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暗 조 헌 섭

장안산 (1,237m 장수읍) - 논개마을 - 논개사당

작성일 작성자 조헌섭

 

장안산 (1,237m 장수읍) - 논개마을- 논개사당 

 

대덕산악회 제247차 산행,

2016년 11월 6일, 참석인원 36명


산행 코스=무령고개-억새밭- 장안산 왕복 6.4km


안산은 소백산맥 서사면을 이루는 산으로 백운산과 비슷한 고산이다.

 북쪽의 무령고개남쪽의 어치재를 통하여 경상남도와 전라북도
 경계를 이룬다.
 산록계곡지대와 연결된다. 동쪽은 백운산과의 사이에 물을 모아 섬진강
 상류가 되는 백운천(白雲川)이 흘러내리고,
 서사면은 완만히 경사하며 장수읍의 낮은 분지로 연속된다.

 

북사면도 완만하여 작은 계류들이 계남면의 벽남제(壁南堤)로 흘러든다.
 이 일대는 호상편마암(縞狀片麻岩)이 기반암을 이루고 뒤에 관입된
 화강암이 분포한다.
 강유량은 비교적 많은데 그 이유는 사방이 1,000m 이상의 고산들이
 둘러싸인 원인도 있다.
 
장안산의 식생은 신갈나무 군락, 신갈나무·철쭉꽃 군락, 신갈나무·
노린재나무 군락, 신갈나무·졸참나무 군락, 졸참나무 군락, 굴참나무 군락,
서어나무 군락, 물푸레나무 군락, 층층나무 군락, 둘메나무 군락 등이
 적절히 분포되어 있다.
 선캄브리아기의 편마암류와 시대미상의 화성암류 및 백악기의
 반상화강암이 대부분이다.

 

장안산에 있는 덕산용소계곡이 유명하며, 계곡을 비롯한 26개의 크고 작은
 계곡과 7개의 연못, 14개의 기암괴석, 5개의 약수터 등 연못과 폭포가
 절경을 이룬다.
 장안산의 동쪽능선에 억새밭이 있어 가을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경관이 뛰어나서 1986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주논개(朱論介, 1574년[1] 9월 3일 ~ 1593년)는 조선 선조 시대의 열녀이다. 충절을 기려

 의암(義巖)이라고 한다. 그녀는 재주와 지혜가 뛰어나고 시문(詩文)에 능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장과 함께 남강(南江)에 투신하였다. 

병마절도사 최경회후처[부실]이다.


주논개는 전라북도 장수군 계내면 대곡리 출생으로 1574년 선비

주달문(朱達文)과 부인 밀양박씨(密陽朴氏) 사이에서 반가(班家양반)의 딸로

 태어났다.

부친 주달문은 진사(進士)로 일찍이 슬하에 아들 주대룡을 두었으나 15세에

 괴질로 요절하였고 이후 40세가 넘은 나이에서야 딸 논개를 보았다.


1578년 부친 주달문의 별세 후 숙부 주달무에 집에 의탁되었으나,

숙부가 벼 50석에 김부호(金富豪)의 집에 민며느리로 혼인시키려 하니 이를 피해 모녀는 경상도(慶尙道) 안의현의 친가에서 피신하였고, 이에 부호는 1579년

 기소하여 모녀를 구금하였다.


이때, 장수 현감 충의공(忠毅公) 최경회(崔慶會)의 명판결로 모녀를 석방시키고

 현감의 관저에 의탁하여 살게 되고 후일 모녀는 현감의 관저에 의탁하게 되고

 후일에 최경회가 성년이 된 논개를 후처로 맞아 들인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고, 최경회가 전라 우도의 의병장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병사를 훈련할 때 논개는 이를 도우며 보필한다.


1593년 최경회가 경상우도(慶尙右道) 병마절도사로 임명되어 동행하였으나,

진주성이 함락되고 최경회가 순국하자 논개는 왜장들이 촉석루에서 연회를

 벌이고 있을 때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유인하여 남강(南江)에

 투신하여 순절(殉節) 하였다. (게야무라 로쿠스케가 확실한 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일본에서는 박종화의 소설 《논개와 계월향》(1962년)에서 최초로 언급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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