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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제일의 주역가’로 꼽히는 대산 김석진옹은 ’매일 저녁 8시에 잠자리에 들어 새벽 2시에 일어난다.
가장 먼저 물을 마시고 주역 기체조를 한 뒤 하루의 주역 괘를 짓는다“고 말했다. [김상선 기자]
2019년은 한마디로 ‘어려울 둔(屯)’
사슴 쫓는데 몰이꾼이 없는 모양
주역은 정해진 운명인가.
“아니다. 바꿀 수 있다. 주역(周易)의 역(易)은 ‘바꿀 역’자다. 대한민국 국운에 ‘어려울 둔(屯)’자가
나왔다고 힘들다며 한탄만 하면 되겠나. 이치에 맞게 변화를 꾀해야 한다. 궁즉변 변즉통(窮卽變 變卽通)이다.
궁하면 변화를 꾀해야 하고, 변화되면 통하게 된다.”
그럼 ‘둔(屯)’을 어떻게 바꿀 수 있나.
“가령 괘를 지어보니 ‘둔(屯)’이 나왔다. 이건 현실의 객관적 형국이다.
그런데 그걸 바꿀 수 있다. 이게 주역의 매력이다. 주역은 정해진 괘를 바탕으로,
정해진 울타리 안에서 그런 변화가 가능하다. 예를 들어 ‘수뢰둔(水雷屯)’ 괘의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되면 ‘화풍정(火風鼎)’괘가 나온다.
이 ‘화풍정’괘를 상하로 뒤집으면 ‘택화혁(澤火革)’괘가 된다. 요약하면 ‘둔(屯)’자를 ‘정(鼎)’자와
‘혁(革)’자로 바꿀 수 있다.”
그렇게 바꾸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내 운명이라면 나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나라의 운명이라면 구성원의 지혜와 힘을 모아야 한다.
변화에는 축적된 에너지가 필요하다. ‘정(鼎)’은 ‘솥’을 뜻한다.
솥은 밥 짓는 일이다. 국민에게 밥은 생명이다.
그러니 밥을 잘 지으려면 먼저 묵은 솥을 깨끗이 씻어야 한다.
그런 다음에 솥에 쌀을 넣는데 ‘내 짝에게 병이 있다(我仇有疾)’고 했다.
상대방이 나에게 방해가 된다는 뜻이다. 가령 나라 안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어, 서로 방해가 된다.
서로 싫어하고 싸운다. 이럴 때는 서로 조심하고 삼가라고 했다.
상대를 억지로 내 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조금씩 양보하며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그래야 밥을 지을 수 있다.”
김석진옹은 “국민이 먹고 싶어하는 건 밥”이라고 강조했다. “솥에서 밥이 나온다.
그런데 보수와 진보가, 여당과 야당이 서로 싸우다가 솥이 엎어지면 어떡할 건가.”
그는 복잡한 국제관계도 솥으로 설명했다. “솥에는 발이 셋 달려 있다.
3국 회담이다. 그걸 남북과 미국으로 본다면 중국은 솥 안에 있을 수도 있고,
솥밖에 있을 수도 있다. 중국을 어떻게 우리를 도와주는 친구로 만들 건가.
그게 우리의 외교 역량에 달렸다. 미중 간 경쟁 관계는 계속 그렇게 간다.
미국이 좀 밀렸다가, 중국이 좀 밀렸다가 하면서 나아간다.”
그럼 ‘둔(屯)’자가 변해서 된 ‘혁(革)’자는 뭔가.
“혁신이다. ‘혁(革)’은 옛것을 버리는 것이기에 새로운 성과를 뜻한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이다.
계획 없이 조급하게 나가면 흉하다고 했다. 서로가 신중함의 지극함을 지녀야 한다.”
대산 김석진옹은 “주역은 한 마디로 ‘미래예측학’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대처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그는 29일 토요일 오후 2시 겨레얼살리기(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연수회관 3층 대강당에서 19년 만에 주역 공개 강의를 한다. 참가비 3만원.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백성호 기자의 현문우답
분수대
솥은 귀가 두 개다.
12년 정초, 주역의 대가인 대산(大山) 김석진(92) 선생이 대구에서 강연할 때다. 한 청중이 물었다.
“대선에서 누가 당선됩니까.” 대산이 답했다. “꾸러미 속에 물고기가 있는 괘다.
꾸러미는 투표함이고 물고기가 대통령이다.” 청중이 다시 물었다.
“물고기가 암컷입니까, 수컷입니까.” “산짐승은 양(陽)이요, 물짐승은 음(陰)이다.
” 여성 대통령의 탄생을 에둘러 예고한 것이었다. 그보다 3년 전인 2009년 중앙SUNDAY와
인터뷰했을 때도 똑같았다. 다음 대통령을 묻자 “음의 시대이니 여성 지도자가 나올 것”이라고 했다.
대산은 주역의 대가이지만, 운명론자는 아니다.
오히려 “주역의 운명은 사람이 바꿀 수 있다”고 한다. “주역은 미래를 내다보고 미리 대처하기 위해
있는 것”이라고도 했다. ‘사람’이란 변수 때문일까. 때론 예측이 빗나간다.
그래도 강연을 듣고 따르는 이들이 많다. 오랜 세월 주역을 연구하며 터득한 지혜가 강연에
고스란히 녹아 있어서다. 이런 식이다. “주역은 중정지도(中正之道)다.
가운데(中)를 지키고 바른(正) 데 처하면 흉한 일이 생기지 않는다.”
대산의 팬이 된 어느 대학 총장은 그에게 세배갔다가 수많은 세배객을 보고 놀라 말했다.
“총장인 저는 이런 제자가 없는데, 소학교만 나오신 선생님께서는 인산인해를 이루니 부럽습니다.”
대산이 화두를 던졌다. 오는 29일 겨레얼살리기 연수회관에서 하는 주역 강의를 앞두고서다.
‘치둔입정(治屯入鼎)’. 대산은 이렇게 풀이했다.
“어려운 상황(屯)을 솥(鼎)처럼 좋은 상태로 바꿔야 한다. 옛 솥은 발이 세 개, 귀가 두 개다.
세 발은 협력과 균형을, 두 귀는 경청을 뜻한다.
진보와 보수가 서로 듣고 상대를 존중하며 협력해야 한다.
” 귀를 닫고 그저 편 가르기에만 골몰하는 위정자들이 꼭 새겨들었으면 한다.
권혁주 논설위원
[출처: 중앙일보] [분수대] “솥은 귀가 두 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