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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동아일보 오보, 신탁통치 관련 논란

작성일 작성자 김종일

동아일보 오보, 신탁통치 관련 논란[편집]

1945년 12월 26일자 미국 워싱턴 타임스 헤럴드(현 워싱턴포스트) 7면.“미국의 번스 국무장관이 소련의 신탁 통치안을 반대하고 한국의 즉시 독립을 주장하라는 훈령을 받고 러시아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고 전했다.
1945년 12월 27일자 동아일보 기사

KBS 미디어포커스는 2003년 12월 방송에서 동아일보가 모스크바 3상 회의에 관련 국내 언론 중에서 유일하게 이 외신기사를 대서특필한 것처럼 보도하면서 외신 인용 보도가 반탁운동을 격화시켜 결국 남북 분단의 빌미를 제공했다고 주장하였고 일부 학자도 동아일보 1945년 12월 27일자 기사가 단독 보도했다고 주장하거나, 심지어 조작해 보도하는 바람에 반탁운동이 거세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10]

그러나 당시 미국 워싱턴에 특파원을 두고 있지 않던 국내 언론들은 외신기사를 전재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실제로 동아일보뿐만 아닌 조선일보도 같은 날 1면 머리에 ‘신탁통치설을 배격함’이라는 사설을 싣고 바로 옆에 합동통신 기사를 4단으로 전재했다. 당시 좌익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었던 서울신문도 1면에 합동통신의 기사를 받아 2단으로 보도했다. 좌우익 계열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신문에 이 기사가 실린 것이다.[10]

문제가 된 최초로 보도된 기사는 미국의 통신사인 AP와 UP로 알려졌으나 당시 기사 원문은 남아 있지 않다. 동아일보에서 UP의 후신인 UPI 측에 문의한 결과 미국 현지 신문도 당시 UP 기사를 전재해 국내 언론과 같은 내용을 보도한 것으로 확인됐다. 워싱턴 타임스 헤럴드는 1945년 12월 26일자 7면에 UP 기사를 전재한 ‘May Grant Korea Freedom’이라는 기사를 통해 “미국의 번스 국무장관이 소련의 신탁통치안을 반대하고 한국의 즉시 독립을 주장하라는 훈령을 받고 러시아로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10]

미군 기관지인 성조 태평양판(일본 도쿄발행)도 1945년 12월 27일 AP, UP 기사를 종합한 기사를 1면에 싣고 문제의 UP 기사와 해당 기자 이름을 보도했다.[10]

신탁통치에 대한 반응은 북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조만식을 중심으로 한 조선민주당의 주도로 광범한 반탁운동이 전개되었고, 공산주의자들도 반탁의 뜻을 명백히 하였다. 그러나 소련이 ‘삼상회의의 결정에 반대하는 세력은 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할 수 없다'고 주장하자 공산주의자들은 찬탁(贊託)으로 나서게 되었다.[11] 니콜라이 레베데프 소련 민정책임자는 조만식반동주의자이며 반인민적인 인물이라고 비난하였다.[12]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해방공간에서 언론계는 좌익이 기선을 장악하고 있었다”고 설명한다. 이런 상황에서 본보의 보도가 반탁운동을 격화시켰고, 이 반탁운동이 남북 분단으로 이어졌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를 뿐 아니라 비논리적 해석이라는 것이다.[10]

출처 : 한국독립당(가칭) 창당준비위원회 | 글쓴이 : 김성부 |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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