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침몰 37일째] '가족들이 쓰던 이불 치우지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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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대참사

[세월호침몰 37일째] '가족들이 쓰던 이불 치우지 말아주세요'

잠용(潛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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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가족들 쓰던 이불

제발 치우지 말아주세요"
조선일보 | 진도 | 입력 2014.05.22 02:59 | 수정 2014.05.22 09:03


21일 세월호 참사의 288번째 희생자가 발견됐다. 안산 단원고 2학년 2반 김모(17)양이 이날 오전 7시 58분 세월호 4층 중앙객실에서 수습됐다. 신원확인소에서 시신이 오길 기다리던 실종자 가족들은 치과 진료 기록과 옷차림 등의 정보로 우선 신원을 파악했다. "우리 애는 오늘도 안 올 건가 봐." 한 어머니가 나지막이 말했다. 사고 발생 36일째, 300명을 넘겼던 실종자는 이제 16명으로 줄었다. 단원고 학생 7명, 교사 3명, 일반인 4명, 승무원 2명만이 남았다.

 

 

단원고 여학생 중엔 2학년 1반 조모(17)양, 2반 윤모(17)양과 허모(17)양, 3반 황모(17)양이 남았다. 허양은 어려운 가정형편을 생각해 용돈 한 번 달라지 않던 딸이었다. 어머니는 "비싸니까 가지 않겠다는 수학여행을 억지로 보낸 것이 후회된다"고 했다. 날마다 바지선에 타는 윤양의 아버지는 "다른 학생들은 수습될 때마다 유명 브랜드 옷을 입고 있는데 나는 딸에게 한 번도 그런 옷을 사준 적이 없어 한이 된다"며 울었다. 남학생은 6반 남모(17)군과 박모(17)군, 7반 안모(17)군이 돌아오지 못했다. 외동아들 남군은 아버지의 휴대전화에 '내 심장' 이라 저장돼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 곁을 지켰던 1반 담임 유니나(28·일본어) 교사, 양승진(57·일반사회) 교사, 고창석(40·체육) 교사도 아직 돌아오지 못했다.

 

회사원 조모(45)씨는 아내, 두 아들과 함께 제주로 가던 길이었다. 홀로 구조된 여섯 살 둘째는 고아가 됐다. 안산 합동분향소엔 조씨의 영정이 아내와 첫째 아들 옆에 안치됐다. 유족들은 "시신은 못 찾았지만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을 것"이라고 했다. 권모(52)씨와 아들(6) 부자도 아직 바다에 있다. 권씨 부부는 제주도에서 감귤 농사를 짓겠다는 소망으로 5년간 건물 계단 청소일을 하며 돈을 모았다. 가족은 이삿짐을 실은 1t 화물차와 함께 배에 올랐다. 오빠가 구명조끼를 입혀 떠밀은 동생 권모(5)양은 구조됐고 엄마 한모(29)씨는 시신으로 돌아왔다.

 

세월호 조리실에서 일하던 이모(56·여)씨와 김모(61·남)씨는 뜨거운 기름과 집기 등에 부상당한 채 복도 통로에서 실종됐다. 김씨의 딸(29)은 "선원들 배고프다고 과일 깎아주고 밤이면 야식을 챙겨주시던 다정한 아버지였다"고 말했다. 16명을 기다리는 가족들은 이미 신원확인소를 수십 번 다녀왔다. 더는 시신을 보고 울지 않는다. 이젠 분노와 슬픔보다 두려움이 자리 잡았다. 한 실종 학생 아버지는 "처음엔 체육관이 사람들로 가득 차 너무 좁았는데 어느 순간 보니 넓더라"고 했다. 그는 "'나만 못 찾으면 어쩌나' 하는 압박감이 하루하루 조여오고 있다"고 말했다. 체육관 바닥엔 떠난 가족들의 이불 수백 채가 아직 깔려 있다. 담요를 치우니 너무 휑하다는 가족들의 말에 자원봉사자들이 다시 가져다 뒀다.

 

"그 무시무시한 곳에서 언제 나오려고...

이제 그만 엄마 손을"
문화일보 | 강승현기자 | 입력 2014.05.21 12:01 | 수정 2014.05.21 14:21


팽목항의 기나긴 기다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다며 밤잠을 설치던 안산 단원고 학생들이 차가운 바닷속에서 돌아오지 않은 날이 35일째를 맞은 20일 오후.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상황실 앞쪽은 상당히 붐볐다. 시신을 먼저 수습해 고향으로 돌아가 장례를 마친 유가족들과 실종자 가족이 한자리에 모였기 때문이다. 이날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은 여전히 바닷속을 헤매고 있는 17명의 실종자 이름을 한 명씩 부르며 애타는 마음을 달래고 서로를 위로했다.

