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돼지 날다

지리산 - 비 내리는 초가을날의 풍경(2017.10.6)

작성일 작성자 바람의 소리



☆ 어디지리산(1.915m) -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경남 하동군, 산청군, 함양군
☆ 언제 : 2016. 10. 6(금)
☆ 코스중산리탐방지원센터 - 칼바위 - 로타리대피소 - 법계사 - 천왕봉 - 장터목대피소 - 유암폭포 - 중산리(약 12km)








기나긴 추석 연휴, 후배와 지리산을 가기로 약속했다.
최근 들어 산을 좋아하기 시작한 후배가 꼭 함께 오르고 싶다고 했다.
우리에게 지리산은 그런 곳이다.
딱 꼬집어 뭐라고 말할 순 없으나 그 첫걸음에 의미를 두고 싶은 곳.
오래 기억될 누군가와 꼭 함께 하고 싶은 곳.







 
가능한 오래 지리산에서 놀다가 내려오자는 계획이었다.
작년 가을에 찾은 백무동코스가 너무 좋았던지라 처음엔 그곳으로 길을 잡았다.
하지만, 전국적인 비 예보에 출발할 때부터 비가 내렸다. ㅜㅜ
지리산이 처음인 후배는 천왕봉을 오르고 싶어했고,
어차피 조망은 포기해야 하는 날씨이니 가장 단코스인 중산리로 계획 수정.








8시 30분에 산행을 시작한다.
오늘 나의 동행이자 사진의 모델이 된 후배.
30년지기 후배가 이제 나에겐 늘 함께 하고픈 산행 동지가 된 것인데,
아쉽게도 서울에 살다보니 오늘의 산행이 더욱 의미있는 일이 되었다. 








아직은 여름의 싱싱함이 느껴지는 숲속.

기분좋을 정도로 촉촉히 내리는 비에 시원한 계곡물 흐르는 소리를 들으며 걷는 길이 너무 좋다.

지난 여름 동안 개인적으로 바쁜 일들 때문에 산행다운 산행을 전혀 하지 못했으니,

이번의 지리산 동행은 여러모로 내게도 의미가 깊었다.

산행도 블로그도 다시 시작하려 한다.









2년 전에는 모르고 스쳐 지나갔던 칼바위 주변도 아직은 가을이 아니다.

비가 내린다는 예보 때문인지 생각보단 사람이 없어 오붓하게 걸을 수 있어서 또 좋다.









산길을 걷는다는 것은 머리를 비우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아닐까?
마음이 복잡하고 힘들 때 산을 오르며 조용히 마음을 정리하려 하지만,
 한발한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어느새 마음은 텅 비어 버린다.
그 산길 속에 온전한 나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산을 내려갈 때는 그렇게 또 빈 마음을 안고 세상 속으로 걸어들어간다.








갈림길에서 법계사 쪽으로 올라가 장터목대피소 방향으로 하산하기로 한다.





 



망바위는 왜 망바위지?

망을 보던 바위인가?

무언가를 조망하는 바위인가?

어쨌거나 망바위 주변은 가을색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카메라가 비에 맞을까봐 우산을 쓰고 가느라 스틱은 그저 짐이 될 뿐이고.

평소엔 조망이 없어 지루한 숲길에 불과할 이 길이 오늘은 기분좋은 상쾌함을 선사해 준다. 









다리 위를 멋지게 장식해주던 그 나무의 가지도 여전히 자리를 지키며 알록달록 예쁜 옷으로 갈아입었고,

오늘은 모델까지 있으니 그 모습이 더욱 어여쁘다.




 





바위에 기대거나 혹은 피하거나, 그 나무도 씩씩하게 잘 자라고 있다.

어쩌면 빛을 찾아 살기위해 저리 휘어진 것은 아닌지.

그냥 동네 뒷산을 걷는 것 같다던 후배도 신기한 지 포즈를 취해 본다.









몇 번의 바위를 지나오며 이제 곧 로타리대피소가 나온다던 나의 말을 모두 거짓말로 만든 그 바위가 드디어 나타났다.

그래, 이렇게 살짝 들려 있었지.

바로 곁의 대피소만 아니라면 충분히 서너 명의 대피소는 되어 줄텐데 말이지.









