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섬(관탈섬)

 


그 언젠가 우연히 김상옥 시인이 쓴 관탈섬에 가서’라는 시를 읽어보았다.    

 

관탈섬에 가서

              -김상옥-


관탈섬에 가서 관(冠)을 벗고

 

끈적끈적한 탐욕을 벗고


무거운 죄업을 씻어내고


사랑도 미련도 훌훌 털어버리고

 
이름마저 버리고


오직 사랑만을 간직한 채


이름 없는 하나의 섬이 되어


밀려오는 파도와 잔정 나누며

 
한라산 영봉에 눈 맞춤 하며


한 오백 년 살고지고


살고지고


 


관탈섬(冠脫島)은 행정구역상 추자면 묵리 144번지에 해당한다. 

제주 본섬과 추자도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제주항에서 27.5㎞, 상추자도에서 25㎞ 떨어져 있는 섬으로 추자군도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섬이다. 

 석영안산암질 암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앙부의 정상(81m)을 정점으로 경사도 40~60%의 급경사로 되어 있다. 면적은 44,600㎡이다.


관탈섬은 추자도 최남단과 제주도 사이에 있는 섬으로 제주항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다.

옛날 귀양객들이 뭍에서 추자도를 거쳐 제주도로 귀양가는 길에 이곳에서 관()

 벗기고 직위를 삭탈 당했기에 ‘관탈(冠脫)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며

쓸모 없게 된 관복을 벗고 평민의 옷차림을 했다해서 관탈섬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죄인을 처벌하던 오형(五刑:다섯가지 형벌) 중 하나였던 유배(流配)는

한 번 떠나면 절대자의 사면과 권력의 변화 없이는 언제 돌아올 수 없는

 기약 없는 종신형(終身刑)이었다.

 그러니 권력은 지워져 갔지만, 그들은 오히려 역사속에 깊이 새겨져 있다.


조선시대의 형벌 제도를 보면 오형(다섯 가지 형벌)이 있는데


태형-가벼운 죄인에게 작은매로 볼기를 치는 것이고

장형- 쬐끔 무거운 죄인에게 곤장으로 볼기를 치는 것이고

도배형-약간 중한 죄인에게 곤장을 차고 일정기간 복역시키거나 군대에 동원하

유배형-죄인을 귀양 보내는 형벌이며, 유배에는 환도, 부처, 안치가 있는데


또 안치는 네 가지로서


본향안치는 고향으로 보내는 것

주군안치는 일정한 주나 군에 거처를 제한하는 것

절도안치는 헐해 고도에 안치하는 것

위리안치는 일정한 장소에 까시로 담장을 치고 그 안에서 생활하는 것

맨 마지막으로 사형제도가 있었다.


조선시대 유배지가 지가 무려 408곳이 되었으니 살아 돌아올 가망이 없는

절해고도(絶海孤島)로 떠나면서 권력에 의해 뒤집어쓴 죄를 눈물로 씻으며

 처절한 외로움을 문학(文學)과 예술의 경지로 승화(昇華)해나갔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정약전의 ‘자산어보’ 등은
고독함과 궁핍함 속에서도 나라를 위한 꿈과 이상을 펼쳐나간 그들의 생활이
어찌 마음조차 유배할 수 있으리오


제주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3다(三多)와 3무(三無), 3보(寶)이다.

바람, 돌, 여자가 3다이고, 도둑, 거지, 대문 없음이 3무이다.

나아가 바다, 한라산, (제주)언어가 3보이다.


제주의 삶을 크게 지탱해 주었던 해녀는 제주의 정신, 상징, 표상이다.

지금은 해녀의 수가 많이 감소되어 4,800여명 남짓하다.

제주의 상징이고 표상이었던 해녀들은 기구하지만 생계를 위해 굳세게 버텨 나갔던

 것으로 보여진다.


해녀들은 조선시대 걷어 올린 해물을 공물로 바쳐야 했고,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의

 수탈을 막기 위한 항일운동까지 벌이기도 했다.

생활력과 자주성이 대단하지 않을 수가 없다.


춘삼월호시절 이 봄이 다가기전에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해풍을 쐐이며 

아내의 손 잡고 미세먼지가 없는 청정지역으로 조선의 지식인들이 살아 숨 쉬는

역사의 땅으로 여행이라도 떠나고 싶지만 허리가 불편하여 지팡이와 복띠로

지탱하고 있으니 어쩐담…


2019년 3월 일

석암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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