 

안산 단원고 실종 학생 학부모인 박모 씨 부부는 이날 오후 다른 실종자 가족이나 유가족들과 따로 떨어져 긴 여행에서 좀처럼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기다리며 팽목항 바닷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박 씨 부부는 바다를 향해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소리치다가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박 씨 부부는 여전히 자식의 부재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아들이 떠난 바다를 말 없이 바라보다 "○○야, 언제 오려고 그래 대체…"라며 아들에게 말을 건넸다. 한참을 울먹이던 박 군의 어머니는 "이제 그만 엄마 손 잡아주면 안 돼?"라며 대답 없는 아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기도 했다.

 

어머니는 방파제 위에 놓인 과자를 하나씩 뜯어 바다 위로 던졌다. 혹여 아들이 체하지는 않을까 음료수에 빨대를 꽂아 바다 위로 뿌리고는, 잠시 뒤 아들 이름을 또 불렀다. 대답 없는 아들에게 한참을 하소연하던 어머니는 자리를 뜨려다 답답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그 무시무시한 바닷속에서 대체 언제 올거야"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린 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아들의 곁을 쉽게 떠날 수 없는 듯 부부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고, 지칠 대로 지친 어머니의 팔은 축 늘어져 걸을 때마다 좌우로 흔들렸다.

 

아들이 떠난 바다가 한눈에 바라다보이는 방파제 길 위에서 어머니는 다리에 힘이 빠졌는지, 아들을 다시 돌아보기 위한 것인지 제대로 걷지 못하고 열 걸음에 한 번씩 걸음을 멈춰섰다. 남편의 부축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웠다. 박 군의 아버지는 조용히 아내를 안아주며 슬픔을 억누르다 팽목항 방파제를 벗어나는 길 끝에서 아무 말 없이 담배만 태웠다. 두 손을 꼭 잡은 채 길을 걷던 박 씨 부부는 "내일은 꼭 오겠지"라고 서로를 다독이며 아들을 향한 긴 기다림을 또다시 이어갔다.

[진도 = 강승현 기자 byhuman@munhwa.com]

 

실종자 가족들

"내가 마지막까지 남게 될까 두려워"

[한국일보] 2014.05.09 21:08:06

 

 

[사진] 세월호 침몰 24일째인 9일 전남 진도군 임회면 팽목항 선착장에 설치돼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팽목항법당에서 한 경찰관이 두 손 모아 기도하고 있다. /진도=뉴시스


■ 비어가는 팽목항
시신 찾은 가족·자원봉사자들 하나 둘 떠나
"불안함에 극단 선택 가능성" 순찰 경찰은 늘어

9일 오전 전남 진도군 팽목항 가족대책회의실 앞. 실종 학생 어머니는 햇볕에 그을려 벌겋게 부어 오른 두 손을 기도하듯 깍지 낀 채 바다만 멍하니 바라봤다. 그는 10여m 떨어진 화장실이나 가족대기소에 갈 때도 손을 풀지 못했다. 옆에서 어머니를 부축하던 친척 여성은 "우리만 남게 될까 솔직히 두렵다"고 했다. 세월호 침몰 참사 24일째인 이날 오후까지 실종자 수는 31명. 팽목항과 진도실내체육관에는 각각 30여명의 실종자 가족들만 남아 있다. 피붙이 소식을 기다리느라 서 있을 기력조차 없는 가족들은 모두가 떠난 뒤 홀로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불안함과도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지친 한 실종자 가족은 자녀의 시신을 발견해 짐을 챙기는 가족에게 다가가 "3주간 같이 있다가 헤어지려니 정말 서운하네. 그래도 (시신을 찾아) 축하해요"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실종자 가족 수가 100명 이하로 줄어들면서 북적이던 자원봉사자들도 하나 둘씩 진도를 떠나고 있다. 이날 팽목항과 실내체육관에 등록돼 있는 자원봉사자 수는 약 600여명. 사고 초기 2,000여명에 달하던 것에 비해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사고 당일인 지난달 16일부터 팽목항에서 구호 물품 정리를 하고 있는 자원봉사자 김민환(41)씨는 "사람들이 워낙 많이 빠져서 오늘이나 내일쯤에는 집에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팽목항 가족대기소 인근에 마련된 대한물리치료사협회 천막도 한산한 분위기다. 협회 관계자는 "스트레스로 목과 어깨 통증을 호소하시며 오셨던 가족들이 많게는 하루 60명을 넘었지만 이제는 열 명도 안 오신다"고 말했다. 실내체육관에서 식사를 지원해온 자원봉사단체 6곳 중 3곳이 이날 오전 철수했다.

