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황룡사지] 궁궐로 짓다가 왜 절이 됐을까? ... 마침내 풀린 신라 황룡사 창건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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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황룡사지] 궁궐로 짓다가 왜 절이 됐을까? ... 마침내 풀린 신라 황룡사 창건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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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궁궐로 짓다가 절이 됐을까? ...

마침내 풀린 신라 황룡사 창건 수수께끼
한겨레ㅣ이재성 입력 2020.08.24. 05:06 수정 2020.08.26. 01:36 댓글 419개

 

궁궐로 짓다가 왜 거대한 절이 됐을까?

신라 천년 도읍 경주의 옛 도심 구황동에 2만평 넘는 터만 남긴 채 사라진 거대사원 황룡사 유적을 답사할 때마다 떠올리게 되는 의문이다. 황룡사는 한반도 역사에 등장한 역대 불교 사찰들 가운데 가장 큰 규모를 자랑했던 절이다. 백제 장인 아비지가 세운 80m를 넘는 목탑과 본존불 장륙존상, 화가 솔거의 벽화로 유명했던 이 절터는 진흥왕 14년인 553년, 왕궁인 월성 동쪽의 광활한 저습지에 지어지기 시작했다. 인근의 좁은 반월성 궁성에 덧댄 새 궁터로 짓기 위해 막대한 분량의 흙을 쌓는 대역사를 벌여 대지를 닦았는데, 갑자기 거대한 절을 짓는 쪽으로 공사 방향이 확 바뀐 것이다. 일연의 <삼국유사>에는 새 왕궁을 지으려 하니 터에서 기묘하게도 누른빛 황룡이 나타나는 이적이 일어나 절을 짓는 것으로 계획을 바꾸고 절 이름도 황룡사로 지었다고 유래를 설명해 놓았다. 그러나 일연의 설명은 설화적 내용이며 실제 절로 바꿔 건축한 도시사적 배경이 무엇인지는 오랜 수수께끼로 남게 됐다. 그런데 최근 이런 의문에 설득력 있는 풀이를 내놓은 연구 결과가 나왔다는 낭보가 들려온다.

 

황룡사의 수수께끼에 도전한 이는 신라사 전문가인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다. 그는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개소 30돌을 기념해 지난 21일 마련한 학술대회에 ‘신라 왕도와 국가사찰’이란 논문을 발표하면서 연구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 논문의 뼈대는 황룡사가 원래 궁터 위에 만들어진 배경으로 왕실의 권력을 시각적으로 잘 보여주기 위한 신라 특유의 도시계획 원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을 내세운 것으로 집약된다. 황룡사 서쪽 인왕동의 말굽형 언덕에 자리잡은 1000년 왕궁 반월성은 크기가 협소했다. 그래서 신라 중후기 동북쪽 월지(안압지) 권역 등 사방으로 계속 증축, 확장되어 만월성이란 큰 궁궐로 덩치를 키우게 된다. 이 과정에서 월성의 사방에 설치된 4개의 큰 사원(사처가람)들이 월성 궁궐의 권위와 경주 일대를 지배하는 왕의 권력을 더욱 돋보이도록 하는 도시계획이 실행됐다는 게 논문의 요체다.

 

▲ 1970년대 찍은 경주 황룡사터 건물터 발굴 현장. 문화재관리국이 조사단을 꾸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2만평 넘는 대사원터를 발굴조사한 것은 국내 고고발굴사상 전례 없는 대역사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현재 경주 시가지 모습을 바탕으로 신라 궁성인 월성과 주변의 큰 사찰들의 연결 통로를 표시한 설명도. 사진 위쪽이 북쪽이고 아래가 남쪽이다. 가운데 말굽모양의 반월성 유적과 그 바로 위 사각형으로 표시된 월지(안압지) 동궁 유적과 노란 원 두개가 맞붙은 지점으로 표기된 제석궁(천주사)이 좀더 큰 왕궁권역인 만월성을 형성한다. 설명도 왼쪽 위와 아래, 오른쪽 위, 아래 각각 표기된 노란 원들이 왕궁의 서북쪽, 서남쪽, 동북쪽, 동남쪽에 있는 흥륜사, 영묘사, 황룡사, 그리고 사천왕사쪽 영역이다. 이 절들을 표기한 원들로부터 이어진 직선로(빨간색)가 월성의 서문, 북문, 동궁의 동문과 월성의 남쪽 누각과 바로 이어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3만평에 육박하는 면적을 지닌 황룡사터 유적 전경.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대규모 조사작업이 진행된 직후의 유적을 공중에서 본 모습이다.

 

▲ 황룡사의 남쪽 구역 큰 도로와 광장 유적이 서쪽 월성 동궁의 동문과 연결되는 경관을 입체적으로 보여주는 도해도. 윤선태 교수는 황룡사 남쪽 광장의 큰길에 들어서면 길의 축선이 월성의 출입문으로 향하기 때문에 대중들이 왕실의 권력 공간을 주시하는 시각적 효과를 낳게 된다고 설명한다.

