昔暗 조 헌 섭

파도소리길(주상절리)-감은사지-골굴사-양동마을(경주)

작성일 작성자 조헌섭


 1,도소리길(주상절리)경주  

대덕 산악회 제265차 산행 2018년 5월 6


참석인원=30명

 

본 산악회는 안전사고에 대한 책임이 없으므로 안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길 바랍니다. 

.

경주시 양남면 하서항에서 읍천항까지 이어지는 1.7Km

해안지대로 다양한 모습의 주상절리가 늘어져 있다.

원래 이길은 부산에서 고성까지 동해안을 따라걷는 파도소리길의 일부였지만 주상절리가 펼쳐놓은 장관이 아름다워 이 길만을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과거에는 군부대초소들이 줄지어 있던 곳이어서 알려지지 않았지만 최근 초소들이 철수하면서 그 비경을 드러내게 되었다.


주상절리란?

마그마에서 분출한 1000℃ 이상의 뜨거운 용암은

 상대적으로 차가운 지표면과 접촉하는 하부와 차가운 공기와 접촉하는 상부에서부터 빠르게 냉각된다.

빠르게 냉각하는 용암은 빠르게 수축되어 용암의

표면에는 가뭄에 논바닥이 갈라지듯 오각형 혹은 육각형 모양의 틈(절리)이 생기게 된다.


이렇게 냉각수축 작용으로 생긴 틈이 수직방향으로

진행되어 기둥모양의 틈이 생기게 되는데 이를 주상절리라 한다.

한국에서는 제주도,한탄강,무등산 정상부,경주해변에서 주로 볼수 있는데, 경주 지역의 주상절리는 주름치마,

 부채꼴모양, 꽃봉우리 등 다양한 형태의 주상절리

옹기종기 모여있는 것이 특징으  푸른바다와 어울러

보이는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코스 : 하서항↔기울어진 주상절리↔누워있는 주상절리↔위로솟은 주상절리↔몽돌길

부채꼴 주상절리↔출렁다리↔읍천항↔1.7km↔대왕암↔감은사지골굴사↔양동마을


옛날에 아주 먼 옛날에 있었던 사건!
지금으로부터 약 2천만 년 전에 있었던 일이라는데, 이 지역에는 현무암질의 용암이

 철철 흐르다가 동해 바닷물을 만나면서 급격하게 식게 되면서 그 모양과 방향이

 다양한 주상절리 암석이 되었다고 한다.


정말로 경주 주상절리 파도소리길을 걷다보면 전망대 근처에서 부채꼴 모양의

 암석도 볼 수 있지. 처음에는 이 암석을 보면서 크게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전 세계적으로 부채꼴 모양의 주상절리가 흔한 게 아니라고 한다.




   2, 감은사지



은사지 3층석탑

은사지 3층석탑




3,골굴사


골굴사 상에 놓인 감은사와 대왕릉은 서로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게 된다.


소림사의 승려들이 소림권(쿵푸)를 연마하는 것처럼 골굴사의 승려들도 선무도를 연마한다.


 골굴사에서는 내·외국인을 위한 다양한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골굴사는 불교 무술인 선무도의 총본산으로, 절에 머무르면 오전 오후로 선무도 수련을

받을 수 있다.


신라문화의 뿌리는 불교문화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으며 경주남산과 토함산,

골굴사와 기림사가 있는 함월산은 그 대표적 유적지라고 할 수 있다

 

골굴사는 기림사로 들어가는 길목의 왼쪽 골짜기 안. 절벽을 이루며 솟아있는 응회

암벽 아래에 있으며. 화강암에 비해 강도가 낮은 응회암에 인공으로 여러 개의

석굴을 파고 불상을 모셨으나 지금은 대부분 소실되거나 파손되고 주존불만

남아있는 신라의 고찰이다.