 

반면 경찰은 더 늘었다. 더딘 수색으로 인한 초조함과 남겨진 쓸쓸함으로 실종자 가족들이 혹여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에 대비한 조치다. 이날 팽목항에는 300여명, 체육관에는 200여명의 경찰이 배치돼 있다. 전남경찰청 관계자는 "실종자 가족들이 혹시 불미스러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배치 인력을 지금보다 늘려 더 세심하게 순찰하겠다"고 말했다. [진도=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어서 돌아오렴... 사랑한다'

팽목항에 놓인 축구화
시사IN Live | 송지혜 기자 | 입력 2014.05.21 10:36


전남 진도군 임회면 서망해변은 고요하다. 파도만 밀려왔다가 물거품을 내고 사라진다. 누군가 물끄러미 바다를 바라보다가 주저앉아 흐느낀 곳, 닿지 못한 절규가 모래 위에 아로새겨진 곳이다. '돌아와….' '집에 가자.' 그마저 파도는 무심히 지웠다. 사고 현장인 맹골수도 너머에서 불어온 바닷바람만 무참히 응답했다.

서망해변을 10분여 걸어 팽목항에 닿았다. 5월12일, 세월호 참사 27일째. 팽목항 입구에서 시신이 인양되는 선착장까지 해안을 따라 1㎞ 남짓한 거리는 한산했다. 자원봉사 단체, 가족대기실, 언론사 등 천막 30여 개가 즐비했다. 사고 직후에 비해 가족·취재진이나 자원봉사자 등은 3분의 2가량 줄었다.

 

실종자가 사망자로 바뀌면서 가족들은 진도를 떠났다. 일가친척을 합해도 진도에 남은 실종자 가족은 50명 남짓. "최근 실종자 가족은 체육관보다 팽목항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라고 한 경찰은 말했다. 인양된 시신이 해양경찰의 경비정에 실려 맨 처음 닿는 곳이 팽목항이다.

 

이날 오전 풍랑주의보가 해제되었다. 잠수사들을 태운 해경 경비정은 사고 해역으로 향했다. 인근 섬인 조도·관매도로 향하는 여객선도 항구를 떠났다. 5월10일 새벽부터 기상 악화로 수중 수색이 전면 중단되었던 터라, 이틀 만에 재개된 수색에 실종자 가족들의 기대가 컸다. 거기까지였다. 바지선 위치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이를 지탱하는 와이어가 끊겨버렸다. 아까운 시간이 흘러갔다. 물살이 가장 약한 소조기를 넘기고 중조기에 접어들었다. 결국 다음 날 새벽까지도 수색은 이뤄지지 못했다.

 

 

[사진] ⓒ시사IN 신선영 실종자 수색작업은 기상악화로 재개와 중단을 반복했다.

언딘 바지선에 조명만 무심히 켜져 있다.

 

아무 소식 없는 거리에는 함구령이 내려진 듯 침묵이 흘렀다. 실종자 가족은 텐트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기자, 경찰, 자원봉사자들의 표정은 무거웠다. 광주에서 온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 모임인 5월 어머니회에서 실종자 가족이 머문 텐트를 방문하자, 사진기자들은 '여기까지만 하자. 더 이상 취재하지 말자'며 스스로 통제했다.

 

'가족 외 출입금지' 푯말로 막힌 실종자 가족과 외부인의 경계에는 보이지 않는 응원만 남아 있었다. '식사 거르지 마세요' '밥심으로 이기는 겁니다' '포기하지 마세요' '끝까지 함께 기다릴게요'…. 무사히 돌아오기를 소망하며 '기적'과 '희망'을 말하던 노란 리본은 '시신으로라도 돌아와줘서 고맙다'는 글귀로 처연했다.

'기다리고 있어. 어서 집으로 가자' '돌아와서 고맙다. 네가 엄마 아들이어서 행복했다' '사랑하는 딸, 아빠엄마에게 와주어서 정말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한다. 아직 오지 못한 친구들과 모든 이들이 빨리 돌아올 수 있도록 기도해주렴'.

 

 

[사진] ⓒ시사IN 신선영 팽목항에 놓인 축구화에

'따뜻한 품으로 어서 돌아오렴. 사랑한다'라고 적혀 있다.

