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漢朝)을 뒤이은 통일왕조로 서한(전한, 기원전 206-기원 후 9년)과 동한(후한, 25-220년)

으로 나뉜다.  그 중간인 9-23년에는 왕망의 ()이 존재했다.  

 

한 대에는 무덤에 토기로 만든 부장품을 넣는 풍속이 널리 퍼져 있었다.  (그 전대인  왕족의 

무덤에는 사람을 순장하는 풍습도 있었고, 심지어 진시황의 고분에서 7-8천명에 달하는 

토기 병사들과 토기 무기, 토기 마차 등이 발견된 예를 보아도 이미 그런 풍속이 보편적이었던 듯.)

귀족들이 살던 형태를 본 딴 주택, 그릇, 옷가지, 하인, 동물 들을 토기로 구어 무덤에 넣음으로써, 

그들은 사자가 생전의 부귀영화를 저승에서도 이어간다고 믿었다.  그러니 만큼 무덤 부장품으로 

만들어진 토기들은 대단히 사실적이어서, 당대의 사람들의 생활상을 그대로 엿볼 수 있게 하는 

타임머쉰 역할을 한다.   



한 대에는 복층 건물들과 망루가 전원 풍경위로 우뚝 솟아 있었다.  지방의 호족들은 망루를

높게 짓고 사병을 고용해서 자기 영토를 지켰다.  이 망루는 물그릇 모양의 둥근 기반에 물고기, 

개구리, 물오리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연못 위에 지어진 것이다.  위 사진의 노대에는 석궁을 든 병사들이 보인다.  석궁은 전국시대 (481-221 BC)에 발명되어 한 나라 때 완성되었는데, 무력 제압에 

핵심인 이런 강력한 무기는 한이 적국들과 맞서는데 큰 강점이었다.  실제로, 석궁의 제조 기술은 

사형으로 다스려지는 국가의 비밀이었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 진열된 동한(25-220년)의 토기 주택 한 세트.  (위키에서 가져온 사진과 설명)


여기에는 망루 3채, 마당이 있는 집 1채, 곡물 저장 창고, 커다란 부엌 아궁이, 방앗간, 물통이 있는 우물, 가축 우리, 난간을 두른 정사각형 오리 연못이 보인다.  


가운데에 보이는 가장 높은 망루.  앞면에 사선으로 보이는 것은 윗층으로 난 계단인 듯, 그곳을 오르

는 사람의 모습도 보인다.  망루 위에는 석궁을 든 병사가 보초를 선다.  (사진: 위키 백과)




                    석궁을 든 병사를 확대함. (사진: 위키 백과)



                    방앗간. (사진: 위키 백과)



                    마당이 있는 집. (사진:  위키 백과)



                     난간이 쳐진 연못에 오리가 떠 있다.  (사진:  위키 백과) .



    가축 우리.  확대한 아래 사진을 보면 우리 안에 사람이 있다. (사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아궁이가 있는 부엌.  (사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물통이 놓여 있는 우물.  (사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토기 왕궁.  한 대의 건축 양식이 자세히 드러남.  

                              (이런 지붕의 선은 마치 진짜 집을 보는 것 같을 정도.)




두 채의 탑을 지붕덮인 다리가 연결하고 있는게 특이함.  




                               토기 탑.



                               토기 탑.



                         토기 탑.




토기 주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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