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화 현상(兩極化 現像)

    한국사회의 양극화 현상(兩極化 現像)은 1960년대 산업화 이후 

    고도 경제성장(經濟成長)을 하여 절대 빈곤이 약화되고 ‘중산층’이 형성되었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경제적 불평등은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확대를 

    초래하는과정에서 1997년 IMF 외환 위기로 인해 기업 구조조정과 대규모 

     해고가 벌어졌다. 


    미비한 사회복지제도로(社會福祉制度)로 실업과 고용 불안이 만연하여 

    ‘고용없는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소득, 자산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한국의 소득 불평등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최하위 수준…

    빈익빈부익부(貧益貧富益富) 소득주도성장 정책에도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는

    이유를 고령화 등의 인구문제와 기저효과 때문이라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토지 소유권(土地所有權)의 불평등을 보면, 국유지(國有地)를 제외한 전체 

    국토의 절반 이상을 전체 인구의 1% 정도가 소유하고 있으며, 

    또한, 서울시 인구의 1% 정도가 서울시 전체 면적의 3분의 2를 소유하고 있어

     ‘집 없는 서민’의 주거 관련 비용의 증가에 영향을 주어 한국의 노인 

    빈곤율과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라니 '살찐 고양이 법'이라도

    만들어 임금격차를 줄여 다 함께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출산율 또한 OECD 국가 중 최하위를차지하고 있다. 

    즉 양극화현상(兩極化現狀)으로 미래의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希望)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양극화현상은 여성, 노인들에게서 더욱 심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남성 대비 여성의 상대적 저임금과 낮은 취업률, 조기 퇴출 당한 노인들의

    노후생활의 위기는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한편 산업ㆍ기업간 양극화현상도 심화(深化)되고 있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지속 가능한

    성장 산업으로 업종 전환(轉換)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격차도 확대되고 있으며, 대기업과 중소기업간의

    수익성, 투자액의 차이, 수출산업과 내수 산업간의 성장률의 차이가

    심화되고 있다. 이런 산업ㆍ기업간 양극화현상은 한국의 ‘재벌’체제에 의해서

    강화(强化)강화되고 있다.


    그 결과 대기업 부문의 노동자(勞動者)와 중소기업 부문의 노동자간 소득,

    고용 등의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으며, 대기업 내에서도 노동자의 하청화,

    비정규 임시직화가 만연(漫然)하여 이른 바 폭넓은 ‘중산층’ 형성을 기대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또한 새롭게 늘어나는 서비스업의 일자리도 대부분 비정규직, 저임금 노동자로

    채워지게 되어 자산 소득자와 임금 근로자간의 경제적 불평등은 개선(改善)되지

    못 하고 있다.

    역사서에서 경제 분야를 기록한 부분이 식화지(食貨志)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에서 비롯되었다. 『한서』 ‘식화지’는 홍범(洪範) 팔정(八政)을

    설명하면서 첫 번째는 식(食)이고 두 번째는 재화(貨)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만큼 고대에도 경제 문제를 중시했다는 뜻이다.

     『한서』의 이런 서술 체제를 본떠 ‘식화지’를 둔 역사서가 고려사(高麗史)다.

    세종~문종 연간에 편찬된 『고려사』 ‘식화지’에는 고려 말의 토지제도를

    비난하는 대목이 많다.

    “요즈음 들어 간악한 도당들이 남의 토지를 겸병함이 매우 심하다.

    그 규모가 한 주(州)보다 크며, 군(郡) 전체를 포함하여 산천(山川)으로

    경계를 삼는다”는 대목도 있다.


     한 집안 소유 농지가 한 주보다 크다는 것이다. 소수가 거대한 토지를

    과점(寡占)하면 대다수 농민은 몰락할 수밖에 없다.
    『고려사』 ‘식화지’에는 간관(諫官) 이행(李行) 등이 호강(豪强)한 무리들은

    끝도 없는 농지를 차지했지만 “소민(小民)들은 일찍이 송곳 꽂을 땅도 없어서

    (曾無立錐之地)부모와 처자가 다 굶주리고 서로 헤어졌으니 신 등이 심히

    애통합니다”라고 상소한 내용도 있다. 고려사』

     

    ‘신돈(辛旽)열전’은 “(노비로 전락한) 백성들이 병들고

    나라가 여위게 되었으며, 원한이 하늘을 움직여 수해와 가뭄이 끊이지 않고

    질병도 그치지 않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고려 전체의 재화(財貨) 생산량은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소수

    권세가가 재화를 과점(寡占)하면서 백성들의 원한이 하늘을 움직여 나라가

    망할 지경에 도달 했다는 것이다.


     판도판서(版圖判書) 황순상(黃順常) 등이 상소를 올려 “식량을 족하게 해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도는(足食安民之道) 토지제도를 바로잡는 데 있을

    뿐입니다”라고 주장하고, 우왕(禑王)이 재위 14년(1388) “근래 호강한

    무리들이 남의 땅을 겸병해 토지제도(田法)가 크게 무너졌다”면서


    그 폐단을 구하는 법을 반포한 것도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왕조가 붕괴될

    위기임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려 왕실은 끝내 이 문제를 바로잡지 못해 요즘 말로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정도전(鄭道傳)과 조준(趙浚) 같은 역성혁명파 지식인들은

    토지 문제 해결을  신왕조 개창의 명분으로 삼았다.

    그렇게 고려는 개국 474년 만에 멸망하고 조선이 들어섰다.

    동양학에서 양극(兩極)은 남극과 북극을 뜻하는데 둘은 지구 맞은편에 따로

    존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나라 안의 양극은 따로 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2019년 5월 일

    석암 조 헌 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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