 

긴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하는 이들을 기다리는 글은 더 비통했다. '엄마, 미안해… 어디 계세요…' '현석(가명)아, 무섭고 춥지. 따뜻하게 안아줄게. 빨리 와' '현석아, 좋아하는 야구세트 준비했다. 오늘은 꼭 올 거지?' 한 가족은 운동화와 운동복을 가지런히 두고 편지를 남겼다. '내 아들이 어찌 못 오고 있는 거야? 어서 긴 여행에서 돌아와서 신발도 신고 옷도 입어봐야지. 얼굴 한번 만져보게… 어서 돌아와줘. 오늘은 약속하는 거지? 돌아온다고. 기다리마 아들… 사랑해.'

 

팽목항에서 차로 30여 분 떨어진 진도 실내체육관. 가족이 머무르는 체육관 1층에 실종자 가족이 걸어놓은 두산베어스 야구복이 눈에 띄었다. 등번호 21, 안현석(가명). 실종자 중 한 명인 단원고 학생이 두산베어스의 팬이라는 이야기를 접하고 구단 측이 학생의 이름을 넣어 전달했단다. 안산에서 장례를 치른 단원고 희생자 유가족 20명은 다시 진도를 찾았다. 마지막 실종자가 나올 때까지 가족들을 만나러 올 것이라고 약속했다.

하지만 실내체육관도 팽목항처럼 점점 비어갔다. 가족들이 300명 가까이 머물던 체육관은 이제 열 가족가량 남은 듯 보였다. 담요는 층층이 쌓여 유가족이 머물던 자리에 정돈돼 있었다. 유가족이 구호물품으로 받은 슬리퍼가 대형 쓰레기 봉지 서너 개에 담겼다. 시신을 확인한 가족은 경황없이 떠나느라 빨래도 찾지 못한 채 진도를 떠났다.

 

 

[사진] ⓒ시사IN 신선영 시신을 확인한 가족들은 경황없이 떠나느라

빨래도 널어둔 채 진도를 떠나곤 했다.

 

구호물품은 차고 넘쳤지만 자리는 자꾸만 비워졌다. 그럴수록 남은 가족은 홀로 남겨지는 두려움과도 싸워야 했다. 세탁을 돕는 자원봉사자는 "실종자 가족들은 시신을 찾고 짐을 싸는 가족들을 부러운 듯 바라본다. '왜 너는 안 오니' 생각하다가 지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5월14일 0시, 실종자 가족 50명은 방파제에 섰다. 붉은 불이 켜진 등대 앞에서 보고픈 이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두 손 모아 기도를 하고, 바닥에 엎드려 절을 했다. '선생님, 돌아오세요' '집에 가자'. 검은 바다는 대답이 없었다. 선뜻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또 바닥에 몸을 웅크렸다. 난간에 기대 두 손을 꼭 맞잡은 채 고개를 떨구었다. 이름을 목 놓아 부르다 쓰러진 몇몇 가족은 자원봉사자의 부축을 받아 구급차로 옮겨졌다. 남은 가족은 가족지원실로 마련된 팽목항 대합실 앞에서 서로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힘을 내야 한다' '힘내자'.


"스승의 날이라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셨구나"

5월14일 오후 2시, 시신 다섯 구가 올라왔다. 조용하던 팽목항에 탄식하는 소리가 들렸다. 새벽부터 내리던 약한 빗줄기가 계속됐다. 하얀색 비옷을 입은 어머니는 대책본부 관계자를 붙잡고 물었다. "남자예요, 여자예요?" 장례를 치르고 다시 안산을 찾은 2학년7반 학부모 20여 명이 실종자 가족의 손을 붙잡았다.

 

같은 시간, 진도 실내체육관 1번 출구 앞에 마련된 게시판에 5개 글이 붙었다. 277번째 수습된 희생자부터 281번째 수습된 희생자까지 경찰이 성별, 신장, 인상 특징, 머리 모양 등이 담긴 신상 정보를 붙이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같은 내용은 단상 위에 설치된 왼쪽 대형 스크린에도 공지됐다. 실종자 가족은 누워 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스크린을 하염없이 지켜보았다. 오른쪽 스크린에는 잘 보이지 않는 사고 현장의 바지선 장면이 실시간 송출되고 있었다.

 

 

[사진] ⓒ시사IN 신선영 5월13일 새벽 4시 진도 실내체육관. 스크린에는 24시간 수색 장면과 뉴스 속보가 나온다.