 

 금강역사상                    선무도상

 

 


불국사보다 약 200여년 먼저 조성된 골굴사는  신라의 불교가 성행하던 6세기경

 인도에서 온 광유성인(光有聖人)이 임정사(林井寺-지금의 기림사)를 건립한 뒤 다시  이곳 암반전산에 마애여래불을 조성하고 인위적인 12개의 석굴을 조성하여 법당과

 요사채로 사용해온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이다.

함월산은 화강암 재질로 동굴 형성이 어려운 한국의 산들과 달리 석회암 재질로

 이루어져 있어 천생석굴(자연석굴)이 존재했고 거기다가 인공으로 석굴 조성이

 가능했던 것이다

 

골굴암은 단순한 동굴에 불상을 조성한 것이 아니라 인도 당시의 석굴사원 양식을

 그대로 적용하였으며 당시 인도 사원의 생활 방식이 그대로 전해졌다는데서

그 의의를 가진다.   

 

또 하나 주목할 만 한 점은 12처 석굴이라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감실을 만들고

 부처님을 모신 곳이나 한 두 개의 동굴 속에 부처님을 모신 단순한 형태의

 동굴법당들은 몇 개 있으나 골굴사처럼 12개의 석굴 그 자체가 가람인 곳은

 한 군데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12처 석굴의 유래도 인도 석굴사원의 양식에서 찾을 수 있다



골굴사 석굴사원 마애불 가는 길 


골굴사 석굴사원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4,경주(慶州) 양동(良洞)마을

경주(慶州) 양동(良洞)마을 -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등록


1984년 12월 20일 마을전체가 국가지정문화재(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된
마을.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경주 양동마을.
500여년의 역사가 눈에 와 닿는 전통의 유서 깊은 반촌(班村-양반들이 모여사는동네)

마을이다.
경주시 동북방 20㎞쯤 떨어져 있으며, 마을의 주산인 설창산에 둘러싸여 있는

경주 손(孫)씨와 여강 이(李)씨가 사는 종가(宗家)마을 이다.

 양동마를 안내도

향단(香壇) - 보물 제412호

주차장 바로 위에 있는 이 집은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 할 때, 병환 중인 모친을 돌볼 수 있도록 중종이 지어준 것이다.

이언적이 한양으로 올라가면서 동생 이언괄(李彦适)에게 물려준 후 여주 이씨 향단파의

종가가 되었다. 이언괄의 손자인 향단공(香壇公) 이의수(李宜樹)의 호에서 집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원래는 99칸이었다고 전하나 6·25전쟁으로 일부는 불타 없어지고

현재는 56칸이 보존되어 있다고 한다. 문이 잠겨 있어 상세히 못 본것이 아쉬울 뿐 


정충비각(旌忠碑閣) -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61호
이 비각은 손종로(孫宗老·1598~1636)와 그의 노비였던 억부(億夫)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正祖)7년(1783)에 임금의 명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이향정(二香亭) - 중요민속자료 제79호 
온양군수를 지낸 이향정(二香亭) 이범중(李範中)이 숙종 21년 1695년경에 지은 것으로

 그의 호에서 집의 이름을 따왔다.

강학당(講學堂) - 중요민속자료 제83호
여주(驪州) 이씨 집안의 문중 서당으로 지족당(知足堂) 이연상(李淵祥· 1788~1846)이

고종 7년 1870년경에 세웠다.
경주 손씨 집안의 서당인 안락정과 쌍벽을 이룬다. 공부하는 곳이니 만큼 대문과 담장이 없이 소박하고 간결하게 지었고,앞마당에서 마을전경을 감상 할 수 있다.

심수정(心水亭) - 중요민속자료 제81호
이 정자는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의 동생인 농재(聾齋)

이언괄(李彦适·1494~1553)을 추모 하기 위해 지은 것으로 이언괄은 벼슬을 마다하고

대신 노모를 모셨다. 문이 잠겨있어서 담 너머로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심수정(心水亭)에서 두곡고택을 가는 길의 풍경으로 백리향 식당,

두곡고택(杜谷古宅) - 중요민속자료 제77호

영조 9년(1733년)에 이식중(李湜中·1711~1777)이 분가 할 때 지은 것이다.