대피소에는 비를 피해 점심을 먹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빗속을 흐르는 고기굽는 냄새, 라면 냄새가 너무 고혹적이어서,

우리도 버너를 사자고 종알거리며 간식을 먹는다.

비를 피한 김에 우리의 첫산행을 기념하는 사진도 한 장!

 








2년 전에 왔을 땐 한창 공사중이던 법계사 일주문은 말끔하게 단장을 해서 오히려 낯선 느낌이다.

이제 튼튼해서 태풍 따위에 쓰러지진 않으려나?

땅 위에서 가장 높은 곳이라 함은 하늘과는 가장 가깝다는 뜻인데,

저 문을 통과하면 혹 극락이 가까워지려나?

어쨌거나 높은 산속에 자리했으니 좀 나지막한 일주문이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마음만...









보물인 법계사 삼층석탑도 가을비가 깨끗하게 씻어주고 있고.

남들보다 배나 시간을 들여 여기까지 온 우리는,

따뜻한 커피 한잔 마시고 가라는 보살님의 말씀에 갈 길도 잊은 채 주저앉아 버린다.

뭐, 바쁠 일이 있나, 오늘 중으로 하산하기만 하면 되지!









다시 길을 걸어간다.

이제 지리산은 가을 속으로 가고 있다.

나뭇잎이 물드는 것이야 자연의 당연한 이치이지만,

이 나무 저 나무, 나무들마다 물들고 잎을 떨구는 시간은 다 다르다.

저마다 자기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보고 싶은 사람 때문에

먼 산에 단풍

물드는


사랑


- 안도현 시, 단풍 -









돌아보지 마라

누구든 돌아보는 얼굴은 슬프다


돌아보지 마라

지리산 능선들이 손수건을 꺼내 운다


인생의 거지들이 지리산에 기대앉아

잠시 가을이 되고 있을 뿐


돌아보지 마라

아직 지리산이 된 사람은 없다


- 정호승 시, 가을 -









그렇게 길을 가다 보니 개선문이 우리를 반겨준다.









천왕봉이 이제 곧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까?

600m만 가면 되지만 남은 거리에 비해 발걸음은 무겁기만 할 때이고,

무수한 계단길에 나는 자꾸만 쉬어 갈 뿐이고.

한동안 산행을 쉰 대가로 난 며칠 다리를 절며 보내야 할 지도 모르겠다.









이 곳에 서면 비로소 지리산이로구나 실감할 수 있는데,

오늘은 10m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날이라 그저 흔적만 남기고 지나간다.

구상나무 고사목만이 '나야, 나' 아는 체를 하고,

후배에게 지리산의 장쾌한 능선을 보여주지 못한 난 안타까운 마음만.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날.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여기까지 왔으나 지리산이 주는 이 물은 마시고 가야지.

이제 300m만 가면 천왕봉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이 길을 오르며 돌아보는 풍경도 참 좋았는데.

오늘은 돌아보아도 내가 지나온 길밖에 보이지 않는구나.

오를 땐 힘들었지만 그래도 돌아보는 길은 아름답다.

어느 날, 내 삶의 길도 돌아보는 길이 더 아름다웠으면 좋겠다.









천왕봉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 길 끝에 지금까지 걸은 내 걸음을 멈추게 할 작은 돌이 서 있을텐데,

항상 여기에서 보는 저 길은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에고, 다리야.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


볼 때마다 가슴 뭉클하게 하는 짧은 문장.

오늘도 그렇지만 유독 가족 산행객이 많이 찾은 곳이 지리산인 듯하다.

올 때마다 어린 자녀들과 함께 산을 오르거나,

젊은이들이 떼지어 산을 오르고 내리는 광경을 보게 된다.

어쩌면 저 짧은 문구가 주는 감동이 사람들을 이곳으로 이끄는 것은 아닐까? 









더 이상의 깨끗한 조망(?)은 없다는 듯,

천왕봉 주변은 온통 하얀 구름이 넘실대고 있다.

후배는, 무엇을 보았을까?

지리산은 너에게 무엇을 보여 주었을까?









바람이 제법 부는지라 곧바로 자리를 뜬다.

힘겹게 찾았지만 오래 머무르게 하지 않는 냉정한 그대!

 그래도 나는 어느 날 또, 그대를 찾아올 것이다.

언제나 여기서 버티고 있어 줄 것이기 때문에.









