전달,공유-선택-확인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이 언제 어디서든지 필요할때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족보를 잘 모르는 사람이나 어린이들에게 가르치기를 바랍니다.
족보책과 비교하여 보면 한자공부도 되고 좋습니다.
이 족보 계보도가 여러분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몸 건강히 안녕히 계십시오.
후손 응섭은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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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부사직공파보(을축보) 서>

대개 인가에 족보 있음이 국가에 사기 있음과 일반이라 집에 족보가 없으면 세대와 소목을 알지 못하여 일가

 보기를 길가는 사람과 같이 하고 나라에 사기가 없으면 고금치난과 흥망성쇠를 알지 못하여 장차 무도함이

 되리니 족보와 사기가 사람에게 중대함이 될지어다.
우리 창녕조씨가 신라진평왕때에 창성부원군휘계룡 관이 태사에 이름에 이가 시조가 되었다.
곧, 창녕화왕산의 용담에서 비태하셨다하니 유전의 말씀을 믿을 것이 없으나 내가 알기로 신인이 났음이 범인과

 다르니 상나라에 현조와 주나라에 거적과 우리나라에 박씨의 대포와 김씨의 계림과 수로왕의 금합이 이와 같다.

또 시조의 협하에 문이 있는고로 왕이 성을 조(曺)씨로 주셨다.
그후 고려때에 팔대평장사와 구대소감이 있고 이조때에 공후경상과 문장호걸이 대대로 부절했다.
오직 자손의 그 숫자는 모른다. 
그러나 현재 남북이 막혀 서로 통하지 못하여 부모가 자식을 모르고 형이 아우를 모르니 어찌 한되지 않으리오.
오직 우리집 족보가 구보와 계유보와 정해보와 병신보와 신해보와 병자보와 을사보 모두 칠번 하였다.


오늘날 창상을 당함에 대동보가 되지 못한 즉 나누어 파보라도 함이 옳지 않을까 순환하는 이치가 있음에

 오늘은 파보를 하나 후일에 대보가 되지 않을까 선계의 불명함은 병화를 여러번 지냈음에 문헌이 증거할 수

 없으므로 고려때 소감공 휘 송무로 하여금 다시 일세를 일바다.(세웠다.)


그의 육세손 부사직공 휘 주로 우리 파조를 삼아 여러번 족보를 하였다.
예전에 소순씨가 말하신바 우리족보를 봄에 효제의 마음이 유연히 난다하니 나도 우리족보를 보니 그러하도다.
예전 을사보때 함께 하던이가 이미 고인이 되어 묘목이 아름이라 나도 또한 늙은 이날에 이번 보역을 면치

 못하고 책상을 대하여 붓을 잡으니 옛날 회포가 없을 수 없었다.
이번에 동보한 사람은 위로는 조선의 유범을 이었고 아래로 후손에게 모범을 전하여 한 근원의 의리를 잊지

 말고 백세나 무궁토록 이에 힘쓰는 바이다.
하원갑 을축괴하상현에 
후손 후영은 삼가 씀.
<2016년(병신년) 6월 일.
후손 응섭은 삼가 옮겨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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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시조 및 본관의 유래>

창녕조씨의 시조는 신라 
(진평왕 :제26대. 재위기간 : 579~632년)의 사위로 전하는 조계룡이다.
[조선씨족통보]의 기록에 의하면 그의 어머니는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 예향이며. 그의 출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온다.
예향은 창녕현 고암촌 태생으로 그녀가 자라서 혼기에 이르렀을 때 우연히 복중에 병이 생겨 화왕산 용지에

 가서 목욕재개하고 기도를 올리니 신기하게 병이 완쾌되었고 몸에는 태기가 있었다.
어느날 밤 꿈에 장부가 나타나 
"이 아이의 아버지는 용의 아들 옥결이다. 잘 기르면 자라서 경상이 될 것이며 자손만대 번영이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사라졌다.
그후 달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용모가 준수한 사내아이로 겨드랑이 밑에 [曺]자가 뚜렸하게 씌어져 있었다.
이것을 본 이학사가 이상히 여겨 왕에게 이 사실을 알리니 왕도 기이하게 생각하며 성을 [曺]로 하고

 이름을 계룡으로 하사하였다고 한다.