 

▲ 황룡사터와 신라 궁궐인 월성이 활짝 트인 큰길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적 설명도. 절터 남문 앞 큰 도로(대로)와 광장 유적이 터의 서쪽에 자리한 월성 동궁의 동문 터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2016년 당시 황룡사터 남쪽 조사지역을 공중에서 바라본 모습. 허옇게 드러나 가로로 길게 이어진 부분이 당시 새로 드러난 절터 남문 앞 대형 도로·광장 터의 흔적이다. 유적을 맡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2019년까지 발굴조사를 지속해 남문 앞 도로가 폭 50m, 길이 500m로 서울 세종로 거리를 방불케하는 거대한 대로였다는 것을 밝혀냈다. 윤선태 교수는 이 대로의 끝이 월성 권역의 동쪽 끝인 동궁터 동문에 활짝 트인채 잇닿는 얼개를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왕궁의 장대한 경관을 한껏 부각시키는 시각적 장엄물의 기능을 지녔다고 짚었다.


단적인 근거로 제시한 것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이 발굴한 황룡사 남쪽 대로 및 광장 터 발굴조사 결과다. 길이 500m, 너비 50m나 되는 대로가 황룡사 남문 남쪽 광장부터 서쪽의 안압지 인근 신라 궁궐의 동쪽 문까지 이어진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저습지 위에 2m 이상 두둑하게 흙을 쌓아 넓은 대지를 조성하고, 이렇게 궁궐 문과 대찰 문을 잇는 장대한 대로를 닦아 파노라마처럼 노출되면서 연결한 건 신라 경주만의 독창적인 도시계획 구조였다는 것이다. 축선은 남북이 아닌 동서 축이지만, 오늘날 서울 광화문에서 세종로, 태평로 대로를 보는 것처럼 장대한 장관을 이루었을 것으로 보인다. 3만평에 가까운 거대한 저습지를 무려 2m 이상 매립하는 대규모 토목공사에 성공한 신라인들은 큰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윤 교수는 이런 추론을 바탕으로 오히려 반월성과 황룡사 터 사이 월지 공간 저습지를 추가로 매립해 왕성을 넓히려는 계획을 추진했고, 궁터로 지으려던 황룡사 터는 확장된 왕성의 권위를 돋보이게 하는 시각적 장엄물로서의 효능이 더욱 크다는 입지조건 때문에 절로 전환한 것이라는 견해를 내놓았다. 절로 바뀌어 건립된 뒤 남문 앞 남쪽 대로 광장을 크게 조성해 왕궁과 연결하는 도시계획을 실행하면서 신라 경주 반월성 동쪽의 신도심 핵심이 됐다는 얘기다.

 

재미있는 건 이런 식의 큰 절 출입문과 궁궐 문을 활짝 트인 대로로 잇는 도시계획이 황룡사를 포함해 신라 왕경을 둘러싼 네 개의 절에서 모두 확인된다는 점이다. 왕성의 서북쪽 흥륜사, 서남쪽 영묘사, 동북쪽 황룡사, 동남쪽 사천왕사가 모두 ‘전대로’라고 불리는 절 문 앞 큰 도로를 갖고 있는데, 이 도로들이 모두 왕궁 반월성의 동서남북 문과 스펙터클한 경관을 만들면서 그대로 이어지는 얼개를 갖고 있다. 왕성을 서남쪽에서 지킨 영묘사의 경우 승려 진자사가 화랑으로 점찍은 소년 미시랑을 만났던 동북로라는 절 앞 도로 명칭까지 <삼국유사>에 전해졌으나, 후대 학계는 단순히 동북쪽 모퉁이로 해석했던 것을 윤 교수는 영묘사 앞 대로가 월성 서문의 누각까지 동북쪽으로 크게 트여 이어졌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해석했다. 영묘사 대로에서는 대규모 군사사열이 있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마찬가지로 서북쪽 흥륜사 앞길도 국외에서 들어오는 사신과 불교 승려의 보물들을 왕실이 맞는 길이었다는 점에서 당시 신라 백성들이 장대한 권력의 시각화된 경관을 보게 하면서 권위를 과시하는 구실을 했다는 게 윤 교수의 추정이다.

 

신라인들은 오늘날 국내 위정자들처럼 도시의 옛 시가를 막 부수고 모두 헐어낸 뒤 다시 짓고 하는 도시계획을 한 게 아니었다. 흥륜사 쪽, 영묘사 등 월성 서쪽의 원도심은 강을 끼고 오래전부터 시가지가 조성되고 물류와 인력의 이동이 활발했던 점을 고려해 경관을 손대지 않았다. 반면, 저습지를 매립해 새로운 대지를 조성한 동쪽 황룡사 쪽은 새롭게 중국에서 발전하고 있는 도성의 장엄방식인 격자형의 직각적 얼개를 만들어냈다. 최대한 경주의 지세에 맞춰, 중국 북조에서 건너온 격자 가로 중심의 새로운 신도시 안을 기존 건물과 어우러지도록 수용해 법고창신의 태도로 도시계획을 했다는 점은 오늘날 현대 도시 정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윤 교수는 말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도판 문화재청·윤선태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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