후에 이언괄의 14세손인 두곡 (杜谷)이조원(李祖源)의 후손들이 살면서 '두곡고택'

이라고 불렀다.


근암고택(謹庵古宅) - 중요민속자료 제76호
조선 정조 4년(1780)경에 태로(台老) 이정수(李鼎壽·1758~1784)공이 지어 살던 집으로

그의 현손(玄孫, 4대손) 홍릉참봉(弘陵參奉) 이희구(李熙久)공의 호를 따라

근암고택(謹庵古宅) 혹은 참봉택이라 부른다.

상춘헌(賞春軒) - 중요민속자료 제75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의 5세손인

동고(東皐) 이덕록(李德祿1677~1743)이 영조6년(1730년)건립하였고,

그 후 후손인 상춘헌(賞春軒) 이석찬(李錫纂)공의 호를 따라 상춘헌이라 하였다.

사호당고택(沙湖堂古宅) - 중요민속자료 제74호
사호당(沙湖堂) 이능승(李能升)이 헌종6년(1840년)에 지어살던 집. 안채와 사랑채가

맞닿아 있는 부분에 곳간방이 있는데, 이곳에는 문으로 빠져 나올수 없는 커다란

항아리가 들어 있다고 한다.

독을 먼저 넣고 집을 지은 것인데 곡식이 돈이었던 시기의 안주인의 위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서백당(書百堂) - 중요민속자료 제23호
경주 손씨의 대종택으로 양민공(襄敏公) 손소(孫昭·1433~1484)가 만호 류복하의

외동딸과 결혼하여 이 마을에 들어온 후 처음으로 자리를 잡은 곳이다.
지관이 이 집터에서 세 명의 현인이 탄생할 것이라고 예언 했는데, 손소의 아들인 우재

손중돈과 외손자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 여기에서 태어났다.
서백당(書百堂)은 하루에 참을 인(認)자를 백번 쓰며 인내를 기른다는 뜻이며 근래에

와서 굳어진 당호(堂號)이다.
마당의 향나무는 600여년이 넘은 것이고, 사랑채 뒤쪽의 높은 곳에 있는 건물은

사당이다.

서백당(書百堂)의 향나무(香木) - 경상북도 기념물 제 8호
수령 600년으로 높이 9m, 둘레 2.92m이고, 가지의 길이는 6m내외이다.
분재를 보는 것처럼 가지가 꾸불꾸불 꼬여 있는 수세(樹勢)가 왕성하다.


첨당(無忝堂) - 보물 제411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1491~1553)의 종가 별채로 그의 맏손자인 무첨당(無忝堂)

이의윤(李宜潤:1564∼1597)의 호에서 집의 이름을 따왔다.
오른쪽 벽에는 대원군이 집권 전에 이곳을 방문해 썼다는 죽필(竹筆)인

좌해금서(左海琴書)라는 편액이 걸려 있는데 ‘영남(左海)의 풍류(琴)와 학문(書)’이라는 뜻이다.(아랫사진)

무첨당(無忝堂)

대성헌(對聖軒) -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34호
영조 8년(1732년)에 건립되었고, 순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홍문관 교리를 지낸

물와(勿窩) 이재직(李在直) 공이 살던 집이다. 대성헌(玳聖軒)이라는 당호(堂號)는 앞산

성주봉(聖主峰)을 마주 보고 있는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성헌(對聖軒)

양동(良洞)마을회관(정보센타)

 

와가(瓦家-기와집)는 양반집이고, 초가(草家)는 그들의 노비들의 집이었다고 한다. 

물론 그동안 많은 집들이 고쳐지기도 하고, 새로이 만들어 지기도 했겠지만 500여년

역사의 흐름이 배어있는 마을이었다.

아무쪼록 이 마을이 앞으로 오백년, 천년을 이어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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