계룡은 자라서 진평왕의 부마도위가 되었고 벼슬은 태사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후손들은 본관을 창녕으로 하여 세계를 이어왔으나 문헌의 실전으로 계룡의 후손 겸을 1세조로 하여

 계대하고 있다. 
겸은 신라말에 아간시중을 지낸 흠의 아들로 고려 태조의 딸 덕공공주와 혼인하고 대악서 승을 지냈다.
[창녕조씨가첩]에 의하면 겸의 손자 연우로부터 1세손 자기에 이러기까지 8대에 걸쳐 문하시랑평장사를

 배출하여 가문의 번성을 누린 것으로 전한다.
고려말에 와서 크게 이름을 떨친 민수는 공인왕때 순주 부사로 여러 장군과 함께 홍건적을 물리치고 2등공신에

 올라 우왕초 경상도 도순문사로 왜구를 물리쳐 문하평리에 이어 문하시중을 역임하고 창성부원군에 봉해졌다.


1388년(우왕 14년) 요동정벌군의 좌군도통사로 출정했다가 이성계와 함께 위화도에서 회군하여 창왕을

 세우는데 공을 세워 충근양절선위동덕안사공신이 되었다.


조선조에 와서는 관찰사를 지낸 항의 아들 석문이 유명하였는데, 1434년(세종 16년) 알성문과에 급제하여

 이조 • 형조 • 예조의 정랑을지냈고, 세조 즉위에 공을 세워 좌익3등공신으로 도승지에 올라 창녕군에 봉해젔다.

1467년(세조 13년) 이시애의 난 때는 병마부총사로 난의 평정에 공을 세우고 적개1등공신이 되어 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올랐으며, 이듬해 왕명으로 노사신과 함께 [북정록]을 편찬하였고, 성종 때 좌리1등공신을 거쳐

 1467년 부원군에 진봉, 이듬해 영중추부사가 되었다.


호조 참판 위는 현감 계문의 아들로 김종직에게 글을 배우고 성종 때 문과에 올라 검열을 거쳐 승문원 정자가

 되었으며, 사가독서를 한 뒤  성종대에서 성리학의 대가 신진사류의 지도자였다.
조선중기의 대표적인 석학 식은 판교 언형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한문연구에 열중하여 당대 유학계의

 대학자로 추앙되었으며, 뛰어난 학행으로 여러 번 벼슬에 천거되었으나 벼슬에는 뜻을 두지 않고 성리학

 연구와 후진양성에 진력하여 문하에서 김호원 • 김우옹 • 정인홍 등 저명한 학자들을 숱하게 배출했다.


한편 성종 때 문신으로 이름난 윤손은 대사헌 숙기의 아들이다.
수차에 걸친 야인 정벌에 공을 세워 한성부 판윤을 거쳐 병조 판서가 되었이며 좌찬성에 올랐다.
중종반정의 정국공신인 계상과 계은 형제는 영흥 판관을 지낸 구서의 아들로, 계상은 공조판서를 거쳐 우찬성을

 지냈고, 계은은 목사를 거쳐 종부시 정에 이르렀다.
계상의 아들 광원은 명종 때 호조 판서를 역임하고 그의 증손 문수는 강원도 관찰사를 지냈고 시문과 서예에

 능하여 명필로 손꼽혔다.
그 밖의 인물로는 영조 때 교리 • 이조 정랑 • 이조 판서 등을 지낸 후 예문관 제학에 오른 명교가 글씨에

 뛰어나 [능가사사적비]를 비롯한 많은 비문을 남겼으며, 윤형도 초서와 예서에 능했을 뿐만 아니라

 그림은 풀 • 돌 • 대나무를 잘 그려 많은 작품을 남겼다.


중종 때에는 청백리에 녹선된 치우와 그의 증손 광익 • 호익이 이름났다.
호익은 임진왜란 때 소모관으로 군민을 규합하여 중화 • 상원 등지에 전공을 세워 녹피를 하사 받았고,

 정유재란 때는 다시 강릉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약한 후 안주 • 성천 • 정주 등지의 목사를 역임했다.


연산군 때 대사헌을 지낸 숙기는 주역에 정통했고, 중종 때의 반정공신 계형과 인조 때 우부승지를

 지냈고 시 • 서 • 화에 능하여 삼절로 일컬어진 우인, 이조 판서 석우 등이 뛰어났으며, 근대에 와서는 만식이

 민족독립운동가로 조선일보사장을 역임하여 민족 언론 창달에 공헌하여 명망  높은 창녕조씨 가문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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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탄강사>

이제부터 시조의 출생관계에 대하여 사서기록과 족보에 기록된 내용, 그리고 개인들의 기록을 참고하여

 설화적인 내용을 검토하여서 한국 고대사에서 볼 수 있는 설화와 일맥 상통한 점을 기술한다.

