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웃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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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해웃값

昔暗 조헌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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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값

대구의 명소[名所]인 두류공원이나 달성공원에 나가보면 많은 노인들이

바둑이나 장기를 두며 소일하고 있다. 그 수가 부지기수[]다.


옛날 같으면 모두 송장이 되었을 나이인데 현대 의술[]이 발달하여

오래 살고 있다.

좋아해야 할지? 축복[]해야 할지 쉽게 판단[]이 서질 않는다.


그런데 이런 노인들 틈에 나이가 든 아줌씨(?)들이 소주나 박카스 등을

가지고 다니면서 팔고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다고 노류장화[]도 아니다. 단지 늙은 꽃이다. 

늙어도 마음은 꽃이다. 하릴[어떻게 할 도리]없는 노구도 봉접(벌과 나비)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된 매춘에 따른 보너스는 고려시대 어느 임금이 

기생에게 자주 비단을 하사한 것이 시초[]라 한다.

당시 기생은 모두 국고로 월급을 주는 관기[]였으므로 별도의 서비스값이

필요 없었지만, 재주 뛰어난 기생을 포상하고 싶은 마음에서 국왕은 

특별비를 주었던 것이다.


기생들의 머리에 붉은 비단을 둘러주는 것으로 대표된 고려시대의 

기생에 대한 서비스값은 전두[]라고 했다.

조선조에서는 궁중 연회 후 기생과 광대들에게 약간의 쌀을 주는 관습[]이 

일반 양반님들까지 널리 퍼졌다.


해웃값이라는 것인데, 기생이나 창녀들과 상관하고 그 대가로 주는 돈이다.

비슷한 말로 화대, 화채, 꽃값, 놀음차 등이 있었는데 모두 같은 말이다.


해웃값은 해우[憂]의 대가라는 뜻인 모양이다.

절간에서 화장실을 해우소 []라 부르는 것과 같이 근심을 풀어준 데

대한 사례금이다.


이 해웃돈은 돈 만지기를 삼가하는 사대부들이 젓가락으로 동전을 집어 

기생에게 주었으므로  ‘젓가락 돈’ 놀아준 데 대한 대가로 준다 하여 

‘놀음차’ 라고 했다.


인류 초기의 매춘은 매우 신성한 행위[]였다고 한다.

고대인은 여성을 신의 소유물이라고 믿었고, 여성을 취하는 것을 신에게

봉사[]하는 종교적[] 행위로 보았다고 한다.


동양에서의 매춘[]은 한나라 때부터 시작되었으며 조정에서

홍등가[] 설치한 것이 그 시초라 한다.

이처럼 매춘은 가장 오래된 인류 문화의 하나이며, 정치적 종교적 영향[]

하에서 명맥을 유지해 왔다고 한다.


소슬바람과 함께 줄비 내리는 주말 오후 

해웃값이나 준비해서 친구와 저잣거리에 나가볼까나!


2016년 秋
석암 조 헌 섭

팝송 = mai ganz ehrlich(정말 솔직하게) 발췌=카페 좋은 글과 좋은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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