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가요] "한많은 오륙도" (1956) - 차은희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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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애청곡

[추억의 가요] "한많은 오륙도" (1956) - 차은희 노래

잠용(潛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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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많은 五六島" (1956)
夕旅人 작사/ 李正華작곡 / 林文圭 편곡/ 노래 車銀嬉
(1956년 車銀姬의 제일레코드사 데뷔곡) 

 

< 1 >

五六島 燈臺 불이

깜박일 때에

말없는 하로 밤을

울려만 놓고

 

鬱陵島 떠나 가신

님이 그리워
밤 늦은 船艙 가를

헤매입니다~

 

< 2 >

四時節 冬柏꽃이

피는 섬이라

돌아올 그 날짜를

잊으셨나요?

 

으스름 조각달이

졸고 있을 때
無心한 連絡船만

왔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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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恨 많은 五六島>는 1956년 가수 車銀姬님이 제일 레코드에서 발표한 노래입니다. <달려라 유람마차; 37004/ 오경환, 차은희노래>와 같이 발매된 이 노래는, 석여인 작사/  이정화 작곡의 작품인데, 1950~60년대 애호/ 아세아/ 신세기레코드 등에서 많은 작품을 발표했던 차은희님이 데뷔곡으로 불렀읍니다. <여배우 일기 (58/신세기)>로 우리와 친숙한 차은희님은 과거 태평 레코드에서 많은 활동을 했던 白蘭兒님의 노래를 많이 다시 부르기도 했는데, 현재 부산에 거주하고 계시며 건강도 비교적 좋다고 합니다. 가수 차은희님의 데뷔곡, <한많은 오륙도> 잘듣고 갑니다. <雲水衲子>

 

[유차영의 대중가요로 보는 근현대사]
한 많은 오륙도
(석여인 작사 이정화 작곡 차은희 노래)

FLETA 뉴스ㅣ2020.05.18 10:36 수정 2020.05.18 12:02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 유행가 노래 제목과 가사에는 한(恨)을 서사한 곡들이 많다. 6.25전쟁이 휴전된 후의 가슴속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사회적 서정을 노래로 얽어냈기 때문이다.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고 했던 공자(BC 551~479)의 설파(說破)가 2천5백여 년 뒤에도 틀리지 않음을 입증한 산물들이다. <한 만은 오륙도> 노래의 한(恨)도 그런 트렌드의 영향 안에 있는 노래다. 이 곡은 가수 차은희의 데뷔곡이다. 본명 최은섭이 19세일 때다. 지금 나이로 쳐도 아이돌(idol. 신화적인 꼭두각시)이었다. 1956년 미도파음반으로 데뷔 후 신신레코드에서도 음반을 발매했었다. 노래를 부르는 화자가 헤매는 선창가는 부산항 부둣가다. 자갈치시장 어귀로 생각하면 틀림이 없으리라. 하룻밤 정을 나눈 낭군이 타고 간 울릉도 연락선이 사라져 간 오륙도 어귀를 바라보면 한숨짓는다.

 

오륙도 등대불이 깜박일 때에

말없는 하룻밤을 울려만 놓고

울릉도 떠나가신 님이 그리워

밤늦은 선창가를 헤매입니다

 

사시 절 동백꽃이 피는 섬이라

돌아올 그 날 자를 잊으셨나요

으스름 조각달이 졸고 있을 때

무심한 연락선만 왔다갑니다.

(가사 전문)

 

오늘날 부산에서 울릉도로 가는 연락선은 없고, 포항·후포·묵호·강릉에서만 왕복한다. 1956년 당시에는 부산에서 왕래하는 연락선이 주요 수단이었을 것이다. 오륙도(五六島)는 부산 앞바다, 우암반도 동남으로 600m 지점에 있는 6개의 섬이다. 육지로부터 방패섬·솔섬·수리섬·송곳섬·굴섬·등대섬 이다. 방패섬·솔섬을 합쳐 우삭도로 부른다. 지명은 1740년(영조16) 동래부사 박사창(朴師昌)이 편찬한 <동래부지>(東萊府誌)에 동쪽에서 보면 6개, 서쪽에서 보면 5개로 보여서 오륙도로 불린다고 기록했다. 부산 남구 용호2동 936~940번지다. 자갈치 부둣가에 가물가물 여인을 남겨두고 떠나가던 연락선이 지향하는 곳은 울릉도다. 울릉도(鬱陵島)는 북위 37도선에 걸려 있다. 한반도의 철책허리 38선에서 남쪽으로 110㎞지점이다. 최고봉은 성인봉(聖人峯) 984m다. 상주인구는 2017년 기준 9975명이다. 우리나라 섬 3,348개(유인도 472개·무인도 2876개) 중 9번째로 큰 섬이다. 포항항에서 뱃길로 270km, 독도에서 87.4 km 떨어져 있다.

 

<삼국사기>(1145년 김부식 저)와 <삼국유사>(일연, 1206~1289. 저)에 따르면, 신라 시대에 우산국이 있었는데, 512년(지증왕 13년) 이사부(생몰 미상)가 우산국을 정벌했다. 이후 고려 때까지 조공 관계가 계속되다가 11세기 초에 여진으로부터 침략을 받은 우산국 사람들이 본토로 도망을 오고부터 고려의 직할구역이 되었다. 1407년(태종 7년) 3월 쓰시마 도주는 사신을 파견해 토산물을 헌납하고 포로를 송환하면서 울릉도에 쓰시마 사람을 이주시키고, 쓰시마 도주가 다스리게 해 줄 것을 청원했으나, 조선 태종은 이를 거절했다. <세종실록지리지>(1454년, 단종 2년 완성)에는 강원도 삼척도호부 울진현에 속하며,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두 섬이 울진 동쪽 바다 한 가운데에 있으며,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맑은 날에는 바라볼 수 있고,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 또는 울릉도(鬱陵島)라 불렀다고 기록되었다.

 

오륙도는 부산의 상징으로 유행가 소재로도 많이 사용된다. 가사나 제목에 오륙도가 들어간 노래를 보자. 1956년 차은희가 데뷔곡으로 부른 <한 많은 오륙도>를 시작으로, <마음의 부산항>, <희망의 등대>, <부산 엘레지>, <부산의 하룻밤>, <선창가의 처녀>, <항구 아가씨>, <한 많은 오륙도>(전금자), <안개 낀 오륙도>, <부산유정>, <현해탄을 건너올 때>, <조용필 돌아와요 부산항에>, <파도야 말해다오>, <오륙도>, <오륙도를 잊었나요>, <오륙도 친구> 등이 있다. 차은희는 1937년 서울 장충동에서 태어나 1.4 후퇴 때 고모 댁이 있는 부산으로 와서 데레사여고(부산 범일동 소재)를 다녔다. 고3 재학 중 국제신문사 주최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 심사위원을 맡았던 작곡가 이재호는 차은희의 노래에 반해 기성가수 박재홍과 같이 찾아가서 학교가 발칵 뒤집혔었다. 이재호는 본명 최은섭에게 차은희라는 예명을 지어줬으며, 고교 졸업 후 남부민동 미도파레코드에서 석려인 작사·이정화 작곡 <한 많은 오륙도>로 데뷔시킨다. 그녀는 데뷔 이후 서울에서 1957년 신신레코드, 1958년 KBS방송국 전속가수로 활동하다가 1973년 결혼을 하여 부산으로 귀향했다.

[유차영/ 문화예술교육사 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차은희 - 恨많은 五六島

 

차은희 노래모음No7/ 데뷔곡.한많은 오륙도

 

한 많은 오륙도(개사곡) - 차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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