1. 용종설

시조 태사의 부계는 화왕산 용담의 용자로 되어 있다.
그러므로 출생경위에 대하여서 보면, 신화같이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옛부터 [용]은 군왕의 상징적인 표현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신성스러움을 대변하여 주기도 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용]은 고대 원시신앙에서 보면 가장 주가 되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던가. 또는 우리 고대사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건국신화나 고대에 있어서 민족장이나 종족장을 신성시하는데서 유추하여보면, 시조의 계롱태사의 부계는 어느 왕족이거나, 또는 자기 아들이 부마가 될

 정도로 훌륭한 신분의 소유자이거나, 그렇지 않으면, 어떤 신앙주체의 족장이었음을 설화식으로 상징하여

 신성하게 표헌한 것으로 보아야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실존인물에 대하여 보다 더 신성시하고 시조로 받드는데서 오는 결과라 보아지는 것이다.

2. 창녕 화왕성과의 결연관계

시조설화에 나오는 화왕성은, 지금의 창녕에 속하지만, 신라 때의 창녕은 가야국의 요지였다.
그리고 당시는 신라가 병합하고 난 뒤로써 회유적인 융화책을 쓰고 있던 때이다.
이 같은 역사적인 배경을 중심으로 해서 본다면, 이 설화는 신라의 세족인 한림학사 이광옥의 딸인 예향과

 화왕성 용담의 옥결과의 결연가화를, 신라의 귀족과 새로 편입되는 가야출신의 귀족이 정치적 융화책으로

 새롭게 맺으지는 일면이 신성하게 꾸며지는 설화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가야출신을 우대하였음은 김유신을 대우한 경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리고 김유신의 누이동생과 김춘추의 사랑으로 맺어지는 데서도 추측이 가능한 것이다.

3. 시조인 태사공의 모계

시조 태사의 모계인 이씨의 가계를 보면, 그 시조는 신라가 건국할 때 6촌의 하나인 양산의 군장 알평으로서, 

 유리왕 9년에 사성을 받았고, 법흥왕 건원 원년에 문선공으로 증시된 분이다.
그의 20세손인 광옥은, 태사의 외조부로서 진평왕 때에 관계에 올라 한림학사 등을 역임하였다.
그 백형 선정은 진흥왕, 진지왕, 진평왕의 3대에 걸쳐 역사하여 관은 병부령내사문하평장사,
대보공신태사사륜태중대부상주국에 까지 오른 전공공신인 것이다.
이와같이 훌륭한 권문세족의 딸 예향과 결연할 만한 인물이라면 이는 평범한 신분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시조출생의 녹유에 대하여서도 추측할 수가 있는 것이다.

4. 진평왕의 소견과 사성

신라의 명문 세족으로 여겨지는 이광옥은, 딸 예향과 화왕성용담의 용자 옥결과의 결연으로 아들을 낳자,

 이 사실을 진평왕에게 아뢰었다.
이 말을 들은 왕은 그 사람을 불러 보시고 협하에 [용조] 모양이 있어 서 창녕조씨라 성을 하사하였으며,

 후에는 왕의 사위로 삼는 등, 각별한 사랑을 베풀었다.
당시의 신라사회의 신분제도를 본다면, 엄격한 골품제도로서 관직이나 결혼관계 등, 모든  것이 신분에 따라

 차등있게 시행되고 있었다.
이렇게 엄격한 신분사회인데, 당당한 명문세족인 이광옥이 딸보다 신분이 낮은 무명의 인사와 결혼시킬 수

 없었을 것임이 쉽게 짐작된다.
그러므로 이광옥의 딸과 결혼할 수 있을 정도라면 상당한 신분이  됨을 알 수가 있다.
또한 신분이 얕은 가계의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하였다고 한다면, 그의 외계에 대한 것을 임금님께 아뢸 수도

 없었을 것이다.
설사 아뢰었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이유없이 욍이 친히 불러 보시고 성을 내리시며 공주와 결혼까지 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시조의 부계는 확실히 신라왕실에 상응할 만한 귀족신분에 해당함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화왕성의 설화로써 추측해 본다면, 
새로 신라에 편입되어온 가야계의 왕실귀족에 해당하는 명문세족이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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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대동보감에서 발췌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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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녕조씨 부사직공파보 계보도
<창녕조씨 덕봉 각 집안 계보도>

[참고 문헌]

창녕조씨파보 을축보
(1985년 발간)

창녕조씨파보 을사보
(1965년 발간)

창녕조씨파보 병자보
(1936년 7월 20일 발행)

창녕조씨대동보감(역사,유적)하권
(2010년 발행)

조씨약사
(1999년 5월 17일 한국성씨사료연구원 발행)

한국인의족보
(1996년 5월 25일
한국인의족보편찬위원회 발행
)

[편찬자]
조 응섭
(2016년<병신년> 6월  일. 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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