흐려진 렌즈에 비친 나무들은 겨울을 말하고 있는 듯.









통천문도 지나고.

음, 그러고보니 통천문 위의 수호신을 그냥 지나쳐 왔다.









이 멋진 길도 오늘은 몽환적인 분위기로 자기를 다 보여주지 않는다.
시작할 때부터 조망은 바라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살짝 섭섭한 마음이 드는 건 나의 욕심인가 보다.








렌즈에 서린 물기를 제대로 닦지 않아서 그나마 바로 앞의 풍경도 흐릿하기만 하다.








제석평전도 오늘은 그냥 스쳐 지나간다.

그나저나 제석봉은 도대체 어디를 말하는 것이여?

분명히 트랭글은 뱃지를 던지는데 제석봉이 어디인지를 모르겠다니...ㅜ.ㅜ

금줄 안에 어디인가 높은 봉우리일 것 같기도 하고.








고사목이 된 구상나무들 곁에 새롭게 자라고 있는 구상나무들이 제법 키를 키운 듯하다.

고산지대에만 사는 구상나무는 겨울에 눈이 많이 와서 뿌리를 보호해 주어야 한다는데,

지구온난화로 인해 지리산 구상나무들이 자연사하고 있다니 안타깝다.









이제 장터목대피소가 바로 앞이다.

작년 가을에 장터목대피소에 배낭을 두고 이 길을 올라 천왕봉을 다녀왔던 기억이 새록새록.


장터목대피소에서 후배가 사온 주먹밥으로 늦은 점심을 간단히 먹는다.

예약하지 않은 자는 재워줄 수 없으니 어서 하산하라는 방송을 들으며,

조만간 대피소에서 하룻밤 유해보자는 약속을 후배랑 한다.









지혜롭고 이로운 자의 산, 지리산.

이곳에 자신의 양심을 버리고 가지 말라고 써 있지만 그 곁에 버리고 간 양심이 다소곳이 놓여 있다.

우리가 산에 와서 버리고 가야 하는 것은 내가 먹은 음식의 쓰레기가 아니라,

내 마음을 어지럽히는 묵은 때들이 아닐까!









법천계곡으로 하산하는 길은 몹시 지루하다.

그나마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가 지루함을 덜어주고,

비가 내린 덕분에 수량도 풍부해 계곡다운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지리산의 가을은 아직이다.

하지만, 훌쩍 떠나버릴 것을 알기에 갑자기 마음이 급해지는 기분.

어쩌다 저 혼자 붉게 물들어 버린 단풍은 초록 속에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고는 사라질 것이다.

바쁘다며 잊고 있었는데, 온통 가을로 물든 산을 보며 내가 화들짝 깨어난다.








유암폭포의 시원한 모습이 눈앞에 나타난다.

역시 폭포는 비 내린 뒤에라야 진면목을 볼 수 있다.









폭포를 우러르는 여인네 1








폭포를 우러르는 여인네 2









내 눈엔 산의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인다.

가끔 내가 너무 과한가 싶을 정도로.

호기심은 많으나 끈기가 없는 내가 여전히 이 길을 걷고 있으니 나는 산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

좋아하는 것에는 이유가 없고 대상이 나를 좋아하든 말든 상관도 없다.

그저, 그냥,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내 발로 가면 되니까!

이 얼마나 멋진 애인인가!









이 계곡에 이렇게 많은 돌탑들이 있었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걸으며 저 돌탑을 쌓아올렸을까?

부디 허망하게 쓰러지지는 않았으면. 









오늘 이 길을 함께 걸은 후배가 너무 감사하다.

대학 때 이후로 처음 찾는 지리산을 언니와 꼭 함께 가고 싶다고 말해 준 후배.

어쩌면 지리산에 대한 우리의 마음은 같은 것이었나 보다.

가끔씩이라도 이 길을 함께 걷자.

그 길이 지리산이든 설악산이든 혹은 앞산이든 뒷산이든.









계곡의 너덜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카메라 배터리는 방전.

아직 갈 길은 멀고 날은 어두워지고 결국은 랜턴 불빛에 의지해 돌아왔다.

1km마다 1시간씩을 걸은 셈이다. ㅋㅋ

이건 우리의 계획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것이다.

최대한 긴 시간을 지리산에서 놀다왔으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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