 

경비정이 잇달아 시신을 운구했다. 흰색 천을 덮은 시신을 육지로 옮겼다. 광목천을 펼쳐 운구 장면을 볼 수 없도록 했다. 자원봉사자의 말에 따르면 천막 안에서 인상착의를 1차로 확인한 뒤 선착장 인근에 마련된 신원확인실로 옮겨 DNA 검사와 지문 검사를 돕는다. 최근 수습된 시신은 바닷속에 오래 머무른 탓에 많이 훼손되어 맨눈으로는 알아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인상착의만 듣고 달려 나왔다가, 소지품 따위로 가족이 아닌 사실을 확인한 이들이 눈물을 닦으며 가족대기실로 망연자실 돌아갔다.

 

오후 5시께 진도 실내체육관에는 짐을 싸는 가족들이 보였다. 삼색 슬리퍼를 신은 발이 검었다. 그녀는 다른 실종자 가족의 손을 꼭 잡았다. 조심스럽게 "먼저 가겠습니다"라고 인사하고 안산행 버스에 올랐다. 그간의 시간을 말하듯 큰 가방 두 개가 손에 들렸다.

 

 

[사진] ⓒ시사IN 신선영

 

스승의 날을 하루 앞두고 2학년8반 담임 교사 김응현씨가 물에서 나왔다( < 시사IN > 제348호 커버스토리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아들의 생일' 기사에 소개된 임현진군의 담임이다). 한 실종자 가족은 "선생님이 스승의 날이라고 아이를 데리고 나오셨구나"라고 애통해했다. 실내체육관에 놓인 신문에는 5월15일부터 물살이 거세지는 대조기가 시작돼 수색작업이 어려워지리라는 기사가 실려 있었다.

 

실종자 가족은 홀로 남게 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가족지원실 앞에 설치됐던 방송 차량은 세월호 소식보다 선거나 월드컵 뉴스가 더 보도된다며 항의하는 실종자 가족의 요구로 치워졌다. 이 자리에는 '조금 있으면 월드컵이 열린다. 국민들 관심이 그리 쏠릴 것이다. 이 비극적인 사고가 세인의 기억에서 잊혀갈 것이다'라고 적힌 피켓이 놓여 있다. 희생자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백일기도를 하는 불일 스님은 "실종자 가족은 마지막까지 실종자로 남을까 봐, 혼자 남으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크다"라고 말했다. [송지혜 기자 song@sisain.co.kr]

 

일반인승객 유족 "우리도 좀 기억해 주세요"
SBS | 조을선 기자 | 입력 2014.05.21 20:27 | 수정 2014.05.21 21:50

 

<앵커> 이번 참사로 희생되거나 실종된 사람 304명 가운데, 단원고 학생이나 선생님이 아닌 일반인도 42명이 됩니다. 이분들의 가족이 그동안 정부의 관심과 지원에서 줄곧 소외됐다면서 힘들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조을선 기자가 만나봤습니다.
<기자> 세월호를 타고 제주도로 이사 가던 권 모 씨 가족 4명 가운데, 6살 막내 권 양만 혼자 남았습니다. 아버지와 오빠는 실종 상태여서, 권 씨의 형 권오복 씨가 생업을 포기한 채 진도에서 한 달 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홀로 남은 막내 조카를 권 씨 부부와 여동생이 맡아 돌보고 있는데, 권 씨는 세대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생활 안전 자금 지원 대상에서도 빠졌습니다.

[권오복/일반인 희생자 유족 : 부모 다 죽고 오빠 죽었으면 고아 아니에요. 그거에 대한 것도 특별법에 공평하게 제대로 법을 만들어 주겠죠. 그걸 기대합니다.]
희생되거나 실종된 일반인 42명의 유족들은 단원고 학생이 아니라는 이유로 이렇게 줄곧 소외돼왔다고 서운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추모 공원 계획에도 일반인 희생자 자리는 없고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일반인 유족은 의견을 말할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장종열/일반인 희생자 유족 : 첫 번째도 저희의 대화를, 저희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부분이고요. 두 번째도 저희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 거고, 세 번째도 저희의 말을 현실로 만들어 줄 부분이 필요한 거예요. 그 부분입니다.]
가족 잃은 슬픔에 힘들다고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아픔까지 겪는 유족들.
그들에게 필요한 건 정부와 국민의 관심이었습니다.
[정병한/일반인 희생자 유족 : 필요한 거 없어요. 저희는. 관심만 가져주세요. 이런 사람들도 세월호에 타서 죽었구나라는 관심 좀 가져달라는 것뿐입니다.] (영상취재 : 제 일, 영상편집 : 박선수)
[조을선 기자 sunshine5@sbs.co.kr]



Mehdi - 'Forever in my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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